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0장 무덤 앞에서
죽림이 끝나는 절영곡의 입구.
죽림이 팍괴되어서인지 그토록 신비스럽게 자리하고 있던 절영곡의
모습이 한결 생생하게 드러났다.
어느 순간,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죽림을 뚫고 세 사람이 나타
났다.
그들 중 가장 앞선 인물은 우람한 체구에 등뒤에 검은 창을 맨
초로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위맹하게 생긴 얼굴에 한 쪽 눈에 검은
안대를 하고 있어 더욱 사나워 보였다.
두 번째 인물은 키가 헌칠하고 청수한 이목을 한 황색 장삼의 중년인
이었다.
황삼중년인은 눈빛이 맑고 가슴까지 내려오는 탐스러운 수염을 기르
고 있어 중후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마지막 인물은 비쩍 마르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파였다.
노파는 강팍한 얼굴에 눈빛이 빙굴에서 흘러나오는 듯 차갑기 그지없
었는데 수중에는 용두강괴를 들고 있었다.
세 사람은 번개같은 신법으로 계곡의 입구를 지나 무덤 앞에 내려서
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중 황색 장삼을 걸친 중년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하군 소문에 듣기로는 이곳 죽림은 무서운 기문진이 설치되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모두 파괴되어 있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7"
애꾸노인은 침을 탁 뱉고는 크게 외쳤다.
"곽 보주는 별걸 다 신경 쓰는구려. 아마 우리보다 먼저
동부로 들어간 자들 중 누군가가 그랬을 거요. 그러니 우리도 더 늦
기 전에 동부의 입구를 찾읍시다."
그때 용두강괴를 든 노파가 무덤 앞으로 다가와서 바닥을 내려다보다
가 눈을 번뜩였다.
"이곳에 발자국이 많은 걸 보니 아무래도 수상하오. 혹시 이 무덤이
유령동부로 들어가는 입구가 아닐까 하는데, 두 분의 생각은 어떻
소?"
황삼중년인과 애꾸노인은 급히 무덤 앞으로 다가와 바닥을 살폈다.
애꾸노인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냉모모의 말이 맞소. 어서 무덤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갑……"
바로 이때 어디선가 하나의 뫼꼬리같이 맑고 아름다운, 그러나 숨이
가쁜 듯한 음성이 들려 왔다.
"아버님……!"
이 소리에 모두 눈이 휘등그래졌다.
그들이 고개를 돌려 보니 두 명의 아리따운 미녀들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황삼중년인은 그 중 홍의를 입은 소녀를 보자 반색을 했다.
"연아로구나! 네가 여기에는 어쩐 일이냐?"
그 소녀는 그들 앞에 서자마자 생긋 웃으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조
그만 입술을 놀렸다.
"아버님 제가 여기에 온 데는 곡절이 많으니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이분 언니는 일수삼도 운남평 대협의 따님이신 운봉랑 소저예요."
나타난 소녀들은 다름 아닌 곽희연과 운봉랑이었던 것이다.
황삼중년인은 곽희연의 부친이자 분양 곽가보의 보주인 태을신검
곽일진이었다.
운봉랑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질녀가 숙부님께 인사를 드려요."
곽일진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껄껄 웃었다
"하하…… 네가 바로 그 코흘리개 봉랑이란 말이냐? 정말 몰라보게
컸구나. 네가 사대미인 중에 하나로 꼽힌다기에 긴가민가했는데 오늘
보니까 그 동안 정말 예뻐졌구나."
곽일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운남평의 안부를 묻고는 애
꾸노인과 노파를 가리켰다.
"너희들은 어서 두 분 선배님께 인사를 올리거라. 이분은 독목신창
여의태 대협이시고, 저쪽 분은 무정신구
냉모모이시란다."
독목신창 여의태와 무정신구 냉모모는 모두 무림의 유명한 명숙
들이었다.
곽희연과 운봉랑은 급히 그들에게 정중히 포권했다.
인사를 마치자 곽일진은 다시 곽희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들도 유령동부의 보물을 얻으려고 이곳에 왔느냐?"
