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단상237: musicus doctus1
튀링엔 지역은 주도인 에르푸르트(튀링엔의 로마 혹은 독일의 베니스라 불리기도 한다.)를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는 바이마르, 아폴다, 예나, 아이젠베르크, 게라, 알텐부르크 등 도시가 있고, 서쪽으로는 고타, 아이제나흐 등이, 북 및 북서쪽으로는 뮐하우젠, 손더스하우젠, 노르트하우젠 등이, 남 및 남서쪽으로는 아른슈타트, 일르메나우, 그리고 길게 뻗은 튀링어발트(튀링엔숲)를 너머 술, 마이닝엔 등이 있다.
튀링엔은 동쪽으로 삭센과, 북쪽으로는 삭센안할트와, 그리고 그 옆으로 니더삭센과, 서쪽으로는 헤센과, 또 남쪽으로는 바이에른 지역과 맞닿아 있다. 튀링엔의 고타 지역에 위치한 작은 도시인 오르트루프는 에르푸르트로부터 남서쪽으로 걸어서 30km 가량 위치에 있다.
뤼네부르크는 니더삭센 지역의 북동쪽에 위치한 도시인데, 니더삭센은 하노버, 브레멘 등 도시를 포함한다. 주도인 하노버를 기점으로 니더삭센의 가장 남쪽에 있는 괴팅엔은 튀링엔 지역과 접하고, 하노버와 북동쪽으로 접한 첼레는 뤼네부르크와는 떨어져 있으나 바흐 전기에 가끔 언급되기도 한다. 뤼네부르크는 북쪽 지역들과 경계가 맞닿아 있으나, 서쪽으로는 하르부르크와 맞닿아 있고, 하르부르크는 북쪽으로 함부르크와 경계지어져 있다. 하르부르크에서 서쪽으로는 로텐부르크, 브레멘, 올덴부르크 등이 있다.
이 도시들 중 바흐 초기 행적과 관련하여, 튀링엔의 오르트루프와 니더삭센의 뤼네부르크가 비교적 중요하게 다루어 진다. 물론 아이제나흐와 함께. 바흐가 첫 부임지인 니더삭센의 북동부 끝 뤼네부르크까지 15살의 어린 나이에 튀링엔 지역의 오르트루프로부터 걸어서 갔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로 먼 거리다.
튀링엔은 광대한 산림 지역으로 독일의 녹색 심장으로 불린다. 북해로 흘러 들어가는 엘베 강의 중간 지역에 해당하는 튀링엔 지역에 있는 아이제나흐는 튀링엔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이지만 마르틴 루터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고 작곡가 파헬벨이 활동했던 곳이며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태어나 프로테스탄트교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곳이다. 또 아이제나흐 뒷산에는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城)이 있는데 이 성은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며 마르틴 루터가 은거하면서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곳이다.
아이제나흐에서 1685년 태어난 바흐는 대체로 튀링엔, 삭센 지역에 머물며 음악활동과 생활을 이어간다. 북쪽으로는 베를린 함부르크 뤼벡보다 더멀리, 남쪽으로는 칼스바트, 서쪽으로는 카쎌보다 더멀리, 집으로부터 떨어져 결코 여행하지 않았다. 바흐의 전문가적 생애는 그리 멀지않은 할레에서 몇주 전에 중류 혹은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헨델의 그것과 날카롭게 비교된다. 처음부터 헨델은 여행에 이끌렸다: 함부르크로 독일오페라의 위대한 실험을 위하여; 이탈리아로 근대음악을 그 자원으로 연구하고 활용하기 위하여; 그리고 영국으로 그곳에서 그는 위대한 명망있는 인사가 되었고 그의 유해는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안식하여 묻히게 되었다. 반면 바흐는 한가지 이상 마틴루터를 떠올리게 하는데, 루터는 정확히 2세기 전 바흐가 1693-1695년 공부했던 그 라틴어 학교에 참석했었다. 집 밖에서 그리고 아이제나흐 시민의 무덤에 쿠렌더와 함께 노래해야 했던, 루터와 바흐는 그누구도 빈곤에 낯선 이방인은 아니었고, 심지어 젊은 시기에 혹은 고아가 된 때부터 바흐는 그의 생이 일하고 공부해야 하는 하나여야 함을 알아야만 했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각각 1694년, 1695년에 9개월 내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