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1일 일요일 오전 11시 5분 아름다운 주상절리 해변을 찾아 첫 발을 내딛은 곳은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바닷가 마을. 작고 초라한 도로변 담장마다 예쁜 그림이 그려진 정겨운 동네의 느낌으로 다가 온다.
밝은 겨울 햇살을 받으며 마르기를 기다리는 오징어 너머로 길게 뻗은 방파제가 파도를 막아준다. 비록 잘 알려지지 않은 어항이지만 이곳 읍천항은 지난 1971년부터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비교적 규모가
큰 어항이다. 참고로, 국가어항보다 규모가 작은 어항은 지방어항,어촌정주어항,소규모어항 등으로 불리운다.
겨울이 시작된는 12월의 첫날답지 않게 따뜻한 햇살이 내비치는 읍천항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 읍천항 북쪽 1.3km 지점의 경주시 양남면 나아해변에서부터 남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울산광역시 북구 정자항까지 14.6km 구간은 지난 2010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조성된 부산의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르는 770km 의 도보길 총 50개 구간 중 제 10구간에 해당하는 구역이다.
이 해파랑길 10구간 중 읍천항에서부터 남쪽으로 약 1.7km 떨어진 하서항까지의 구간에 대해 경주시에서는 "경주 파도소리주상절리길"이란 명칭을 별도로 붙여 놓았다.
오전 11시17분 지난 2012년 6월에 만든 폭 1.5m, 길이 32m의 현수식 출렁다리를 지나며 해변길은 이어진다. 출렁다리를 건너온 지점 해안가 높은 곳에 버려진 감시초소가 생뚱맞게 자리잡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 젊은이들이 밤잠을 잊고 나라를 지키던 저곳. 시멘트 블럭은 온통 금이 가고 성한 곳이 없지만 늘푸른 소나무 몇 그루가 세월의 흐름을 지키려는듯 그 아픔을 감싸 준다.
여기서 경주 주상절리파도소리길이 끝나는 하서항까지는 1.5km가 남았고, 오늘 최종 목적지인 정자항까지는 13km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주상절리파도소리길 1.7km 구간은 해안 전체가 이처럼 멋진 풍경화의 연속이다. 이는 오랜 옛날 중생대 백악기. 즉, 지금으로부터 약 7천만 년 전부터 시작된 화산 폭발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한반도가 이 시기엔 현재의 일본보다 화산활동이 더 활발했는데, 지금의 영남 동남부에서 전남 남해안으로 이어지는 활모양의 지역이 그 중심 무대였다.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화산 쇄설물이 오랜 세월을 지나며 풍화 침식작용 끝에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이다.
오전 11시21분 읍천항에서 0.7km를 지나온 지점에서 잠시 후면 시야에서 가려 보이지 않게 될 읍천항을 뒤돌아본다. 세찬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끝에 서 있는 등대의 색깔에도 뜻이 담겨 있다. 붉은색 등대는 야간에 붉은색 등을 켜고, 흰색 등대는 야간에 녹색등을 켠다. 폭풍우 등 악천후 속에서도 붉은색 등대를 우측에 두고 좌측의 백색등대 사이를 지나면 파도를 막아주는 피난처인 항구로 들어올 수 있음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다쪽으로 돌출한 전망대에 올라 난간 아래 바다 쪽을 내려다 본다. 처음 접하는 장관 앞에 수많은 탐방객들의 탄성이 쏟아진다. 이곳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구간의 하이라이트인 이른바 "부채꼴 주상절리"의 모습이다.
사람 몸보다 큰 돌기둥을 무수히 쌓아 놓은듯 부채꼴로 펼쳐진 주상절리. 화산 폭발로 인한 용암이 지표면으로 분출하여 빠르게 냉각될 때 일반적으로 아래로는 지표면, 위로는 공기와 접촉하여 냉각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 수직 방향으로 절리가 형성된다. 그러나, 신생대 말기(약 6,500만년 전) 이곳에 분출된 현무암질 용암의 경우 특이하게 수평 방향으로 누운 주상절리가 형성된 특징이 있다. 이 부채꼴 형상은 그 모습이 마치 한 송이 해국이 바다 위에 곱게 핀듯하다 하여 "동해의 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부채꼴 주상절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를 뒤로 하고 발걸음은 남으로 계속 이어진다. 눈 앞을 스치는 모든 풍경이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절경이다보니 발걸음이 한없이 느려진다. 느려진 발걸음 덕분에 눈이 즐거워진다.
