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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교 교사와 눈길이 마주쳤다. 딸애의 5학년 때 담임이었던 이은미 선생님 소식을 슬며시 물었더니, 작은 녀석이 다니는 학교로 부임해 왔다고 한다.
꼭 찾아 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고 벼르기만 했는데 중학교 3학년이 된 지금, 성의 부족이란 생각이 들어 부끄럽기만 하다. 사람은 누구를 어떤 시기에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로가 달라진다.
우리 가족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만난 이은미 선생님은 가뭄에 단비요,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내게는 막내 동생뻘쯤 되는 청순하고 소명감 있는 교사로서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우리가족을 구원해 준 구세주였다.
그 고마운 마음을 편지로 동인지에 담아 선생님께 드렸더니, "아이가 졸업했는데도 잊지 않았느냐"며 웃던 그 한마디가 세상사를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교육의 붕괴를 염려하는 시대에 아직도 이런 참 스승의 이야기가 귀감이 될 듯하여 동인지에 실었던 내용을 공개한다.
"존경하는 선생님! 벚꽃 잎이 눈송이처럼 휘날리는 4월의 벤치에 앉아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쳐다봅니다. 노오란 개나리와 산수유 앞 다투어 피고, 진달래 만발한 산을 보고있노라면 천국에 온 듯 아름답기만 합니다.
며칠 전 딸애가 선생님이 뵙고 싶다며 학교로 찾아갔다가, 전근 가신 줄 알고 눈물 머음고 돌아왔습니다. 울컥 섭섭한 생각이 들어 학교로 전화했다가 득남 소식을 들었습니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계절에 출산을 충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딸애가 중학생이 된지도 두 달째가 되어 갑니다. 교복 입은 의젓한 모습을 보며, 선생님의 공로가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이 메여 옵니다.
왕따! 우리 가족에게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몸서리쳐지는 단어입니다.
1998년, 4학년이던 딸애는 왕따가 시작되면서 까만 밤을 하얗게 세우며 신경정신과 병원을 전전해야 되었습니다.
복사꽃처럼 피어야될 얼굴은 검게 죽어가고, 사방은 희뿌연 안개속일뿐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병원 비를 감당하기도 힘들었지만, 더 고통스러운 것은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늘 죽음의 그림자는 우리 가족을 향해 호시탐탐 파도처럼 넘실거렸습니다.
죽음! 이것이 우리 가족에게는 최선의 방법이자 묘약이라고 생각하며 수 없이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1999년 5학년이 시작되면서 딸애를 자퇴시킬 결심으로 아들은 주소를 옮겨 다른 학교에 보냈습니다.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는 절망의 늪에서 만난 선생님은, 하느님이 준비한 구세주였습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저에게 "어머니! 얼마나 힘드셨어요. 하지만, 죽자는 말 대신 함께 살자고 말하기로 저와 약속해요..." 손을 꼬옥 잡아주시던 그 사랑은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포근했고, 한없이 넓고 위대해 보였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저는 압니다. 1년 동안 암흑의 늪에 갇혔던 딸애가 얼마나 소심하고 여린 성격인지를...억압과 공포에 휩싸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무던히 애쓰셨을 노고가 눈에 선합니다.
3년 전 이때쯤, 지루한 장마 끝에 반짝이는 햇볕처럼, 딸애의 얼굴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웃음을 보았습니다.
수업시간에 발표를 시킨 후, "참, 잘 했다." 칭찬하며 급우들에게 박수까지 치도록 격려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가을 운동회 때 저는 세상에서 제일 자신감 없는 치어걸을 보았습니다. 자신감을 부여하기 위해 선생님이 세워둔 딸애였습니다.
친구들과 크고 작은 충돌이 있을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고, 일기장 빽빽이 헤쳐나가는 방법까지 제시하셨던 사랑을 저는 압니다.
딸애가 선생님의 사랑으로 홀로 서기를 시작할 무렵, 그 충격으로 저는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을 전전해야 되었습니다.
아이들 밥조차 굶겨 학교에 보내야 되었을 때, 급식 후 남은 반찬을 비닐에 담아 딸애 편에 보내 주셨던 선생님, 그 반찬은 우리 가족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였습니다.
그 끝없는 정성과 사랑을 딛고, 딸애는 아기가 서툰 걸음마를 걷듯이 일어서고 있습니다.
딸애로 인해 저는 원망과 불신으로,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잃고, 허수아비처럼 살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눈물 속에서 울다 지쳐 허우적대는 제게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과 촉촉한 마음을 찾아 주셨습니다.
딸애에게 선생님의 출산을 알렸더니, 팔팔 뛰며 하루 종일 싱글벙글 기뻐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 크신 은혜 가슴에 새길 뿐 갚을 길 없어, 늘 하느님의 크신 축복이 선생님과 함께 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멀지 않은 날에 뵐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2001년 4월 7일
벚꽃이 휘날릴 때쯤이면 이은미 선생님을 찾아 뵙겠다는 생각으로 온 종일 가슴이 설렌다. 이런, 참 스승 이야기가 어둡고 칙칙한 세상을 밝히는 등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덧붙이는 글 | 아직도 학교폭력이나 왕따로 고통 받는 학생들이 있다. 그 것은 한 학생의 좌절만이 아니라 가정의 붕괴며 파멸이다. 교사가 내 자녀처럼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의지만 확고 하다면 해결의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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