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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별의정거장 원문보기 글쓴이: *-별아저씨
금요일의 문학이야기
김사인(이하 김): 안녕하십니까? '문학이야기'의 김사인입니다. 무더운 날씨에 이렇게 많이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주빈(主賓)이라고 할 수 있는 초대 손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와 {붉은 눈, 동백}이라는 시집 등을 갖고 계신 시인 송찬호 선생님이십니다.(함께 박수) 또 도움 말씀을 주실 문학평론가 이혜원 선생님께서 자리 함께 해주셨습니다.(함께 박수) 이 선생님은 이번에 김달진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이 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두 분 선생님을 모시고, 오늘 송찬호 시인의 시 세 편을 중심으로 해서 감상을 하겠습니다. 우선 오늘 순서는 이렇게 진행을 할까 합니다. 제가 우선 너스레를 떨고요. 그 다음에 오늘이 첫 날이니까, 미리 정해진 세 편의 시 중에서 한 편의 시를 제가 낭송해 드리고, 그런 다음에 그 시와 시인에 대해서 평론가 이혜원 선생님의 말씀을 좀 들으시구요. 그 다음에 송찬호 선생님 말씀을 좀 듣고, 그 다음에 질의와 토론을 하는 시간으로 진행을 하겠습니다. 지금 제가 바로 한 편을 낭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낭송할 시는 [역병이 돌고 있다]는 시입니다. 이 시는 송찬호 시인의 첫 시집인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989년 간행)에 수록된 시입니다. '역병이 돌고 있다 멀리서 목탁소리가 / 점점 가까이 들린다 모두들 서둘러 귀가하고 / 문을 닫아 걸고 귀를 막는다 // 병을 물리칠 수만 있다면, / 벽을 일으키고 그 절벽마다 / 칼에 힘을 주어 경을 새긴다 // 이윽고 얼굴을 깊이 가린 병자가 거리 저편에서 나타났다 / 얼마나 대가리를 쳤는지 눈 코 입이 문드러진 / 벌써 천 년 전에 유실되었던 목판본 얼굴 / 자기의 목을 쳐내고 부처의 머리를 얹었다가 부처마저 쳐내고…… // 그가 머리에 썼던 것을 벗었다 / 모가지가 떨어져나간 혼 없는 육신의 목에 훤하니 달덩어리를 받쳐 얹고! // 그가 옆을 지나갔다 달 가듯이! / 칼을 뒤로 감췄다 // 멀리서 낭랑하게 경 읽던 소리 / 뚝, 그치고 // 그가 오늘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 오늘밤 그곳에도 달이 뜨리라' (함께 박수) 어설픈 낭송이어서 죄송합니다. 많은 경우에 시들은 낭송을 해야 제 맛이 나죠. 우선 이 시를 대체 어떻게 읽어야 잘 읽는 게 될 것인지, 또 이 시가 송찬호 시인의 시 전체 속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 선생님이 말씀 좀 들려주시지요. 이혜원(이하 이) : 이 시는 '역병이 돌고 있다'는 충격적인 진술로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으로 굉장히 무시무시하고 처절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역병'이라고 하면 여러분들이 다 아시겠지만 전염병이죠. 요즘 우리도 사스(SARS)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데, 역병이라는 것은 정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공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의 분위기도 막연하고 깊은, 커다란 공포로부터 시작을 한다고 볼 수 있고, 이것을 역병이라는 상징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읽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미를 추출해볼 수 있는 시라고 저는 봅니다. 역병이라는 것은 아주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데, 어떻게 보면 우울하고 암담했던 시대에 대한 상징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송찬호 시인이 워낙 말에 대해서 굉장히 집중하는 시인이기 때문에, 어쩌면 오염되고 타락한 말이 지배하는 시대로 의미를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역병이 돌고 있다 멀리서/ 목탁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 이런 진술로부터 시작이 되는데, 목탁소리라는 것은 절에서 스님들이 참선할 때 각성하라고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법령 같은 것이 나왔을 때, 사회적으로 무엇인가 계도할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을 일깨워주는 소리로 목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깨어 있으라는 신호로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목탁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는 것은 무서운 역병이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거죠. '모두들 서둘러 귀가하고 문을 닫아 걸고 귀를 막는다', 목탁소리가 들린다는 것도 무서운 역병이 우리에게 점점 다가온다는 이야기이니까, 불안과 공포 때문에 문을 닫아 걸고 귀를 막는다고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자 자기 안으로 웅크려들어서 '병을 물리칠 수만 있다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벽을 일으키고, 그 절벽마다 칼에 힘을 주어 경을 새긴다'고 했는데, '경'이 나타나는 것이 좀 뜻밖일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역병에 대해서 처방이 없었기 때문에 고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주문을 외우는 것이었다고 하죠. 그리고 여기에서의 '경'은 팔만대장경 같은 경을 연상해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국가에 커다란 재난이 닥치면 팔만대장경 같은 것을 만들어서, 다시말해 언어의 주술적인 힘을 통해 재난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요. 여기서도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언어에 의지해서 넘어서고자, 언어를 통해 어떤 구원을 도모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병자가 나타납니다. 여기서의 병자는 그야말로 역병에 걸린 희생자라고 할 수 있고, 시대적인 의미로 해석하자면 희생자이면서 어떤 선각자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인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인이란 언어로 구원을 도모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여기서의 병자는 그런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대가리를 쳤는지 눈 코 입이 문드러진'이라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희생의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 보이고, '벌써 천 년 전에 유실되었던 목판본 얼굴'은 팔만대장경 같은 의미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원을 향한 어떤 강렬한 염원을 목판본 얼굴에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자기의 머리를 쳐낸다는 것은 자기를 희생으로 삼아 자기자신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부처의 머리를 얹었다가 부처마저 쳐낸다는 것은, 모든 이 세상의 집착과 허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가 되겠죠. 자기 목을 쳐내고 부처마저 쳐내고 그 다음에 도달한 것이 달의 이미지입니다. 송찬호 시인의 시를 보면, 둥근 것의 이미지는 중심을 버렸을 때 도달하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도 집착과 허상, 자기 중심적인 생각, 이런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둥글어지는 상태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달의 이미지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4연에서는 앞에서 나왔던 집착이나 허상을 모두 버리고, 육체나 언어의 허상을 벗어버리고 어떤 본질에 도달한 상태를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5연에서는 거의 달과 동일시해서 달과 같은 경지에 오른 상태로 묘사를 하고 있는데, 자기 희생을 통해서 지독하게 병이 든 동시에 또한 한없이 자유로워진 달은 굉장히 가볍게 공중에 떠 있는 사물인데,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워진 어떤 경지를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칼을 뒤로 감췄다'는 부분이 조금 어려운데요. 이 부분의 칼은 2연에서의 칼이라고 볼 때, 역병과 대결해서 자기자신을 보호하려고 했던 이기적인 마음의 상태를 보여준다고 읽을 수 있는데, 그런 사람 앞에 자기 희생을 통해서 철저하게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상태까지 간 희생자이면서 선각자가 지나갈 때 느끼는 다른 사람의 부끄러움과 죄스러움, 이런 것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송찬호 시인의 다른 시 중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습니다. '폐허 속에서 살아있다는 것은 망각 속에서 우리가 살인자라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다', 폐허 속에서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는 것, 자기 희생을 통해서 이 세계를 구원하려고 한 사람들과 비교됐을 때 부끄러워지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6연과 7연에서, 여기에서의 달은 철저한 자기 희생을 통해서 도달한 재생의 경지, 부패하고 타락한 말을 정화하고, 말의 고향과 같은 상태로 돌아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서 달은 어쩌면 시인 자신과도 좀 통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은데, 실제 송찬호 시인의 시들에는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시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 중에 '시인이란 자신의 등을 구워서 문자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런 구절이 있는데, 자신의 온몸을 던져서 문자를 만드는, 새로운 말을 통해서 세계를 구원하려는 사람이 곧 시인이라는 거죠.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경지를 이 시인이 꿈꾸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에 대한 탐구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이 시를 읽자면,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우리들이 이 선생님의 독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괜찮은 거겠죠? 독자들은 얼마든지 다른 각도에서 읽으실 권리가 있는 거구요. 이: 예, 물론이지요. 그리고 이 시는 실제 여러 방식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여러 독자들의 다양한 독법, 또 그러한 읽기를 통해서 확보되는 의미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의 축적되고 중첩되어 비로소 한 편의 시를 이루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그것을 위한 꼼꼼한 읽기의 한 모범을 이혜원 선생님이 보여주신 듯합니다. 