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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날 해피하우스에서의 일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동화책속 옛날 이야기에서 그렇듯 그건 일종의 주문(呪文)이 되어 만일 내가 약속을 어기는 순간 나를 돌기둥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나는 그 무렵에도 여전히 독서광이었다. 동화책은 졸업했고 카바이트 등불 아래 팔리던 허문정 지음의 40원 짜리 음담패설 같은 소설들은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한 지 오래였다. 나는 무협지에 빠져들었다가 그 세계에서 나온지 오래되었으며 내 독서는 조금씩 종교 철학 서적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마리아는 엘리사의 눈치가 수상한 걸 고양이처럼 알아차리고 침대 뒤로 사라져버렸다. 마침 이모도 엘리사와 두 사람만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뜻으로 날더러 피해달라는 눈치를 던져왔다. 내가 머리를 돌렸을 때 마리아 지나는 요정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오후의 햇살이 이제 창가 쪽으로 물러나고 있었고 순찰차가 울부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배경과 인물들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그 여름 오후의 기지촌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문득 천박스런 핑크색 휘장이 드리워진 침대 저편으로 연초록색 문이 보였다. 마리아 지나는 거기서 나타났고 거기로 사라진 게 분명했다. 이모와 엘리사는 자기들끼리의 이야기를 하느라 나같은 존재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냉장고 옆의 책꽂이에서 오래된 월간 잡지를 꺼내 보는 시늉을 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기로 했다. 그러나 어쩐지 비겁한 짓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곧 그만두었다. 나는 잠시 잘못 배달된 물건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휘장 뒷편의 문으로 들어가보기로 결심했다. 그게 그렇게 비밀스럽고 대담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연초록색 문이 주는 이미지가 내게 H.G 웰즈의 단편 소설, 그 소설 속 남자는, 우연히 발견한 초록색 문의 뒷편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그 비밀을 찾아 헤매는, 그 남자와 나를 동일시한 것에 불과했다.
침대 뒤로, 그리고 휘장 뒤에까지는 무난히 도착했다. 그러나 연초록색 문은 벽에 장방형의 직사각형 선만 그어놓은 유클리트 도형에 불과했고 당연히 있어야 하는 손잡이가 없었다. 내가 퍽이나 당혹스러웠던 건 분명히 기억한다. 그러나 이미 멋대로 편집된 내 기억이란 놈을 나는 믿을 수 없다. 나는 언젠가부터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을 위험스럽게 넘나들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성장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내 삶의 한쪽 부분이 끊임없이 요구하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를 무시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긴 했다. 그러나 내 삶의 밑그림 어딘가에 마리아 지나가 투시되고 있다는 걸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코끼리’ 대신에 ‘모자’를 택하며 살아왔다. 마술사들도 ‘모자’ 속에서 ‘코끼리’를 꺼내지는 못한다. 딘 알 쿤츠의 모던 호러 소설 어딘가에는 어린 시절 읽은 소설과 연관된 기억의 왜곡으로 자신의 또다른 분신인 악의 힘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나는 마리아 지나가 내 삶의 그런 면을 보여준다고까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이 이야긴 언젠가 다시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내 기억은 다시 초록문으로 향한다. 내가 초록색 위에 손바닥을 얹었을 때 그 감촉은 목재가 아니라 벽돌 그 자체였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그러니까. 흔한 목재 방문이 아니라 그냥 벽돌을 쌓은 벽 그 자체였다는 것.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그 벽이 비밀 출입구처럼 앞으로 밀려나가는 걸 느꼈고 그리고 균형을 잡기 위해 엉거주춤 한 발을 그 속으로 내딛었다. 그곳은 다갈색 장판이 깔린 방안이었다. 출입문과 맞은편 대칭점이 되는 벽면에 판넬이 한 개 걸려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게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부분적으로 확대한 모사품 유화(油畵)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발 더 다가갔을 때 그건 벨라스케스의 그림 속의 황녀(皇女)는 마리아 지나의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거기서 내 기억은 뭔가 불가해한 어떤 사건 속으로 말려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끝으로 닫혀버린다.
