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작 시
김 석 환
묵은 김치
빈방에 봄눈 내리는 소리 가득해지자
묵은 김치가 비로소 제 맛을 낸다
냉동실에 밀쳐 둔 묵은 김치를 썰어
묵은 김칫국을 끓인다
세배를 받고 난 여든 다섯 고모님
예전엔 김치가……
일찍 죽은 네 아범 어멈이……
눈물 몇 방울 섞어
세뱃돈 대신 싸 주던 덕담
자음 모음이 탈락된 묵은 사투리
검버섯 핀 당신의 손처럼
소금기에 절고 절은 배추 잎 갈피마다
속박아 놓은 시간의 입자들, 곰삭은 恨
도시 가스 화력에 보글보글 깨어난다
뒤란 구석에 한 길 땅을 파서
포기포기 가난을 묻어 두고
동지섣달 어둠 속 외나무다리 건너
보릿고개를 넘던 당신들의 비법
아파트 화단엔 눈발이 쌓이고
자목련 꽃눈이 부푸는 하오
꽃향기보다 깊어지는 김칫국 냄새
까닭 없이 허기가 도는 나는
서둘러 가스 불꽃을 피운다
배추포기를 묶다가
그들 손바닥은 몇 평이나 될까
보길도 부용동 동백나무 꽃 그늘
바위에 앉아 거문고 줄이나 고르던 孤山
대문을 안으로 걸어 두고 마당밭
포도송이나 따던 노년의 헬만 햇세
귀가 먼 채 어둠 속 풀벌레 노래
귀를 세우고 운명교향곡을 짓던 베토벤
얼마 후 날이 풀리고 포기를 묶으면 통풍이 되지 않아 고갱이가 썩는다는 주말농장 관리인 말에 귀가 얇아져 다시 풀어놓고 돌아서는 내 뒤통수를 두드리는
산비둘기 울음
먼 메아리
그들 하늘은 몇 평이나 될까
가을 유채꽃
짧은 해 서둘러 지고
긴 장마 끝에 젖은 우울을
널어 말리던 아파트 주민들
모두 무정부주의자가 되네
집안에 가두어 기르던 개들
앞세우고 저마다 별 하나씩 데리고
중랑천 물가 둔치로 나오네
뒤늦게 만발하는 유채꽃
숲으로 젖어 드는 물소리
늘 혀를 내밀고 헐떡거리던 개들이
함부로 짖어대네
아파트 창마다 새어나온 불빛들
중랑천에 잠겨 풀리네
비로소 깊어지는 수심
먼 하류까지 상류까지
무정부주의자들의 길이 새로 열리고
제 그림자에 취해
뺑뺑이를 도는 개들
난장의 유채꽃 숲
밥이 法이다
달이 뜨지 않는 달동네
창문마다 3등성 등불이 곱네
발목 저린 가로수
서둘러 어둠 속으로 잠복하네
하루치의 영수증과
거슬러 받은 동전 몇 닢
딸랑거리는 안주머니, 늘 허기진
짐승이 되어, 밥
앞에 머리를 숙이네
우주의 중심은 어디?
식탁 한가운데 오른 밥
천수답에 잠긴 하늘에서 건져 올린 달
어머니 물 항아리에서 건져 올린 별
거울보다 더 환하게, 아프게
눈을 찌르는 무색무취의 빛이여
고가도로를 과속으로 달려 와, 밥
앞에 무릎을 꿇네
뜨겁게 서려오는 하얀 김
얼굴이 붉어지네
밥이 무거운 法이네
山頂 마을
하늘에도 감자꽃 향기롭게 피고
火田 이랑마다 하얗게 잔별이 돋는
山頂, 맹인 목사 鄭 시인을 앞세우고 간
그의 고향 집
처마 밑 개 밥그릇에 고이는
산비둘기 울음소리
우체부가 행낭 가득 산더덕 냄새를 싣고
하산하고 난 적요 속에
귀양 사는 개들은 낮잠이 들고
靑山別曲 읊고 가는 물소리에
속살이 차 오르는 감자 알
길이 길을 막고 길이 길을 열어 가는
해발 7백 미터 山頂
사슴 뿔 같은 고사목
가지에 걸린 구름이 점점 자리를 뜨는데
무덤 속인 듯
신방인 듯
지친 프라이드 소나타 바퀴를 휘감는 산안개
안테나에 수신되는 찌르레기 울음소리
[시작노트]
나의 농사는 늘 흉작이다.
씨앗을 뿌려 두고 주말에나 가서 돌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가뭄에 씨앗이 싹을 제대로 틔우지 못하고, 이랑엔 잡초가 농작물보다 더 우거지고, 벌레가 득실득실 뿌리나 잎을 갉아먹어 게으른 나를 비웃는 그 한심한 열 평 주말농장. 그러나 주인이 없는 사이에 산비둘기가 노래를 묻고 가고, 달과 해가 어루만져 주고, 가끔씩 후둑후둑 빗방울이 다녀가는 그 비좁은 산골의 하늘 밑 빈터.
내 시는 식탁에 올리기가 부끄러울 만큼 못 생긴 고추 같다.