저는 '모가지가 떨어져나간 혼 없는 육신의 목에 훤하니 달덩어리'가 달려 있다는, 이런 이미지를 시 속에 턱 걸쳐놓는 그 시인의 심정은 대체 어떤 것일까 생각하면서 섬뜩한 느낌이 우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줄에 나오는 '그가 옆을 지나갔다 달 가듯이! / 칼을 뒤로 감췄다'고 했을 때, 이 칼은, 경을 새긴 거룩함의 칼인 동시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의 칼, 누구를 죽일 수도 있는 칼로 저에게는 느껴졌는데요. 송찬호 시인의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를 보면, 거의 시 전편이 삶과 세계의 참상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쯤에서 이 시 주변에 대해서, 또는 이 시를 쓸 무렵에 대해, 송찬호 선생님께서 한 말씀 들려주시겠습니까? 송찬호(이하 송) : 이 시는 제가 서른이 되기 전 20대 중반 너머쯤에 쓰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시 한 편이 되기까지 많이 더딘데, 그때는, 여러분들 중에 시 습작하는 분이 계시다면 아시겠지만, 젊을 때의 열정이라는 것이 있어 말 그대로 열정적으로 시를 썼던 듯합니다. 이 시를 쓰게 된 1980년대는 군사독재시절이었고 폭력과 억압이 횡행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병자를, 이 시대의 병을 치유하는 영혼을 가진 구도자로 읽어도 되겠지요. 다만, 이 시를 썼던 20대 때에 저는 사회에 대한 헌신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 시에서도 사회에 대한 관심, 내가 사회와 어떻게 맺어지고 있는가, 이런 것을 많이 고려한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젊은이의 감성으로 보았을 때, 병자는 시대의 병듦 아니면 시대가 불온함것을 깨닫고 그로 인해 괴로워 하고 몸부림치는 것이겠죠. 그때 제가 20대였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시를 끌고 간 것이죠. 김 : 말씀 듣고 있자니 엉뚱하게 이런 생각도 듭니다. 시인께서 말씀해주시는 것이 그 시의 전부는 결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낳아주었으되, 부모가 자식의 소유주는 아니지 않습니까? 시들은 제 몫의 독립적인 표정과 목소리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독점적인 해석권을 송찬호 시인께서 다 가지실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어떻든 이 시의 일차적인 연고권자인 송찬호 선생님의 이런 말씀을 참고하시면서, 청중들께서는 각자의 독법을 자유로이 구사하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자식들도 크고 나면, 비록 부모가 낳아주고 길러줬지만, 자기와 제일 마음 맞는 사람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처럼, 더 깊고 풍부한 의미를 부여해서 그 시를 예뻐해 주는 사람이 좀더 그 시의 참 주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 첫 시집 속에는 이것보다 더 참담한 시들도 많죠? 이 첫 시집에 비해 두 번째 시집은 뭔가 달라진 게 있을 텐데요, 어떤 것일까요? 이 : 송찬호 시인의 시에 대해 '존재와 언어에 대해 깊이 천착한 시다' 라는 평가가 많은데, 보통 존재와 언어의 문제를 탐구하는 시들이 아무래도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세계로 빠지는 경향이 있는 것에 비해서, 송찬호 시인의 첫 시집에는 현실이나 시대에 대한 번민과 좌절의 체험들이 심각하게 깃들여 있는 것이 특이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송찬호 시인은 결국 현실을 이야기하더라도 언어를 통해서 미학적으로 접근하려고 한 것이 큰 특징인데, 첫 번째 시집보다 두 번째 시집으로 넘어가면 훨씬 더 언어에 대한 탐구가 더 실험적이고, 언어 쪽에 굉장히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저는 봅니다. 송찬호 시인은 언어를 통해서, 언어와 존재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언어가 진실한 존재의 참모습을 드러내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에 대해서 통감을 하고, 어떻게 하면 언어를 통해서 존재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기존의 언어를 자꾸 부정하는 시도를 하게 되죠. 왜냐하면 기존의 언어라는 것은 좀 딱딱하게 굳어진, 그래서 본질에서 멀어져버린 언어이기가 쉽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꾸 상식적인 의미를 벗어나서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의미를 구성해가는 작업들을 많이 하는데, 두 번째 시집은 그런 실험적인 시도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김: 참고로 말씀드리면 두 번째 시집은 94년에 출간되었고, 제목은 {10년 동안의 빈 의자}라는 시집이구요. 나누어드린 자료의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라는 시가 그 두 번째 시집의 제일 앞머리에 실려 있는 시입니다. 이: 이 시는 이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중에서 그래도 좀 쉽고 재미나게 읽히는 시로 보입니다. 이 시를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고소하고 노오란 달 //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 빛을 잃은 것이냐 //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 어기여차, 밤을 굴려가는 달빛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 꺼지지 않는' 1연 2행에서 갑자기 달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달걀이겠죠. 달걀을 달로 치환해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행의 '달을 깨뜨리고'도 달걀을 깨뜨리고로 볼 수 있고, 껍질 깨고 나서의 노란 달걀도 모두 달이라고 저는 읽고 싶습니다. 2연의 달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이겠죠. 앞에 '고소하고 노오란 달'이 하늘의 달로 연결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 나오는 밥, 달, 달걀, 이런 이미지들이 '추억의 반죽 덩어리'라는 하나의 이미지 속에 포함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2연 2,3행에서는 천상에 떠 있는 달과 지상의 달(달걀)을 생각해보면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연에서 '먹고 버린 달 껍질'도 달걀 껍질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 시에서는 달걀과 달이 갖는 기호를 연결시켜서 달걀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달을 집어넣고,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의미를 훌쩍 뛰어넘어 버리는 일종의 언어유희라고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착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를 통해서 시인은 기호의 감옥에서 해방되면서 굉장히 새로운 이미지의 연쇄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 것을 통해서 말의 범위를 확장시키려는 것이죠. 다시말해, 그냥 달이면 달, 달걀이면 달걀이라고 고정되고 갇혀있던 의미들을 감옥으로부터 끄집어내서 자유롭게 결합시키고 연결시켜서 좀더 확장된 새로운 말을 탄생시키려는 경향을 이 시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첫 번째 시집이 시대와 삶의 참담함에 대한 번민에 바쳐졌다면, 이 두 번째 시집에 가서는 언어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강화되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이 시의 경우에 이혜원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달의 자리에 달걀이라는 말을 넣으면 식탁 풍경에 딱 맞겠구나 라는 생각이 저는 지금에서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또한 은근히 이혜원 선생님께 시비를 하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여기에서 달이라는 것은 사실은 달걀이다, 그러니 의미를 읽자면 사실은 달걀인데 달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읽는다면 시 맛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저는 들기도 하는데요.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같은 구절의 신선함과 울림의 다양성이 덜해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이: 시인도 아마 그런 것을 노려서 달걀의 자리에 달을 놓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밥상에 놓인 달의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이런 이미지가 다른 시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특이하고 새로운 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새로운 느낌을 주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시인 자신도 언어의 자리바꿈을 통한 의미의 확장을 시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 지금 시인이 옆에 계신데, 시인은 빼놓은 채로 이야기를 진행할까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시인이 '난 사실 쓸 때 이랬어요' 라고 하면 시 맛이 확 없어질 때가 많습니다.(함께 웃음) 이런 두 번째 시집을 거쳐서 최근에 내놓은 세 번째 시집이 3년 전(2000)에 출간한 {붉은 눈, 동백}입니다. 그리고 나누어드린 자료 중에 [동백 열차]가 그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편인데요. 이 시집에는 그 이전에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동백'이라는 이미지가 여러 편에 걸쳐서 반복이 되고 있고, 그와 더불어서 산경(山經)이라는 시어가 제목으로, 또 시의 내용으로 여러 차례 반복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이 대목까지 이혜원 선생님이 조금 말씀을 덧붙여주시지요. 이 : 두 번째 시집 이후에 세 번째 시집은 상당히 많이 달라진 것으로 읽혔습니다. 두 번째 시집까지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언어를 가지고 현실의 문제를 진실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이런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두 번째 시집에서는 특히 언어 자체에 굉장히 몰두를 해서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했는데, 그런 만큼 굉장히 실험적이고 난해하고 해체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경향의 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시집과는 많이 다르게 세 번째 시집 {붉은 눈, 동백}으로 넘어오게 되면, 현실에 역시 바탕을 두고는 있지만, 현실과 다른 어떤 이상향을 많이 그리면서 어떻게 하면 좀더 진실하고 아름다운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시 속에서 그런 세계를 상상하고 만들어보기까지 하는, 그래서 이전의 시가 현실의 여러 가지 문제나 모순과 치열하게 다투는 시였다면, 세 번째 시집에서는 현실과 약간 거리를 두면서 다른 세계를 상상해보는 경향으로 많이 변했다고 저는 봅니다. 그리고 이 [동백 열차]도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 : 그 시는 송찬호 선생님께서 직접 낭송해주시는 게 어떨까요? 