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라비블로스를 만들어낸 위대한 인물의 삶과 업적에 대한 다음과 같은 짧은 소개를 첨부하지 않고 이 서문을 마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의 펠루시움(Pelusium)에서 태어나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걸출한 제자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그는 아드리안(Adrian)과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의 치세 동안 활약했다. 그의 생년월일은 일반적으로 기원후 100년으로 비정된다. 그러나 이 날짜의 정확성은 의심스러워 보인다. 그는 자신의 작품 중 한 곳에서 안토니누스가 23년 동안 통치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 왕자 시대에 살았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안토니누스가 161년에 죽었기 때문에 그가 70년경에 태어났더라면 90세 이후까지 과학 연구를 계속했을 가능성은 없으므로 그의 탄생은 약간 이후 시기였을 것 같다. 더욱이 아라비아인들은 그가 78세에 죽었다고 주장한다. 루카 가우리쿠스(Luca Gauricus)도 자신의 알마게스트 판본*주1)의 도미니코 팔라비치니(Dominico Palavicini)에 바치는 헌사에서 비슷한 진술을 했다. 그러나 가우리쿠스(Gauricus)는 그의 죽음을 747년으로 비정했는데, 이 연도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안토니누스 시대에 살았다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드리안 9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월식을 관측했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는 안토니누스 피우스 년에 항성을 많이 관측했다고 기록했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다. 하늘에 대한 그의 관측은 주로 기원후 125년에서 기원후 140년 혹은 그 무렵 사이의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개인 점성학사로서 갈바(Galba)에게 항상 시중들었으며, 오토(Otho)에게 네로(Nero)보다 오래 살아남아서 제국을 차지할 것이라고 약속한 프톨레마이오스와 그의 동일성에 대한 일부 저자들의 추측은 전혀 근거가 없다. 알마게스트 가우리쿠스본*주2)에는 교황 식스투스(Sixtus)에게 바치는 조르지 트라페준티우스(George Trapezuntius)가 쓴 또 다른 헌사가 있다. 헌사는 프톨레마이오스를 “왕조의 혈통(regiâ stirpe oriundum)”으로 묘사하고, 프톨레미오스 왕가의 대권이 클레오파트라의 손에 넘어가고 이어서 이집트 왕국이 로마의 속주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진실로 제왕의 마음을 가지고” 과학에 몰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삶의 상황에 대해 알려진 세부 내용은 극히 드물다. 그는 위대한 학식으로 인해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현자”, “성자”라는 별칭으로 구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테트라비블로스 웨일리 번역본 서문에 따르면 아라비아인들은 “그는 극도로 금욕적이었으며, 승마를 즐겼다”라고 보고했다. 덧붙이자면 그는 비록 “옷차림은 말끔했지만”, 그의 숨결은 기분 좋은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주1) [아쉬만드 주] 바젤에서 1541년 인쇄.
주2) [아쉬만드 주] 차머의 전기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