시 쓰기도 농사를 짓는 일처럼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다만 모두가 과속으로 달려가는 이 시대에 마음 한 구석에 빈터를 열어 놓고, 좀더 부지런히 이랑을 갈고 잡초를 뽑아야겠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 귀를 씻으며 비좁은 하늘도 올려다봐야겠다. 시 쓰기란 이 하찮은 농사도 결국은 하늘과 병작을 하는 일이며 시의 열매도 내 몫만은 아니기에....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1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당선
․1986년 시문학 천료
․시집 심천에서 외 2권
신 작 시
최 병 익
어머니
어머니
하늘 높이 날아가는 저 새가
도요새 인가요
기러기 인가요
어머니
하늘을 훨훨 날아
강산을 보게
산골하라 하셨지요
영하의 세모에
한줌 재로 날아가신
어머니
지금 어느 강을 건너
어느 하늘을
훨훨 날고 계신가요
어머니
하늘높이 날아가는 저 새가
도요새 인가요
기러기 인가요
어머니, 어머니
난
개불알꽃
나도 풍란
덴드로비움
루시나
미스 싱가폴
반다
샤넬
애기 사철란
잠자리 난
춘란
콩란
트로피칼 옐로우삼
팔레놉시스
한란
니들이 평등을 알아
꼬리 없는 놈, 꼬리 둘 달린놈
짱구, 머리 없는 놈, 머리 둘 달린놈
모든 정자에 id 매기고
뺑뺑이로 선발해서 수정 시키자
그렇게 나온 인간에게 id 매기고
뺑삥이로 학교 배정하고
뺑뺑이로 직장 배정하고
뺑뺑이로 짝 짓고
뺑삥이이로 CEO 뽑고
뺑뺑이로 대통령 뽑고
뺑뺑이로 노벨상 주자
그래야 꼬리없는 정자도
수정해서 S대가고
그래야 꼬리 둘 달린 정자도
수정해서 또 짝 짓고
그래야 짱구 정자도
수정해서 S전자 CEO 되고
그래야 머리 없는 정자도
수정해서 대통령 되고
그래야 머리 둘 달린 정자도
수정해서 노벨상 받지
그래야 계층 갈등 없고
지역갈등 해소 된다네
통일의 조건
매년 새빠지게 쌀농사지어
반쯤 북으로 보내뿌러
그라문 10년내 통일될랑가
5년내 통일될랑가
퍼주기라고 햇빛가리는 놈들
반통일분자로 때려잡고
양키 고홈하면
당장이라도 통일될 지 모른당게
행정수도 어디가 좋을랑가
말들 좀 해보소
충청도? 서울? 평양?
대통령은 누가 될까잉?
메달리스트 선상님도 있고
대 잇는 지도자동지도 있는디
19살 니들이 뽑자고 할랑가?
1인당 GNI는 얼마 될까잉?
천불? 만불? 삼만불?
그런데 말시
청바지는 한 오년씩 입고
간식은 꿈도 꾸지 말랑게
차?
달구지에 자전거타고
자가용은 꿈에나 타소
선생한테, 부모한테 삿대질해도
지도자동지 은혜는 꿈에도 잊지마소
배추 자라는 것도 토끼 새끼 낳는 것도
지도자동지 은혜라네
라면을 먹을 때도 감격해야 한당게
역사책에 써있는
이회영도 심훈도 윤봉길도 다 잊고
지도자동지 족보만 달달 외워야 한당게
안말릴팅게 지도자동지 얼싸안고
감격해 보더라고
그란디
통일 후도 니들 맘대로 될랑가
시뮬레이션부터 해 보소
개구리
그대 듣는가
어둠 속 개구리 울음
지난 겨울 잊었던 개구리
어둠 속 얼음에 묻혀
반 쯤 죽어지낸
개구리 속에서 나온 올챙이
떼 죽음하고
살아 남아 우는 개구리
다시 언 땅속에
반쯤 죽어 들어가기 전에
또 잡아 먹히울 개구리
그래도 몇 마리는 살아남아
오늘을 기억할 개구리 울음
그대 듣는가, 듣고 있는가
고덕동 숲길에서
잎진 가지 새로
강물 드러나고
낙엽 향기
하늘에 가득하다
눈 내려
사람 발자국
모두 덮고
새 발자국
다람쥐 발자국만
무공해로 남았구나
아내 생일에
아내야, 우리에게 허락하신 만큼
날마다 길을 떠나자
이른 새벽 선인봉에 올라가
들꽃 이슬에 빛나는 첫 햇살을
좀더 가까이가서 맞이하고
수마트라 우따라에서는
다나우 토바 수면에 속삭이는 빗소리도
좀 더 가까이서 듣고
타밀 나두에서는
맨발로 추는 소녀의 춤사위도 배우자
잠은 오로빌 벽난로가에서 자고
때로는 밥 대신 카사바 죽이랑
가재구이와 칠리 소스를 시키고
후식은 빠빠야랑 코코넛 주스에
갈라만씨 즙을 섞어 마시자
안식년에는 배를 타고 바다 건너
이과수 폭포 물보라에 흠뻑 젖어도보자
얼어붙은 바이칼호에서는
허스키가 끄는 썰매를 타고
통나무 집에서 촛불을 켜자
우리에게 하락하신 세월만큼의
촛불을 켜자
아내야, 생일 축하해
[시작노트]
병상의 어머니는 새를 꿈꾸셨다.
그래서 화장해서 산골하라 하셨는데
지금은 마음껏 날고 계시시라.
이름만 나열해도 난은 시보다 향기롭다
평등, 달콤한 말이다.
그러나 완전평등 그것은 허구다.
통일, 환상적이다. 그러나 어떤 통일인가?
시뮬레이션부터 하고 보자.
언 땅속에 반쯤 죽었던
개구리가 기어나와
밤새 울음 우는 봄을 기다리며
겨울은 가려졌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래서 고덕동 겨울 숲이 좋다.
평생 고생만 시킨 아내 생일에
꿈같은 약속을 한다, 꿈을 꾼다.
