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천탑 영구산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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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千佛山) 또는 영구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
(松廣寺)의 말사입니다.
<영구산 운주사 일주문>
창건설은 3가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ㆍ
1.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2.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3. 마고(麻姑)할미가 세웠다는 설이 전하지만
이 중에서 통일신라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풍수지리에 근거해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세웠다는 설이 가장 널리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 지형을 배 모양에 비유, 배를 진압할 물(物)이 없으면 침몰하기 쉽기 때문에 그 중심부분에 해당하는 운주곡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하룻밤 사이에 세워 내실(內實)을 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운주사와 도선과의 연관은 어떤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조선 후기에 유행한 비보사상을 바탕으로 후에 첨가된 것으로 보입니다.
비보사찰이라 함은 "돕고 보호한다"는 의미로 강한 곳은 부드럽게하고 허한 곳은 북 돋워줌으로서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으면서 호국과 중생들의 이익을 도모한 도선국사의 지혜가 담긴 사찰을 의미합니다ㆍ
< 운주사 창건설화가 있는 바위>
한편 〈동국여지지 東國輿地志〉에 고려승 혜명(惠明)이 무리 1,000여 명과 함께 천불천탑을 조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혜명을 970년(광종 21)에 관촉사 대불을 조성한 혜명(慧明)과 동일한 인물로 본다면 운주사는 고려초에 건립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절의 연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는 절로서 천불천탑과 석불 2구가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석조감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1984년 제1차 발굴조사 때 '홍치 8년'(弘治八年)이라고 새겨진 기와편이 발견되어 1495년(연산군 1)에 4번째 중수가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조선 초기까지는 존속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운주사 구층석탑>보물 제796호
<구층석탑 우측에 있는 석불> <석불군 가>
<운주사 칠층석탑 >유형문화재 제276호
<운주사 쌍교차문칠층석탑>유형문화재 제277호
<운주사 광배석불좌상>유형문화재 제274호
<운주사 석조불감 칠층석탑 >유형문화재 제278호
<운주사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제 797호
1984~89년 4차례에 걸친 전남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금동불입상을 비롯하여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의 파편, 기와편 등이 출토되었다. 그 결과 운주사는 늦어도 11세기초에는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후 정유재란으로 법당을 비롯한 석불과 석탑이 크게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 있었으나 18세기에 설담 자우(自優)가 불상과 불탑을 수리하고 약사전을 중건하였습니다.
당시는 약사사(藥師寺)라고 불렀음을 각안(覺岸)이 지은 「능주운주동(綾州雲住洞)」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1921년에 간행한 『도암면지』를 보면 1918년에 박윤동(朴潤東)·김여수(金汝水) 등 16명이 시주하여 중건하였음이 나와 있고, 최근에도 중창불사가 있었답니다.
<운주사 대웅전 앞 다층석탑>유형문화재 제280호
<운주사 수조>
<대웅전>
<대웅전 부처님>
<신중탱화>
<영산회상도>
< 천수천안 관음보살도>
<지장전>
<비로전>
<산신각>
<운주사 원반형 사층석탑>
<운주사 마애여래좌상>
<운주사 발형다층석탑>
현재는 비구니가 수도하는 절로 요사채·종각,
그리고 새로 신축된 대웅전·지장전·승방 등이 있으며,
주변에 80여기의 석불(완형 50구)과 21기의 석탑 173기의 불재 및 탑재관련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2017년 3월 13일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이란 이름으로 천불천탑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최종 등재됐습니다.
운주사의 대표적 유물은 9층석탑(보물 제796호)·
석조불감 (보물 제797호) 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와불(臥佛) (전남 유형문화재 제 273호)을 비롯해 총6건의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ㆍ
<천불천탑 체험여행 인쇄 >
<천불천탑 쌓기 체험여행>
<대웅전 옆의 선원입니다>
< 이렇게 작은 석탑도 있습니다 >
<운주사 범종각>
<작약꽃도 예쁩니다 >
<와불가는 길인데 시간상 쳐다만 보고 왔습니다>
영구산 일주문이라 거북이가 만년을 산다면 귀신이
된다는 설에 따라 영구산이라 했답니다ㆍ
2017년 3월에 천불천탑 운주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최종 등재됐습니다 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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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구층석탑》
보물 제796호. 높이 10.7m. 이 석탑은 운주사 석탑 가운데 크기가 가장 크고 높은 것으로 큰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커다란 바위 위에 3, 4단의 각형 받침을 조각하고 그 위에 바로 탑신이 놓여 있는 형식으로 지대석과 기단부가 생략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1층 옥신은 6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졌고 각 면에는 우주와 그 안쪽으로 보조우주가 새겨져 있다. 2, 3, 4층의 옥신은 1층 옥신과는 달리 4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면에는 우주를 모각하고, 그 사이로 2중의 마름모꼴 안에 4엽화무늬[四葉花紋]가 장식된 문양이 새겨져 있다. 5층 이상의 옥신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문양은 마름모꼴 안에 꽃무늬가 있는 경우와 十자 모양이 새겨진 경우가 있다.
