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이중노출(D.E) 기법
*제재를 대상에 간헐적, 은유적으로 이입
*초중고급의 구분은 두 요소의 융합 정도를 기준 - 그냥 내맘대로 해 본 것임^^
<강생이 어르기> / 서태수
*손주 = 강아지로 암시적 대유
처음에는 강아지를 직접 소환하다가
중간부터 슬그머니 손주와 겹치고
마지막에는 손주와 강아지의 혼연일체
*덤으로 - 시조시인이 쓴 수필임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 = 4음보 리듬 혼용
※순수 고유어를 찾아 사용 빈도를 높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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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 불매 불매야, 어허둥둥 내 강생이. 왼발 들고 오른발 들고, 고개 들고 꼬리 세우고. 옳지 잘한다, 내 강생이!’
양쪽 겨드랑이를 붙들고 곧추세워 흔들면 강아지도 신이 나는지 하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이제 한 달 된 쫄래동이 다섯 마리. 마주보는 눈빛이 해맑은 흑진주다. 복숭아 꽃잎 같은 앙증스런 콧잔등, 보들보들한 솜털뭉치. 이리저리 궁글리면서 어르고 놀기에 딱 알맞은 개월수로 손주로 치면 돌잡이들이다. 내 강생이 오르르 까꿍!
“불매 불매 불매야 이 불매가 뉘 불매고 내 강생이 꽃불매지.”
칠남매 아들딸을 한 번도 안아주지 않으셨다는 아버지께서도 손주 앞에서는 무거운 체통을 내려놓으셨다. 조선 안방마님 같던 어머니도 ‘어이구, 내 강생이!’를 입에 달고 계셨다. 강생이는 강아지의 경상도 사투리. 돌을 갓 지나 재작재작 걸음마를 배우면서 강생이들은 할아버지 앞에서는 불매를 해달라고 두 팔을 벌리고, 할머니 앞에서는 조막조막, 진진을 같이 하자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나도 그때의 부모님 나이. 점잖으신 부모님께서는 방 안에서 손주들과 노셨지만 나는 마당에서 내 강생이들을 어른다. 오글오글 모여 노는 잡종 흰둥이의 새끼들. 유연성이 좋아 여간 무디게 주물러도 다치지 않고, 떼를 쓰거나 울지도 않는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다칠 일도 없다. 촌수寸數가 한 치 건너뛰어 조심스런 손주와 달리 내 맘대로 해도 되는 내 전용 노리개들. 아비는 애시당초 코빼기도 안 보이고, 어미는 나에게 맡겨놓고 동네마실 나가면 가물치코다. 제 어미 아비의 눈치 볼 일도 바이없고, 병날까 걱정할 일도 없다. 데리고 놀다 싫증나면 마당에 두면 그만. 저들끼리 가댁질을 하면서 잘들 논다.
내가 마당으로 나서면 우르르 몰려온다. 말은 못해도 ‘우리 할배, 두목 할배’ 꼬리를 치며 발등을 핥는다. 서로 다가오려고 저들끼리 발에 밟히고 깽깽거리고 뒹굴고 야단법석이다. 먹이를 주어보면 암컷 네 마리는 눈치도 빠르고 영리하다. 딱 한 놈, 잠지가 달린 놈은 몸매는 당당해도 어수룩하다. 역시 짐승도 여식애가 철이 빠른가. 잘 뛰지를 못해 작은 자갈에도 앞발이 걸려 곧잘 넘어지는 콧방아쟁이도 있다. 배가 부르면 남는 힘을 부리고 싶어 내 바짓가랑이를 물고 발딱거린다. 한시도 가만있지를 못한다. 서로 엎치락뒤치락 말롱질을 한다. 저들끼리 서로 물고 당기고 놀다 아망이 나면 제법 아르렁! 온몸을 던져 싸운다. 그래 잘들 논다. 뉘 집 없이 아이들이란 다투면서 자라느니.
이빨이 자라나면서 잇몸이 간지러워 종이나 비닐조각을 붙들고 물어뜯는 꽃쌈놀이를 한다. 온 마당이 하얗다. 일일이 밉둥을 피우며 휘돈다. 그럴 때면 ‘이놈들, 이리 오너라.’ 헛고함을 지른다. 희한하게도 저 어린것들이 내 야단치는 건 안다. 종이조각을 물고 도망다니는 뒤를 쫓으면서 치다꺼리를 한다. 붙들리면 세워놓고 불매다.