․서울대 농대 및 서울대 대학원 졸업 (농학박사)
․인도네시아 건설부 고문 역임
․창조문학 시부문 신인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펜클럽 회원
․공주대학교 산업과학대학장 역임
․현재 지역사회개발학과 교수
신 작 시
김 병 기
거미집
1
햇살이 라면발처럼 불어터진 오후
거미는 미끈한 다리 여덟 개를
그늘에 말리고 있다
거미의 외출은 위태로웠으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쉴새없이
실패를 돌리는 오른쪽 네 번째 발에는
실이 빠져 나오고 왼쪽 네 번째 발바닥은
풀을 붙여댄다, 투명 하늘을 가리우는
음모가 전선처럼 희망을 전송한다
매듭 진 마디마디마다 날개를 채집하는
박물관의 유전이 걸리고
발바닥 지문에는 등고선이
백만 년의 본능으로 이어진다
2
또 한 차례 비가 다녀간다
무너진 거미의 집은 침수되었다
젖은 가재도구들을 내어 말리던
거미는 또다시 외줄에 매달려
똥구멍에서 엉킨 실을 뽑는다
주소 끝에는 문패도 보이지 않는데,
관절을 똑똑 분지르며 집을 짓는다
유전은 얼마나 거대한 실 뽑기인가
(지난 시간을 복구하는 지도 모른다
아픔이 깊을수록 부드러운 회전이
희망인 것을 아는 지 모른다)
거미는 엉키는 것에 대하여 저항을 한다
줄은 거미의 생식기였고
날벌레는 생활의 음표다
표적이 정지할 때까지
날개의 모순을 직시하고
허망하게 지워지는 날개의 심장을
노려보다가 촉수를 댄다
3
원에 매달린 끈적끈적한 삶
돌아볼수록 노을이 붉다
거미는 미동도 없는 눈썹을
그늘에 숨겨놓는다, 모태가 그리울수록
무서운 침묵에 잠긴다
그러다가 꽃구름 붉게 피면
중심을 잡고 집 가운데 포진한다
나와의 시선은 직각이다
나를 하루살이쯤으로 아는가 보다
지나가던 바람이 걸려 출렁인다
4
윙윙거리는 소리가 고막에 부딪히면
떠나온 모태가 선명하게 다가오는 저녁
몇 번이나 무너진 유년이던가
파산이 저항이었던
하여 웃음이 무기일 수밖에 없었던
시간은 둥근 사각형을 갖고 있다
어제의 관절에도 결코 떼어낼 수 없는
맹서가 있었으나, 멀고 긴 방황 속에서 닳아버렸다
아으 어머니, 살림은 서럽게 무너졌어도
집을 지으셨군요 저에게 늘어진
줄 따라가면 그곳에 자궁 있나요
꽁무니에서 빠져 나온 길의
온도를 재고 싶어진다
赤潮
1
동백꽃 진 지 오래
그 경계를 넘어서자 백련사 草衣의 차 향기가
사금파리 같은 이슬에 위태롭게 달려 있다
바다는 회귀하는 몇 마리의 고독을 저장하고
나는 역류하는 생명의 단서를 찾아 헤맨다
배롱나무처럼 몇 번 갈증을 벗겨낸 자리에서
행여나 섬이 부패될까봐 소금이 뿌려졌다는
전설을 듣는다, 내 눈물 속에는
부패하지 않은 고전의 한 페이지가 있다
낡은 시간은 저리도 푸른 눈으로 떠 있건만,
새날에 대한 기대는 한낮에도 어둡다
나는 대나무 마디가 상처인 걸 몰랐고
그리하여 곧고 텅 비는 걸 알지 못했다
2
폐사, 그렇다 나는 죽은 우럭 사이에 낀
지느러미 없는 거미다
치열하게 유전을 주사하지 못한 채
날개를 접은 한 마리 나비다
수온은 높아지고 산소 결핍에 허덕이는 수심에는
증오만이 부레에 구멍을 낸다
같은 숲에서 다산은 미래를 보고
나는 숲에서 과거를 내려놓는다
시간의 파종과 공간의 진화가
흑백 필름처럼 뚝뚝 끊긴다
九月의 江
1
갈꽃에 햇살을 가두고 있는
강변에서 한참을 서 있다
이 강에 들리던 울음은 몇 번이나
강바닥을 뒤집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한 줌의 시간을 조금씩 놓으며 바삭 꿈을
풀어내는 음표에는 젖은 소리가 있어
한참을 걸어왔다, 모래알의 산란에는
아직도 추억이 각이 나 있다
곤충들은 이곳에 가벼운 무덤을 짓는다
아직도 못다 한 노래가 있는 지 모른다
둥글게 굽어진 물길에
구월의 이마에 상처가 깊다
함부로 닿을 수 없음이 만든 흔적
갈 수는 있는가
아무 대답이 없다
2
가물가물 보이는 빌딩은 단추를 잠그고
불을 밝힌다, 내 마음의 여울에
화장이 지워진 싱싱했던 젊음이 저만치
환하게 흘러가고 있다
아무도 나에게 물길의 끝을 말해 준 적 없다
갈대는 빈 길을 닫는다, 그 자리에서
백로 청둥오리 활활 날아오르고
고적한 강물에 파문을 일으킨다
저 강물을 건널 수 있는가
거꾸로 선 도시의 회색 함성은 저리도 환한데
인공 숲길을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
구월은 오고 강물은 깊어져 어둠에 잠기는데
어느 가락에 맞추어 이 강을 건널 수 있는가
희망박물관에서 나의 몸은 유쾌한 산란을 하고
투명 유리창 안에서 전시될 수 있는가
3
어두워지는 저녁
형광등처럼 뒤척이며 에돌고 있는
