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읍 삼지리三池里 유래
세 개의 못(저수지) 마을. 연지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북은 높은 산으로 벽을 삼으며 섬 같은 산을 한 가운데 두고 마을 한 가운데로 찻길이 나 있어 한바퀴 돌아 나간다. 삼지라 함은 하원리에 있는 원댕이못과 삼지 2리에 있는 탑밑못. 삼지리에 있는 바대못을 통틀어 이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대못은 파대못 혹은 파대지라고도 이른다. 바대는 때에 따라서 바디라고도 이를 바 베를 짜는 베틀의 한 짬틀 이름이기도 하다.
본래 영양군 동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 구역을 고칠 때 사평동, 원하동, 연지동의 각 일부를 떼다가 삼지동에 넣는다.
[마을의 특징]
삼지리에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삼지수로굴과 영혈사지와 그리고 탑을 들수 있을 것이다. 삼지수로는 삼지리에 있는 물길인데 일제 말엽에 착공하였으나 조국 광복 후에 잠시 중단되었다가 다시 1953년에 착공하여 1957년에 완공하였다.
일월면 곡강리 반변천에서 물을 끌어다가 이 곳을 지나 삼지들, 하원들, 현들에 댄다.영혈사는 조선조 선조 때에 학자인 사월 조임 선생이 절터에 암자를 세우고 연대암이라 하였는데 지금도 불신도들이 많이 오고 간다. 영혈사 터의 부근에 탑이 있는데 이 탑 안의 감실 안에서 금동을 입힌 금동불 4좌가 나왔다. 이를 감정한 결과 삼국통일 이전에 만들어진 호신불이라고 밝혀졌다. 탑의 높이는 1.41미터 가량 되면 앞쪽에 감실이 설치되어 있다. 탑신은 절벽의 중턱에 돌출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탑의 받침을 썼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탑신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2층까지만 보존되어 있다.영혈에 대하여는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절벽 아래 신통한 바위 굴이 있는데 여기서 샘물이 솟아 나온다. 이 물의 맑고 흐림으로 리기로써 한 해의 풍흉을 점쳤다고 한다. 또 이런 곳에 절이 있었다 하여 영혈사란 절의 이름을 삼았던 것이다. 이 샘물을 한번 마시면 속이 시원하여 이른바 보리수가 된다고 하였으니 과연 말대로라면 신령한 굴이 아닌가.구멍을 중세말로는 구무 혹은 굼기라고 하였으며 구무는 검-금과도 걸림을 보이니 이르자면 굴신숭배 곧 땅신숭배를 드러내는 신앙적인 뜻이 강하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유래]
사들ㆍ사부랭이ㆍ사평
옛날에는 이 마을 앞으로 강이 흘렀던 것으로 전한다. 토질이 사질토라서 황토에 비하여 특이하였으므로 사들이라 하였다. 350년 전 한양 조씨가 이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마을 앞에 큰 연못이 있다. 영양읍으로 통하는 오지 고개와 앞산 고개가 있고 동리를 반분하여 웃마을, 아랫마을로 불리운다.땅 이름의 맞걸림으로 볼 때 사-새의 분포가 상당수 있다. '새로 생긴 들판' 이란 뜻으로 새김이 좋을 듯하다.
*탯밑ㆍ탑밑ㆍ연지
세개의 연못 중 중간 연못이 있는 마을이므로 연지라 하였고, 마을 뒷산에 신라 고찰 영혈사가 있었으나 400여년 전에 허물어져서 그 자리에 사월공 조임 선생이 석성지를 위하여 암자를 짓고 연대암이라 하였는데, 그 곳에 삼층 전탑이 있어 그 아랫동네를 가리켜 탑밑이라 불러 온다. 웃마을, 중간마을, 아랫마을이 있다.아탯밑은 탑밑에서 온 것인데 탑의 홀소리가 밑의 모음을 거꾸로 닮아서 탯밑이 되어 굳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추가의견]
삼지(三池)는 ‘못이 3곳 있다’는 의미로 영양읍 삼지리이다
마을 뒷산인 옥산(玉山)을 중심으로 주위에 ‘간지(澗池)’, ‘연지(蓮池)’, ‘항지(項池)’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872년 지방도를 보면 당시 이곳에는 현재와 달리 ‘사평리(沙坪里)’, ‘탑저리(塔底里)’, 그리고 ‘원당리(元塘里)’라는 3개의 행정마을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에 따라서 3곳의 못 역시 간지는 원당리, 연지는 탑저리, 그리고 항지는 사평리에 속해 있었다. 3곳의 마을은 수만 년 전 대천(大川, 현 반변천)이 산맥을 자르며 물길이 바뀌자 형성된 넓고 기름진 하천변에 위치하고 있다.