곽희연은 두 눈동자를 샛별같이 반짝이며 생글생글 웃더니 하얀 치아
를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저희는 다른 일 때문에 왔어요."
곽일진은 의아한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다른 일 때문이라니? 그게 무엇이냐?"
바로 그때 또다시 어디선가 십여 줄기의 인영이 날렵하게 나타났다.
그들은 승, 도, 속이 뒤섞인 인물들이었는데 그 중에서
도 특히 눈부신 백의를 입은 미소녀가 눈길을 끌었다.
그녀의 눈은 샛별같이 반짝였고 살결은 백옥 같았다. 게다가 가느다
란 허리를 하느작거리며 날아오고 있는 모습이 마치 선녀와도
같았다.
운봉랑은 그녀를 보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곽회연은 그녀의 기색을 알아차리고 급히 물었다.
"운 언니, 그녀가 누군지 아세요?"
운봉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백의미녀에게 걸어갔다.
"호호…… 설마 조 낭자께서도 이런 시끄러운 일에 끼여들
줄은 몰랐군요."
백의미소녀는 웬 아름다운 여인이 웃으면서 자신에게 다가오자 두 눈
을 상큼히 뜨고 그녀를 쳐다보다가 눈을 반짝 빛냈다.
"이제 보니 소비연 운 낭자였군요. 운 낭자야말로 이곳엔 웬일이세
요?"
운봉랑은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호호…… 사연을 말하자면 복잡해요."
두 천하절색의 미녀들이 경쟁이나 하듯이 나란히 웃자 그
야말로 중인들은 넋이 나가는 듯했다.
곽희연은 백의미소녀의 미모가 운봉랑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것을 보
고 깜짝 놀랐다.
'저 소녀의 용모는 운 언니보다 결코 못하지 않구나…… 혹시 그녀도
사대미인 중 하나가 아닐까?'
그녀의 생각을 짐작이나 하듯 운봉랑이 그녀를 손짓해 불렀다.
"연매, 인사해. 이분은 조옥환, 조 낭자야."
곽희연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그럼 사대미인 중의 한달기라는……"
한 맺힌 달기, 조옥환이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낭자는 혹시 곽가보의 꽃이라는 곽희연 낭자가 아닌가요?"
"그래요. 한데 어떻게 저를 아세요?"
"호호…… 두 분께서 같이 잘 다닌다는 말을 들었어요. 아무튼 반가
워요."
세 소녀는 서로 종달새처럼 조잘거렸다.
각기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세 미녀가 머리를 맞댄 채 이야기를 하다
가 돌연 까르르 웃곤 하자 중인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의태가 곽일진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들을 보니 우리들이 너무 늙어 버린 것 같구려. 이거 어디 서러
워서 살겠소?"
곽일진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무덤 앞에 도착하는 무림인들의 수는 점점 늘어 금
세 백여 명에 육박하게 되었다. 죽림에 설치되어 있던 기문진이 깨어
지자 군웅들이 너도나도 몰려든 것이다.
여의태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자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안 되겠소. 이러다간 유령동부를 찾기도 전에 깔려 죽고 말겠소. 어
서 저 무덤을 파괴합시다."
이어 그는 묘비를 향해 일장을 날렸다.
꽈릉!
그의 내공은 이미 절정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날린 일장에는
천근거석이라도 부숴 버릴 무서운 위력이 담겨 있었다.
꽝!
굉음과 동시에 온 산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나 묘비는 끄떡도 않는 것이 아닌가?
여의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아니, 무슨 놈의 묘비가 이렇게 단단하지……?'
곽일진이 무덤 위로 재빨리 올라가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 무덤은 특이한 기관장치가 돼 있는 것 같소."
군웅들이 폭음 소리를 듣고 벌메같이 그들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여의태는 자신의 경솔한 행동 때문에 오히려 군웅들의 이목을 집중시
켰음을 알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바로 그때,
"앗?"
무덤 위로 올라갔던 곽일진이 경악의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냉모모는 깜짝 놀라 재빨리 무덤 앞으로 다가가 궁금한 듯이 다급하
게 물었다.