오전 11시34분 부채꼴주상절리를 지나 500m 남짓 지난 지점에서 이번에는 또 다른 주상절리를 만난다. 이곳에는 "위로 솟는 주상절리"라는 안내 간판이 서 있다.
마치 성냥갑에서 꺼낸 성냥개비를 모아 놓은듯도 하고, 콩나물 시루에서 서로 앞다투어 자라는 콩나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연의 신비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오전 11시38분 이번에는 누워있는 주상절리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비슷한 크기와 모양을 가진 돌기둥들을 바라보니 마치 거대한 건설공사 현장을 보는듯 하다.
항상 흰 포말이 솟구치는 파도가 일상인 동해바다이건만 오늘따라 유난히 잔잔한 바다. 그래서인지 갯바위마다 낚시꾼들이 북적인다.
평소 파도가 치는 날이면 해안가를 따라 조성된 목재 데크 길을 따라야 하는 탐방로이지만 오늘처럼 드물게 파도가 거의 없는 잔잔한 날이면 각양각색의 주상절리 갯바위를 밟으며 바닷가에서 동해바다 푸른 물에 손을 담그는 호사도 부려 본다.
이곳에는 "기울어진 주상절리"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이제 200m 남짓이면 끝나는 지점이다.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는 바다의 유혹을 못 이기고 바닷가로 내려 가며 화산 폭발로 인해 마그마에서 분츨한 1000도 이상의 뜨거운 용암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그 용암이 식어가며 오각형 또는 육각형의 절리(틈)를 형성하는 과정을 상상해 본다.
약 6,500만년 전인 신생대 말기에 이 지역에 분출한 현무암질 용암은 일반적인 수직주상절리는 물론 경사지거나 누워있는 주상절리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부채꼴 주상절리와 같이 독특하고 다양한 주상절리를 형성한 때문에 예전의 화산활동을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학술적 가치가 크다 한다.
오전 11시50분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남쪽 자락인 죽전리,효동리 부근에서 발원하여 동해바다로 흘러드는 하서천을 지나며 하서해안공원과 연이은 하서해수욕장 변을 따라 길은 남으로 계속 이어진다. 약 1.7km 길이의 경주 파도소리주상절리길 구간이 끝난 탓인지 비교적 북적이던 인파는 종적을 감추고 같은 차량으로 도착한 우리 일행들만 작고 아름다운 자갈로 뒤덮인 해변을 따라 울산 정자항까지의 남은 11km 정도 거리를 바라보며 걸음을 이어간다.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날씨인지라 겉옷을 벗고 반팔 티 차림으로 걷는다.
마치 따뜻한 봄날처럼 상쾌한 바닷바람이 온몸을 스친다.
낮 12시17분 하서1리와 하서3리 사이 경계지점의 하서해안공원 주변에는 수령이 200년이 넘는 해송들이 모여 지역 명소인 '하서솔밭'을 이루고 있다. 해안가에 만들어 놓은 '6.25 참전 유공자 명예 선양비' 와 '월성해안 침투 공비 섬멸 전적비' 또한 자리 잡은 해안. 해변에서 푸른 하늘과 바다를 벗삼아 한동안 휴식을 취한다.
오후 1시 점심 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하서리를 벗어나 수렴리로 길은 이어진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크고 작은 암반들은 갈매기를 비롯한 물새들에게는 천혜의 휴식처가 된다.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하며 걷는 길이다.
오후 1시12분 수렴리 중심부에 위치한 관성해수욕장을 지난다. 31번 국도변을 따라 백사장 길이 1.3km 남짓한 이 해수욕장은 지난 1988년 개장한 비교적 역사가 일천한 해수욕장이지만 현대자동차 하계휴양소로 지정된 후 매년 여름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오후 1시38분 관성해수욕장을 지나며 해변을 따르는 탐방로는 잠시 31번 국도변을 따른다. 국도 중앙 안전지대에 세워 놓은 경상북도 안내표지석을 보니 이제 곧 경상북도 경주시를 벗어나 울산광역시로 접어들게 될 것 같다. 오전에 출발한 읍천항에서 6.7km 를 지난 지점이니 최종 목적지인 울산 정자항까지는 이제 6.4km 정도 남았다.
