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라이크 헤븐(Just Like Heaven)>은 2005년에 소개된 마크 워터스 감독의 약간의 멜로를
가미한 로맨틱 코미디로, 과거 기억을 상실한 여자의사 귀신과 조형건축가 사이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기본적인 구성은
2004년도에 상영된 우리나라 영화 <귀신이 산다(김상진 감독, 차승원, 장서희 주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조형건축가 데이빗(마이클 러팔로 분)이 레스토랑에서 긴장성 기흉이라는 질환으로 의식을 잃은 사람을 귀신 의사
엘리자베스(리즈 위더스푼 분)의 도움을 받아 응급조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데이빗은 엘리자베스의 지시에 따라 소독을 위해
레스토랑 종업원에게 보드카를 달라고 하여 가슴의 예상 절개 부위 주변에 뿌린다.
이번에는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2007년에 만든 전형적인 B급 영화 <데쓰프루프(Death
Proof)>를 살펴보자. 영화에서 자동차를 이용한 살인광 마이크(커트 러셀 분)가 범행 대상자에게 오히려 총상을 입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황급해진 그는 차안에 보관하고 있던 버번위스키를 상처에 뿌려 소독을 시도한다.
그런가하면 오늘날까지 명화로 손꼽히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3년 작품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에서는 술이 소독 겸 마취제로 사용되는 장면도 나온다. 즉 이 영화 종반부에서 유태인 공장 종업원들이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리암 니슨 분)에게 감사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금반지를 선물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수중에 금이 있을 리가 없던
그들은 한 동료의 금니를 뽑아 금반지를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시술 전에 그 자원자에게 술을 마시게 한 뒤 이를
뽑는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지금 예를 든 이 세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에서 제대로 된 소독약이 없는 응급 상황에서 종종 이처럼 독한 술을 이용하여 소독약을 대신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러면 과연 위스키나 보드카와 같은 술들이 영화에서처럼 기대만큼의 소독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주도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일까?
여기에 관련해서 2006년 미국 테네시 주의 이스트테네시 주립대학과 한 재향 군인 병원에서 발표한 흥미 있는 보고서가 하나
있다. 술과 마찬가지로 에틸알코올을 성분으로 하고 있는 손소독제들의 농도 별 효과를 검정한 실험연구였다. 실험 결과 40%
알코올은 수돗물로 세척한 것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며 60% 알코올 농도에서 비로소 소독 효과가 검정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따라서 시중에서 간혹 판매되고 있는 40% 알코올 농도의 소독제는 구입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그들의 결과는 관련 연구로는
가장 오래된 논문(Price PB. Ethyl alcohol as a germicide. Arch Surg
1939;38:528-42)과 일치하는 소견이라고 결론지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위스키나 보드카의 알코올 농도는 40%다. 이보다 높은 농도도 간혹 볼 수
있지만 이 경우도 대부분 40-45% 사이다. 앞서의 실험 결과를 토대로 하면 수돗물 세척과 큰 차이가 없는 알코올 농도인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알코올 농도 20% 근처의 우리나라 희석식 소주들은 그야말로 맹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만 같은
술중에서 50% 후반의 중국 백주나 물을 타지 않고 나무통에서 꺼낸 그대로 병입하여 50% 대의 알코올 농도를 가지고 있는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위스키의 경우 어느 정도의 소독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론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 앞서 영화들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당연히 수돗물 대신 위스키나 보드카를 뿌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고 여기에는 필자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 한 대로 낮은 알코올 농도에서는 제대로 된 소독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면 반대로 알코올 농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효과가 큰 것일까? 즉 100% 알코올 원액으로 소독하면 가장 효과가 높을까?
흥미롭게도 이것 역시 아니다. 알코올 농도 100% 보다는 오히려 70% 농도에서 더 나은 소독 효과를 볼 수 있다.
에틸알코올의 살균 기전을 보면 세균의 막을 침투하여 들어가 세균내 단백질을 응고시켜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100% 알코올은
단백질 응고 능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세균 안에 침투하기 전에 세균 표면의 단백질을 미리 응고시켜 단단한 막을 만들어 알코올
성분이 세균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되면 세균은 잠시 정체 상태에 있게 되나 적절한 환경이 되면 다시 되살아나게
된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에틸알코올 농도 70~80% 정도에서 살균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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