"곽 보주께선 무엇을 발견하셨소?"
곽일진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손을 내밀어 그들을 불렀다.
"이리 와보시오."
냉모모와 여의태, 그리고 곽희연, 운봉랑, 조옥환 등이 앞을 다투어
무덤 위로 달려가 보았다.
곽일진의 발 앞에는 하나의 팔괘도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 팔괘도는 괴이하게도 저절로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곽일진은 한동안 그 팔괘도를 응시하고 있다가 낮은 소리로 곽희연에
게 재빨리 속삭였다.
"연아, 이 팔괘도에 무슨 비밀이 있는 것 같으니 난 이들과 함께 그
것의 비밀을 풀어야겠다. 그러니 너희들과 조 낭자는 다른 사람들이
기습하지 못하도록 방비를 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곽희연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고 총총히 밑으로 뛰꺼 내
려갔다.
군웅들은 비록 곽일진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가 도대체 무
엇을 발견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군웅들 중 한 사람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곽희연에게 다급하게 입
을 열었다.
"곽 낭자!"
곽희연은 약간 주춤했으나 즉시 그의 앞으로 달려가면서 생긋 웃어
보였다.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그자는 급히 물었다.
"영존 등 세 분께서 무엇을 발견하셨소?"
곽희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상냥스럽게 미소를 머금은 채 나직
이 속삭였다.
"무슨 팔괘도 같은 것을 발견하시고 지금 연구하는 중이세요."
그녀는 특히 연구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과연 중인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곽일진 등을 바라볼 뿐 이상한 행
동을 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곽일진과 여의태, 냉모모 세 사랑은 이곳에 모인 군웅들 중에서 명망
으로 보나 무공으로 보나 가장 탁뭘한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중인들은 그들이 팔괘도의 비밀을 풀 때까지는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
하는 것이다.
이때 중인들 중 가장 구석에 있던 한 사람이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면
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자는 얼굴에 칼자국이 있고 뱁새눈을 가
진 장한이었다.
장한은 군웅들의 기색을 살피다가 아무도 자신을 주시하는 사람이 없
자 그제서야 안심하고 몸을 날럭 계곡 밖으로 달려갔다.
"흐흐…… 하루살이 같은 것들. 이제 곧 저 세상으로 갈 줄도 모르고
……"
장한은 입가에 음독한 미소를 지은 채 계곡 밖으로 치달려갔다.
하나 그는 하나의 신비한 인영이 자신의 뒤를 은밀히 따르고 있는 줄
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곡을 벗어난 뱁새눈의 장한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어느 이름 모
를 절곡으로 들어갔다.
절곡의 중앙에는 한 채의 허름한모옥이 있었다 아마 사냥꾼의 거처인
듯 동물 가죽으로 지붕을 막아 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장한은 모윽 앞에 가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온칠호님, 속하 고평입니다."
그러자 모옥 안에서 음침한 음성이 들려 왔다.
"어서 들어와라."
고평은 조심스럽게 모옥 안으로 들어서며 공손히 허리를 굽혀 절을
올렸다.
모옥 안에는 하나의 커다란 탁자와 몇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의
자 위에는 두 명의 인물이 거만스럽게 앉아 고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 세 갈래의 긴 수염을 기르고 눈초리가 세모로 쭉 찢어진 회색
장포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절영곡 안의 사정은 어떻더냐?"
"온칠호님의 예상대롭니다. 무링인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어 인산인해
를 이루고 있습니다."
회색 장포의 노인은 징그럽게 웃었다.
"흐흐…… 그래? 그들 중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하는 놈들은 없었느
냐?"
고평은 자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엄었습니다. 그자들은 무덤을 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소인이 그들을
염탐하고 돌아가는 것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수고했다. 가서 쉬도록 해라."
고평은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물러났다.
한데 수염을 쓰다듬는 회포노인의 손가락은 모두 잘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바로 회서방의 칠호 온서인 최혼가람 고복양이었던 것이다
고복양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인물을 바라보았다
"노 형! 절영곡 주변에 뇌화신주를 묻어 놓았소?"