내가 기묘한 초록색 문의 그 방에서 마리아 지나의 초상화를 보았는지 아니면 그건 단지 내 공상의 산물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엘리사의 집에 갔었다는 것 그 자체가 공상의 산물인지 그걸 확인할 단서는 아무 것도 없다. 물론 나는 그 방에 들어간 적도 없었거나 아니면 그 방에서 되돌아나왔을 것이다. 무슨 연유에선지 엘리사가 말한 기막힌 저녁을 대접 받은 것 같지는 않다. 무슨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엘리사는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고 그래서 우리는 어정쩡하게 헤어져야만 했다. 훗날 생각해보면 엘리사는 이모를 통해 마리아 지나의 국민학교 입학 문제를 간접적으로 의논하려 했던 게 아닐까. 그러나 엉망이 된 내 집안 형편 때문에 그걸 포기했던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결론이다.
물론 나는 내가 엘리사의 집에 갔었던 이야기를 새어머니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결혼 후 단 일년 만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남편의 구속 때문에 받은 충격에서 간신히 헤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니는 본격적으로 나를 좀더 쓸모 있는 놈으로 만들기 위해, 나를 도통 쓸 데 없는 공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으로 보고 있는 그니는 나에 대한 ‘인간 개조’ 사업 계획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친어머니와는 달리 그니는 여전사와 같은 사람으로 공상 같은, 밥 먹여주지 않는 일과는 거리가 먼 딴 세상에서 온 사람이었다. 친어머니가 지주 집 둘째딸로 국민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면 새어머니는 제주 4∙3 사태로 한라산 기슭에서 내어쫓겨난 집안에 속해 있었다. 그니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좌익과 우익의 그 더러운 편가름에서 어느 편에 속했던가는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건너와 반도의 남쪽의 왠만한 도시를 거슬러 올라 오면서 옷 만드는 공장 노동자로 살아온 그니에겐 생존을 위한 것 이외의 일들은 전부 낭비였고 이해할 수 없는 짓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내 친어머니와의 결혼에서 어떤 환멸을 느꼈을 테고 그에 대한 반발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여자와 재혼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새어머니의 눈에 비친 나는 그저 한 마리 병들고 가련한 강아지였다. 그니는 나를 조련하여 멋진 경비견이나 사냥개 그도 저도 아니면 말 잘듣고 눈치 빠른 번견(番犬)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내 양말과 손수건은 내 손으로 세탁해야 했고 바둑과 장기 놀이를 금지 당했으며, 서점에서 책을 사오거나 빌어오는 일조차 달갑지 않은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라디오나 신문 또는 잡지 등에서 내가 얻어낸 기성 사회의 모순된 구조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어떤 불만이나 사소한 비평도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가령 새어머니는 이런 식으로 내 사고에 가차없는 망치를 휘둘러 댔다.
「네가 그렇게 잘났냐. 그렇게 잘났으면 네가 한 번 해 봐라.」
또는,
「전부 너보다 잘난 사람들이니까 그만한 일을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순 주둥이만 살아 가지고.」
나는 참담하도록 내 모든 논리와 사고가 박살나는 경험을 수없이 하면서 결국 새어머니의 뜻에 복종하게 되었다. 복종하지 않으면 가끔은 매질이 날아왔다. 그게 그니가 살아온 철학이고 사람을 길들이는 방식이라는 너그러운 생각이 든 건 훨씬 훗날의 일이다.
