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주 TV칼럼니스트
남성 배우 둘이 독대하는 장면에서 자주 등장
하는 '썰'이 있다. '기르던 개가 주인을 물면'
으로 시작하는 비유 말이다. 근래에 와서
이같은 대사를 여성 배우가 주도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변주로 시도되고 있지만, 어쨌든.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선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라는 '한'보다 뒤통수 맞고 치는 상황에서
파생하는 감정이 더 보편적이다. 주종관계
혹은 의리와 배신을 베이스로 깔고 폭발하는
정념들...
KBS 2TV <닥터 프리즈너> 역시 한회
수차례씩 상대의 뒤통수 치는 반전을
꾀하고 있다. 여기선 교도소에 수감된
재벌, 정치인, 연예인 등을 관리하면서
'없던 병을 만들어' 형 집행정지로 이득을
취해왔던 서(西)서울교도소 의료과장
선민식(김병철)과 그 후임 자리를 노리는
나이제(남궁민)의 대결과 재벌가의 경영권
승계 등이 얽혀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역간의 싸움이나 조력자와의 관계에
의리나 믿음 등이 배제되어 있다. 필요와
가치, 지불과 보상 등으로 작동되는
세계에서 '기르던 개' 를 운운하는 건
의미가 없다.
호젓한 수목원에서 만난 선민식과 나이제는
북(北)아프리카 아카시아에서 수액을 얻는
진딧물과개미에 관한 비유를 나눈다. "수액
하고 꿀 내놓으시죠" 라는 대사에 빵 터졌지
만, 개를 잡네 마네 하는 그런 소리보단 훨씬
낫다.
해질녘, 저기 멀리서 오는 상대가 '내가 기르
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온 늑대인지 식별하
기 어려운 때를 빗댄 <개와 늑대의 시간>이
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러나 <닥터 프리즈
너>에서의 '나이제'는 무엇이 해치러 오는지
를 숨긴다. (대신 그 시간은) 개미와 진딧물의
시간이다. (끝)
《씨네21 _ NO.1200》 p.120 T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