[김영태의 돈 되는 땅 20] 정 주고 돈 주는 땅

[맹지]

[김영태의 돈 되는 땅]정 주고 돈 주는 땅

 2006-04-09

지난 30년 간 건설 부동산업의 외길을 걸어온 J사장. 대형 중개법인을 운영하며 꾸준히 사 모은 땅이 한때 100억원대에 달했던 땅 부자였다. 하지만 잘 나가던 건설사업은 오래 가지 못 했다. 1995년 땅값이 폭등하자 정부가 토지시장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강력한 토지시장 안정화 대책으로 막대한 투자손실을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운영하던 회사는 문을 닫아야 했다.

회사가 망하고 나자 수십억 원의 빚만 남았다. 여기저기 조금씩 사두었던 알토란같던 땅들은 빚을 갚다보니 어느새 남은 게 없었다. 사정이 급하다 보니 대부분 헐값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급한 눈치를 보이면 거저 빼앗아 가려고 달려드는 게 세상 인심인 것을 새삼 절감했다.

대충 빚을 갚고 나자 점심 값이 없어서 굶고 다닌 적도 있었다. 견디다 못해 부동산 중개사사무실을 운영하던 친구에게 몸을 의탁하고 2∼3년을 버텼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1년에 10만㎞ 이상 달리며 전국의 땅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역경에 처해 그 사이 거품을 걷어내고 화려한 의상을 벗으니 비로소 길이 보였다. 재기할 방법은 부동산, 특히 땅 밖에 없었다.

사실 J사장에게는 아직 최후의 보루가 남아있었다. 바로 고향인 경기도 안산 근처에 소재한 1만여 평의 과수원. 빚쟁이들로부터 채무변제 압력에 시달릴 때마다 ‘그냥 팔아버릴까’하고 여러 번 생각했다가 끝까지 남겨놓은 땅이었다. 후일 재기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복잡한 계산이 깔렸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J사장이 사업으로 돈을 벌어 제일 처음 매입했던 땅이라서 애착이 컸을 뿐이었다. 자식으로 치자면 장남 같은 땅이라서 차마 팔아 넘기지 못했던 것.

회사가 부도난 지 5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전화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안산 땅을 팔라는 전화였다. 사정을 알아보니 그 땅과 접해 있는 인근지역이 도시계획 변경으로 시가지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 평당 10만원에 매입했던 땅이 55만원을 호가했다. 산과 산이 겹쳐지는 곳에 넓게 자리 잡은 평평한 땅이라 쓰임새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J사장은 그 땅을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해 보이는 사람에게 평당 45만원을 받고 넘겼다. 55만원을 모두 받아낼 수도 있었으나 뒤에 오는 사람도 먹을 것을 남겨두자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땅을 팔아 얻은 차익은 고스란히 다시 용인 땅에 재투자했다. 친구 중개업소에서 일하면서 봐두었던 땅이었다. 수도권광역교통망계획에 따라 곧 경량전철 역사가 들어설 부지였다. 호재가 점차 가시화하면서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현재 주변 시세가 평당 70만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J사장은 계속 기다릴 생각이다.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면 평당 200만원을 넘어서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재기의 발판이 마련된 셈.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말은 주역의 64괘 중 가장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는 박괘(剝卦)에 나온다. 박괘는 초겨울 잎이 모두 진 감나무 가지 끝에 빨간 감 한 개를 남겨놓은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 땅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정이 들어 주인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다.

김영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칼럼을 쓰는 김영태씨는 광운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전원주택라이프 편집장을 역임했다. 이후 토지개발전문업체 JMK플래닝 개발사업부 팀장과 광개토개발 대표를 거쳐 현재는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