그 인물은 불타 오르는 듯한 적발에 적염, 홍안의
노인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흡사 불의 화신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
도였다.
이 적염노인은 회서방의 십사호 온서인 열화진군 노잔양
이었다. 노잔양은 강호무림에서 화기의 제일인자로 손
꼽히는 인물로, 그의 뇌화신주는 단 한 알로도 반경 이십여 장 이내
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 수 있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화기였다.
노잔양은 고개를 끄덕 였다.
"염려 마시오. 이미 열두 개의 뇌화신주를 절영곡의 중요한 곳에 배
치해 놓았소. 절영곡에 들어온 놈들은 하나도 요행을 바라지 못할 거
외다."
"흐흐…… 과연 부총호법의 신산묘계는 귀신과 같소이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 본 방에 거역하는 무리들을 섬멸하고, 다른 자들
에게는 본 방의 무서움을 똑똑히 보여 주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일
석이조의 계략이 아니겠소?"
"하하…… 노부는 처음부터 부총호법의 인물 됨이 남다른 것을 알고
있었소이다."
그들은 서로 마주보며 통꽤한 웃음을 터뜨렸다.
한판 밖으로 나간 고평은 계곡 아래에 마련된 자신의 거처로 달려가
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등뒤에서 한 줄기의 싸늘한 한풍이 스치는 것이
아닌가?
순간 그의 머릿속이 윙윙거리기 시작했다.
잇달아 하나의 냉랭한 음성이 들려 왔다.
"고 형은 이쪽으로 오시오."
그 음성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마력이 담겨져 있었다.
고평은 마치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정신없이 자신을 부르는 쪽
으로 걸어갔다.
얼마 후 고평은 숲속 깊숙한 곳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평범한 인상의
청의중년인이 서 있었다. 그는 바로 변장을 한 강옥봉이었다.
강옥봉은 배교대법 중 섭혼미령법을 전개하여 고평을 유
인한 것이다.
"고 형, 잘 오셨소."
그는 또다시 고평을 뚫어질 듯이 똑바로 주시하며 위엄있게 입을 열
었다.
"고 형은 회서방에서의 지위가 어떻게 되시오?"
고평은 혼이 나간 듯 멍청해져서 아무 생각도 없이 저절로 입을 열었
다.
"나는 회서방의 사십구호 전서요."
"음…… 고 형은 누구의 명을 받고 절영곡에 모인 군웅들을 감시했던
거요.?"
"칠호 온서인 최혼가람 고복양이오."
"그와 동행 한 홍포노인은 누구요?"
고평은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넙죽넙죽
대답했다.
"그분은 본 방의 십사호 온서이신 열화진군 노잔양이시오."
"고복양과 노잔양이 고 형으로 하여금 군웅들을 감시케 하고 계곡에
뇌화신주를 묻어 놓은 것은 그것을 터뜨려 군웅들을 몰살시키려는 계
획 때문이오?"
"그렇소."
강옥봉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담담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위
엄있는 목소리를 발했다.
"그렇다면 죽림에 설치한 기문진을 파괴한 것도 회서방의 짓이오?"
고평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것은 부총호법이 하신 것이오."
강옥봉은 눈을 반짝 빛냈다.
"그럼 이번 일은 부총호법이란 자가 계획했단 말이오?"
"그렇소."
"부총호법은 누구요?"
"그는 음양공자 음적양이오."
"음양공자? 무림 사대공자 중의 그 음양공자 말이오?"
"바로 그렇소."
강옥봉은 내심 침음했다.
무림에는 사대미인이 있듯이 또한 사대공자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혜성같이 강호에 나타난 고수들인데, 하나같이 무공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고강하고 행적이 신비해서 모든 무림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음양공자의 지위는 회서방 내에서 어느 정도요?"
"부총호법은 다른 온서급 고수들보다는 높고 총호법의 바로 아래요.
아마 온이호님과 비슷할 거요."
