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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38 제13장 칭찬과 비난에 대하여
寵辱若驚(총욕약경)
貴大患若身(귀대환약신)
何謂寵辱若驚(하위총욕약경)
寵爲上 辱爲下(총위상 욕위하)
得之若驚 失之若驚(득지약경 실지약경)
是謂寵辱若驚(시위총욕약경)
何謂貴大患若身(하위귀대환약신)
吾所以有大患者(오소이유대환자)
爲吾有身(위오유신)
及吾無身 吾有何患(금오무신 오유하환)
故貴以身爲天下(고귀이신위천하)
若可寄天下(약가기천하)
愛以身爲天下 (애이신위천하)
若可託天下(약가탁천하)
寵;사랑할 총. 辱;욕 욕, 驚;놀랄 경,
患;근심환. 寄;부칠 기. 託;부탁할 탁.
해석:
총애를 받음과 욕을 먹음에 놀라는 듯하니
이는 큰 병통을 자기 몸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어째서 총애를 받음과 욕을 먹음에 놀라는 듯한다고 말하는가?
총애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욕을 먹으면 언짢아지니
이는 얻어도 놀라는 듯하고 잃어도 놀라는 듯하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총애를 받음과 욕을 먹음에 놀라는 듯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째서 큰 병통을 자기 몸처럼 귀하게 여긴다고 말하는가?
나에게 큰 병통이 있는 것은 '나'라는 에고(ego)-아상(我相)-가 있기 때문이니
만약 '나'라는 에고가 없다면(無我)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기 몸을 귀하게 여기듯 천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가히 천하를 맡길 수 있고
자기 몸을 사랑하듯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가히 세상을 맡길 수 있다.
도덕경-39 제13장 칭찬과 비난에 대하여-2
뜻풀이:
나는 어려서 부터 자주자주 칭찬을 들으면서 자랐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그저 착하고, 잘 생겼고, 인사성 밝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다고 칭찬을 들으면서 자랐고, 조금 더 자라 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공부도 잘하고, 성실하며, 매사에 모범적이라는칭찬을 들으면서 자랐다. 그래서 내 주위에는 언제나 '잘한다 잘한다'라는 말들이 끊이질 않았고,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금은 수줍어하면서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 내심 우쭐해 하곤 했었다.
그렇게 천진하게 칭찬을 들으면서 자라던 나는 그러나 세월이 흘러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는 나도 모르게 자신은 '언제나 그리고 무엇이든 잘해야 화는 사람'이라는 무의식적인 요구와 부담으로 몰고갔다. 그리하여 나는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조금씩 나도 모르게, 언제나 그리고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으로 남들에게 보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나로 하여금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거나 간에 내면 깊은 곳에는 끊임없이 남들을 의식하게 했으며, 아아 그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살기보나는 남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꾸미고 포장하고 미화하고 왜곡하는 끝없는 가식(假飾)속으로 나를 몰아 넣었다.
그 천진하든 아이가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아 그 거짓과 속임의 오래고도 아득한 세월이여--! 자신의 잘난 부분은 끝없이 부풀리고 못나고 잘못된 부분은 끝없이 숨기고 감추려고만 했던! 그리하여 급기야 나중엔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진정 스스로는 자류로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되어버렸던! 그러나 또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내 나이 스물네 살 때의 일이다. 그때 나의 삶의 모토는 '살아있자' 뜨겁게 살아 있자!였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돌아본 나의 모습은 그것과는 너무나 먼 거리의 게으르고, 권태로우며, 한없이 자기방기(自己放棄)만을 일삼은 휑한 몰골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썩어 있군나.....'
'이래선 안된다. 살아있자! 그래 나는 살아 있어야 해!'
그렇게 생각하고 다짐하며 <뜨겁게 살아 있기 위해> 나는 구미 금오산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에 삭발을 하고 들어갔다.그때의 기억과 일들은 나의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아아 얼마나 처절히 다짐하며, 결심하며, 산을 올랐던지!