구월의 江은 흐르는데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면 운주사에 가라
잊혀진 사랑이 찾아오거나
씨앗처럼 품은 사랑이 찾아들면
칠성바위에 앉아
별에게 물어볼 일이다
왜 새로움의 경계에는
슬픈 꽃이 피는가를
배꼽처럼 물어볼 일이다
사랑에는 왜 그리
시간의 부유물 같은 맹서의 순간이 많은 지
그리하여 새로운 사랑을 위해
또 다른 사랑을 잃어야 하는 지
누운 부처에게 물어볼 일이다
그대는 왜 일어서는 사랑을 하지 않는가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면,
목 잘린 부처님에게 물어볼 일이다
나의 사랑과 나의 결별이 무엇이냐고
그러면
여보게, 그런 말 들을 때마다
내 목을 던져 후려친 사람들의 수만큼
폐허가 된 사연이 여기 있다
고 말하리라
신퉁엄마
엄마가 일 나가면 점심때까지 잠을 잔다고
마을 사람들은 신통하다고 딸년을 신퉁이라고 부른
한 가계가 있었다, 딸년의 진짜 이름은
주민등록증에 기록될 기호에 불과했다
신퉁엄마의 첫 결혼은 불온한 운명으로 시작됐고
강제로 쫓겨난 일용 노동자처럼 끝이 났다
두 번째 결혼은 노동의 힘으로 이루어졌고
번식 기능을 수행하는 자궁의 건강함으로 이어졌다
남편은 그 노동의 힘으로 술처럼 휘발했다
신퉁엄마를 본 것은
안개가 쉰 목소리로 섞이는 저녁이었다
허리가 굽을 만도 했지만 그것도 사치였던 지
늘 꼿꼿한 나무처럼 잎새만 가볍게 흔들렸다
오직 경계 밖으로 도망가는 네 다리에
녹슨 차고가 있어 노을진 속눈썹은
굳어진 눈곱을 훈장처럼 달고 있었다
돈 융통하러 온 그 날 저녁에도
피멍이 든 눈동자만 빛났다
도살장 가는 소처럼 눈물이 그득했다
가난이 가난을 구제할 수 없던 어슴새벽
풋잠 다섯 시에 떠난 신퉁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울지 못하는 병이 든 자식들은
눈물에 용해된 먼지에 불과했다
그 후 신퉁엄마는 빨갛게 익은 등만
묘포밭에서 가끔 보이곤 했다
같은 마을에 살았지만 살구꽃이 피고 져도
살구열매가 열리고 떨어져도 신퉁엄마는,
흐린 소문으로 안개 속을 떠 다녔다
〉
그 신퉁엄마가 죽었다
문을 열고 기어 나오다가 누굴 부른 흔적이 있다고 했다
신퉁엄마는 그 날 밤에도 動詞처럼 울었듯이
어젯밤에도 동사처럼 기어다니고 있었다
죽음도 하나의 일이었기에.
[시작노트]
산책을 하면서 꽃의 이마를 짚어봅니다 참 따뜻합니다 꽃들
죽은 씨앗은 뿌리에 양분이 되고 그 힘으로 햇살을 받아 노란 꽃을 피우는 녀석들은 저를 참 좋아합니다
냇물이 성급한 사랑처럼 무늬를 만들어 흐릅니다 누구에게 다가서고 싶은 조급함이 있는 듯 합니다
이런 날에는 보고 싶은 사람이 포장된 추억 속에 있습니다 선물처럼 담겨진 그 사람을 살며시 열어보고 싶습니다
하늘이 부드럽게 펼쳐집니다 한쪽 빈터에 당신의 이름을 적고서 한참 바라봅니다 거기에 꽃의 문패가 달려있습니다
․경기 이천 보름다리 生
․동양일보, 창조문학 신인문학상(시) 당선
․시집 꽃따기
신 작 시
김 샘 나
불면증
깊고 깊은
침묵 위에
찬물 한바가지 휙
부어 던지더니 고문이다
골 깊고 바람깊은 산굽이길
살아내야 할 아득한 길
닫혀진 문 앞
발길 동동 구르다
파아랗게 질린 슬픔
뼈마디
마디
마디
숯물든 울컥병
온 밤 가위눌리는 울화
쑥개떡
삼신 할매께 빌던
투박한 할머니의 손맛이다
향수에 젖은 내 뜨락
쑥빛 그리움으로 피어나는
고향의 들판이다
수더분한 네 얼굴에서
떠나간 목소리
파랗게 쑥물든 고향이
무반주 소나타되어
웅성웅성 일어선다
몽돌밭
*은점마을 *몽돌밭은
벌컥벌컥 시퍼런
남해바다를 마신다
파도가 상주처럼
울다 때리면
몽돌은 또 하나의
체념을 배운다
과부 셋 뱉아 놓은
객혈이 바다가 되고
거품만 허옇게 토해내는
바다를 몽돌은 침묵으로
토닥이며 와락와락 끓어 안는다
* 은점마을: 경남 남해군에 있는 마을 이름
* 몽돌: 모나지 않게 닳고 닳은 둥근돌
찔레꽃 그리움
너의 눈망울 아름아름
숨죽인 서러움이 울며 떨어진다
아픔, 더는 앓아낼
기력이 없어 눈길 돌리면
창가에 흩어지는 너의 목소리
허우적대는 바람 몇조각
감빛 노을이 잠드는
짙은 공허속
꽃잎에 내리는 첩첩한 슬픔
지난 가을의 미련
입춘이 눈앞에 서 있는데
묵은 미련을 주렁주렁
달고 섰는 나무가 있다
떠나야 할 시간에
떠나지 못한 술취한 붉은 잎이
까칠한 손을 흔든다
버려야 할 것 버리지 못하고
떼내야 할 것 떼내지 못하고
내것이 될 수 없는 것에
가파른 숨을 뱉으며
내려 놓아야 편할 천금의 무게
무작정 버티고 서 있는 해묵은
욕망 사이로
하이얀 새 한 마리 포르릉 날아든다
[시작노트]
망초꽃이 메밀밭처럼 흐드러졌습니다.
