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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산 - 삼막사 천불전 <출처----한국의 산하> |
이마에 그어진 세월의 흔적을 보며 나 역시 웃음으로 화답. 부지런히 차에 올라 선두차를 뒤따라 오르니 산불감시초소 앞 주차장까지 잠깐 사이에 도착, 먼저 오른 친구들과 상봉.
즉시 등산로를 따라 1차 예정지 삼막사를 향해 출발했다. 잠시 차로용으로 포장한 경사면을 오르다 일행은 둘로 갈라졌다. 우선 다리가 편치 않은 친구들은 완만한 도로를 따라 오르고 나머지 일행은 가파른 등산로로 올라 삼막사에서 합류하기로 약속.
언제나 든든한 다리힘을 자랑하는 서현 형과 여성팀 중 산에만 오르면 훨훨 날으는 오정심 동우가 선두에 서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그간의 회포를 안주 삼아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날씨가 날씨인지라 채 10분도 되지 않아 잔등에는 땀이 차고 가슴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주체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삼막사 등산로는 경사가 심한 편이라, 쉬지 않고 오르다 보면 어느새 헉헉, 숨이 차고 도사들과 풋나기의 차이가 금방 드러난다. 멀찌감치 선두 그룹과 뒤따르는 일행의 간격이 벌어지고, 앞서가는 선두그룹 빨리 따라오라고 소리치면 뒤따르는 친구, 괜한 나이 탓으로 푸념이다.
"여보게들, 자네들도 내 나이만 돼보라고! 다리는 후들후들, 눈앞은 가물가물할 날도 머지 않았어. 그 때 가면 내 생각 간절하게 날 걸, 허허."
"제기랄, 나이는 혼자 처 잡수셨나?"
신 소리 하다보면 어느새 중턱에 오르고 잠시 땀을 식히느라 바위에 앉는다. 얼마 전 설악산을 당일 코스로 다녀온 영숙과 순호 동우, 반은 자랑 삼아, 고생했던 그 날의 이야기로 설악산의 풍경을 맛으로 곁들여가며 못간 친구들 약을 올리고,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아직은 변변치도 않은 일거리에 얽매여 훌훌 털어내지 못하는 이 몸도 저 친구들을 따라 전국 명산을 두루 순회할 날은 언제일까? 마냥 부럽기만 하구나!
드디어, 온몸에 땀이 차고 한바탕 비를 맞은 듯 축축한 기분에 젖었을 때 삼막사 도착, 희미한 산바람으로 몸을 식혀본다. 오늘 우리들이 오르는 산은 관악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에서 우뚝 솟아오른 해발 481m의 삼성산이다. 그 정상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이 삼막사는 원효대사가 의상, 윤필과 함께 수도하면서 지어진 사찰이라고 한다. 이 절에는 사적비 옆에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석굴이 있고, 원효대사가 심었다는 느티나무가 천년 거목으로 우뚝 서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각종 불교유산 문화재를 간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이 유서깊은 사찰을 품에 안은 삼성산은 계절에 따라 펼쳐지는 풍경이 산의 운치를 더해 주며, 남쪽 골짜기를 흐르는 삼성천은 10리에 걸쳐 수려함을 자랑한다.
잠시 땀을 식히고 아직 완만한 차로를 따라 오르던 친구들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순호와 나는 일행을 맞으러 천천히 하산하다 보니, 잠시 후 맨 선두로 인희와 정신, 놈세 동우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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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막사 칠성각 앞 남근석 <출처----한국의 산하> |
보이고 그 뒤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소희, 숙희, 순옥의 모습도 보인다.
일행을 맞아 삼막사에서 휴식을 취하고 제2차 목표 국기봉을 향해 출발하기로 했다. 태풍 민들레가 몰려온다고 했지만 날씨도 우리 동우들을 굽어살피시는지 아직은 빗방울도 비치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감싸안아 주신다.
조금 오르는데 한 친구, 또 신소리를 늘어놓는다.
"여보게들, 조금 오르면 진짜 희귀한 남여근석이 있는데, 거기 지나칠 땐 남근바위에서 자네들 실력을 시험해 봐야 한다는 거야. 힘센 녀석은 동전을 붙이면 바위에 철썩 달라붙게 되고 약한 녀석은 맥없이 미끄러져 떨어진다던데."
"자넨 붙여봤나?"
"아, 물론! 바위에 손이 가기도 전에 동전이 철거덕 가서 붙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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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막사 칠성각 앞 여근석 <출처----한국의 산하> |
"이런, 100년 묵은 산삼이라도 혼자 캐 잡수셨나. 자네 마누란 맨날 좋아하겄네."
"별루 그래 뵈지도 않던데."
또다시 배꼽을 잡고 웃음보가 터진다.
"그뿐인줄 아나. 거 옆에 있는 여근석은 일년 내내 님 그리느라 물이 마르지 않는다구."
"어디 그게 님 그리는 건가. 사시장청 시들 줄 모르는 그걸 보니까 물이 흐르는 게지."
여친들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데 주책 없이 음담을 늘어놓고 있으니, 뒤따르는 여친들, 말도 못하고 피식 얼굴에 웃음이 스친다. 그저 세상 남자들이란 구실만 있으면 이 모양이니 원!
가까이 다가가니, 녀석 말대로 동전 두어 개가 바위에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어떤 친구들의 장난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그 앞에서 한바탕 또 소동이 벌어진다 . 옆에 서있는 칠성각에선 돈독한 불도 여인네 둘이서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건만.....
"자, 저거 봐. 내 말이 틀렸나?"
호기심이 동하여 다가가 보니 진짜로 여근석의 움푹 패인 곳에는 물이 고여있는 게 아닌가? 짓궂은 H동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럴싸하게 방금 전에 끊어진 음담의 속편을 이어나간다.