"회서방에서 그보다 지위가 높은 자는 몇 명이나 되오?"
"부총호법의 위로는 오직 온일호님과 총호법님 그리고 방주님, 세 분
만 계실 뿐이오."
강옥봉은 신광을 내뻗었다.
"그렬다면 혹시 회서방주가 누구인지 아시오?"
고평은 처음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건 모르오."
강옥봉은 내심 짐작은 했었지만 약간 맥이 풀려 다시 물었다.
"짐작 가는 인물도 없소?"
"없소. 방주님의 신분은 극히 신비하여 본 방에서 그걸 알고 있는 사
람은 온삼호님 이상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뿐이오."
"그럼 고복양과 노잔양도 방주가 누군지 모른단 말이오?"
고평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물론이오."
강옥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품속으로 손을
넣어 한 장의 지도를 꺼내 그의 앞에 놓았다.
"고 형께서는 어느 곳에 열두 개의 뇌화신주를 묻어 놓았는지 좀 얘
기해 주시오."
고평은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즉시 뇌화신주가 묻힌 곳을 지적해
주었다.
그 지도는 바로 절영곡의 지도였다.
강옥봉은 모든 것을 다 알고 나서 그를 향해 고맙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미 심장하게 미소를 보냈다.
"고 형, 참으로 고맙소. 이제 그만 가보시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신형을 제비처럼 솟구치며 순식간에 날아가 버
렸다.
고평은 그가 떠나간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조금 전에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다만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떠나갔을 뿐이다.
한편, 강옥봉은 절영곡 안으로 들어선 후에 즉시 열화신군 노잔양이
사람을 시켜 묻어 놓은 열두 개의 뇌화신주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그 중 열한 개를 찾아 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한 그루의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뇌화신주를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강옥봉은 혹시라도 회서방의 고수들이 눈치를 챌까 봐 곧장
그곳으로 가지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무엇을 찾는 시능을 하며
그 나무 옆으로 다가갔다.
군웅들은 그의 거동이 의심스러웠지만 그가 무덤의 비밀을 찾으려는
줄로만 알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한데 그가 막 마지막 뇌화신주까지 제거해 버릴 때였다.
갑자기 그의 등뒤에서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롭고 음산한 소리가 으스
스 하게 들려 왔다.
"흐흐…… 귀하!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요?"
강옥봉은 그 소리에 흠칫 놀라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의 뒤에는 마흔 가량의, 몹시 징그럽게 생긴 중년대한 한 명이 서
있었다. 중년대한은 또다시 음침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면서 비웃듯이
강옥봉을 노려보았다.
"귀하, 거기서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오?"
강옥봉은 한눈에 중년대한이 회서방의 고수임을 직감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태연하고도 냉랭한 태도로 중년대한을 매
섭게 쏘아보았다.
"수작을 부리고 있으펀 또 어떻소?"
말과 함께 갑자기 일장을 날렸다.
순간,
"윽!"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중년대한은 가슴에 정통으로 한 대 맞고 그
대로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이렇듯 약간 소란스러운 소리에 곽희연과 운봉랑은 고개를 돌려 보다
가 청의중년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들은 한눈에 그 중년인이 바로 강옥봉이 변장한 것임을 알아차렸
다.
곽희연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운봉랑을 향해 성급하게 입을 열었다.
"언니, 그분이 왔어요."
운봉랑도 내심 마음이 울렁거리고 뛸 듯이 기뻤는지라 고개를 끄덕이
며 소곤거렸다.
"그래, 정말 오셨구나."
그녀들은 사실 이곳에서 강옥봉과 만나기로 했는데 그의 모습이 보이
지 않아 내심 애를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들이 그의 모습을 더욱 자세히 보려고 발돋움을 하려는 찰나, 강
옥봉은 벌써 그 대한을 쓰러뜨리고 커다랗게 냉소를 터뜨리며 몸을
홱 돌려 절영곡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군웅들은 비록 강옥봉이 출
수를 해서 어떤 중년대한 한 사람을 제압한 것을 보았지만 쓸데없는
시비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던지 아예 모르는 척 외면을 하는 것이
었다.