나무 숲 사이로 진행 방향 좌측인 동쪽 아래로 시야가 트이며 멋진 해안 절경이 눈에 들어온다. 경주시 양남면 수렴리 지경마을 해안 모습이다.
31번 국도변을 떠나 해안가로 달음질 친다. 너무나 깨끗하고 맑은 바닷가 풍경이 바닷가로 향하는 내 눈 아래를 가득 채운다.
오후 1시50분 지경마을 북단 해변가에서 한참을 머문다. 오래 머물고 싶은 그림같은 풍경이다. 오전 출발한 읍천항이 국가어항으로 규모가 큰 어항이지만 이곳 지경항은 국가어항 아래 규모의 지방어항도, 그 아래 규모의 어촌정주어항도 아닌 아주 작은 규모의 소규모어항이다. 그 북단의 풍경은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소규모어항인 지경항을 뒤로하고 자그마한 지경마을을 지난다. 해안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행정구역상 경북 경주시 양남면 수렴2리인 이곳 지경마을은 경상북도와 울산광역시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다. 그런 연유로 지경이라는 마을 이름을 얻은 곳이다.
오후 2시2분 지경마을을 지나면 바로 이어지는 마을은 울산광역시 북구 신명동이다. 이곳 신명동과 조금 전 지나온 지경마을은 오래 전에는 한 마을이었다한다. 두 마을 경계에 있는 수령 500년의 당나무 아래에서는 같이 어울려 동제를 지내기도 했었다. 언제부터인가 작은 개천을 사이에 두고 경상북도와 울산광역시로 행정구역이 나누어지며 이제는 서로 왕래마저 끊겼다. 그러나, 아름다운 해변 풍광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자연을 본받음이 어떠할까?
신명리 앞바다에도 보석같은 멋진 바위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갈매기들의 보금자리다. 문득 이곳 울산 출신 시인 '김종원'의 시 '신명리에서 3' 의 한 귀절이 생각난다.
"---순간 나의 얼굴을 스치며 한 줄기 바람이 지나 간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어둠 속 그 어디쯤에서 쏴 - 와아아- 쏴 - 와아아- 무리지어 수평선을 향해 달려가다 ----"
바닷 속이 훤히 비칠 정도로 물이 맑은 신명항을 뒤로하고 길은 계속 남으로 이어진다. 비록 등대 하나 없이 방파제 길이가 90여m 에 불과한 작은 어항이지만 조금 전 지나온 지경항이 소규모어항인데 반해 이곳 신명항은 그보다 한 등급 위인 어촌정주어항이다.
신명항을 벗어나면 작고 아담한 몽돌해변을 지난다. 몽돌이란 '모오리돌'이란 우리 고유어를 줄여서 이르는 말인데, '모오리돌'이란 모가 나지 않고 둥근 돌을 이름이다.
바닷물과 맞닿은 부분은 거의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 도로와 가까운 부분에만 굵은 모래가 조금씩 있는 광활한 해변을 여유롭게 걷는다. 모래 위는 온통 갈매기 발자국뿐이다. 갈매기가 많은걸 보면 이 부근 바다에 갈매기 먹이가 많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리 길지 않은 몽돌 해변에는 수많은 낚시꾼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간혹 고등어,전어 등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모습도 눈에 띈다.
이처럼 부근에서 잘 잡히는 게를 잡기 위한 채비를 한 낚시꾼도 여럿 눈에 띈다. 하지만 야행성인 게가 이처럼 벌건 대낮에 잘 잡힐지가 의문이긴 하다.
오후 2시32분 신명몽돌해변을 지나면서 해변 모퉁이를 돌며 또 다른 장관이 펼쳐진다. 행정구역상 울산광역시 북구 산하동 952-1번지 일대인 이곳은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된 '강동 화암 주상절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곳 화암마을의 주상절리는 신생대 제3기(약 2천만년 전)에 분출한 현무암 용암이 냉각하면서 열수축 작용으로 생성된 냉각 절리이다.