불매불매 불매야. 이 재미있는 놀이의 깊은 뜻을 네놈들이 어이 알리. 걸음마 배우는 철이라 몸의 균형도 잡히느니. 단군 시대부터 내려오는 육아育兒 동작법 아니더냐. 조상님의 지혜와 철학이 담겨 있느니라. 둥개둥개 가동질을 하면 새까만 눈알로 빤히 쳐다본다. 코를 맞대면 젖내가 고소하다. 길짐승이라 선 채로 불매가 힘겨운가. 싫증이 나면 다리에 힘을 빼고 엉덩이도 뒤로 빼면서 주저앉는다. 그래, 관둬라. 네놈 아니라도 내 강생이는 얼마든지 또 있다.
곁에 붙어 깔짝거리는 놈을 일으켜 세운다. 자, 이제 조막조막 진진이다. 아이고, 콧물 흘렸네. 옷깃으로 대충 닦자. ‘휑-’ 하고 코 풀어라. 옳거니. 경상도식으로 해 보자, 조막조막 진진. 잘도 한다, 내 강생이. 서울식으로 해보자, 곤지곤지 잼잼. 전라도식으로도 해보자, 지게지게 좜좜. 손바닥 자극하여 오장육부도 지압하는 조막조막 진진이다.
낯가림이 없이 아장아장 걷는 이쁘동이들. 모두 털이 짧은 쌀강아지들이다. 온 마당이 녀석들의 소꿉놀이터다. 집 안에 활기가 돈다. 서로 즐겁다. 꼭 깨물고 싶은 녀석들. 주무르며 놀다보면 나머지 녀석은 새록새록 잠을 잔다. 아늘아늘한 배가 볼록거리면서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린다. 연분홍 뱃가죽에 좁쌀만한 젖꼭지가 열 개나 맺혀 있다. 옹알옹알 입맛도 다신다. 개잠이라더니, 몸을 웅크리고 아랫도리에 코를 처박아 잔다. 그런데도 네 다리를 활개치고 나비잠을 자는 별난 놈도 있다.
한 놈이 실눈을 뜬다. 그래 다 잤구나. 이리 오너라. 짝짜꿍 놀이를 하자. 짝짜꿍짝짜꿍. 옳지 잘한다. 손뼉 치며 노래하고 춤추는 놀이에 오장육부가 튼튼해지느니라. 도리도리도 해보자. 머리를 좌우로 돌려 목운동도 겸하느니.
많이들 자랐구나. 네놈들 태어난 아침, 한눈에 척 보아도 핏줄은 알겠더구나. 절반은 친탁이요 절반은 외탁이라. 점점 자라면서 더욱 또렷해지는구나. 저 뭉툭한 코 좀 보래. 어찌 저리 제 아비일꼬. 도톰한 입술은 제 어미를 쏙 빼닮았네. 털빛도 고루고루 섞였구나. 아무렴, 그래야지. 친가 외가 어울려서 한 식구로 지내야지. 시집 장가 가더라도 시댁이든 처가든 쥐 풀방구리 드나들듯 사는 세상 아니더냐. 얼굴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느니. 먼 동네 보내지 않고 삼이웃에 분양하마. 변소와 사돈댁은 가까울수록 편하니라.
(*편집자 주 : 아래부터는 양자를 구분 없이 융합시킨 부분 – 4음보 리듬 운용 부분 / 시사적 풍자도 혼입 )
문득, 자던 놈이 벌떡 일어나 바깥을 내다보고 ‘옹옹’ 짖는다. 누워 있던 놈들도 덩달아 ‘공공!’ 짖어댄다. 아이고, 내 강생이! 하마 밥값들 하는구나. 동네방네 벗님네들, 내 강생이 한번 보소. 두 달도 안 된 것이 하마 벌써 짖는다오. 아무렴 뉘 새끼라고. 우리 강생이들이 타고난 천재로고. 이곳저곳 수소문해 영재교육 시켜야겠다. 고양이 모셔 와서 외국어도 배우고, 얼룩소 외양간에 그림도 그려보고, 종달새 선생 만나 노래도 배운 뒤에, 딱따구리 둥지 찾아 피아노도 등록하자.
내 품을 떠나거든 제 타고난 개성 따라 특기대로 살거라. 종이 물고 노는 너는 과학자가 되겠구나. 꽃잎 뜯고 앉은 너는 예술가로 자라겠네. 판검사 되려거든 물지 않는 인품 되고, 정치가 되려거든 짖지 않는 인물 되라. 명품입네 뽐내는 헛것들 닮지 말고, 먹이 앞에 꼬리치는 애완견 되지 말고, 주인 향한 일편단심 변함없이 지니거라. 못된 인간 많은 세상, 사람 닮으려 하지 말고, 이 세상 구석구석 도둑 없이 살게 해라. 잔병치레 하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거라. 어허 둥둥 내 강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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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손주를 직접 대상으로 삼았다면 영락없는 팔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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