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21-03-09 03:02
방송 보도 후 아픈 아이들 많이 들어와, 대부분 수술 필요… 익명 후원에 큰 감동
자원봉사자들이 2013년 4월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베이비박스 아이들과 야외활동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베이비박스에 보호되는 아기들이 늘어나면서 아기를 돌봐 줄 이들의 손길이 절실해졌다. 동시에 여러 아이를 돌보다 보니 우리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 국민일보 직원들이 2년간 봉사활동을 했는데 하루는 동료 기자를 데려와 베이비박스의 존재를 취재해 알렸다. 이를 계기로 공중파 방송에도 보도됐다. 봉사자들이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2009년 12월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뒤 1~2년간 장애 아동이나 위기 임신으로 인해 아픈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많이 들어왔다. 아이들은 대부분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다. 한 아이는 큰 수술만 16번 이상 할 정도였다. 비싼 수술비는 오롯이 우리가 감당할 몫이었다. 수술이 끝난 뒤 병원의 수납 창구에 가는 건 쉬운 걸음이 아니었다.
하루는 병원비가 얼마나 나왔는지 물으러 갔더니 병원 직원이 “완납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럴 리 없다며 다시 확인해달라고 했더니 직원은 “아니에요. 누군가가 계산해주셨네요”라고 말했다.
어떤 날은 교회 입구 계단에서 후원금이 들어있는 봉투를 발견했다. 봉투에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는 말씀이 적혀 있었다. 우리 부부는 울음을 터트렸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시는구나. 하나님이 광야에서 생수와 만나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 것처럼 우리 공동체도 먹이고 입히시는구나.”
이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수없이 느꼈고, 돕는 분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격한 일들이 참 많았다. 때론 마음 아픈 일들도 있었다.
2012년 8월 어느 날 낮 2시쯤 베이비박스에 벨이 울렸다. 2시간 후 또 다른 벨이 울렸고 저녁에 또 벨이 울렸다. 하루에 3명의 아기가 들어온 것이다. 보육방에서 갑자기 15명의 아기를 돌봐야 했다. 그때까지는 한 달에 2~3명의 아기를 돌봤는데 8월부터 23명의 아기를 봐야 했다.
자원봉사자로도 부족했다. 도움을 요청할 사람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하게도 직장에 잘 다니는 딸 지영이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딸은 아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울면서 직장을 그만뒀지만, 다행히 아이들을 친동생처럼 잘 돌봐줬다. ‘우선 아기부터 살리자’는 마음이 앞서 이런 부탁을 했는데 지금까지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세상 소식을 들여다볼 틈이 없는 시간을 보내다 잠깐 신문을 보니 입양특례법으로 인해 아이들이 밖에서 많이 버려진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2011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출생신고제를 강제하면서 피치 못할 사정을 가진 생모들이 본인과 아이의 생명을 두고 낙태나 출산 후 유기 등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지적을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아 지인들에게 물어보며 이 법에 대해 알아봤다. ‘인권을 외친다는 법안이 오히려 아기들의 생명을 위협하는구나.’ 이 기사가 베이비박스에 새로운 파도를 몰고 올 것처럼 보였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문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1418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