<뜨겁게 살아있기 위해> 하나 가득히 책을 넣은 배낭을 무겁게 등에 메고 왼손에는 밥을 해먹을 수 있는 남비와 작은 등산용 버너, 그리고 약간의 쌀과 밑반찬 등을 넣은 커다란 가방을, 오른 손에는 간단하게 나마 책걸상을 손수 만들어서 쓸려고 준비해 묶어 놓은 합판과 각목 등을 들고서 얼마나 비오듯 땀을 흘리며 그 가파를 산기를 올랐던지!
'살아 있어야 해....살아 있어야 해....!'
아아 그러나 나는 본질적으로 게으른 인간이며, 무언가 결심한 일에 대해서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을 넘어 작심삼초(作心三秒)였다. 그렇게 힘겹게 산을 올라가, 그 다음날 종일토록 뚝딱거리며 책걸상을 만들어 그야말로 <뜨겁게 살>준비를 다 마쳐놓고는 정작 성실하게 정말이지 <뜨겁게 살아야 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너무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게을러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살아 있어야 해,....!'를 연발하며 산을 올랐던 그 마음은 너무나 쉽게 잊혀져 버리고 - 언제나 그랬듯이!- 삭발까지 해가며 열심히 하리라고 거듭 다짐하고 계획했던 자기완성을 향한 공부화 노력은 본능적인 무책임과 게으름 앞에 맥없이 무너져 생색과 자기변명만이 남았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더해 가는 자기방기(自己放棄)속에 조금씩 권태가 덧보태어지고, 이윽고 시간마져 지겨워하게 될 때쯤이면 나는 또 습관처럼 화들짝 놀라는 것이다.
'아니 떠나오기 전과 똑 같은 모습이 아닌가!'
'아아 내가 .....또..... 썩어 있구나....'
그러면 이번에는 그 진 날들 동안 정말이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는 자신을 몹시도 자조(自嘲)하고 질책하면서 마치 그런 자신의 부끄러움을 황급히 묻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허겁지겁 산을 내려와 버리고 마는 것이다.
도덕경-40 제13장 칭찬과 비난에 대하여-3
내 삶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건만, 그러나 다른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그것은 언제나 각색되고 미화(美化)되었다. 나의 부끄러운 치부(恥部)는 언제나 철저히 숨겨졌고, 남들 앞에서 나를 드러내고 우쭐거릴 수 있는 부분은 빠짐없이 기억속에 남아 언제나 어느 때나 확대재생산되어 활용되었다. 그리하여 나의 이 스물네 살때의 산행도 사실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온갖 게으름과 빈둥거림과 자기방기(自己放棄)와 그리고 약간의 생각만으로 점철된 부끄러운 나날들이 었건만, 나의 일기장에는얼마나 아름답고 멋들어지게 그 모든 날들이 기록되어 있는지 얼마나 고독하고 처절한 수행자로 묘사되어 있는지! 아아 남들 앞에서는 또 어떻고!
대관령 목장에서 내려와 교직(敎職)에 몸 담았을 때도 그랬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맑디 맑은 학생들 앞에 윤리교사로서 어느 날 문득 섰을 때'가르친다'는 사실이 너무나 크게 내겐 다가왔고 그 앞에 파리하게 서 있는자신의 부족함이 또한 너무나 아뜩하여 조금이라도 그 부족함을 메워 볼 마음에 부랴부랴 독서실 장기(長期) 이용권을 끊었었다.
이후 7개월 동안을 나는 학교에서 퇴근해 돌아오기만하면 저녁을 먹기가 바쁘게 독서실에 들어가 밤 늦도록 교재연구를 하거나 책을 보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거기서 새우잠을 자면서 밤을 새기도 했다. 한 사람의 교사로서 나는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고 싶었던 것이다.....여기까진 얼마나 그럴싸한가? 물론 그것이 또한 사실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전혀 다른 또 한 인간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때에도 나는 끊임없이 남들을 의식하며 살았는데, 겉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듯 했으나 내면으론 일거수 일투족 남들을 의식하지 않는 순간이 없었으니, 아아 그 아득한 무게와 긴장을 어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하루 왼종일을 남들이 알지 못하는 팽팽한 긴장속에서 살다가 이제는 ' 그 어느 누구도 외식할 필요가 없는' 집으로 돌아오면 내면의 긴장은 일순간에 풀어지고 고픈배에 허겁지겁 저녁을 먹게 되는데, 그리고 나서 독서실을 가게 되니 앉자마자 졸음이 찾아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일!