아버지가 교도소에 가게 되자 새어머니는 길 쪽에 붙은 방 한 간을 헐어내어 거기에 구멍가게를 차렸다. 당연하게도 나는 가게 종업원 노릇을 해야 했다. 그 두 해 정도의 시간은 말하자면 내가 세상 속으로 나아가기 위한 마지막 모진 훈련이었다. 물론 나는 결코 새어머니의 마음에 드는 아들이 아니었다. 친자식이 없는 그니로선 그래도 내가 유일한 희망이었던 셈이지만 나는 그니의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는 그저 책귀신이며 책벌레며 주둥이만 나불거리는 그런 놈에 불과했다. 게다가 새어머니는 내가 지독한 안면맹(顔面盲)이라는 것까지 순식간에 알아내고 말았다. 사실 나는 가게에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좀처럼 기억하지 못했다. 나의 뇌세포는 대개 십여 명 내외의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게 고작이었다. 용량이 넘는 통에 물을 계속 부으면 더 이상 물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반대였다. 새로운 얼굴이 가득차면서 기억하고 있던 사람의 얼굴들이 빠르게 사라져 간다. 사라진 자료들은 옷차림이나 목소리 또는 분위기, 장소에 대한 이미지로 변형되어 기억된다. 결국 내가 기억하는 건 얼굴이 아니라 옷차림이었고 머리 모양이거나 목소리였다. 일상 생활 속에서라면 안면맹은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장사를 시작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성벽 아랫동네에서 본전 5000원으로 시작한 구멍 가게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고 필요에 따라 외상도 주고 또 외상을 주어서는 안 될 사람도 가려내야 했다. 그건 언제나 나를 극도의 긴장과 무력감 속으로 몰아넣었다. 다행인 것은 새어머니가 나의 안면맹을 그렇게 심각하고 끔찍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그건 그니의 이해 영역에서 비껴선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말하자면 새어머니는 철저한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였다. 그러므로 당신 삶은 언제나 명료하고 분명하였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뭐 그렇게 난해한 분석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새어머니는 겉으로는 어떻든 본바탕은 착하고 여린 사람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를 좀더 혹독하게 트레이닝 시키지 못했을 것이고 그래서 나는 훌륭한 점원도 멋진 어른도 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 게다. 새어머니가 나를 ‘어떻게 밥 빌어 먹을지 걱정되는’ 그런 놈으로 걱정하고 있었다는 건 분명하다.
처음에 말했듯 내 사춘기의 암담한 터널 속에서 엘리사도 마리아 지나도 기지촌도 잊혀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십대 후반기, 조금씩 사춘기의 터널 밖 세상으로 떠내려 가면서 나는 나의 내면 어딘가로부터 심상치 않은, 불길하기까지한 어떤 힘이 떠오르고 있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건 언젠가 적당한 기회에 다시 말하겠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세상에 대한 갈망 같은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내가 다락방에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던가. 구멍 가게를 시작하면서 길 가 쪽의 방은 가게로 변하고 부엌 지붕과 천장 사이의 공간, 그걸 다락방이라 부르기엔 너무 한심한 공간이었지만, 그곳이 내 방이었다. 다락방은 안방에서 쪽문을 열고 사다리 비슷한 걸 세 개 쯤 타고 올라가야만 했다. 허리를 구십도 정도로 숙여야 했고 두 뼘 정도의 들창으로 흐릿한 빛이 들어왔다. 창문은 겨울엔 밀봉해 놓아야 했고 여름엔 벌레 때문에 열어놓지 못했다. 다락방의 바닥은 버팀목이 없어 위험스럽게 휘청거렸다. 나는 거기서 두 번의 여름과 두 번의 겨울을 보냈다. 겨울엔 한되들이 소주병에 넣고 밀봉한 더운 물을 난방용으로 사용했다. 내가 얼마나 궁상스럽게 살았는가 그런 걸 넋두리 하자는 건 아니다.