송 : [동백 열차] '지금 여수 오동도는 / 동백이 만발한 계절 / 동백 열차를 타고 꽃 구경 가요 /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인 삼월의 신부와 함께 // 오동도, 그 푸른 / 동백섬을 사람들은 / 여수항의 눈동자라 일컫지요 / 우리 손을 잡고 그 푸른 눈동자 속으로 걸어들어가요 // 그리고 그 눈부신 꽃 그늘 아래서 우리 사랑을 맹세해요 / 만약 그 사랑이 허튼 맹세라면 사자처럼 용맹한 / 동백들이 우리의 달콤한 언약을 모두 잡아먹을 거예요 / 말의 주춧돌을 반듯하게 놓아요 풀무질과 길쌈을 다시 배워요 // 저 길길이 날뛰던 무쇠 덩어리도 오늘만큼은 / 화사하게 동백 열차로 새로 단장됐답니다 / 삶이 비록 부스러지기 쉬운 꿈일지라도 / 우리 그 환한 백일몽 너머 달려가 봐요 잠시 눈 붙였다 / 깨어나면 어느덧 먼 남쪽 초승달 항구에 닿을 거예요' (함께 박수) 김 : 제가 느끼기에도 첫 시집, 둘째 시집에 있는 시들에 비해서 편안하고 무언가 수월해진 느낌을 갖게 되는데요. 다른 분들은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첫 시집의, '제 목을 자기가 치고 혼도 없는 몸뚱이의 목 위에 달덩어리가 둥둥 떠 있는, 그러면서 뒤로는 칼을 감추고 달 가듯이 지나가는' 그런 참혹의 이미지에서부터 '동백 열차를 타고 꽃 구경 가요'까지 10년이 걸린 셈입니다. 10년에 걸쳐서 이런 변모가 이루어지는데요, 이 과정에 만만치 않은 우여곡절이 있을 법도 합니다. 이쯤에서 송찬호 선생님께서 무슨 얘기이건 한 말씀 들려주시지요. 송찬호 선생님께는 도대체 시를 쓴다는 일이 어떤 일인지, 또 송찬호 선생님 삶의, 시의 화두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이런 부분에 대해 편하게 한 말씀 들려주시지요. 이 시를 중심으로 해도 좋구요. 송 : 이 시를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조금 힘들고 어렵지 않는가, 말하자면 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부정하고 다른 데로 가서 이상향의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좀더 나은 세계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 시를 쓰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제가 나이가 들면서 삶에 대해 긍정하는 부분이 조금 더 강화됐을 수도 있구요. 또 말하자면 살면서 내 처지로 도모할 수 있는 좀더 나은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 이런 생각들을 저는 시로 나타냈다고 생각합니다. 김: 이혜원 선생님께서도 송찬호 시인을 만나신 김에 이건 한 번 물어보시고 싶었다, 하는 부분이 있으면 질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걸 한 번 여쭙고 싶어요. 우선 첫 번째 질문은 아까의 첫 시를 포함하는 첫 시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암울함과 고통, 가난, 이것들의 정체가 어떤 것인가? 그게 시대 전반의 어두움 말고, 시인 개인사 속의 어떤 것과 관련이 있는가를 좀 듣고 싶습니다. 송 : 개인적으로는 큰 격변이나 어려움 없이 평이하게 생활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인으로서 삶의 일부분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 상황과 내가 살고 있는 주위의 세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그것은 저의 시적 취향일 수도 있지 않는가 싶습니다. 김: 제가 그것을 여쭙는 이유는, 물론 시인(예술가)들은 다른 사람보다 삶의 고통, 슬픔, 기쁨 이런 것에 대해 훨씬 예민한 사람들인 줄은 알고 있습니다만, 첫 시집을 보다 보면, 왜 이렇게까지 시집 속의 시적 자아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가? 감히 여쭙는 게 실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인 개인사 속에 어떤 곡절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단지 그냥 평범한 삶이었는데, 취향 따라 쓴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송: 시에 더 절박하게 매달렸다고 볼 수 있겠죠. 뭐 영어의 몸이 되었다거나 이런 것 없이 그냥 평이하게 살아왔습니다. 김 : 겸손한 말씀이시라고 생각됩니다. 송: 그렇지 않습니다.(함께 웃음) 김 : 또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마치 심문을 하는 것 같은데요. 선생님의 첫 시집에서는 고통과 마주서는 실존적 긴장감, 처절함, 이런 것들이 이미지들의 난삽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쪽을 향해서 시집을 집결시켜주고 있다고 느꼈는데요. 거기에 비해서 두 번째 시집에 오면, 실제 생 자체에서부터 우러난다고 느껴지는 긴장감 같은 것이 덜 느껴지고, 상대적으로 언어에 대한 관심, 시적인 형식에 대한 관심이 더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요. 그래서 무언가 어떤 변화가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사이에 혹시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송 : 시적인 변모는 시집을 통해서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시적 변모 이외에 삶의 큰 변화나 경험에 의해서 변모가 되었다고는 생각이 안 듭니다. 다만 제가 좀더 새로운 방향으로 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한 번 시 작업을 추구해본 것이죠. 김: 혹시 80년대라는 시대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허용하는 90년대 분위기도 작용을 했을까요? 송 : 다른 사람들의 시에는 그렇게 뚜렷하게 그런 변화를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제가 제 시를 봤을 때에는 시대적 변화의 영향은 크게 없었다고 봅니다. 다만 두 번째 시집의 문제 의식이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문제 의식이 시집 전체의 밑바탕에 전체적으로 깔려 있지 않는가 싶습니다. 김: 또 한 가지만 제가 더 여쭙겠습니다. 제가 어느 글에서 이런 것을 봤습니다. 송찬호 선생님께서는 시를 '만든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 인터뷰한 기사를 봤습니다. 이문재 시인이었다고 기억이 되는데요. 그리고 처음 시를 쓸 때 굉장히 무겁게 시를 쓰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에 걸쳐서 시를 매만져서 완성을 한다는 말씀을 했다고 되어 있는데, 그것이 시 쓰기에 임하는 송찬호 선생님의 태도의 일단을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런 저런 것까지 다 포함해서 송 선생님의 삶(인생) 속에서 시를 쓰는 일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게 되는지요? 어떤 일인지요? 솔직한 고백을 한 번 여기서 해주시지요. 송 : 어려운 질문인 것 같은데요. 시인한테 시 쓰는 일은 전부라고도 얘기할 수 있겠죠. 시의 창을 통해서 이 세계를 바라보고, 시 속에 그것을 끌어들이는 것이니까요. 부족합니까? (함께 웃음) 김: 아닙니다. 충분하십니다. 제가 어느 글에서도 본 일이 있습니다. 작가(글을 쓰는 사람)는 모름지기 생계를 위해서 글을 써서는 안 된다, 글을 위해서 생계를 이어가야 된다, 필요하다면 글을 위해서 자기자신의 목숨조차도 지불할 수 있는 이가 참으로 작가(글쓰는 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글을 읽었는데, 지금 말씀도 그런 것 같습니다. 송 : 시를 그렇게 무겁고 치열하게 다루는 것은 시 쓰는 입장에서는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을 돌아봤을 때, 과연 제가 시를 목숨 걸고 치열하게 썼는가는 되돌아봐야 됩니다. 다만 저는 습작 때부터 시를 오래 다듬었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그런 부분이 많았습니다. 김: 무지막지한 질문을 하나 또 드려야 되겠습니다. 생계는 어떻게 경영을 하십니까?(함께 웃음) 솔직히 말씀해주시지요.(함께 웃음) 송: 집사람이 직장을 나가고, 저도 거기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함께 웃음) 김 : 어떤 일을 하시는지요? 송: 집안 일이기 때문에,(함께 웃음) 아니 집안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다른 직장처럼 뚜렷하게 아주 강하게 얽매인 조직사회는 아니기 때문에 편한 일이죠. 어떻게 보면 제가 빠질 수도 있구요. 집사람이 고정적으로 직장을 가지고 있으니까, 책임감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 이혜원 선생님께서도 질문해주시지요. 이 : 저는 시에 대해서 좀 질문을 하겠습니다. 저는 두 번째 시집에서 세 번째 시집으로 넘어가면서 보여준 커다란 변화에 상당히 흥미를 느낍니다. 이전 시집들에서는 내면의 의식들을 생생하게 다루면서, 자의식을 보여주고 강렬한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고, 독자들을 자신의 내면으로 빨아들이는 구심력이 강한 시들을 쓴 것으로 보이는데요. 세 번째 시집에서는 많이 달라져서 독자들한테 나아가는 새로운 경향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법도 보면, [동백 열차]에서도 '구경 가요', '걸어들어가요', '~해요' 식으로 독자들한테 계속 권유하거나 독자에게 무언가 설명하고 전달하고, 독자를 굉장히 많이 의식하면서 또 배려하고, 같이 시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이런 식으로 독자를 향해 뻗어나가는 원심력이 느껴지는 시들이 상당히 많다고 저는 느끼는데요. 그래서 이런 것을 의도하신 것인지, 어떤 계기가 있어서 이런 변화를 시도하신 것인지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송: 젊었을 때보다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거든요. 저는 세 번째 시집의 시들이 긴장감이 떨어져서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시들로만 되어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로 연작 형태로 동백을 가지고 시를 만들다 보니까, 이런 어법도 필요하지 않은가,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또 이것이 독백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떻게 하자고 하소연하는 어투의 시들이 많기 때문에 읽기에는 그렇게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또 관련이 되는 질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시들을 보면, 선생님께서 두 번째 시집에서 많이 보여주었던 의미의 해체, 기존에 갖고 있었던 의미의 질서를 깨고 자꾸 새로운 언어를 탐색하고 언어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이런 식의 실험적인 시들이 많이 시도가 되는 것 같아요. 굉장히 극단적으로 실험적이거나 해체적인 시들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고, 전체적으로는 폐쇄적인 자기의식 속에 갇혀 있어서 전달이나 소통이 어려운 시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데, 선생님 같은 경우 두 번째 시집에서는 상당히 해체적인 언어들을 보여주다가 세 번째 시집으로 오면서는 오히려 하나의 질서 같은 것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나름대로 정돈된, 자족적인 의미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느낌이 드는데요. 다시말해 시인께서는 실험적인 시를 쓰시다가 다시 의미를 만들어가는 시로 변화된 경향을 보여주시는데, 요즘 신인들이 쓰는 극단적으로 해체적이거나 폐쇄적인 언어의 방식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고, 또 그 시인들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갔으면 좋겠는지, 조금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송 : 제 시가 그렇게 과연 실험적이냐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글쎄 고민이 되네요. 