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응축이론 외 4편
김제김영
화려한 귀향이라고 여겼다
고요의 언저리나 만지작거리다가
모래들 표정이나 두어 줄 베끼기도 하고
지루해지면
신과 교신할 주파수를 찾아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다가
거짓말도 두어 마디 배우는 마당이라고
짐작하곤 했다
여기 와서야
녹슨 종소리가 저 언덕을 이루었다는 것과
모든 감각이 다 순해져도
통점 하나만은 날카롭게 남는다는 것을 절감했다
거세당한 고독들이 무리지어 있고
부박한 몽상이 제 톤을 눌러
스스로 고요해졌다
품고 온 신념은
아무리 새겨보아도
몇 번이고
고쳐 써도
꽃으로는 피어나지 못했다
모래더미 속으로
뿌리째 익사하는 상념
톰방톰방 갈비뼈 깊숙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따라
쓸쓸한 모래이랑 하늘 한 자락 어루만진다
사막의 배경에는 늘 강물이 있고 비가 내린다
어디서 어떤 그늘 깊어지는지
벌레소리가 끝도 없이 미끄러진다
시/시/각/각
사막은 불수의근이 발달했다
슬픔에 대한 공감을 과장한다
제 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행인의 감정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면서
행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지도 않으면서
행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듣고 싶지도 않으면서
대충 고개를 끄덕거린다
가끔은 어깨까지 흔든다
그걸 온전한 공감으로 믿은 행인은
진종일 얘기를 했는데도,
사막은 토씨 하나 건네주지 않고
썰컹썰컹 서릿발만 자꾸 부풀린다
겨우 모래밭을 빠져나온 행인
스스로 착각의 결론을 내려야 하는 밤
사막은 알고 있는 것도
묻고 싶은 것도
없는
그저 모래산-
겹겹이 허물어지는 능선들을
헹구고 떠나는 바람소리,
그저 그런 새벽의
행인의 뜨거운 아침
독작
이쯤에서
방향을 선회해야겠다
표준을 강요하는 의자를 버리고
자유가 무성한 구석을 탐색한다
구석은 갈등을 풀기에 적합한 위도다
대문 열리는 소리도
우물물 소리도 없는
이 사막 어디에 깃을 들인단 말인가
이 사막을 어찌한단 말인가
들이치는 허무만이 떠돌 뿐
천만 년 피고 지고, 다시 피는
동쪽의 달도
다만 홀로 채워지다 기울어진다
고요에 닿는 법
어떤 노래도 부르지 말 것
어떤 문장도 기록하지 말 것
어떤 일에도 상관하지 말 것
어떤 손길도 기대하지 말 것
걷지 말 것
그냥
휘어질 것
조용한 대련
이끼를 뒤집어 쓴
바위 하나
뒤꼍 그늘에 결가부좌했다
그 옆에
다 닳은 연필 한 자루
간신히 초심을 붙들고 있다
너무 많이 부러졌던 연필과
추녀를 받드느라
살점이 달아난 바위
말 한 마디 없이 서로를 겨눈다
바위와 연필 사이 긴장이 팽팽하다
(터질 준비가 되었다는 건지
꽃으로 바뀔 시간이 됐다는 것인지)
느린 기다림은 그들의 공통분모
부쩍부쩍 팽창하는 그들의 분발
울 밖 느티나무는 홀로 심심해
자꾸만 우듬지가 가렵고, 간지럽고
치열한 담장 기웃거리다
문득, 고요해지는 모두의 한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