다락방 어디에도 어머니의 유품들은 거의 없었다. 어머니가 세상 떠난 지 두어달 만에 둘째 이모가 몽땅 쓸어갔기 때문이다. 손바닥 두 뼘 정도의 길이에 높이 한 뼘 정도의 나무 상자가 한 개 남아 있었는데 그건 뚜껑에 빌로드를 씌우고, 그건 헐어서 볼품없게 되어 있었고, 다른 면엔 색지를 바른 상자였다. 반짓고리로 사용하던 것으로 보였다. 물론 상자 속은 텅 비어 있었다. 그건 잡동사니 다른 물건들 구석에 박혀 있었는데 별로 흥미를 끌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내가 그걸 무엇에 쓰겠다는 생각도 없이, 손이 가는 데로 끄집어낸 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5년 쯤 지나서였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상자인데다 곰팡이 냄새까지 나는 바람에 흥미를 잃고 좀 과격하게 밀어 던졌나보다. 상자 뚜껑이 열리며 약간 가늘고 좁은 윗선반이 흔들거리며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뭔가 쇳덩어리 같은 것이 굴러나왔다. 나는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놋쇠빛으로 반짝거리는 물건을 집어들었다. 작은 쇠가시들이 돋아난 원통형 실린더가 달려 있었고 그 옆에는 피아노 선을 대신하는 가늘고 기다란 쇳조각들이 머리빗처럼 늘어서 있었다. 실린더가 돌아가면서 거기에 붙은 가시들이 쇳조각을 퉁겨올려 음악 소리를 내는 오르골이었다. 태엽 감는 곳으로 짐작 되는 곳은 구멍만 있었다. 나는 상자 안을 살펴보았다. 윗선반이 빠진 자리 안쪽 왼편에 작은 비밀 서랍 같은 게 있었다. 손잡이 대신 서랍 아랫편에 작은 홈을 파서 손톱 같은 걸로 끌어당겨야만 되는 서랍이었다. 오르골이 그 서랍 속에 있었다가 내가 집어던지는 바람에 굴러나온 것이었다. 비밀 서랍은 애초에 선반을 빼내지 않으면 열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대로 교묘하게 만든 수제품 상자였다.
나는 스탠드를 가져와 전등을 켜고 오르골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오르골의 몸체는 없었다. 단지 그 부속품, 소리내는 부분만 남아 있었다. 생각보다 낡은 곳은 없어보였다. 기지촌에서 가끔 오르골을 본 적이 있었고 우리집에 자주와서 살던 이모들 중 누군가 오르골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머니의 유품이 아니라 이모들 중 한 사람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오르골을 작동시키기 위해 적당한 도구를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망가진 사발시계의 태엽 손잡이를 찾아냈다. 좀 엉성하긴 했지만 태엽을 감을 수 있었다. 실린더가 돌면서 맑은 음악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음표들이 가득차 날개를 달고 날아올라 다락방을 가득채워 갔다. 처음 듣는 음악이었다. 비슷한 멜로디가 두 번 반복 되면서 끝났다. 나는 오르골을 뒤집어 보았다. 금속 표면에 예리한 못 같은 것으로 긁어낸 글씨들이 반사되어 나타났다.
상원에게, 4282, 봄날,
입학을 축하하며 그대의
내가 아는 사람의 중에 상원이란 이름은 없었다. 불빛에 더 가깝게 비추어보자 ‘당신의’ 다음 이어지는 부분이 칼끝 같은 것으로 긁혀 지워져 있었다. 누가 준 것인지를 모르도록 만들려는 의도였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대의’라는 낯간지러운 소유격 표현을 그대로 남겨 둔 건 어떤 의미에서였을까. 단기 4284년이 단기 연호라면 서기로는 1949년이 된다. 만일 ‘상원’이 만일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이라면, 호적상 이름과 실제 집안에서 부르는 이름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면, 1930년생인 어머니의 나이로는 만 19세가 된다. 어머니의 열아홉 되던 어느 봄날 아마도 당시에는 결코 구하기 쉽지 않았을 이 물건을 구해서 선물한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상자 안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다른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오후의 가느다란 햇살이 새어들어오는 다락방에서 내려왔다. 새어머니는 가게에서 누군가와 잡담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아버지는 태연한 얼굴로 가게 앞 아이스크림통을 닦고 있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 오르골을 감추어 넣고 두 사람 사이를 살그머니 지나갔다.