옥개석에는 층급받침 대신 선무늬[線紋]로 이미지형태를 조각했으며 낙수면은 편평하게 내려오다가 처마 끝부분에서 살짝 위로 올라가 있다. 상륜부에는 원주형의 석재와 보륜 등이 놓여 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불안정한 비례감을 보여주며 탑신부의 기하학적인 문양이나 옥개석의 끝부분이 약간 반전된 모습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운주사 석조불감》
보물 제797호. 높이 석조불감 507cm, 남쪽 석불좌상 245cm, 북쪽 석불좌상 264cm. 지대석 위에 5매의 판석을 세워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1매의 넓은 갑석을 얹은 다음 석조불감이 놓여 있다. 감실은 장방형으로 좌우벽면은 판석으로 막았으나 앞뒷면에는 출입구를 내어 불상이 밖에서 보이도록 했다. 지붕은 팔작형태로 정상에는 용마루가 수평으로 표현되었고 그 양쪽으로 치미를 장식했다. 감실 안에는 2구의 석불이 가운데 세워진 1매의 판석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맞대고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40에 보이는 "雲住寺在千佛山……又有石室二石佛相背而坐"라는 내용과 일치한다.
남쪽을 향하고 있는 불상은 머리 윗부분이 파손된 상태인데 넓고 편평한 얼굴에는 눈썹과 콧등의 일부가 시멘트로 보수되어 있다. 짧고 굵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지만 목과 어깨부분이 붙어 있어 둔중한 느낌을 준다. 밋밋한 몸체 위로는 통견(通肩)의 법의를 걸쳤으며 옷주름 표현은 선각으로 형식화되었다. 오른손은 배에 대고 있는 반면 왼손은 어깨에서 일직선으로 내려와 무릎 위에 얹고 있으나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어색하다. 광배는 불신과 약간 떨어진 뒤쪽의 판석에 두광과 신광의 구분없이 구불구불한 선으로 표현했는데, 불꽃무늬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북향한 불상도 같은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나 두 손은 옷 속에 감싸여 있어 정확한 수인(手印)을 알 수 없다. 특히 옷주름이 어깨 위에서 내려오면서 가슴 앞의 손 부근에 집중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매우 도식적이다. 이 불상들은 넓적하고 평면적인 얼굴표현이나 밋밋한 체구, 도식화된 옷주름 및 치졸한 조각수법 등에서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양식을 잘 보여준다.
석조불감 역시 각부의 세부표현이나 결구방식이 세련되지 못한 점 등에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석재로 만든 거대한 크기의 불감이라는 점이나 감실 안에 2구의 석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는 보기 드문 예라는 점 등에서 고려시대 불교미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운주사 원형다층석탑》
보물 제798호. 높이 571cm. 2단의 지대석 위에 단층의 기단이 놓여진 석탑으로 지대석·기단부·탑신부가 모두 원형으로 되어 있다. 현재 탑신부가 6층까지 남아 있으나 전체적인 형태로 보아 그 위에 몇 층이 더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기단은 높은 편으로 5매의 돌로 구성되었는데 각 면을 10각으로 깎아 원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기단갑석은 윗면이 편평하고 측면이 둥글게 처리되었으며 그 표면에는 16엽의 앙련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부는 옥개와 옥신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1·2·3층의 옥신석에는 중앙에 2줄의 음각선이 돌려져 있고 4·5·6층에는 1줄만 있다. 옥개석은 기단갑석과 반대로 아랫면이 편평하고 측면이 호형으로 되어 있다. 1층 옥개 아랫면에는 2줄의 음각선이 얕게 새겨져 있으나 2층 이상에는 1줄뿐이다. 각 층의 원형 옥개석은 위로 올라갈수록 옥신석과 함께 완만하게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이 석탑은 원형으로 된 형태와 구성 등이 모두 일반적인 석탑형식에서 벗어나고 있어, 고려시대에 유행한 이형석탑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 근거해 비보사찰로 세웠다는 설이 있다. 출토된 유물로 볼 때 늦어도 11세기 초에는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는 절로 석조감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1984년 발굴조사에서 '홍치 8년'이라 새겨진 기와편이 발견되어 조선 초기까지는 존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운주사 와형석조여래불》
여기저기에 수 없이 세워진 천불천탑 말고도, 절 뒷산으로 올라가면 땅에 누운 거대한 와불(臥佛), 즉 누워 있는 거대한 불상이 눈에 띈다. 와불이 한 쌍이라 부부와불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도선대사가 천계의 석공들을 불러 천불천탑을 하룻밤 사이에 다 세우려 하였으나 그들이 일찍 돌아가는 바람에 미처 다 세우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민간설화에 와불이 일어나면 미륵이 도래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퇴마록에도 이것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물론 암반에 새겼기 때문에 일어날 수 없겠지만, 만약 지진 등 강력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면 이 와불이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 재해라면 세상이 수십 번 뒤집히고도 남을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라면 새로운 세상이 되긴 하겠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지질/암석학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 일대의 암석은 화강암같이 단단한 게 아니라 경도가 약한 응회암 종류라서, 와불을 세웠다가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운주사에는 여기저기 벽에 간신히 기대고 서있는 불상이 많은데, 풍화작용을 이기지 못하고 원래의 형상을 대부분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
YouTube에서 '◼️천불천탑 영구산 운주사◼️
부산포교사단의 108사찰순례(불기2566년5월14일)' 보기
https://youtu.be/yOToeEfDd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