님이 그리워 일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 건지, 어제 내린 빗물이 마르지 않은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물기가 좀 있기는 있었다. 참으로 신비로운 자연의 조화-- 믿거나 말거나........!
사실 삼막사에서 오른쪽으로 산허리를 따라 대리석 계단을 15분 정도 오르다 보면 이곳에 자연스레 형성된 암벽을 얕게 파서 만든 마애삼존불 위에 석굴사원 형태로 건물을 지은 칠성각(칠보전)이 있다. 마애삼존불이 있는 이 칠성각을 지나치기 전에 무심코 스쳐 지날 수도 있는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남여근석이다. 남자와 여자의 상징을 닮은 2개의 자연석이 그야말로 보란 듯이 서있는 것이다.
다산(多産)과 풍요를 상징하는 남근석이나 여근석을 숭배하는 것은 우리네 민간신앙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상징적인 남여의 심벌을 닮은 바위는 비단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주로 남근석 위주이고 여근석이 보란 듯이 그것도 한곳에 자리한 것은 어느 산을 둘러봐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 칠성각 앞에 남여근석이 나란히 서있는 것은 정말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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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산 - 국기봉 <출처----한국의 산하> |
이 바위는 원효대사가 삼막사를 창건하기 이전부터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되었다고 한다. 이 바위를 만지면 순조로운 출산을 하게 되고, 가문의 번영, 무병, 장수를 빌면 효험이 있다 하여 4월 초파일과 7월 칠석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치성을 드린다고도 한다.
한 친구가 민망스러운지 친구들을 밀어내며 다시 산행길을 재촉했다.
그 무렵 인희 동우는 지난 주, 혼자서 산악회를 따라 남덕유산을 다녀온 이야기를 꺼내며 그곳의 수려한 산세와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덕유산 풍경을 그림 그리듯 자랑하니 동우들 부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전국 곳곳의 크고 작은 산이 저마다 나름의 개성을 갖추었으니,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우리 동우들과 골고루 한번씩 다녀오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윽고 2차 목표 국기봉까지 부지런히 올라가니 벌써 오후 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금일 목표는 국기봉을 거쳐 삼성산 성지까지는 다녀와야 하건만, 일행의 산행 속도가 워낙 초보 티를 벗어나지 못하니 이렇게 가다간 뱃속에서 데모를 할 것 같고, 부득이 산중턱의 간이주막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20여분을 걸어 내려가니 지름길을 걸어 먼저 와있는 일행과 합류, 배낭을 풀고 출출한 배를 채운다.
저마다 조금씩 싸온 먹거리를 함께 풀어놓고 나니, 이 또한 진수성찬이 따로 없네. 간이주막에서 시원한 막걸리와 도토리묵을 시켜놓고 김밥에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영양밥, 매큼한 풋고추에 먹음직한 굴비구이, 싱싱한 겉조리 김치에 없는 것 빼놓고 다 갖춘 점심 식사였다.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가 한두 잔씩 돌아가니 어느덧 분위기가 무르익어 평소에 말이
없는 동우들도 서서히 말문이 열리니 교동민국 47,8 동기들의 반란이 국기봉 중턱에서 일어나는 듯 싶다.
언제 보아도 즐겁고 생각만 해도 싱긋 미소가 번지게 하는 우리 옛 친구들과 정말 뿌듯하고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는 자부심이 앞선다.
우리의 즐거운 시간을 지켜봐 주던 날씨도 이젠 지쳤는지,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스치고 이젠 하산을 서둘러야겠다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바쁜 일과로 쫓기던 김영석 동우, 일하다가 못내 아쉬웠던지 하던 일도 내던지고 우리와 합류하기 위해 서둘러 등산로 입구까지 맨걸음으로 달려오고 있단다.
우리도 그 시간에 맞춰 하산 길을 재촉하여 주차장까지 도착하니 아직 영석 동우는 도착하지 않았고, 잠시 휴식 삼아 흐르는 냇가에 앉아 발을 담그니 세상이 온통 내 품에 들어온 기분에 젖어든다.
술 좋아하는 친구들, 그 새를 못참고 냇가에서 다시 술판을 벌이는 데, 인희 동우, 오늘은 가지고 오지 못한 디카를 대신해서 아쉬우나마 모바일 폰으로 친구들 모습 담아내는 친절까지 베풀고 있었다.
그 무렵 영석 동우도 도착하고, 잠시 해후의 반가움에 서로 악수를 나누며 늦게 온 친구을 맞았다. 우리는 한 달만에 만나 또다시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지 마지막 뒷풀이를 위해 타고온 차에 오르고 평촌 시내로 들어서는데 빗줄기는 굵어지기 시작했다. 영석동우의 선도로 라이브 카페에 들어선 일행, 서투른 목청을 가다듬으며 마지막 시간을 즐기고, 오늘의 산행은 이렇게 작별의 아쉬움을 가름했다.
(2004년 7월 7일, 산행의 즐거움을 돌이켜 보며, 카페지기가 한때의 정겨운 장면들을 서투른 솜씨나마 스케치해 보았습니다. 재미를 위해 약간의 픽션을 가미했습니다)
참고자료 <경기도 민속자료><한국의 산하>
첫댓글 글 솜씨가 작가 뺨치는데.. 지금부터는 단편작가로 명명해야겠네요. 불참사유는 간단한 접촉사고이었으나 젊은 친구가 꽉 막히어 잘못하면 억울한 피해를 볼 것 같아 한달만의 만남을 저버리고 동분서주하여 결백을 밝혀 상대의 100% 과실 입증 차량을 수리했습니다. 모두가 동우들의 염려 덕이죠 뭐! 다음 꼭 참석할 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