「어데 가지비?」
아버지가 함경도 사투리로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언덕길을 걸어 내려갔다.아버지, 그래 나는 그 무렵 나를 집요하게 붙들고 있는 화두(話頭), 아버지만 생각하기로, 정확하게 아버지만 지독하게 계속, 계속하여 미워하기로 작정했다.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경건한 크리스찬으로 변화하여 돌아왔다. 망령처럼 따라다니던 아버지의 함경도 사투리도 완벽하게 교도소 어딘가에 버리고 왔다. 그러나 대체로 반년이 넘지 않아 아버지는 완벽한 옛날의 아버지로 돌아왔다. 함경도 사투리도 되살아 났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따위의 일은 까마득하게 사라졌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하늘 저편, 화장터 뒷산 꼭대기에 소나무들은 안테나처럼 서 있었다. 사람 태우는 연기를 뿜던 굴뚝에 연기는 나지 않았다. 화장터는 경기도 어딘가로 이사가고 이제 그곳은 곧 철거될 예정이었다. 저녁놀이 내리고 있었다. 이럴 때 수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다. 수철이는 내 유년에서 떠나가고 사춘기가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소주병을 까놓고 고모의 제사를 지내던 수철이의 모습이 흑백 사진처럼 펄럭이며 날아갔다. 언젠가 꽃제비(소매치기)가 되었다는 소문이 한 번 들려오긴 했다. 수철이의 얼굴 위로 삼류 영화의 기법처럼 오버랩 되어 창규의 모습이 휙 떠올라왔다. 처음부터 창규를 찾아가려고 집을 나섰다고 나는 착각을 합리화 하면서 바쁘게 언덕을 내려갔다.
산에서 내려온 개울이 완만하게 오른편으로 구부러지는 지점에 통나무를 이어 만든 다리를 건너면 막다른 골목이었다. 골목은 외등이 없어 늘 어두웠다. 골목의 끝이 창규의 집이었다. 창규의 집은 불이 꺼져 있었다. 그는 곱사등이었고 나보다 더 겁쟁이였다. 그는 내가 국민학교 육학년 봄날 을씨년스러운 오후에 전학을 왔다. 나는 그가 송아지 같은 커단 눈망울로 어두운 복도에 서 있던 걸 기억한다. 그는 가끔 혼자 술을 마시는 늙은 홀어머니, 들까불기 좋아하는 누이 동생 하나와 함께 살았다. 학교 공부는 관심이 없었고 뭔가를 만드는 일에만 열중했다. 무슨 이유에선가는 모르겠지만 나는 등이 굽은 사람들은 시계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미신 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창규도 머지 않아 훌륭한 시계점 주인이 될 것이라고 자주 이야기했고 창규는 내 말을 싫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는 정규 중학교엔 가지 못하고 고등공민학교를 다녔는데 내 어머니 삼우제 때는 수업까지 빼먹고 기어이 산소까지 따라와 주기도 했었다. 창규가 오르골을 보면 아마 좀처럼 손에서 내어놓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까치발을 하여 창규의 집을 들여다 보았다. 그때 내 뒤편에서 막 내려온 어둠을 흔들며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벽에 딱 붙어섰다. 걸어오는 사람은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머리 꼭대기만 하얗게 빛났다. 머리가 하얀 남자였다. 질질 끌고 오는 걸음마다 술내음이 묻어 있었다. 누굴까. 그가 창규네 한 집 못 미처 작은 쪽대문을 밀려고 하다가 머리를 휙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거기 누구야. 누구. 어떤 새끼니.」
나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집 근처에 살다가 이사간 ‘음악가 교수’였다. 그의 집에선 언제나 알지 못하는 음악만 울려댔다. 사람들은 그를 ‘음악가 교수’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가 이사 가기 얼마전엔 제법 오랫동안 피아노 소리가 멈췄다. 가게에 담배를 사러온 그에게 내가 왜 피아노를 안 치냐고 어머니가 물었더니 그는 아주 담담하게 팔아버렸다고 했다. 그러면 더 이상 음악은 안 만드냐고 했더니 가슴을 주먹으로 텅 두들기며 이 가슴으로 만든다고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음악가 교수가 사라진 쪽을 향해 들리지 않게 말했다. 빨갱이 놈 외상값이나 갚지. 어머니의 말은 맨살에 닿은 선뜻한 얼음 조각 같았다. 초대권까지 나누어 주어서 어머니 아버지는 사이 좋게 부부동반하여 음악가 교수의 신작 발표회에도 참석했었는데, 그래서 음악가 교수의 음악이 얼마나 훌륭했던가를 거듭 거듭 칭찬 했었는데 말이다.