저는 형식을 변경한다거나 파괴하는 것에 중점을 둔 시는 한 편도 쓴 것 같지 않거든요. 다만 비유나 수사 등이죠. 제가 제 시어에서 그 전에 썼던 비유법을 새로 한 번 검토하고, 또 다른 방법으로 모색하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만, 제 시가 과연 읽히기에 어려운, 그렇게 몹시 실험적인 시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저뿐 아니라 많은 독자 분들이 송찬호 선생 시가 어렵다고는 생각할걸요? 그리고 그게 지금 이혜원 선생님이 말씀하신 실험성이랄지 해체 시도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요. 송: 저는 저와 다른 경향의 사람들의 시에 대해서는 독자이고, 또 같이 시를 쓰는 입장에서 우호적으로 읽는 편입니다. 다만 제가 그런 경지로 못 나갈 뿐이죠. 이: 질문 좀 더 드려도 되죠? 세 번째 시집에서 동백의 이미지나 산경 같은 의미를 통해서, 그런 상징들을 통해서 탈속적이고 어떤 이상향을 지향하는 듯한 경향에 대해서 아까 선생님께서는 그것 역시 현실과 강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현실에서 거리를 두고, 현실에서 멀어지는 변화가 아니냐는 우려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송: 물론 이 시집 속의 시들이 어떻게 보면 현실을 일탈하거나 외면하는 느낌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시적인 장치를 현실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좀더 나은 세계로 추구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쪽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내가 살면서 이 시대에 있어서 시적으로 어떻게 이상을 펼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가령 제 시 속에 [봄날을 가는 산경]이라는 시가 있는데, 3연은 '세상의 절경 한 폭 짊어지지 못하고, 춘궁을 넘어가는 저 비탈의 노래가 저러다 정말 산경의 진수를 찾아들어가는 거 아닌가, 살만한 땅을 찾아 저렇게 말뚝에 매인 집 한 채 뿌리째 떠가고 있으니, 검은 아궁이를 끌어 묶고 살만한 땅을 찾아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저 신선 가족이 가고 있으니' 이것은 말하자면 뿌리가 뽑혀서 정처를 다른 데로 옮길 수밖에 없는 우리 농촌의 현실일 수도 있구요. 여기서는 '말뚝에 매인 집 한 채 뿌리째 떠가고 있'다고 했으니까, 매우 절박한 것이죠. 봄날의 풍경은 매우 한가롭고 태평하지만, 말하자면 이름난 폭포, 아니면 봄날의 산경 같이 우리가 보통 살면서 소박하게 느낄 수 있는 세계나 일상을 이 사람들은 갖지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어떤 정처를 찾아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시가 현실에서 벗어난 것인지는 의문스럽습니다. 그리고 제가 시작노트에 나누어 드린 것에도 있습니다만, 시멘트 덩어리의 도회적인 삶이나 문명의 속도, 전쟁이나 광기, 이런 것을 우리가 소시민으로서 어떻게 바라보고 읽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시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다른 분들이 이 시를 현실과 동떨어지게 읽었다면, 제 시에 문제가 있는 것이죠. 앞으로 다른 쪽으로 시를 더 치열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김 : 꼭 그런 것이 아니라,(함께 웃음) 미리 그렇게 저자세를 취하시면 저희가 질문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산경'이라는 시어 자체의 느낌 때문에 그럴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마 다른 독자분들께서도 '산경'이 무슨 말일지 궁금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좀 궁금합니다. 송 : '산경'은 말하자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하나의 신화집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산해경'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세계를 제 시 속으로 따온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것을, 말하자면 제가 인위적으로 해석을 해서 차용을 했다고 볼 수 있죠. 그러니까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경전이 아나라 살아있는 하나의 실지 사례라고 볼 수 있죠. 김 : 충분하게 납득이 되지는 않습니다만, 이쯤에서 참겠습니다.(함께 웃음) 앞으로의 송 선생님의 시적인 노력, 집중하실 방향, 지금의 시적인 화두 같은 것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송 : 구체적으로 계획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구요. 시에는 내적인 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시 속에서도 그런 쪽으로 한 번 자연스럽게 맡겨 보면 새로운 세계가 보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김 : 내면의 에너지가 가고자 하는 바에 맡겨서 가는 데까지 가보겠다, 그러다 보면 그 무엇엔가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그런 말씀이시죠? (송 : 네) 심문관들이 부족해서 이쯤밖에는 취조를 못했습니다. (함께 웃음) 오늘 긴 시간에 걸쳐서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 방송을 보신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충분치는 못했지만, 이런 시간을 통해서 이른바 어렵다고 소문이 나 있는 송찬호 선생의 시에 대한 이해를 좀더 넓힐 수 있는 기회도 되셨으리라 생각이 들구요. 또 시 일반에 대한 이해의 폭도 조금은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주에는 소설가 이제하 선생님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작품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박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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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이하 김) : 안녕하십니까? '문학이야기'의 김사인입니다. 날씨도 더운데 이렇게 많이들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말씀드렸다시피, 독보적인 문학적 개성과 기품의 작가 이제하 선생님을 모시고, 평론가 권오룡 선생님의 도움 말씀을 같이 들으면서 강좌를 시작할까 합니다. 이제하 선생님 나와 계십니다.(함께 박수) 권오룡 선생님 나와 계십니다.(함께 박수) 시작에 앞서서 그래도 제가 간략하게 몇 가지 사항을 소개 드릴까 합니다. 이제하 선생님께서는 경남 밀양에서 1938년에 나셔서, 주로 유소년기를 마산에서 보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1950년대 말경에 서울로 유학을 오셔서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에 앞서서 1950년대의 <학원> 문단 -연세 드신 분들은 아마 <학원>이라는 잡지를 기억하시리라고 믿지만- 이라는 게 참으로 대단했던 시절이었다고 들어서 알고 있는데요. 그 학원 문단을 주름잡던 몇몇 기린아, 요즘 말로 하면 전국적인 스타 중의 한 분이 이제하 선생님이었다고 전해들은 바 있습니다. 그래서 1956년에 동화로 등단하셨고, 이듬해 {현대문학}을 통해서 시로, 또 같은 해에는 {신태양}지를 통해서 소설로 등단을 하셨고, 또 한두 해 뒤에는 신춘문예를 통해서 다시 소설을 발표하셨습니다. 그 이후에 1973년에 들어서야 선생님의 첫 창작집 {초식}이 간행되었는데, 이 창작집은 문단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주었던 창작집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85년에 제9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시는데, 그 수상작이 바로 오늘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볼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이하 [나그네])라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제하 선생님의 작가적 개성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대표작들, 예를 들어 첫 창작집 {초식}에 들어있는 [초식], [유자약전], 이런 작품들에 비해서 오히려 [나그네]는 선생님 자신이 '한 발 물러서서 창작에 임한 작품' - 어떤 뜻으로 물러서셨는지 다는 모르겠습니만, 짐작컨대 사람들이 알아보기 쉽도록 해보겠다는 의욕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이라는 것을 수상소감에서 밝혀놓고 계십니다. 이 뿐 아니지요, 이제하 선생님께서는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의 전 영역에 걸쳐서 그 독특한 개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선 이쯤 하고, 진행하면서 또 보충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문학평론가 권오룡 선생님께서는 작품에 대한 아주 섬세한 감식안과 빈틈없는 논리로 소문이 나 있는 평론가입니다. 그래서 글의 밀도가 높은 만큼 과작(寡作)이신 평론가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현재 한국교원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불문학자이시고, 계간 <문학과사회>의 오랜 편집동인이셨습니다. 이제하 선생님 요즘 근황은 어떠십니까?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이제하(이하 이) : 요즘 소설은 좀 뜸해졌어요. 집(작업실) 근처에 카페를 하나 만들어서 운영하는 데에 재미를 들여서 지내요. 조금 있다가 카페가 안정이 되고 그러면 슬슬 다시 소설을 쓰려고 그래요. 김 : 여러분들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문학과지성사에서 내는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시리즈가 있는데, 그 시리즈의 등록상표에 해당되는 것이 시집 표지의 시인 소묘(캐리커쳐)입니다. 200권을 훨씬 넘어섰는데요, 그 시집들 표지 그림의 반 이상이 이제하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을 내고 싶은 첫 번째 이유로 그 근사한 캐리커쳐를 드는 분들도 있구요. 또 이제하 선생님의 말(馬) 그림은 아주 독보적인 한 세계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이제하 선생님이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최근에 '마리안느'라는 카페를 평창동 쪽에서 운영을 하고 계시고, 또 몇 해 전엔 자작곡과 기타 반주를 곁들여서 음반까지 내셨습니다. 그래서 '참 요즈음처럼 각박한 시절을 이렇게 근사하게 견디는 분도 계시는구나' 하는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권오룡 선생님은 요즘 어떠십니까? 권오룡(이하 권) : 저도 동감입니다. 이제하 선생님을 항상 뵐 때마다 소설에서도 항상 새로운 모습(경지)을 보여주시고, 가끔 소식을 들어보면 항상 젊고 새롭게 살아가시는 것 같아서 '어쩌면 저렇게 살아가실 수 있을까?' 라고 항상 부러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김 : 우리 참석자들의 복장의 차이를 한번 보세요. 이제하 선생님께서는 단연 예술가이시고, 저희 둘은 어디 관청에서 근무하다 나온 사람 같은 복장입니다.(함께 웃음) 이게 아마 이제하 선생님이 평생 잃지 않고자 애써오신 자유로움, 자유에 대한 열망, 이런 것의 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자 그러면 오늘 본격적인 순서로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이제하 선생님께 [나그네]의 한두 페이지쯤 읽어주십사는 부탁을 사전에 드렸는데요. 