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상제님으로부터 종통을 받으심
망명 9년 후인 1917년(정사) 2월 10일 23세시에 구천상제님의 삼계대순(三界大巡)의 진리를 감오득도하시고
구천상제님으로부터 종통계승의 계시를 받으셨다.
주문을 송독하시던 어느 날 「왜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느냐. 태인에 가서 나를 찾으라」는 구천상제님의 계시에 따라
그 해 봄에 수로를 통해 고국으로 돌아오시게 되고 4월 안면도 정당리에 우일재를 마련하시고 공부를 하셨다.
* 구천상제님과 옥황상제님 두 분께서 실제 만나신 적이 없지만, 종통 전수는 계시로 이어지셨다.
23세시의 감오득도(感悟得道)
이러한 도주님의 감오득도에 관하여 도전님께서는 “도주님께서 진주(眞主:15세)로 봉천명(奉天命)하시고 23세시에 득도하심은 태을주(太乙呪) 23자의 수리가 일치하는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본령합리(本領合理)란 본령(本領: 본래의 특성)이 진리에 부합된다는 말로서, 천부 의 종통 계승을 하실 도주님께서 득도하신 1917년 2월 10일은 도주님의 연세가 23세 되시는 해로, 23은 태을주 글자 수 23과 서로 상응이 되기 때문에 진리와 조금도 틀림없이 꼭 들어맞는다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마동(馬洞) 봉서(封書)
1919년(기미) 도주님께서는 정월 보름에 이치복과 함께 정읍 마동(馬洞) 김기부의 집에 이르러 그곳에서 대사모님과 상제님의 누이동생 선돌부인과 따님 순임(舜任)을 만나셨다.
이때 선돌부인은 「상제께서 재세시에 늘 을미생이 정월 보름에 찾을 것이로다.」라고 말씀을 전하며 도주님께 봉서를 내어드렸다.
이렇게 상제님께서 선돌부인에게 남기신 봉서는 10년 후 을미생 이신 도주님께 전해졌으며, 상제님의 친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서를 전해 받으신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종통을 계승하실 분이 도주님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또 하나의 징표이다.
마동(馬洞)의 마(馬)는 조씨(趙氏)를 뜻한다고 한다.
상제님께서는 도주님께서 조씨(趙氏)이기 때문에 조씨(趙氏)를 상징하는 말(馬), 즉 마동(馬洞)에 봉서를 숨기신 것으로 보여지며, 이는 마동을 통한 도주님의 종통 계승이 천부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도주님의 종통계승은 계시와 봉서로 이루어져 도주님은 상제님을 인세에서 직접 만나지 않으셨고, 따라서 상제님의 가르침을 들으신 적도 없었다. 하지만 도주님은 멀고 먼 만주 봉천에서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감오득도 하시고 귀국하시어 상제님의 진리를 선포하심으로써 진주임을 증명하셨다.
상제님의 종도 그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상제님의 도덕을 펴시고 밝히셨을 뿐만 아니라 상제님을 구천상제님으로 봉안하시어 상제님이 우주 삼라만상을 주관하는 조화주이심을 명확히 선포하셔서 삼계대순 개벽공사의 실상을 보여주셨으며 오십년 공부로 대순진리의 진법을 완성하셨다. 즉 도주님에 의해 상제님의 진리가 밝혀지고 도법이 짜짐으로써 교리적 정통성이 세워진 것이다. 따라서 도주님의 종통계승이란 천부적인 이치에 의해 완성되고 계승됨을 의미한다.
1919년(기미) 9월에는 보천교 본부에 보관 중이던 둔궤를 통사동 재실로 옮기시어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설법하셨다.
1920년(경신) 2월 17일 재실에서 밤낮으로 불면불식 공부하시던 중 둔궤가 봉안된 곳에서 벼락소리가 나더니 둔궤가 저절로 열렸다. 둔궤 속에는 호피 한 장과 반쯤 핀 국화 한 송이가 그려있고 양피(羊血) 스물넉점이 궤에 찍혀있고 오강록(烏江錄) 팔문둔갑 설문(舌門)이란 글자가 궤에 쓰여 있었다.
1921년(신유) 7월 대원사에서 백일도수를 마치시고, 9월 5일 동곡 장탯날에 가매장되어 있던 상제님의 성골을 통사동 재실로 모시고 와 치성을 올렸다.
* 통사동 재실은 전북 정읍시 감곡면 통석리 통사동 74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도주님께서 무극도장이 마련될 때까지 거주하시기도 하면서 도수를 보신 곳으로, 동곡 장탯날에 가매장 되어있던 상제님의 성골을 모시고 치성을 올렸으며 보천교에 있던 둔궤를 옮겨와 공부를 하신 중요한 재실이다.
종통(宗統)
종통이란 도의 생명이며 진리인 것입니다.
종통이 바르지 못하면, 법이 있을 수 없고 경위가 바로 설 수 없으며, 그러므로 그 속에서는 생명이 움틀 수 없으며 만물만상을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도(道)란 신성, 불, 보살의 하소연에 의해 상제님께서 삼계대권을 가지시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사람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오셔서 진멸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구하시려고 천지공사를 행하셨으며, 그 행하신 바를 계시로 도주님께 전하신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전경에도 상제님께서 홀로 이룩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도의 연원(淵源)은 구천상제님의 계시(봉서)를 받으셔서 종통을 세우신 도주님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이 연원은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도주님께서 십 오세 시 진주(眞主)로 봉천명(奉天命)하시고, 만주 봉천에서 이십삼 세 시 득도하심은 태을주로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루신 것이며, 전경에 「12월26일 재생신(再生身)」이라 하신 것은 12월 4일로 1년 운회의 만도(滿度)를 채우실 도주님의 탄강을 뜻하심입니다. 이것을 여합부절(如合符節)한 천부적 종통 계승이라고 합니다.
