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社說 1937.11.28.로 보는 高麗醫大의 전신 女醫專 女子醫專의 誕生確實 故金鍾翊氏에게 感謝함 一 故金鍾翊氏의 臨終時 快捨한 巨金을 基條로하야 朝鮮에도 女子醫學專門學校가 設立될 曙光이 비최이게 되엇다는 것은 最近 누구나 抱懷하게되는 한 個의 共通的推想이엇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무엇에 對하야서나 오직 『推想』만으로는 滿足할수 없는것이매 這間 自然히궁금하게 생각하는 中이다. 그런데 昨日 本紙所報에 依하면 우리 全社會가 大旱時의 雲霧처럼 待望하고잇는 女子醫專은 그 新設準備가 方今着着 進行中이므로 明春四月부터는 틀림없이 開校되리라고 한다. 卽這間 故金鍾翊氏의 未亡人 朴春子 女史를 비롯하야 그 遺族 親知들은 하로바삐 故人의 遺志를 達成하려고 女子醫專의 新設에 對하야 諸般準備를 晝夜로 進行한 結果八十萬圓의 財團法人을 組織하야 不日間 그 認可願을 提出할터인데 이미 使用할 校舍, 校長의 候補, 理事 等도 大槪 內定되엇다고 하므로 아마 明春四月부터는 女子醫專이 새로 우리 社會에 생기게될것이 確實한 모양이다. 二 所謂 『男女七歲不同席』 이니 『男不言內, 女不言外』이니하는 男女社會隔離 時代는 이미 먼 過去로 지나가고 모든일을 男女兩性이 共働協力 하지않으면 到底히 社會를 圓滿하고 또 充實하게 運轉할수 없게된 今日에 잇어서는 徹底한 男女平等을 實現하려는 前提條件으로 女性에게 對하여서도 男性에게對한것과 꼭마찬가지로 敎育에의 均等的機會를 주어야 할 것은 두말할 必要도 없이 識者의 是認하는 事實이다. 그런데 朝鮮의 現實로 보아서 女子醫專 같은것은어느 意味로는 男子醫專보다도 더 緊要하다고 할수잇음에도 不拘하고 男子醫專은三, 四個가 잇으되 女子醫專은 只今까지 公私立間에 한 個도 없엇다. 婦人의 모든 疾病에 對하여는 아무리 하여도 男醫보다는 女醫가 훨신더 必要하다는 것은 同性間이 아니면 到底히 말할수도 없으며 또는 理解하기도어려운 것이 많이 잇다는 常識論보다도 萬一 現今朝鮮에 女醫數가 每年增加함을 따라서 一般家庭婦人의 日常生活에 關한 衛生觀이 훨신더 向上되며 또는 育兒衛生에 關한 智識도 좀더 常識化로 進步된다면 近來 年年 增加의 傾向이 보이는 兒童死亡率 같은 것도 自然히 나타나지 안흘 現象으로 될 것은 明若觀火한 事實이 아니겟는가? 三 其他 여러 가지 點으로보아서도 女子醫專이 絶對로 必要한 것임은 只今 聞言을 呶呶할것조차 없건마는 그처럼 緊要한 女子醫專이 只今까지 한 個도 없엇다는 것은 單純히 적지않은 遺憾이라는것보다도 우리의 큰 羞恥라고 하지안흘수 없는바이다. 그러케 緊要한 女子醫專이 이제야 故金氏의 持志로 因하야 비로소 誕生하게될 모양이니 故金鍾翊氏야말로 朝鮮女性界의 恩人이며, 아울러 朝鮮社會의 羞恥를 잘씻어주는 큰 功勞者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장차 新生될 女子醫專을 아무쪼록 日益擴充發展 시키는것만이 故人의 遺志에 어그러짐이 없는 當然한 道理라고 생각한다. 明春 女子醫專의 開校를 따라서 從來잇는 女醫講의 生徒도 거기에 編入 되도록 하리라고하니 이는 當然한 일이어니와 女子醫專의 誕生이 確實하게된 今日에 우리는 女子醫專의 胎母라고도 할수잇는 女醫講을 率先創敎하야 多年間 奮鬪努力하던 米國人 홀 女士와 및 그뒤를 이어서 多年勤苦한 金鐸遠 等 諸氏에게 對하야 다시금 感謝의 뜻을 表하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