해당화도 예쁜 미소를 짓습니다.
고향집 앞마당에 향기로 피어나던
해당화 앞에 취하여 섰습니다.
토담 밑에 피어나던 붉은 해당화…
옥잠화, 골담초, 백일홍 어린시절 그 꽃들의
이름을 잃어버릴까봐 헤아려 보며
가슴에 그리운 바람이 스쳐갑니다.
그리움은 아프지만 그리워할 이가 있어
행복한 슬픔입니다.
․경남 창원 출생
․문예사조 신인상 수상
․시집 초록춤 꽃사태
창 조 시 단
김 동 호
현대시학등단(1975), 시집 나의 뮤즈에게 호호의 집 나는 네가 좋다 시산 일기등 8권, 현재 성균관대 영문과 명예교수.
사랑의 불
소낙비에도 멀쩡한 옷이
가랑비에 속까지 다 젖었다
누가 꽃잎을 옷이라 하느냐
백 육십 센티 작은 키지만
서울특별시 보다 더 크다
그녀 떠나던 날 서울은 없었다
서울 만한 무덤만 내 안에 있었다
깔딱 고개 첫눈!
돌길에도 바위 길에도
햇솜 소복소복 쌓여있네
넘어져도 무릎접시 깨지지 말라고
나의 공주가 밤새 깔아놓은 것
뜨거우면 불이 아니다
아파도 불이 아니다
실성한 눈, 눈처럼 하얗게 얼면
그것 불이다
알 수 없는 이슬
눈에 맺혀 그 얼음 다시 녹으면
그것 불이다. 사랑의 불이다
간편한 사랑
그는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척만 한다
그녀도 그 척을 척으로 받는다
그래서 둘은 빨리 편한, 편리한
돌맹이가 되는데 성공한다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보는
고양이가 두 가닥 수염 꼬나 세우며
한 마디 한다
갈 때 다르고 올 때 다르다더니
침대 오를 때와 나릴 때가
저렇게도 다를까
“사람들은
침대에서만 사랑을 하는가봐”
창 조 시 단
김 정 운
시대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시인협회, 강남문협회원, 현대 불교 문협 부회장, 불교문예 편집위원.
풍치
온통 바람벽으로 기댈곳도
없으니 앉은 자리마저 흔들린다
늘 동행으로 있으니
변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아닌 줄 평상심에
일상으로 그렇게 지냈는데
이제 와서 손길 한번
눈길 한번 더 준다고
들뜬 엉덩이 가라 앉혀 지기나 할까
아
속 보이는 이 자존을
어디가서 위로 받아야
편안할 수 있을까
창
요즘 창이야 넓지
몸짓 하나까지 보이게 해놓지
그러고는 속 다 비웠다고
안이 훤히 보이지 않느냐고
보이는 쪽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관심사는
보이지 않는 쪽의 궁금증이지
궁금하다가 병증이 될 쯤에서
발목 세우고 무릎 세우지
훤히 보이는 유리창은
경계로 다가와 세운키로는 넘을 수가 없어
마주 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바보, 등신, 천치
유리창은 깨뜨릴 수 있는데
창 조 시 단
방 지 원
서울 출생, 문예한국으로 등단, 한국 문인협회 회원, 한국 시인협회 회원, 한국 카톨릭문인회 회원, 숙대 문인회 회원, 청시 해바라기 강남시문학회 동인, 시집 한 고슴도치의 사랑 펴냄.
비, 여름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
숲은 꼼짝도 않는다
평생에 단 한번뿐이던 심호흡
눈을 감아야 보이던 그의 속마음
한바탕의 천둥이 지난 웅덩이위로
흠뻑 젖은 바람이 추적 인다
산길을 걷던 촉촉한 언어들도 내려와
살찐 나무들의 묵묵한 밑동을 베고 누웠다
빗물과 함께 증발해버린 찬란한 전율
꿈을 꾸었을까
느슨해진 빗장이 열리어
파랑새들은 모두 날아가고
두터운 그늘 속을 지키던
풀꽃의 진한 향기도 징검다리를 건너갔다
이젠 태양에 데인 뜨거운 어깨를
그에게 들어내도 좋으리라
세차게 퍼붓는 그리움
더욱 단단히 얽히는 매듭들
푸른 노을
시속 90킬로미터
자유로 제한속도보다
더 빨리 달려와 머리를 풀고
차창으로 가득 들어와 앉는
유난히 붉은 가슴의 그 사람
처음 우리는
새벽을 떠나 산에 오르고
떠오르는 해에 정신없이 볼을 비벼댔었지
아직도 심장은 펄펄 끓는데
이쯤 포옹을 멈추란다
겁 없이 큰 산 하나 불태우고
산 그림자 안은 강물은 애써 눈을 감아버렸다
그대로 흐르게 하라
눈을 뜨면 모두 분노일수도 있으려니
바람 탓일까
서둘러 맞이하는 저녁
아쉬운 새벽을 닮았어라
창 조 시 단
동 옥 균
연세대 국문과 졸업, 창조문학으로 등단, 시인, 비존재 문학동인, 한국문인협회회원, 시집 「남의 아픔 훔쳐 먹다가」, 「아침에는 풀잎의 숨소리가 들린다」 외.