진표율사가 금산사의 용추(용소)를 숯으로 메우고 솥을 올려놓은 위에 미륵불을 봉안한 것은 증산(甑出), 정산(鼎山), 양산(兩山)의 진리를 암시하여 도의 근원을 밝혀 놓은 것이며, 상제님께서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고 하심도 미륵불과 솥의 양산의 이치를 알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모든 도인들은 이 종통을 바르게 알아야 유언비어나 조언비어로 마음을 현혹하더라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니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도전님훈시중에서)
이처럼 종통은 하늘에서 이어져 오는 천부적인 신성성이며 연속성이다.
금산사(金山寺) 미륵금불과 양산(兩山)의 진리
금산사(金山寺)는 전북 김제시 금산면의 모악산(母岳山: 794m) 서편 기슭의 골짜기에 자리한 사찰로 상제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강세하시기 전에 금산사 미륵금불에 30년간 임하여 계셨던 곳이다.
진표율사가 세운 미륵불은 1597(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 1627(인조 5)년 미륵전을 중건할 때 흙으로 빚은 불상에 도금을 한 형태로 다시 만들어졌다.
이때 중앙의 미륵불(11.8m)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불(挾侍佛: 8.8m)이 ‘뫼 산(山)’ 자 형태의 삼존불로 조성되었는데 그 후 협시불 양옆으로 작은 보살상이 추가로 봉안되면서 전체적으로 ‘날 출(出=山+山: 兩山)’ 자 형태가 되었다.
* 수미좌(須彌座) : 절의 불전(佛殿) 안에 불상을 받치는 단.
- 수미산을 본뜬 것으로 수미단 또는 수미좌라고 한다.
* 철수미좌(鐵須彌座]) : 철로 만든 수미좌
금산사에는 본래 그 터에 9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용소(용추)가 있었다.
진표율사는 못을 메우고 미륵불을 세워야하는데 도저히 물을 메울 수가 없었다.
흙으로 메우면 흙이 간 곳이 없어져 버리고, 돌로 메워도 그 다음날이면 모두 밖으로 튕겨 나와 있었다.
다시 기도를 하니 계시가 있기를 숯(목탄)으로 메워라. 라고 하시었다. 그리고 내가 고을 사람들에게 눈병을 창궐하리라. 고을마다 방을 붙여 안질이 있는 사람은 숯을 갖고 와서 여기 연못에 넣고 그 물로 눈을 씻으면 눈병이 낫는다고 널리 알리라고 하셨다. 이후 고을에 방을 붙이고 나니 정말로 사람들이 눈병이 생겨 숯을 가져와서 연못에 넣고 그 물로 눈을 씻으니 눈병을 나았다.
그렇게 연못이 숯으로 메워진 뒤 계시대로 솥[鼎]과 시루[甑]를 놓고 그 위에 미륵불을 모셨다.
지금 금산사 미륵전 밑으로 들어가면 쇠로 만든 솥이 있고 그 아래 숯으로 메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루는 솥 위에 얹혀야 조화가 나온다. 물도 있어야 하고 숯으로 불도 때야 하는데 용추 못은 물이고, 숯은 불이니 조화가 나온다.
금불의 양쪽에 보호불이 두 개씩 있는데,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다. 금불과 보호불, 그 옆의 조그만 불이 합쳐서 두 개의 뫼 산(山) 자, 즉 출(出) 자를 이룬다. 이것은 산(山)이 두 개 있는 형상으로 증산, 정산을 의미한다. 완연하다.
이 시루와 솥의 이치가 바로 시루 증(甑) 뫼 산(山) 증산(甑山) 상제님을, 솥 정(鼎) 뫼 산(山) 정산(鼎山) 옥황상제님을 상징하는데, 상제님께서 인세(人世)에 계실 때 호가 증산(甑山), 옥황상제님의 호는 정산(鼎山)이셨다.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후 천하지 대금산(天下之大金山) 모악산하(母岳山下)에 금불(金佛)이 능언(能言)하고 육장 금불(六丈金佛)이 화위 전녀(化爲全女)라”고 하셔서 미륵금불이 전녀(全女)를 합친 성씨인 강(姜)씨로 왔음을 암시하신 데서도 알 수 있다.
양산도(兩山道) 타령
상제님께서는 금산사의 미륵금불을 양산도(兩山道)라고 이름 지으시고 세속에 전해지는 양산도와 비유하곤 하셨다. 시속에는 양산도 타령이라는 유명한 민요가 전해지는데, 그 후렴구 중에는 “에라 놓아라, 아니 못 놓겠네, 능지를 하여도 못 놓겠네, 에헤이예”라는 구절이 있다. 그렇게 능지처참을 당해도 양산(兩山)의 도(道), 이 줄만큼은 절대 못 놓는다는 것인데, 그 양산이란 바로 시루와 솥인 증산(甑山)과 정산(鼎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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