더구나 마음은 끊임없이 남들을 의식하며 자신을 꾸미고 미화하고 본능적으로 포장하는 사람일수록 정작 혼자 있게 되면 이번에는 더없이 무책임하게 되고 게을러지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조차 몹시 귀찬아하면서 자기변명만을 일삼게 되는데 내가 바로 그런 마음이었으니 한 사람의 교사로서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고 싶어 독서실 장기(長期) 이용권을 끊은 그 처음의 마음과 뜻은 좋았지만 그러나 이후 7개월 동안 나의 독서실 생활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는 앞의 산행(山行) 애기에서 보듯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그런데도 그 후의 오랜 세월동안 나의 뇌리속에는 오직 "한 사람의 교사로서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고 싶어서--'독서실' 7개월!'이라는 것들만 아름답게 각색되어 남아 턱없는 자고(自高)와 자기우월의 에고(ego)를 무한히 강화시키는데 한 몫을 하게된다.
도덕경-41 제13장 칭찬과 비난에 대하여-4
또 있다.....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내 삶의 어느 한 부분 그렇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내 눈앞을 가린 본능적이고도 맹목적인 자기우월감 속에서 있는 그대로이 우쭐거리며 살았던 진실(眞實)은 조금도 보지못한 채 허허로이 우쭐거리며 살았던 것이다..... 내 나이 서른 때 스스로를 못 견뎌 하며 이친듯이 지리산으로 들어갔을 때에도 한동안은 '교직(敎職)마저 사표내고 산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무슨 대단한 훈장처럼 떠벌리고 다녔었고,
깊은 산 속 토굴 속에서의 긴긴 겨울밤을, 초저녁만 되면 이 핑게 저 핑게 대면서 이불속에 드러누워서는 다음 날 아침 해가 중천에 뜨도록 뒹굴거리며 일어나지 않아 허리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남들을 만나기만 하면 밤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마음공부를 하고, 또한 새벽같이 일어나 좌선(座禪)을 하거나 명상(冥想)을 한, 초저녁부터 이불을 깔고 드러누울 생각은 꿈에도 해 본적이 없는 사람으로 표변(豹變)하여 그들 앞에서 자랑스러이 말하곤 했었다. 아아 그렇게 나는 참으로 병이 깊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바로 그 토굴에서 어떤 사람과 밤이 이슥하도록 오랜 얘기들을 나누던 중에 내 모든 삶을 송두리채 뒤바꿔 놓는 운명의 순간이 문득 나에게 찾아왔다.그때 그사람은 끊임없이 내 살아온 과거들을 듣고 싶어 했는데, 그러면 나는 마치 물을 만난 고기처럼 신명이 나서 그동안 내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멋지고 훌륭하게 살아왔으며, 또한 지리산, 이 깊은 산 속까지 들어올 만큼 얼마나 나 자신과 삶에 대해서 진실되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는가 하는 것을 마치 무슨 영웅담 늘어놓듯이, 때로는 스스로를 무슨 비극의 주인공인 양 해가며 끝없이 지껄이고 있었다.