예수의 삽혈(歃血)
역사 앞에 나와 서면
외침은 저지레 같고
바위에 부딪히는
저항은 초라했다
인간의
덫에 걸린 구원
비켜서지 말라며,
몸 대신 떡을 나누고
피 대신 포도주 들며
가난한 세상 앞에
숨찬 호흡 고르다가
*삽혈의
언약에 못 박혀
구원의 역사 이루었다.
* 삽혈: 맹세하여 굳게 언약할 때 그 표시로 짐승의 피를 먹거나 입가에 바르던 일.
이슬
마알간 아침해를
통째로 삼키면서
하늘 물고 다니는
오만한 요술쟁이.
은밀한
변환 일삼는
석류 속의 알보석.
백합의 꽃잎에서
안개꽃 하늘 위로
소나무 침엽에서
계수나무 달 속까지
멋대로
건너다니는
무례한 무상의 실체.
창 조 시 단
신 광 철
충북 진천 출생, 문학세계 신인상 수상(1994. 4), 불교문예 삼오 문학상 수상(1994. 9), 세계 계관 시인 문학상 수상(2003. 5), 소설 땅의 아들 시집 사람, 그래도 아름다운 이름 외.
물은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기다림을 향해 흐른다
겨우내 마른 소망 하나로
가만가만 몸 속에 기다림의 길을 낸 나무들이
내어놓은 혈관 속의 봄길을 따라
물은, 제 흥에 바람들어 희망의 높이를 오른다
조심조심 기다림의 계단을 밟으며
물은 가파른 경사를 올라 마침내 꽃을 피웠다
허기진 기다림의 가지 끝에 꽃을 피웠다
물은 언제나 기다림을 향해 흐른다
민들레
손금을 바라보면 걸어 온 길이 보여요
갈 길은 안개에 싸여 잘 보이지 않아요
그래도 민들레는 알지요
흐르는 일 외에는 할 줄 모르는 강물은
흐르고 스쳐 가는 일 외에는 할 줄 모르는
바람은 스쳐 가도 봄은 오는 것을
날아가는 일밖에 모르는 새가 날아가도
꽃씨가 그들의 입에 위해 새로운 곳에
생명을 싹 띄우는 것을
살아있는 일밖에 모르는 것 같은
민들레는 알지요
산다는 건 자신을 꽃으로 피우기 위해
조용히 쟁기질하는 것임을
창 조 시 단
유 병 옥
충남대 국문학과 졸업, 캐나다 이주, 시조문학으로 등단, 캐나다문인협회, 미주문인협회, 현 캐나다크리스천문인협회 부회장, 시집 내 고향 육백년 바다 건너 시동네(공저).
金剛에서
가을 산에
햇살이 살아나는데
나뭇잎 하나 가을 싣고 간다
하늘
푸르게 개인 계곡에
물 흐름 아닌 흐름 가득하고
잠든 바위들이
잠들지 않은 모습으로 일어설 때
내 속이 뜨겁다
지금은
산까마귀 떼 짖을 뿐이지만
산 깊이 울음 묻고 사는 이들
봄노래로 살아갈 날 알 이 없을까
넋나간
그 세월 너머로 겨레가 간다.
풀 꽃
풀꽃들은
어두운 밤에도
제 가슴에 태양을 그린다
외로움이 슬픔을 일으키는
그 밤에도
바람의 올과
계절을 이끄는 하늘의 빛을 섞어
꽃잎을 빚는다
짙은 내음으로
태초의 문을 열고
잊은 날들을 생각하며
씨알마다 태양의 불씨를 잠재운다
가는 목을 늘이며 어둠을 삼켜도
봄날의 눈부심을 가슴하며
씨알을 잠재운다.
창 조 시 단
김 영 주
이화여대 국문학과 졸업, 월간문학신인상 등단(1985), 한국문인협회 회원, 캐나다크리스천문인협회 회원, 시집 사랑이 무어라 알기도 전에 산문집 내가 사는 데서 그대의 집 갑절로 그립다.
세상
서시오
사방 훨훨 터진 네거리에서
세상으로 가는 길이 멈춰 서 있다
저 빨간 불빛 하나가 무언데
호르라기보다 무서운 힘으로
사람들을 세우나, 번뇌 같은 차를 막아서나
어제 잠든 사람들이
어제보다 더 졸리운 눈을 하고
삶이 어디까지 고단할 것인지
따라가 볼 작정을 한다
무작정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별 한잎 두잎, 지고 있는 이 아침을
아내 만들던 힘으로
자식 만들던 힘으로
어디까지라도 싸워 볼 작정을 한다
다시 파란 색칠을 한 푸른 신호등이 들어와
길이 길을 가고 있다
사람들이 제 길을 도로 가고 있다
한 세상이 열려 오는, 만남과 헤어짐 속으로.
세상에 와서, 나는
아내라는 이름 곁에
어머니라는 이름 곁에, 나는
시를 쓰는 여자라는 이름을 갖고 싶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나는 좋은 이름을 가지고 싶다
저녁이 오면
주기도문을 외우고, 몇 번을 더 외우지만
흘려야 할 눈물이 남아있는 여자
나는 그런 여자가 되고 싶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세상에 이름 쓰고 가는 일
엎드리고 또 엎드리리라
하늘에 계실지도 모르는 하느님께
엎드리고 또 엎드리리라
하늘에 계시다는 내 하느님께.