운봉랑은 강옥봉이 저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자 다급히 곽희연에게
눈짓을 했다.
"빨리 가서 그분이 어디로 가려는지 물어 보아라."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곽희연은 주저없이 강옥봉의 뒤를 따르면서 목
소리를 낮추어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강 소협……"
그러나 강옥봉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계속 걸어가면서 전음성을 발
했다.
'곽 소저, 상황이 매우 다급하니 나를 모르는 척하시오. 이제 조금만
있으면 회서방의 고수들이 이리로 올것이니 목하 제일 시급한 것은
바로 곽 보주께서 무덤의 비밀을 빨리 알아 내는 것이오."
곽회연은 그제서야 뒤따르던 몸을 멈추고 즉시 운봉랑을 향해 되돌아
갔다.
운봉랑은 곽희연이 돌아오는 것을 보자 궁금한 듯이 성급하게 물었
다.
"그분께서 뭐라고 하셨지?"
곽회연은 즉시 표정을 굳히고 강옥봉이 일러준 말을 속삭이듯 얘기해
주었다.
운봉랑은 비로소 죽림의 기문진을 파괴한 것이 회서방의 계략임을 알
아차리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달기 조옥환은 두 소녀가 청의중년인을 번갈아 바라보며 저희들끼
리만 속닥거리자 한편으로는 의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약
이 올랐다.
그는 곽회연이 만났던 청의중년인을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물인 것을 보고 더 이상 의혹을 참지 못하고 그녀들에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 두 분만 알지 말고 저도 좀 알면 안 될까요?"
두 소녀는 입가에 신비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 뿐
입을 열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조옥환은 내심 매우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바로 그때 곽일진이 갑자기 흥분된 어조로 소리쳤다.
"다행히 이 무덤의 오묘함을 알아 냈소이다!"
여의태는 그의 말을 듣고 매우 기쁜 듯이 곽일진의 앞으로 다가서며
다급하게 서둘렀다.
"일이란 지체를 해서는 안 되니 곽 보주께선 속히 묘문을 여시오."
곽일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여덟 개의 석상 중 첫 번째 석상 앞으로
다가가서 석상의 왼팔을 빙그르르 밀었다. 그것은 얼마 전에 비호 서
횡이 묘비의 문을 열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이었다.
이 순간 군웅들은 전부 다 무덤 앞으로 몰려왔다.
그러나 곽희연과 운봉랑의 표정은 괴이할 정도로 매우 긴장되어 있었
다.
조옥환은 마음속으로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바로 이때,
위윙!
무덤 속에서 갑자기 괴이한 음향이 들려 오더니 잇달아 묘비가 옆으
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유령동부로 들어가는 입구는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인 모양
이었다.
하나 이를 알 길 없는 여의태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껄껄 대소를 터뜨리며 좋아하는 것이었다.
"묘문이 열렸다. 우리 어서 들어갑시다!"
한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골짜기 안에서 갑자기 고막을 찢는
듯한 광소와 함께 십여 줄기의 인영이 유성처럼 날아오는 것이 아닌
가?
"으하하하히……!"
그들은 바로 최흔가람 고복양과 열화진군 노잔양을 비롯한 회서방의
고수들이었다.
막 무덤으로 뛰어들려던 여의태는 그들의 때아닌 출현에 놀라 몸을
우뚝 세웠다.
고복양은 음산한 괴소를 날렸다.
"흐흐…… 여 형은 잠깐 멈추시오."
여의태는 속으로 움찔했지만 고개를 돌려 고복양을 아니꼽다는 듯 노
려보며 퉁명스럽게 살아붙였다.
"무슨 일이오?"
고복양은 빙글빙글 웃으며 무덤 앞으로 다가왔다.
"여 형과 곽 보주께서 무덤의 비밀을 알아 낸 데 대해 먼저 축하를
드리오. 하지만 여러분들은 무덤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으니 안타깝
게 되었구려."