한 번 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 이 책은 문학동네에서 소설전집으로 나온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라는 표제의 책인데요. 29페이지를 읽겠습니다. '강릉 시내로 나오자 잘못 내린 터미널 쪽으로 한 마장 가량을 그는 걸었다. 거기서 또 한 번 생각을 바꿔 속초행 표를 다시 끊을까, 이대로 양양에서 갈리는 내설악 쪽 길을 택할까, 그는 주저했다. 속초를 새삼 떠올린 것은 륙색의 사내와 그 작부의 일이 아직도 마음에 걸려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들여다볼 수 있으면 경찰서라도 기웃거리고, 진부령을 넘어 원통으로 빠질 심산이었다. 일단 양양까지 표는 끊었으나, 칫솔질을 거른 듯한 개운찮은 심사로 빵과 음료를 아침 대용 삼아 사들고 그는 무연히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신혼길에서는 그렇게나 청결해 보이던 시가지가 십여 년 뒤에 보니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 동안에 도시가 변모했다는 것보다는 두 개의 그 서로 다른 모습이 순전히 자신의 마음 탓이란 걸 조만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짧다면 짧다고 할 수밖에 없는 세월 동안에 그토록 깊이 패인 그 마음의 수렁이라는 것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그는 헤아릴 길이 없었다. 아내에 대한 연민이거나 아내가 없어진 세상에 대한 스스로의 감정이 혹은 그 계기였을 수도 있다. 그런 몸을 해 가지고도 아내의 생활력이랄까 삶에 대한 집착은 억새풀처럼 끈질기고 강했다. 몇 번이나 유산을 하면서도 아내는 계속 임신하기를 바랐고, 나가떨어지기 직전까지도 두 손에서 들 것을 놓지 않았다. 자리 보전밖에 안 되는 상태로 해를 넘기기 시작하면서 매사에 신경질이 는 것도 그런 집착의 한 변형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느니 나가서 콱 결단을 내 버리겠어……. 눈을 흡뜨고 그런 트집을 부릴 때, 그래 죽어…… 라고 윽박지른 적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만약에 단 한 번이라도 그런 말을 진심으로 속에서 뇌까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 따위 폭거를 감행할 심사가 어떻게 아내에게 깃들었을 것인가. "오늘 차 끝났어요. 약수리까지밖에 못 가요." 양양 터미널에 내려 들여다본 창구 너머에서 아가씨가 그렇게 말했을 때도 돈을 들이민 채 넋이 빠져 그는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여기까지만 읽을게요.(함께 박수) 김 : 역시 인쇄된 소설을 눈으로만 보는 경우와 그걸 소리내서 읽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작가가 썼을 때의 호흡을 살려서 직접 읽어주는 것을 듣는 느낌은 또 다르겠다 싶고요. 읽어주신 부분은 소설 전체의 흐름 속에서 어떤 대목이 되겠습니까? 이 : 이게 노인을 데리고 휴전선 가까이로 간 간호사 일행이 떠나고, 주인공이 자기 아내 뼈를 뿌리려고 강릉, 속초, 원통 이런 쪽으로 헤매는 대목인데, 그 과정에서 죽은 아내에 대한 일종의 회상이 삽입되는데요. 이게 상당히 중요한 모티브가 되지 않나 싶어서 골랐습니다. 김 :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한다는 것이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서울에 살고 있는 말단 공무원이죠. 독학으로 5급 공무원 시험을 쳤던(지금으로 하면 9급이나 10급 공무원이 되겠습니다만) 사람이고, 3년 전에 상처를 하구요. 이 : 유골을 무심하게 집안 어디에다 처박아두고 있다가, 휴일을 맞아서 문득 바람도 쏘일 겸해서 동해안 쪽에 유골을 뿌려버리자는 생각에서 길을 떠나는 공무원의 얘기죠. 김 : 읽어주신 김에, 이어서 이 작품의 창작 동기며 창작 과정을 좀 들려주시죠? 이 : 아까 김 선생이 '한 발 뒤로 물러선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이것은 제가 이상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아마 했던 말 같은데요. 이 '한 발 물러선다'는 얘기와 관련해서 이 작품은 내가 그때까지 해오던 어떤 실험적인 장치들이나 시도들을 조금 유보를 한 채, 전통적인 리얼리즘의 기법으로,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시나리오 쓰는 듯한 심사로 썼던 소설이에요.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기승전결의 법칙을 따르면서 얘기의 진행을 따라가보자, 될 수 있는 대로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사건들을 비교적 자세하게 그려보자, 이런 식의 입장을 채택했기 때문에 아마 '물러선다'는 표현이 나왔을 겁니다. 그래서 공무원이 아내의 뼈를 뿌리러 터미널에서 출발해서 강릉, 속초 등지를 헤매고, 나중에 중간에 간호사를 만나서 일탈하는 과정을 쭉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간호사와 헤어지면서 결말이 나는데, 이런 식의 기법을 그때 왜 차용했느냐 하면, 사실은 그때 이 소설을 쓰던 무렵이 1983년인가 그랬어요. 김 : 1985년 {현대문학} 1월호에 발표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 그런데 그 무렵 소위 이념권 쪽으로 상당히 대세가 기울어져 있던 게 문단 풍토였어요. 그리고 그쪽에서 즐겨서 차용하는 기법이 소위 리얼리즘 기법이에요. 아마도 우리 현실을 제일 정직하게, 자세하게, 절실하게 담아내는 기법이 리얼리즘이 아닌가 싶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이 리얼리즘이라는 것도 그 범위가 간단치가 않는 거지요. 앞에 붙는 수식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그 무렵에는 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고 해서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과 구 소련 쪽에서 즐겨 차용하던, 그런 기법으로 상당히 대세가 기울어져 있었어요. 그러면 여태까지 하던 실험적인 기법을 잠시 유보를 하고, 그 쪽 기법을 차용하면서 다른 얘기를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시점이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나도 물론 바닥 인생 출신이고, 그런 공감대에서 문학을 해오긴 했습니다만, 그쪽에서 주장하는 그런 것만 가지고는 우리 문학의 활로(돌파구) 같은 게 열리지 않을 것 같아서, 그것도 좋지만 여러 가지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의 생각들이 싹트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그럼 당신들이 하는 기법을 나도 한 번 써보겠다는 식의(도전의식은 아니지만) 생각에서 비교적 리얼리즘적인 기법을 차용했지요. 시나리오 같다고 한 것도 아마 그 맥락일 거예요.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원인과 결과가 치달으면서 쭉 연이어지는 기법이 영화 초창기에도 많이 쓰이던 아주 전형적인 기법이죠. 시나리오 쓰듯이 써보자고 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김 : 실제로 이 작품은 영화화되지 않았습니까? 이 : 예, 영화가 됐는데, 시나리오도 이장호씨에게 다시 써줬는데, 그것도 대동소이해요. 내가 이미지를 조금 더 넣었는데, 예산 때문인지 이미지들이 다 사용이 안 되고, 소설과 같은 식으로 영화에서도 진행됐죠. 김 : 그때 주연을 했던 배우가... 이 : 처음에는 안성기씨로 내정이 됐는데, 안성기씨가 그때 주가가 올라서 출연료를 많이 달라고 하고, 이장호씨는 태흥영화사 소속이었기 때문에 예산이 없었어요. 그래서 돈(개런티)이 없으니까 김명곤씨로 대체를 했던 것 같아요. 이보희씨는 원래 내정이 돼 있었구요. 김 : 흥행은 어땠습니까? 이 : 흥행에는 참패를 했습니다.(함께 웃음) 열흘인가 허리우드 극장에 걸렸다가 내렸는데, 이장호씨 작품 중에서 밖에서도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고, 제일 높이 쳐주는 작품이 되어 있습니다. 동경영화제에서 비평가상을 받고, 베를린영화제에서 칼리갈리상도 받고, 서구쪽에서는 시간의 진행이라든지 이런 여러 가지 기법이 알랑 르네([히로시마 내 사랑] 감독)라는 감독과 비교를 해서 논평을 할 정도로 그 쪽에서는 이장호씨 작품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아주고 있어요. 우리 나라에서는 흥행도 참패하고 비디오점에서 대여 순위도 아마 제일 꼴찌일 거예요.(함께 웃음) 김 : 그런데 선생님께서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80년대 우리 문단의 주류적 분위기가 이른바 사회 의식, 역사 의식을 강조하고, 민중 지향적인 리얼리즘 문학 등의 이름으로 문학의 대사회적 역할이 상대적으로 강조되던 시대인데, 그 무렵 선생님의 앞 작품인 [초식], [유자소전] 같은 작품들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어땠습니까? 이 : [초식]은 그때 이념권 쪽 비평가나 그렇지 않은 비평가들이나 이구동성으로 비교적 호평을 했던 작품이에요. 어떤 비평가는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예견했던 작품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던 기억도 나요. 그때가 아주 다급하던 때에요. 박정희 정권이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독선적인 폭정으로 밀어붙이고 재단하고 하면서 사람들을 못 살게 굴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게 인간의 속에 있는 어떤 강력한 권력 욕망, 권력 의지 이런 것의 아주 노골적인 발로였죠. 그런데 [초식]의 줄거리나 테마가 그 진행을 따라 갔다고 보고, 그래서 이 작품이야말로 저항소설의 하나라고 높이 평가해주는 비평가도 있었고, 김현씨 같은 경우는 그게 상징화되고 예술적으로 잘 변형이 되었다고 해서 그런 쪽에서 호평을 해주고 그랬어요. [유자약전]은 실험적인 요소가 강해요. 그래서 난해할 뿐만 아니라, 이미지 위주의 소설이기 때문에 상당히 좋다고는 하면서도 이념권 쪽에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 했죠. 이념권 쪽의 논리 속에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지 애매해서 아마 침묵했던 것 같아요. 김 : 그 무렵에(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이제하 선생님 소설은 굉장히 읽기가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나그네]는 그 중 아주 수월하게 읽히는 작품이고요, 그런가 하면 마치 이제하 선생님께서 '야, 이 사람들아, 내가 당신들 것 같은 소설 못 써서 안 쓰는 줄 아느냐? 봐라, 당신들 식으로 나도 얼마든지 이렇게 쓸 수 있다', 그렇게 시위를 하신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 : 나도 아주 가난하게 자라왔고, 사회 밑바닥의 인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에 대해서 그 무렵에 상당히 신경이 쓰였습니다. 지금도 많이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만, 가령 작가 자신이 심오한 진리나 테마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제대로 찾지 않으면(대중들이 호응을 못 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런 식의 회의가 그 무렵에 상당히 심각하게 싹트지 않았던가 싶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대중들의 호응이 가능할 형식을 찾아보자는 심산에서 이 작품이 씌어졌던 것 같아요. 김 : 그리고 {용}이라는 창작집 속에 있는 몇몇 작품들도 그런 것이죠? 이 : 예, 그런데 저는 미술대학에서 표현주의라든지 초현실주의라든지 하는, 서구 쪽의 상당히 전위적인 흐름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걸 문학 쪽으로 전이시키면서 문학으로 서로 삼투하려는 식으로, 기법을 서로 보완하면서 써왔어요. 그래서 이미지 위주의 소설로 나타나니까 독자들이 어려워했는데, 지금 독자들에게는 아마 어렵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텔레비전이나 영상매체들이 무수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다반사로 보여주거든요. 