창 조 시 단
이 송 자
충북여성백일장 시부문 장원(1994), 창조문학 신인상 수상(1995), 현재 한국문인협회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부회장, 여백문학회 회장, 비존재 회원, 시집 갈대의 잠들이 모여 섬이 된다.
동백관광
동백 보러 가는
사람 떼들
조치원 기차역으로 모인다
모두들 붉은 노랑 입술이
되어
기차칸을 다 피웠다
향일암에 다다르니
동백은 보이지 않고
사람 모가지만
들끓는다
5 월 나 무
떠 다니는 발길
초록이 온통 물든
내 그림자
5월의 그림자에
그대를 적시고 싶습니다
빛나는 잎사귀 하나
온 지구를 먹여 살리는
물같은
잎새 하나 띄워
목마른 그대를 축이고도 싶습니다
창 조 시 단
김 금 용
동국대 국문과 졸업, 중국 북경 중앙민족대학 대학원 졸업,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광화문 쟈콥(1988), <우이시>, <내일의 시> 회원.
청호반새 날아 오른다
눈동자엔 뭉게구름이 넘실거린다
제 키만큼 높고 푸른 담배 밭으로
청호반새 날아오른다 파르테논 신전
흰 대리석 기둥들이 남보라 지중해를
끌어안고 그리스 신화 밖으로 걸어나온다
수학여행 온 소녀들은 말을 타고 잃어버린
정원 한가운데서 사진을 찍는다 햇살은
소녀들 머리 위로 날아가는 돌고래를 따라
뛰고 전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다리 난간은
구름 벽을 뚫고 하늘로 숨는다 거친 계곡
아래 저 퍼런 소용돌이 아래 아니 저 꿈꾸는
푸른 담배 밭에 다 그려내지 못한 다리
한 토막 여전히 구름 속에 발 담근다 물갈퀴로
물길 열면서도 뭍으로만 목 길게 빼고 마음
돌리는 청호반새 새장을 연다 훠어이
원형극장 안으로 지는 꽃잎
콜로세움 안으로 꽃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붉게 선홍빛 피가 땅을 물들고 있었다
상처 난 기억들이 피냄새에 포효할 때
어둔 땅 밑으로부터 문이 열렸다
푸른 바람이 너른 밀밭으로부터 불어왔다
나직하게 속삭이던 사랑하는 이의 웃음이 보였다
자유롭게 풀밭을 달려나가는 말발굽 소리
지는 해에 붉게 번뜩이는 말잔등 근육질 냄새
먼저 구름 너머로 떠난 이들의 작은 외침이 들렸다
원형극장 긴 돔 위로 숨죽인 신음 소리
장미 꽃잎 비명 소리
천 년 뒤에도
관광객 발끝에서 찰랑거렸다
쇠창살에 갇혔던 사자들과
죽음을 담보로 일용할 양식을 얻던
노예 전투사들의 얼룩진 사랑과 소망이
깨진 담모퉁이에서
들장미로 피어나 초혼을 불렀다
이글거리던 욕망의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바람도 조용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창 조 시 단
정 화 국
창조문학 신인상 등단, 강릉문성고등학교 이사장.
율곡을 그리며
골짝마다 문성공의 숨쉬는 얼은
세상이 변하여도 푸르른 동해바다
충과 효는 세상에 빛이요, 거울인 것을
우러러 사모하며 예까지 왔네.
대궁맥 산자락에 둥지를 틀고
문성이라 이름하여 배움터 닦았으니
참되거라 바르거라 기르는 마음
굽어진 인생살이 한이 서리네.
산허리에 걸려있는 초생달처럼
웅지들의 가슴마다 내일을 품고
평생을 빌고빌어 쌓아온 석탑
문성이라 이름한 거목이 되어
율곡의 얼을 따라 나라 지키는
동방의 빛나는 초석이 되려무나!
월드컵
우리는 보았노라. 진실과 성실을
땀과 눈물, 그리고 사랑을
우리는 보았노라. 배달의 저력을
모두가 하나된 붉은 꽃들의 함성을
우리의 단결된 모습은 세계를 흔들었다.
장소가 어떻든 처지가 어떻든
혼을 담아내는 명품이 아니던가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우리의 동포애
부딪치고 넘어지고 지치면서도
온몸을 초원에 던지는 선수들의 기상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진달래 꽃물결
정치여! 경제여! 문화여!
뒤돌아 봐야할 일이 아니던가
이 나라에 지도자시여
히딩크의 리더쉽을 생각해 볼일이 아니던가?
창 조 시 단
이 양 복
충남 청양 출생, 창조문학으로 등단. 천안문협, 충남문협, 한국문협 회원, 비존재문학동인, 시집 그 선명한 구름꽃들 출간.
탈출
터널은 기다림이다
산은 숲을 차지하고
마을은 사람들을 차지하고
눈은 어디에든
오랫동안 내렸다
얼어붙어야
상하지않는 겨울
햇살은 채운다
바람까지 채운다
고즈넉한 아침이다
스쳐가는 풍경 멀리
공단쪽 하늘에
하얀 연기 몇줄기
꽃으로 피어난다
떠나간들 인간사
그 삭막함조차
그리워질 것이라
예감에 떨리던
불륜조차
그리워질 것이라
차디차고 뜨겁고
어리석고 어리석은
인생.
산밭에서
청수동, 수도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 주변에 상큼상큼
풀꽃들이 줄줄이 피어났다.