마치 수평 또는 수직으로 세워 놓은 거대한 목재더미를 연상시키는 절리는 그 길이가 7~8m 에서 수십미터에 달하며 하나의 주상체 대각선의 길이는 대략 50cm 정도라고 한다.
해변가에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는 사람과 대비해 보면 이곳 강동화암 주상절리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자연의 신비함을 다시금 느낀다.
평소에는 세찬 파도로 인해 꿈도 꾸지 못할 지점에서 갯바위 낚시를 즐기는 저들의 기쁨을 낚시를 즐겨해보지 않은 이들은 짐작을 못하리라. 나 또한 한때 낚시광으로 몇년을 보냈던 경험만으로 저들의 행복감을 짐작만 할 뿐이다.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바위 너머로 푸른 동해바다가 펼쳐진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농촌의 모습에 대비되는 보기만해도 배 부른 어촌의 모습이다. 멀리 수평선까지 이어지는 푸른 바다 위의 희끗희끗한 점 들은 물고기나 게 등을 잡기 위한 그물,통발 등을 설치 해 놓은 곳에 세워 놓은 부표이다. 그만큼 이 부근이 황금 어장이라는 얘기도 될듯 하다.
강동 화암 주상절리 구간을 뒤로 하고 또 다시 남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곳의 주상절리는 화산 연구를 위한 학술적 가치는 물론 다양한 각도로 형성되어 있어 경관적 가치도 크다. 주상체 횡단면이 꽃 무늬 모양을 하고 있는데, 마을 이름인 "화암(花:꽃 화, 岩;바위 암)"의 이름 유래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주상절리 지역을 지나면서 다시 몽돌해변은 이어진다. 끝도 없이 이어질듯한 몽돌해변 주위는 갈매기들의 거대한 휴식처다.
갈매기들의 낙원에 반갑지 않은 침입자가 나타나자 한낮의 휴식을 즐기던 갈매기들에게 적색 경보가 발령된다. 거대한 생명체의 출현에 피난을 떠나는 몸 놀림이 분주하다.
휴식처에 침입한 괴 생명체를 피해 달아나는 갈매기 떼들은 괴롭겠지만, 그로 인해 먹이 사슬의 최 정점을 차지한 인간들은 파란 바다 위를 무리지어 나르는 흰 갈매기 떼들의 군무를 보며 즐거워 한다.
오후 2시52분 오늘 최종 목적지인 정자항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2.5km 정도. 끝없이 펼쳐지는 몽돌 해변을 따라 멀리 정자항 방파제가 까마득하게 보인다.
정자항 부근의 혼잡한 교통으로 귀가 차량의 진입조차 어렵다는 전언에 의해 오늘 여정은 이 지점에서 끝내기로 했다는 오늘 행사 주최측의 뜻에 따라 아쉽지만 멀리 떨어진 정자항 주변을 망원렌즈로 살펴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인근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동해 바다 풍경을 언제 다시 찾을지 기약할 수 없기에 지나온 해변을 뒤돌아 보며 그 모습을 눈으로 마음으로 옮긴다.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이곳 몽돌해변이 지난 수십 년에 걸친 해안 개발로 절대 면적이 감소한데다 몽돌 자체의 유실까지 가속화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이를 막기 위해 지난 해 여름 국토해양부는 몽돌 유실과 연안 침식을 막기위해 2017년까지 이곳 강동과 주변 주전 해안에 수중제방인 잠재 2기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수중제방이 남은 몽돌의 유실을 막을 지는 몰라도 이미 쓸려간 몽돌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 사라진 몽돌, 인간의 난개발에 대한 자연의 반응을 반면교사 삼아야할듯 하다.
오후 3시1분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은 '인문학 서재 몽돌'이 자리 한 곳이다. 도서관,전시관 등 울산광역시 북구 구민을 위한 문화공간인 깔끔한 건물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행복했던 휴일 하루 여정을 마감하고 귀가 길에 오른다.
위 지도상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날 트레킹 구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