광고(CF)를 보면 대부분 초현실적인 이미지에서 따옵니다. 강조하고 왜곡하고 변형시킨 이미지를 가지고 광고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독자들이 내 작품들을 새로 읽으면, 오히려 이미지가 구닥다리라고 괄시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요즈음 독자들은 이미지 쪽에서 상당히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김 : 그러니 선생님께서 너무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들을 일찍부터 쓰셨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제 입장에서는 이런 때늦은 아쉬움 또한 없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70,80년대에 사회 현실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는 문학을 표방하던 쪽에서 상대적으로 단선적인(홑겹의) 창작 방식과 소설 독법을 고집해왔던 것은 아닌가 하는 건데요, 이런 생각을 근래에 이제하 선생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하게 됩니다. 이쯤에서 권오룡 선생님께서는 이제하 문학의 매력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좀 들려주시죠? 권 :글쎄요, 저도 이제하 선생님 소설이라면 대개 어렵게 읽은 기억밖에 없는데, 그런 마당에 매력이나 재미에 대해서 말씀하라고 하시니까,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금방 말씀하셨지만, 저도 이제하 선생님 소설들 중 특히 소설집 {초식}에 수록되어 있는 초기 소설들은, 요즘 환타지를 좋아하는 독서 경향이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읽으면 참 매력있는 작품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아까 너무 앞서가셨지 않은가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하 선생님의 작품은 그런 점에서 젊은 독자들에게 참 매력있는 작품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이제하 선생님 소설의 매력이나 재미라는 것은 가장 이제하 선생님다운 특질에서 찾아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가장 이제하 선생님다운 특질이라고 한다면 이른바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것에 있죠. 아마 이 용어는 선생님께서 직접 먼저 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김 : 선생님께서 직접 '환상적 리얼리즘'을 언급하셨다구요? 이 : 예, 첫 창작집인 {초식}을 민음사에서 내놓고, 자기 소설에 대해서 무언가 뭉뚱그려서 타이틀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걸 생각하던 끝에 그런 용어가 나왔어요. 그런데 이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는, 미술 쪽에서는 '빈 환상파'라는 유파가 있었어요, 그림에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하면서 캔버스를 메꾸는 오스트리아 쪽 그룹이었는데, 그때 '환상적'이라는 말이 저의 귀에 익었죠. 그런데 그걸 소설이니까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이름을 붙여보자고 해서 붙였더니, 비평하시는 분들이 옆에서 '환상'과 '리얼리즘'이 서로 상충하고 상반되는 요소인데, 어떻게 그 두 용어가 짝궁으로 나란히 있을 수 있느냐는 식으로 말하더라구요. 그때만 해도 마르께스도 소개가 덜 되어 있고, 남미 쪽의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것도 소개가 안 되어 있을 때예요. 그런데 생소한 용어가 나오니까, 그런 식의 언질을 한 비평가들도 있었던 거죠. 그런데 저는 미술 쪽에서 그 용어를 이미 알고 있어서 가져다가 조립을 한 것뿐이었어요. 요새는 그 용어가 아주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용어가 됐죠. 권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선생님이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서 사용하신 게 아닌가 여쭤보고 싶었는데, 먼저 잘 설명을 해주시니까 제 질문이 하나 덜어졌네요. 그런데 지금 말씀하셨지만, '환상'과 '리얼'이라는 것은 서로 코드가 맞지 않는 두 개의 영역인 것 같은데, 그것을 결합시키려고 하셨다는 점에서 뭔가 특이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이제하 선생님의 작가적 자세를 엿볼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것과 결부시켜서 얘기한다면, 이제하 선생님 소설의 매력이나 재미는 무엇보다 깨달음의 재미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제하 선생님 소설을 읽으면 내 속에서 무언가 깨지면서 새로운 눈이 떠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 속에는 우리가 익숙해있는 근대적인 사고 방식(인식론)의 맹점을 찌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근대적 사고방식을 우리가 깨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깨지 못하면 이제하 선생님은 한없이 어렵게 다가오는 것이고, 그것을 깨면 아주 재미있게 다가올 수 있는, 그러니까 어려움과 재미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붙어 있고, 그것을 압축해서 잘 드러내주는 용어가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 : 지금 이제하 선생님의 소설 속에 근대적 인식론의 맹점을 통렬하게 건드리는 문제의식이 담겨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 제 경우에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어떤 현실을 지칭하고요, 환상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심층의 무의식을 지칭하고 있어요. 제 소설의 방법이 그렇고요. 인간의 잠재의식(무의식)에 대한 생각은 미술 쪽의 초현실주의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눈에 보이는 현실만 가지고는 뭔가 해결이 안 된다고 할 때, 밑으로 더 파고들어가야 되지 않느냐? 밑으로 파고들어가 보면, 보이는 현실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겪어왔고, 긴 시간에 걸쳐 쌓여 있는 온갖 한이나 정서 같은 것, 일종의 샤머니즘이 거기 있죠. 표피층을 뚫고 파고들어가야 뭔가 해결되지 않느냐는 관점이에요. 그러니까 '환상'이라는 것은 일종의 심층이나 무의식, 잠재의식층이고 '리얼리즘'이라는 것은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을 지칭하죠. 나중에 깨닫고 보니까 그렇더라구요. 김 : 샤머니즘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지금도 같은 것인가요? 이 : 예, 같죠. 아직도 우리 쪽에서 파고들어갈 만한 자산이 있다면, 우리 조상들이 겪어왔던 어떤 지층인데, 그 지층이 굉장히 무한한 자원으로 생각되고, 그것을 파고들어가는 일이 요새 서구 사조들과 연결되면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사실은 샤머니즘이에요. 서구 쪽에서는 프로이드나 융을 끌어들이면서 그것을 설명하는데, 우리 쪽에서는 '한'이라는 가장 큰 정서가 있고, 한 이외에도 밑에 깔려 있는 정서가 들어있어요. 제가 아직까지 이름은 못 붙이고 있습니다만, 여러 가지 종류의 바닥에 깔려 있는 억눌린 상태인데, 이거야말로 우리가 파고들어가야 될 문화의 보고가 아니겠는가? 이런 느낌이 들고 있어요. 그건 이제 단순한 방법으로는 파악이 안 되고, 우리 나라에서 샤머니즘이라고 하면 제일 대표적인 것이 무당, 접신 이런 것인데, 우리 나라에도 초현실이 있다고 하면, 이런 식의 중재자(하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인 무당이 드러나는 게 샤머니즘의 일반화된 공식인데, 이것이 아마 상당히 좋은 무한한 소재가 아닌가 느끼고 있어요. 김 : 뭔가 그 근처에 삶과 죽음의 진리, 우리 식의 진리가 들어있을 것이라고 보시는 것이네요? 이 : 예, 그렇죠. 그리고 소설 쓸 때, 저는 독자들의 이중적인 논리에 호소한다기보다는 소설 스토리를 끌어가면서 독자들의 잠재의식을 어떻게 건드릴 수 없을까? 이런 식의 갈망(욕망)을 쭉 갖게 되는데, 이 작품에도 보면 몇 군데 그런 부분이 있어요. 나중에 써놓고 보니까 그런 부분이 있더라구요. 김 : 가령 어떤 대목이 그런 부분일까요? 이 : 무심하게 보통 넘어가는데, 나도 무심하게 썼어요. 그런데 주인공과 간호사가 곡절 끝에 눈에 갇혀서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자는 장면이 있어요. 간호사가 받았던 수표를 찢으려다가 자기 방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주인공이 간호사를 안고서 만리장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길에서 마음대로 이런 짓을 놀아나면, 아내 죽은 것을 생각하면서 '이 여자도 아내처럼 몇 년 있다가 죽지 않나', 이런 식의 샤머니즘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 여자와의 자리를 일단 보류를 하는 순간(장면)이 있어요. 김 : 저도 그 문장이 아주 요령 부득이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책을 읽으면서 그 대목이 걸리지 않으셨나 모르겠습니다. 이 : 여자가 몸을 던져오는데 왜 남자가 자기 절제를 하느냐는 문제인데, 여기서 놀아나버리면 현실에서 끝납니다. 그렇게 되면 현실에서 둘만의 일로 끝나지만, 뭔가 정식으로 이 여자를 받아들이고, 세속에서 말하는 대로 격식을 갖춰서 제대로 아내로 삼지 못하면, 또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혀서 여자를 거부하게 되죠. 이 부분이 제가 보기에는 무의식을 건드리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내가 주인공이라고 할 경우에도 반드시 양자택일의 순간이 오지 않나 싶었어요. 하나는 윤리적인 것인데, 여자가 몸을 던져온다고 해도 여자를 마음대로 짓밟을 수 없는 윤리적인 규범이 하나 있고, 그 다음에는 마음껏 놀아보자고 여자와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여자가 (몸을) 던져온다고 제멋대로 이쪽에서 일탈을 해버리면 현실에서 끝나지 않나, 욕망에서 끝나지 않나, 뭔가 여기에서 절제를 해준다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범위를 같이 생각하는 공동체적인,더 근원적인 윤리의식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여자 쪽에 신이 내려지는데, 사실은 그게 계기가 되는 것이죠. 개인으로만 해결이 안 되는구나, 그래서 여자의 마음의 허점을 파고들어가서 접신이 되는 순간이 마지막에 있어요. 남자에게 몸을 던지면서 여자가 거부를 당하고, 남자는 극도의 자제력으로 막아주는 부분을 독자들이 읽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왜 이럴까, 나 같으면 여자를 좋다고 받아들이겠는데 왜 주저를 하느냐?' 이런 부분이 우리 잠재의식 속의 윤리의식, 전체를 생각하는 절제력과 연관이 되지 않나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 :소설의 플롯 상 저는 그 부분을 조금 다르게 읽었는데요. 작가께서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데, 제가 다르게 읽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주인공 남자의 여행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죽음이라는 통과제의적 관문으로서의 여행이거든요. 그러니까 남자는 여행을 하면서도 갈팡질팡하고, 정처가 없어요. 집에서 나올 때도 충동적으로 나온 것이지, 딱히 3년 동안 묵혀 놓았던 죽은 아내의 뼈를 그때 꼭 뿌려야겠다는 필연성이 있는 것도 아니죠. 그러니까 우연에 의해서 끌려와서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남자는 전적으로 우연에 의해서만 지배당하고 있는데, 거꾸로 여자는 모든 것을 다 필연으로 내다보고 있죠. 