음악가 교수는 나에게 다가와 멱살을 잡을 것처럼 손을 내밀었다가 내리면서 말했다.
「어, 자네로군. 이 집, 친구를 찾아왔나.」
거기서 나는 순간적으로 바지 주머니에서 오르골을 빼냈다.
「이거요. 이게 뭔지 확인을 좀 해 주시면 좋겠어요.」
「뭔데.」
음악가 교수는 흰머리를 쓸어넘기며 약간 의심쩍은 눈으로 내 손을 보았다. 소주 냄새가 훅 풍겨왔다.
「이게 무슨 노랜지 좀 알고 싶은데요.」
「노래?」
그는 내게서 오르골을 받아들었다. 허공에 대고 구슬치기라도 할 것처럼 이리 저리 비쳐보며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이거? 거 뭐냐. 뮤직 박스라는 거 아니냐.」
「오르골이라고 하던 데요.」
「그래, 오르골이라고도 하지. 오르골은 네덜란드 말이다. 알간.」
혀 끝에 술기운은 남아 있었지만 그는 교수라는 별명 답게 내게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오르골은 말야. 시계 기술자들이 만든 거야. 그래서 시계와 함께 발전해 왔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의 강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그는 오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보였다. 할말을 다 했는지 그는 오르골을 건네주고는 자기 집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내게로 몸을 돌렸다.
「이봐, 자네 누구야. 왜 여기 있는 거야.」
술이란 게 사람을 이렇게 만든다는 걸 한두번 본 건 아니지만 참 화통터질 일이었다.
「여기에서 나오는 음악이 무슨 노랜지 알고 싶습니다.」
「어, 그래, 그럼 이리 들어와.」
그는 나를 무시하고 먼저 자기 집으로 휙 넘어지듯 들어가버렸다. 대문은 안 잠겨져 있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마당이 길 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어서 댓돌을 몇 개 밟고 내려서야 하는 집이었다.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 했다.
그는 마루 위로 올라서더니 벗어 놓았던 구두를 집어들었다.
「에라이, 잡놈들아.」
그의 구두가 한 짝 씩 차례차례 ‘잡놈’이라는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유령들에게 날아갔다. 내일 아침이면 신발을 찾느라 고생이나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해, 빨리 안 들어오고.」
나는 그의 깡마른 아내나 아니면 날씬하고 세련된 그의 딸이 나타나길 기다렸으나 집안은 적적하기 그지 없었다.
「어어, 지금 아무도 없어. 어디 갔어. 걱정마. 」
나는 찌걱거리는 마루를 밟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팔았다던 피아노가 말짱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음악가 교수는 말했다.
「자네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나?」
「아무거나요.」
「그럼 이런 노래는 들어봤나.」
그는 피아노 뚜껑을 열어 건반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물론 한번도 듣지 못한 노래였다. 처량하기는 했지만 또 그런데로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얼마쯤 건반을 두들기다가 나를 돌아보면서 눈에 불꽃이라도 튕겨오를 것 같은 쇳소리로 말했다.