그렇게 손짓 발짓까지해가며 스스로의 훌륭함을 드러내던 그 어느 한 순간, 아아 나는 문득 그 모든 것의 '진실(眞實)'을 보고 말았다! 그것이 얼마나 거짓되고, 가식(假飾)되며, 위선(僞善)으로 가득 차 있는가 하는 것을, 얼마나 자고(自高)한 마음에 스스로를 그렇게 한없이 높은 곳에 올려다 놓고, 세상과 사람을 비아냥거리며 우쭐대며 살아왔던가 하는 것을, 지리산 이 깊은 산 속으로 들어올 만큼 자신과 삶에 대해서 진실되어 몸부림 쳐 오기는커녕, 아아 그 오랜 세월동안 단 한 번도 진실해 본적이 없는 자신의 그 커다란 허구를 비로소 보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새벽 햇살이 하얗게 방안으로 비쳐 들어올 때까지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어릴 적 '잘한다 잘한다'라는 칭찬을 들으면서부터 시작된 그 오랜 세월 동안의 삶과 존재의 한 없는 왜곡을 나는 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적어도 더 이상은 나를 꾸미거나 포장하지 않게 되었고, 여전히 남들을 의식하는 마음의 작용 때문에 한동안 힘들긴 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인정'과 '받아드림'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자유해 갔고, 그러던 그 어느 한 순간 또 한 번의 존재의 비약(飛躍)이 찾아와 나는 마침내 그 지난(至難)했던 삶의 모든 방향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는 참으로 감사하게도 늘 평안하고 자유로우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또 다른 삶의 새로운 시작이었으며, 사랑으로 충만한 새로운 탄생이기도 했던 것이다. 축복이여라--!
도덕경-42 제13장 칭찬과 비난에 대하여-5
이 章은 인간이면 누구나 걸려들어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칭찬과 비난'에 관한 글이다. 총욕약경(寵辱若驚)이라하여'총애를 받음과 욕을 먹음에 놀라는 듯하다'라고 시작되지만 나는 그것을 우리에게 보다 더익숙한 개념인 '칭찬과 비난'으로 풀었다. 그래서 노자의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 '칭찬과 비난'에 끝없이 끊임없이 끄달리며 살았던 내 어리석은 삶의 긴 얘기를 먼저 했던 것이다.
왜 사람들은 -나도 그랬지만 -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살지 못할까? 왜 꼭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남들의 '인정과 칭찬과 비난'에 그토록 민감해 할까(寵爲上 辱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爲寵辱若驚)? 그럼으로서 자꾸만 자기를 꾸미게 되고.....남들의 몫인데도 왜 내가 그 모든 짐을 넘겨 받아 스스로 주눅들고 두리번거리며 끊임없이 그 들을 의식하게 될까?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더니 이는 분명 큰 병통임에는 틀림없다(貴大患若身)
왜 그럴까(何謂貴大患若身)? 그것은 분명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지고 다져지고 강화된, 그리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턱없이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나'라는 에고(ego)의식 때문이리라(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만약 나에게 그 '나'라는 에고의식- 아상(我相)-이 없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及吾無身 吾有何患)? 마침내 자유하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 '나'라는 에고로부터 자유할 수 있을까? 다른 길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이 되려는 욕망과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한,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모든 실천과 수행을 버려보라. 그리곤 가만히 있어보라. 그냥 있는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살아보라는 말이다.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터이니, 그렇게 조금만 기다리라! 조금만...! 그러면 스스로 알게 도리라 모든것을 ...!
맨 마지막 문장은 참으로 절묘한 비유라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마치 그 '나'라는에고가 실재(實在)하는 양, 끊임없이 거기에 집착하고, 그것을 귀히 여기며 더없이 아끼고 사랑한다. 그렇지 않은가? 얼마나 자존심을 챙기며, 거기에 상처 받기를 두려워하는가? 얼마나 스스로를 높이며 '스스로 살고저(自生)'하는가? 그렇게 자신의 에고에 대하여 더할 나위없이 민감하듯 세상과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서도 진실로 민감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가히 천하를 맡길 수 있고, 가히 세상을 맡길 수 있는것이다(故爲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그런데 그렇게 세상과 사람들은 진실로 사랑할 수 있으려면 어쩔 수 없이 그 '나'라는 에고가 사라져야 한다. 에고로서는 '진실로' 사랑할 수 없다. 에고가 사라질 때 그무아(無我)속에서 저절로 솟구쳐 나오는것이 바로 '사랑'이다. 아아 그러면 이제 그는 비로소 평화로우며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의 사람이 되는것이다. 세상'과 '나'가 둘이 안닌! 아름다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