남자가 거기 오리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고, 그러면서 물가에서 관 셋을 짊어진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게 전생의 남편이라는 식으로 되어서, 말하자면 전생, 현생, 후생, 이런 윤회적인 세계관 속에 들어가 있게 되죠.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그 여자는 사실 죽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그 여자가 거기서 결합한다는 얘기는 죽는다는 얘기죠. 그런데 '환상적 리얼리즘'의 세계관도 그런 것이겠습니다만,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세상도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이라는 식으로 갈라서 생각을 한다면, 그 너머의 세계와 이 세계 사이에 죽음이라는 관문이 놓여져 있는 것인데, 그 여자는 죽음의 관문으로 가는 하나의 구멍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 여자와 결합한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그런 세계관에 입각해 있다 하더라도 현실 너머의 세계관 속으로 완전히 넘어가서 살 수는 없죠. 잠깐 나 있는 틈을 통해서 그런 세상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통해서 현실에서의 삶을 다시 조정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세계로 완전히 넘어간다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 둘은 결합하면 안 되는 것이다, 결합하면 죽는다는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 같은 얘기네요. 여자가 결합하면 죽는다는 것은 현실에서 끝난다는 것이죠.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끝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두 주인공(남자와 간호사)이 다 바닥 인생들이에요. 여러 곡절을 겪으면서 뭔가 깊은 한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서로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한이 쌓여 있는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우리 서민들이 나이를 마흔 정도 먹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깊은 슬픔이 밑에 쌓이게 되는데, 둘다 그런 정도의 상태에서 만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남자가 3년 동안이나 방치했던 뼈를 무심히 뿌리러 간다는 것 자체도 얼핏 보면 무심한 짓인데, 그 바닥에 무의식적인, 샤먼한 잠재의식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들 일상 속에 다 그런 잠재의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죠. 잠재의식 속에 샤머니즘이 다 내재된 채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죠. 김 : 보이는 것만으로는 다 설명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깊은 차원에서의 인연(연기법)의 뉘앙스인데, 그렇지만 보이는 세계의 편에서 생각을 해볼 때, 이런 궁금증도 개인적으로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근대적인 것, 산업사회적인 것, 도시적인 것(우리 민족의 분단 문제까지 포함해서), 그런 것에 대해서 그것들이 현실 속에서 드러내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천박성이라고 할까요? 그 누추함에 대해서 심한 혐오감을 작품 속에서 보이고 계시다고 느꼈는데요. 그리고 그러한 현실 타락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들이 '유자'랄지, [초식]의 '아버지' 같은 영적 순결성을 간직한 순수한 영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맞게 읽은 걸까요? 이 : 저는 해방 직후에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나이였어요. 남북이 분단되는 사정들을 쭉 보고 들으면서 자라왔는데, 여기에서 걸핏하면 분단 문제 들먹이고 통일문제 들먹이면서 떠들어댈 때, 이게 저는 노래로 들려요. 자기 방식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합리화를 시키기 위해서 끌어다대는 것으로 들리죠. 사실 정치하는 사람들이 해방 직후에 조금만 지혜롭게 마음들을 쓰고, 생각을 깊이했더라면 통일이 될 수도 있었는데, 강대국 틈에 놀아난 거죠.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불가항력적인 강대국의 힘에 밀렸다고는 하지만, 왜 조금만 더 지혜로울 수 없었을까? 인간의 정욕이나 권력 의지, 개인적 욕망, 고집, 이런 것으로 결국 강대국에 빌붙어서 서로 양보를 안 한 게 분단을 만들고 말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건 사실 정치하는 사람들끼리 해결을 해야 되는 것이죠. 가령 이북이나 남한에서 누가 '그냥 통일해버리자'고 해서 밀고 나가면 되는 일이에요. 무슨 이념이 문제가 아니죠. 그런데 여태 안 되고, 거기에 희생된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몇 백만이나 되는데, 이게 어느 정도의 한이냐? 이런 문제도 상당히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말하는 분단 얘기는, 아까도 말했지만 여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목이 일종의 공공의 윤리의식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써놓고 보니까, 개인적인 한이 집단적·공동체적인 한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쫓은 것 같아요. 그런데 개인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은, 어떤 공동체적인 공감을 가질 정도의 한이 어느 정도의 두께를 가지면 그렇게 되지 않느냐? 이래서 남자가 여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고, 여자에게 뒤에 신이 내린다는 것은 개인적인 한에서 집단적인 한으로 전이되는 것이죠. 써놓고 해석을 제 나름대로 해보니까, 바닥에는 분단 현실에 대한 일반 대중이나 서민들의 한의 깊이가 쭉 깔려 있고, 읽는 독자들도 그런 채로 읽기 때문에 제가 볼 때는 분단 문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로 오는 거예요. 이런 어려운 부분도 '아, 이렇구나'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이해를 한 채 넘어갈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독자들마다 다르긴 하겠습니다만, 좌우간 해방 직후부터 살고 있는 국민들은 켜켜이 쌓여 있는 상당한 두께의 한을 오래도록 안고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이게 철저하게 맺힌 한이면, 정치하는 사람들을 제치고, 자기들끼리 저절로 통일을 할 수 있을 텐데, 아직도 모자라는 한인가? 이런 느낌도 있구요. 그리고 통일문제니 분단문제를 하도 입버릇(유행가)처럼 손쉽게 읊어대기 때문에 깊이라든지 절실함이라든지 하는 차원을 갖지 못한 채 시류적인 것으로 변해버린 것은 아닌가, 이런 느낌도 좀 있었구요. 김 : 7,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의 개혁적인 노력들이 떠오르는데요. 결국, 긴 역사, 긴 시간 속에서 우리 혼의 밑바닥에까지 쌓여있는 응어리(한)들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없는 채로 시도되는 사회 개혁, 통일, 분단극복, 현실참여, 이런 것은 우리를 그 근본에서 살리는 힘이 되기 어렵다고 선생님께서는 보시는 듯합니다. 그런 것은 천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꾸 뭔가 정치적인 실천, 집단적인 참여,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 선생님께서 부정적이었던 게 아닌가 싶은데요? 이 :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것도 있는데, 그것을 그냥 목적이나 구호로 삼을 때는 그것밖에 안 남아요. 저 밑바닥을 안 들여다보게 되고. 현실에서 민주적인 대통령을 뽑는 것은 좋은 일인데, 그것만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는 것이 있죠. 제가 살아오면서 보니까, 사람이라는 게 너무나 뻔하고 굉장히 유한한 존재예요. 그리고 이런 통일문제도, 물론 민주화된 대통령을 뽑아야 되고, 양심적인 사람을 선량으로 내세워야 되지만, 그것만 가지고 해결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사람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더 위의 것, 더 넓게 생각하고 해야 해결이 되지 않나 싶어요. 김 : 내친 김에 한 가지 더 여쭤보고자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문학을 하는 사람, 또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 뭔가 세상을 좀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 운동권 쪽에서는 마구 구호화하고, 세게 외치죠. 그런 방법으로는 우선 독자들에게 말초적으로 자극을 줄지 몰라도, 별로 깊이 있게 스며들지는 못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문학은 물처럼 스며들어야 합니다. 조금씩 독자들에게 스며들어서 물이 번지듯이 변화를 시키고, 전체적으로 그런 변화가 올 때 정말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 표피적인 것을 두들겨 부수고, 새로 갈아넣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요. 문학은 그런 것이 아니고, 정서를 통해서 바닥에 스며드는 작업이 아닌가 싶어요. 아주 고전적인 어떤 것인데, 과격한 게 아니에요. 혁신적인 사람들은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을 갈아야 된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문학이라는 것은 그렇게 쓰이면 힘을 발휘하지 못하죠. 문학에 사회적 효용의 기능이 있다면, 아마 그런 점일 거예요. 스며들 듯이 개인을 변화시키는 것, 그게 아마 문학의 사회적인 기능일 거예요. 물론 그것만이 다는 아니지만요. 김 : 이 자리에 오신 분들께서는 오늘 이제하 선생님의 말씀을 깊이 음미해보시길 바랍니다. 권 선생님께서 이제하 선생님의 [나그네]에 관해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을 좀 해주시지요? 권 :글쎄요, 조금 아까 집착이나 욕망에 관한 얘기가 나왔었고, 선생님께서는 삶의 유한성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사실 자연이라는 것은 순환하는데 오직 사람의 삶만 일회적인 것으로, 즉 직선적인 것으로 탄생에서 죽음까지 쭉 이어지면서 끝나버리죠. 그래서 사람의 욕심, 집착은 바로 그러한 순환의 리듬을 잃어버리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나그네]의 배경에 놓여 있는 것도 이제하 선생님의 '환상적 리얼리즘'에 뒷받침되어 있는 세계관과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윤회적인 삶이라는 것은 현실에서의 삶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순환된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우리가 삶이 탄생에서 죽음까지로 이어지는 일회적인 것으로 끝난다는 인식에서 갖게 되는 욕망이나 집착 같은 것에서 좀더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게 되는 인식의 계기를 순환론적인 깨달음이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 추상적인 얘기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나그네]라는 작품이 아주 깊은 차원에서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러한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게 아마 어쩌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공동체적 윤리겠죠. 