「이게 그 유명한 산유화다. 산유화. 김순남이의 음악이란 말이다.」
산유화가 김소월의 시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순남이란 사람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는 건반을 와르르 때리고 뚜껑을 덮었다.
「젠장, 자네가 뭘 알겠나. 순남이가 얼마나 기막힌 음악들을 만들었는지.」
그리고는 피아노 의자에 앉은 채로 다시 말했다.
「그래, 뭘 알고 싶다고? 어떤 건지 틀어봐라.」
나는 태엽을 감아서 오르골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음악이 두 번 연주되는 걸 들어보더니 다시 한번 더 태엽을 감으라고 손짓만 했다.
「처음 듣는 건데. 모르겠다.」
나는 실망하여 일어났다. 그러자 그가 피아노 위에서 오선지를 꺼냈다. 그리고 한번 더 오르골을 작동시켜달라고 말했다. 그는 오르골이 작동되는 동안 오선지 위에 빠른 속도로 음표들을 그려넣었다.
「채보(採譜)란 말 들어봤나. 아마 이런 정도의 노래가 되겠는데 자세한 건 내가 나중에 다시 알아봐 줌세.」
그는 악보를 보여 주었다. 거기엔 여덟 마디에 4분의 4박자 샤프 한 개의 조 표시 그리고 여섯마디 정도에 걸쳐 주로 이분 음표들이 몇 개 씩 적혀 있었다.
나는 그가 그려준 같은 악보를 한 장 더 얻어서 주머니에 넣고 음악교수의 집을 나왔다. 그 악보는 오랫동안 내 노트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나는 언덕길을 올라가며 오르골에 태엽을 감았다. 천천히 나는 오르골의 멜로디를 계명으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파-솔라 시-레 미-파-레-미 라-레 미-레도 라-라
내가 언덕을 절반 쯤 올라왔을 때 전혀 낯선 음표들이 내 등덜미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뭘까 그게 무슨 음악일까.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기 별빛으로 변한, 별사탕 같은 음표들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그건 음악가 교수가 연주하던 김순남의 ‘산유화’였다. 어쩌면 음악가 교수는 빈 방에서 김순남이란 사람이 만들었다는 ‘산유화’를 두들기고 있을 것이다. 그의 손에서 산이 그려지고, 산에는 꽃이 피고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고 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등에 묻은 끈적한 음표들을 떨어내고 내 다락방이 있는 불켜진 ‘무궁화 상회’를 향해 바삐 걸어올라갔다.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는 상원이란 사람이 누군지, 그리고 ‘그대의’ 뒤에 나올 이름이 뭔지 알아내야겠다고.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집을 나가리라는 해묵은 결심을 떠올렸다. 나는 오르골의 음악을 따라 가리라. 신화 속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가리라. 내 안에 숨은 또다른 내가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건 마리아 지나와 이어져 있을지도 모르는 길이 되리라고.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연초록의 벽을 밀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그 속엔 벨라스케스의 황녀를 닮은 마리아 지나의 초상이 있었다. 초상화 한 장만이 내려다 보는 텅 빈 방 안이었다. 나는 그 속에 내가 원하는 물건들, 제일 먼저 나는 잘 만든 오동나무의 책상을 가져갔다. 책상 서랍 속에 오르골을 집어 넣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뒷걸음으로 벽을 당겨 닫으며 방을 나왔다. 연초록의 문이 다시 내 눈앞 허공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걸 나는 보았다. 나는 천천히 그 벽을 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갔다.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걸어가는 개미처럼. 방 저편에 다시 초록 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다시 방 다시 초록문, 다시 방, 그리고 초록문. 나는 걸어가. 밀고. 닫고. 걸어가. 밀고 또 닫았다. 방마다 마리아 지나의 초상이 한 개 걸려 있었고 책상이 있었고 서랍 속에는 오르골이 있었다. 어느 방인가에서 음악이, 김순남의 ‘산유화’와 오르골의 ‘노래’가 뒤섞여 들려오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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