이 말에 여의태는 깜짝 놀란 듯이 고복양을 똑바로 노려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가 무덤 안에 들어갈 수 없다니……"
고복양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흐흐…… 이곳은 이미 본 방에 접수된 지 오래요. 그러니 본 방의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무덤에 들어갈 수 없소."
이 말을 듣고 있던 여의태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껄껄 대소를
터뜨리며 대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 황산이 언제부터 회서방의 관할이 되었단 말이오? 설사 그렇더라
도 노부는 꼭 무덤에 들어가야겠소!"
고복양은 날카로운 눈으로 여의태를 노려보다가 냉소를 터뜨렸다.
"흥! 노부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인데 곧 그걸 믿게 해드리겠
소."
이어 그는 자신의 옆에 우뚝 서 있는 홍포노인을 가리켰다.
"이분은 본 방의 십사호 온서이신 열화진군 노잔양이라 하오."
여의태는 고복양이 노잔양을 가리키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저놈들이……'
노잔양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왼쪽 손바닥을 재빨리 펴더니 그들에
게 내밀었다. 순간 그의 손바닥에는 오리알만한 등근 구슬이 나타났
다.
곽일진이 그것을 보고 놀란 외침을 로해 냈다.
"아…… 저것은 뇌화신주다!"
순간 군웅들 틈에서 왁자지껄한 큰 소란이 일어났다.
이제야 군웅들은 고복양의 위협이 결코 허풍이 아님을 안 것이다.
고복양은 득의 만면한 미소를 지은 채 군웅들을 쓸어보았다.
"흐흐…… 이곳 절영곡 주위에는 이미 열두 개의 뇌화신주가 구석구
석 숨겨져 있소이다. 만일 여러분이 본 방을 무시하고 함부로 행동한
다면 뇌화신주의 뜨거운 맛을 단단히 보게 될 거요."
군웅들은 눈에 띄게 불안해져 서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나 이 넓
은 절영곡 안에 열두 개의 뇌화신주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를 어떻
게 알 수 있겠는가?
여의태는 수시로 안색이 변했다가 고복양을 노려보며 물었다.
"당신의 뜻은 무엇이오?"
"흐흐…… 간단하오. 내게 약이 있는데 이곳을 무사히 빠져 나가
고 싶으면 반드시 내가 주는 약을 먹어야 하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서 불고기 신세를 면치 못할 거요."
여의태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건 틀림없이 귀방의 해약이 없으면 풀지 못하는 독약이겠구려?"
"흐흐…… 그거야 여 형이 생각하슥기에 달렸지. 만일 순순히 본 방
에 귀순한다면 오히려 무공을 증진시키는 영약이 될 수도 있소."
바로 이때, 갑자기 낭랑한 소리가 허공에서 들려 왔다.
"고복양, 자신의 힘을 알고 말해라. 기껏 뇌화신주 몇 알을 가지고
우리들을 위협하려고 하느냐?"
군웅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들려 온 쪽으로 모아졌다.
그러나 누가 소리쳤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고복양은 대뜸 안색이 변하더니 고개를 재빨리 돌려서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어느 친구인지 나와서 말해라!"
하나 그 음성은 냉랭한 코웃음을 터뜨렸다.
"흥! 내가 나가면 당신은 아예 꼬리를 말고 도망쳐 버릴걸 그보다 좋
게 말할 때 순순히 뇌화신주를 거두고 물러나는 게 어떻겠소?"
고복양은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두 눈에서 살기를 뚝뚝 떨어뜨
렸다.
"누군지 어서 나타나라! 그렇지 않으면 뇌화신주를 그쪽으로 던지겠
다."
소리가 들려 온 쪽에 서 있던 군웅들은 질겁을 하고 사방으로 몸을
피했다.
그 바람에 한 사람의 몸이 앞으로 나오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사람은 스스로 앞으로 걸어나온 것이 아니었다.
단지 주위에 있는 군웅들이 모두 물러서고 자신은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바람에 모습을 나타내게 된 것뿐이었다.
그는 평범한 인상의 청의중년인이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보았읍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즐감.
즐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