말하자면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선생님께서 리얼리즘으로의 물러남의 자세로 쓴 작품이 [나그네]라고 한다면, 공동체적 윤리에 대한 자각, 사람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고, 삶이라는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삶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 : 선생님께 우스개 삼아 여쭙습니다. 주인공 남자가 물치 삼거리에서 턱 차를 내립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벙벙해 있는 것을 묘사하는 부분에 '전차에 받힌 듯한 얼굴'이라는 표현을 하셨구요. 또 뒤에 가다 보면 이 작품 속에서 문화부 공무원이라고 나오는 남자 일행들에게 불려와서 고스톱 판 옆에 앉아 있는 여성 묘사를 하시면서 '어딘가 솜방망이로 얻어맞은 듯한 얼굴'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고, 간호사에 대해서는 도무지 20대인지, 40대인지 나이를 종잡기 어려운 분위기의 사람이라고 묘사하셨는데, 이런 묘사들은 어떤 경로로 작가에게 오게 되나요? 이 : 저는 뭐 소년기부터 우리 근대 작가들 작품을 읽어서 우리말 표현에(형용사라든지) 길들여져 있었어요. '솜방망이로 얻어맞았다'는 표현은 영남 쪽에서 가끔 쓰는 얘기예요. 분명히 콕 찍어서 어떤 상태인지는 말을 잘 못하겠는데, 솜방망이로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 있어요.(함께 웃음) '전차에 받힌 듯한'이라는 표현은 그 무렵만 해도 이미 전차가 없어진 지가 몇십 년이 지난 뒤였는데, 옛날에는 이런 표현이 있었어요. 어딘가 어리둥절해서 누구에게 얻어맞은 듯이 어디로 갈지를 몰라서 어리벙벙해 있는 사람을 '전차에 받힌 듯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었는데, 이걸 쓰던 무렵에는 전차가 없어져버린 뒤였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써도 괜찮을까? 라는 의아심을 저 스스로 가졌지만, 이 표현 외에는 적절한 표현이 안 떠올랐어요. 다른 것을 끼어봤는데, 어딘가 어색하고 흡족하지가 않아서 그러면 이걸 그냥 쓰자, 가끔 TV에서 전차 풍경을 보여주니까, 전차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대충 일반 독자들이 알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가령 해방 후부터 1960년대까지 마포를 오르내리던 전차를 본 독자라면, 요즘 달리는 자동차에 비하면 너무 느리고 둔탁하게 생긴 것이니까, 그런 차에 떠받혀서 온 사람의 얼떨떨한 표정을 생각할 때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표정이야말로 여기에 딱 들어맞는 어떤 게 아닐까, 하는 효과가 생각나서 그냥 쓴 거예요.(함께 웃음) 권 :제가 생각할 때는 비유적 표현에 있어서 아주 자유자재한 것이 이제하 선생님의 문체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예컨대 [환상지]라는 소설에 보면, 10년 전에 죽은 아내와 호텔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거기에서 빨래하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10년 전에 죽은 아내와 같이 있을 수 있으며, 또 호텔에 들어가서 빨래를 하는 것은 뭔가? 시간과 공간 두 축에서 모두 뒤죽박죽이죠. 이제하 선생님은 이렇게 서로 맞지 않는 것들을 자유롭게 가져다 쓰는데, 오히려 그런 점에서 [나그네]는 오히려 그런 재미가 상당히 조금 줄어든 작품이죠. 이 : 그걸 어느 비평가는 '낯설게 하기'라고 얘기를 하던데, 미술 쪽에서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그런 방법을 즐겨 씁니다. 일상적인 사물을 아주 극사실적으로 묘사를 하면 전혀 안 보던 이상한 물체로 보이는 바로 그런 효과지요. 그러니까 10년 전에 죽은 아내와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낸 얘기를 내가 해줄까? 이럴 때에 독자들의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들어가는 것이고, 또 [밤의 창변]에는 서두에 이런 게 있습니다. '중 하나가 오토바이에 수녀 하나를 태우고 산 속으로 들어간다', 중과 수녀라는 뭔가 상반되는 이미지를 한데 끌어모으고, 거기다가 둘이서 오토바이를 타고 있어요. 독자들이 이걸 읽을 때, 어리둥절해지고 낯설어져버리는 것이죠. 이게 독자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낯설게 하기'의 방법인데, 저는 물론 무의식적으로 씁니다. 그림에서 서로 계열이 다른 이미지들이 같이 나올 때 생기는 상당히 충격적인 효과인데, 이런 방법이 요새는 '조폭' 영화에도 많이 나오고 그러죠. 서로 다른 이미지들을 갑자기 들이밀어서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이 요즘은 아주 일상적인 방법이 되어서 오히려별로 신선한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김 : 선생님 또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선생님 작품들에 등장했던 여주인공들 가운데 선생님께서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여주인공은 없으십니까? 이 : {열망}이라고 하는(옛날에는 {광화사}라는 제목으로 나온) 장편이 있어요. 거기에 지호라는 주인공이 화랑을 경영하는 화상이에요. 그 주인공에게 상당히 애착을 갖고 있고요. [유자약전]에 나오는 유자라는 인물은,- 제가 원래 화가가 되고 싶어서 미술대학에 갔는데, 문학병이 드는 바람에 사실은 제대로 된 화가가 못 됐어요. 그림을 그리는 흉내만 내고, 전람회도 몇 번 하기는 했습니다만, 화단 쪽에서는 아직 화가로 인정을 안 해주고 있어요. 그런데 인정을 해주고 안 해주고가 문제가 아니라, 화가가 굉장히 되고 싶었고, 그런 욕망 속에서 소년 때부터 이상적인 어떤 짝이라고 그러나요? 반려자의 이미지가 유자라는 인물로 형상화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애착을 갖고 있죠. 그런데 이 여자는 그림 그리다가 죽습니다. 시한부 인생으로 자기도 모르는 병을 안고서 약간 멜로적으로 죽죠. 김 : 소설 속에서는 스물일곱 살에 위암에 걸려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나옵니다. 이 : 요새 영화처럼 죽는다는 얘기를 그렇게 장황하게는 안 하고 죽는데, 며칠 밤을 잠을 안 자고, 죽자 사자 사생결단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미지예요. 그런 여자에 대한 동경이라고 할까, 그런 상에 대한 이미지가 제가 좋아하는 이상적인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아직도 애착을 갖고 있어요. 김 : 그런 인물들 속에는 어떤 백치스러움과 성자스러움 같은 것들이 함께 어려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현실 부적응 증세를 드러내고 있구요. 이 : 그야말로 솜방망이로 얻어맞은 듯한 어떤 면이 있고, 또 어떤 면은 치열하고 불타는 면이 있죠. 김 : 일종의 광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예술가들에 대한 형상화가 그 동안에 선생님 작품들에는 많지 않았습니까? 권 :그래서 흔히 이제하 선생님의 문학이 지닌 한 특징을 '예술가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에 대한 저 나름의 이해를 말씀드리자면,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이 긴밀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예술가 소설이라고 하는 표현은 선생님 소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심미성의 측면을 지적하는 용어인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심미성이라고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무래도 선생님이 화가이기도 하시기 때문에, 회화적 상상력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길어오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그림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드리면,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것이 세계관의 윤곽을 그려서 보여주는 선이라면, 예술가 소설로 지칭되는 심미성은 그 분위기를 나타내주는 색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이 : 비교하시는 분들 중에서 예술가 소설이라고 분류를 하는 분들이 몇이 있는데, 제 소설은 커다란 두 갈래가 있는데, 하나는 현실 문제를 샤머니즘적인 방식으로 파고들어가서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흐름이고, 또 하나는 이 시대의 예술가 상이라고 할까요? 시대를 견디는 인간 유형이죠. 반드시 예술가만이 아니고, 우리가 질곡이 많은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까? 온갖 것을 다 겪으면서 변혁이라든지 변란도 겪으면서 살고 있는데, 이런 시대를 아주 꿋꿋하게 견디는 유형의 인물이 어떤 상일까, 이런 것을 천착해보고 싶어하는 흐름이 있어요. 그 두 가지 흐름이 대체적인 제 소설의 유형인데, 왜 이런 유형을 자꾸 추구를 하는가 하면, 요는 제 자신인 것 같아요. 자신의 자화상을 한 번 그려보이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자기가 이 시대를 얼마나 어떻게 견디는가? 하는 자아의 문제, 이것이 아마 이런 방식으로 표출이 된 것 같고, 그 다음에 자아를 벗어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가 샤머니즘적인 흐름으로 현실을 수용하고, 뭔가를 천착하려고 하는 두 가지 흐름인 것 같아요. 하나는 자아이고, 또 하나는 자아를 벗어난 다른 사람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런 두 갈래 흐름 때문에 샤머니즘적인 흐름과 예술가적인 유형으로 비평가들이 나누는 것 같아요. 김 : 더 긴 시간을 갖고 선생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만, 시간이 지금 많이 됐죠? 이쯤에서 일단 마무리를 하고요. 실은 이때쯤 해서 선생님께 부탁을 해서 노래를 한 곡 청해 들으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제가 혼자 했습니다.(함께 박수) 그렇지만 지금은 아마 안될 겁니다. 뒷풀이 자리쯤에서 기타가 동원이 되면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볼까 합니다. 이 : 지금은 기타도 안 가지고 왔고, 평창동 '마리안느'라는 카페로 오시면 금요일 8시나 9시쯤 제가 노래를 들려 드릴게요. 노래를 하려면 목청을 가다듬어야 되는데, 요새는 달걀도 안 먹고 그래서요. (함께 웃음) 김 : 이제하 선생님 그리고 권오룡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청중분들께서는 미진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1950년대 우리 근현대사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참으로 고통스러운 역사였는데, 1950년대 이후 1960,1970,80년대의 불모성을 어떻게 보면 현실적으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예술이라는 방편, 문학이라는 방편에 몸을 싣고, 낮은 포복의 배밀이로 견뎌오신 한 탁월한 작가를 오늘 만나셨습니다. 이런 분들의 노고로 해서 비로소 우리 조선말이 드러낼 수 있는 정신의 부피가 이만큼이라도 커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을 저는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의 노력에 힘입어서 우리 문학과 예술이, 또 우리 정신이 홑겹의 것으로 떨어지는 것을 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시인 서정춘 선생을 모시고 뵙겠습니다. (함께 박수) 감사합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