이렇듯 다른 마을보다 풍요로운 수확을 거둘 수 있었기에 마을에서는 사슴이 은혜를 갚기 위해 산맥을 잘라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산지지형이 발달된 영양의 특성상 3곳의 마을은 현재 산과 산 사이의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 계곡형 마을이다.
이곳과 관련된 지명유래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옥산(玉山)은 현재 일대 주민들이 일명 ‘코끼리산’이라고 부르는 산으로 형세가 마치 코끼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후대 붙인 이름이다.
“이곳에서 신선이 구슬을 가지고 놀았기 때문에 옥산이라고 불렀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는 하지만, 사실 산의 형세가 마치 ‘구슬을 꿰어 놓은 것처럼 올록볼록하다’고 해서 ‘구슬산’이라는 의미로서 옥산이라고 하였다.
간지(澗池)는 현재 원당리 앞에 있는 못으로 3개의 못 중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에 따라서 못에 유입되는 물이 가장 적기 때문에 못의 크기 또한 가장 적다. 못이 작고 계곡 사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19세기 말까지도 ‘계곡 사이의 못’이라는 의미로 간지라고 하였다.
간지는 현재 ‘원당지(元塘池)’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마을 지명인 ‘원당리’에서 차용한 것이다. 사실 원당리라는 지명은 둥글게 생긴 간지로 인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점에서 간지는 과거 ‘첫머리못’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연지(蓮池)는 간지와 항지 사이에 있는 못으로 못에 연꽃이 많이 자생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탑저리는 마을 뒷산의 중턱에 과거 영혈사(靈穴寺)가 3층 모전석탑(模塼石塔)을 세우면서 ‘탑 아래 마을’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지명이며, 탑저리라는 지명으로 인해서 마을 앞에 있는 연지는 ‘탑 아래의 못’이라는 의미로 ‘탑밑못’이라 부르기도 한다.
항지(項池)는 3개의 못 중에서 가장 아래쪽에 형성된 못으로 하상을 따라서 ‘마치 새의 목처럼 길게 형성되어 있다’고 해서 항지라고 하였다. 1750년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에 의하면 못의 명칭이 ‘항곡지(項谷池)’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곡’이 생략되어 항지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항지는 현재 ‘파대지’ 혹은 ‘바대지’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못의 형태가 마치 베틀의 바디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평리라는 지명은 과거 대천이 흘렀던 하천변으로 모래가 평지처럼 쌓인 사질토(沙質土)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모래평지마을’이라는 의미로 사평리라고 붙였다. <이영재 학예연구사 글>
[출처:영양군지. 영양군청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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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 영양읍 삼지리 대하여 영양지방말인 사투리로 소개해 봄시더.
(영양말캉 역사 알고 가시더/창태105, 181) 영양읍 삼지리(三池里)가 궁금니껴?
※되집어 보는 영양말(사투리)※
모티, 자죽, 맹글어, 갱변, 알개, 그랑,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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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리(三池里)는
연못이 시(세)개 있따꼬 삼지(三池)라 카니더.
이 시개의 못은
하원리 경계에 있는 간지(澗池, 원댕이못),
연대암 앞에 있는 연지(蓮池, 탑밑못),
여자중고 뒤에 있는 항지(項池, 바대못) 시더.
영양의 젖줄인 반변천 물낄은
아주 옛날에는 일월면을 지난 뒤.
영양읍 상원리, 하원리, 삼지2리, 삼지1리,
그리고 동부리(국괴들), 서부1리(정류소 앞),
현리를 차례로 모티를 돌아 돌아가
입암으로 흘러갔니더.
카지만 지금의 물낄은
상원리, 하원리, 대천2리, 현리, 감천리로
물낄이 많이 바께져 있니더.
과거의 삼지 싯(세개) 연못은
항개로 이사져 있는 물낄이었지만
지금은 그 물낄 자죽만 남가져 있꼬
그 자리에는 질좋은 논캉 밭들캉
수변공원이 맹글어져 있니더.
(사들ㆍ사부랭이ㆍ사평)
영양여자중고등학교 뒷편에 있는
삼지1리 중1600년로
1600년경 한양조씨들이 맹글었니더.
옛날에는 마실 앞에 큰 그랑(반변천)이
흘러 질 좋은 사질토를 맹글게 되어
갱변이 싹 바께 디게 좋은
새로운 농경지가 맹글어 졌따꼬
사들ㆍ사평(沙坪)이라 카게 된니더.
마실 앞에는 바대못이 있니더.
(탯밑ㆍ탑밑ㆍ연지)
삼지2리 중심지 마실로
시(세)개의 삼지 못 중, 대표가 되는 못
연지(蓮池)가 있따고 케서
연지마 라꼬 카기도하고.
마실 뒷산에 신라시대때 맹글어진
삼층탑 알개(알) 있는 마실이라꼬
탑밑이라꼬도 카니더.
탯밑은 탑밑이 탯밑으로 바낀거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