환한세상, 환한 꽃 사이로
가뿐가뿐 걷노라니
저만치 나무그늘에
오월의 신부가
자기집 거실만한 밭을
일구어 놓고 기다린다.
참외, 수박, 호박 심으러
아이와 함께
줄렁줄렁 약수터로 갔다
스무 번쯤 물을 끼얹고
송글송글 땀을 훔친다
혼곤한 바람으로 손을 씻는다.
아지랑이 울렁거린다
긴 봄날을 데워주고
지나가는 뻐꾸기 울음.
창 조 시 단
김 기 덕
충남 서천 출생, <시문학>으로 등단(2000. 1), 현재 서울대공원 근무.
콩나물
함지박에 시루 올려 내 잠든 머리맡에서 새벽마다 물주시던 어머니, 비좁은 방안 가득 누운 자식들 이불 덮어주며 총총히 별 뜬 양동이 물 퍼부으면 별을 걸러 마신 콩나물들은 하룻밤 새에 시루가 터질 듯 피어났지요 그 콩나물 시루에 물주시던 어머니같이 날마다 우리 영혼에 물 주시는 당신, 무명(無明)의 껍질 벗고 소망으로 깨어나 가장 순수한 빛으로 키 자라라고 양동이 가득 담긴 생명수 떠 부으신 사랑에 오늘도 은총의 시루 안에서 터질 듯 하늘 꿈을 피웠습니다.
사슴 목장에서
해가
나뭇가지에 걸려 온 세상 피 뿌린 아침
죽음처럼 마취제가 스며들면
솜털 뽀송뽀송한
새순의 뿔이 잘리네
영약(靈藥)의 약초 따먹으며
하늘 맑은 눈망울로
영봉(靈峰)의 구름을 뛰던 꽃사슴
긴 목을 떨구고
순교자처럼 피를 흘리네
먹이를 찾은 하이에나같이 둘러선
사람들 속에 섞여
받아든 핏잔,
거친 숨을 몰아쉬던 체온과 함께
전해지는 피비린내에
울컥 치밀어 오르며 - 아
골고다
병든 세상을 위해
십자가에서 물과 피 쏟으신 당신
오늘 우리에게
일곱 눈 가득한 일곱 뿔을 내어놓으시네
골수로 가득 찬 이 뿔 달여 먹으면
참 영생하리
상실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영록(靈鹿)은
약속의 녹용 하나 내 손에 들려준 뒤
다시 산으로 떠나고
산마루
사슴의 목쉰 울음소리만
핏물 든 내 가슴에 메아리 치네.
창 조 시 단
양 복 순
창조문학 詩 부분 신인상 등단, 공주대학 사회교육원 문창과 수료, 충남. 대전 카톨릭 문우회 회원, 한국 창조문학가 협회 회원, 사비문학 동인.
질 주
밝은 헤드라이트
아스팔트 위 술 취해 어둠 자른다
불황의 늘어진 삶 자락
소주병도 비우고
바다 건너 소식 담은 양주한잔 걸친
술 취한 헤드라이트
브래이크의 비명 소리에
흥겹게
쌓인 때를 비벼낸다
맘에 지꺼기
그 불빛 속 에 쏟아 버린다
브래이크 외마디는
오늘도
심신을 걸러내며 어둠을 자른다
대패질 하는 신작로
위에
그 불빛은
술 취해 어둠 가른다
혼불
처얼컥 처얼컥
뚫어지도록 짚고 살던
긴 몸둥아리
매연의 공간에,
사랑으로 늘어진 그대손목 잡혀
드르릉 철컥
숨가쁜 호흡에
반드르 누어버린
얽히고 설킨 환난에서
혼불되어 피어나는
분향의
흠모(欽慕) 곡
머리풀고 피어 나른
그대들의 영혼은
창 조 시 단
김 정 임
대구출생, 2002년 미네르바 2회추천 완표, <시정>동인, 현재 자양초등학교 근무.
일 몰
허공으로 치닫던 날빛
바다의 발끝에 모여
잉걸불 지피는 저녁 때
儀式을 치르듯
몸을 기울여
바다는 가만히 눕고 있다
연모의 노래 출렁이는 심연
불꽃 당겨지면
속살까지 달아 달아오르다
눈부시게 터지는 폭죽
다시 빠르게 사라지는 관능의
저 꽃들, 그늘진 자리
아름다운 소멸의 흔적
접시치마
살아가는 일이
등짐처럼 무거울 때
얼레의 줄을 따라
거슬러 오르는 옛 집
하늘색 포플린 천
반달모양 접고 오려
박음질하시던 어머니
흙벽 타고 내려온 시간
재봉틀 페달에서
정오의 햇살 굴리고 있었지
당신의 지친 가슴에서
빙글빙글 깨어나던 접시치마
청빛 바람 말아 올리며
내 생의 잎 푸르렀네
밥알처럼 박혀있던
개암나무 꽃들
그 우물가 정적 위에
소리 없이 나리고 있었네
창 조 시 단
나 순 자
서울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졸업, 도자기 개인전1회. 그룹전40회, <미네르바>로 등단(2002), 詩亭 동인, 서울성수초등학교 교사.
아 픔 - 그 안개의 숲
바다가 나를 안고
바람을 뚫고 걸어간다
섬이 게워 낸 안개로
최면에 걸린 관능
뻘 밭에 엎드려
지나간 세월을 줍던 아낙들도
뻘 속 같은 집으로 들어가고
그들이 건지고 간 꿈의 무덤이
숭 숭 구멍 속에 외롭다
세한도가 걸려 있는 주막을 뒤로 하고
비와 함께 걷는다
발 아래 떨어져 쌓여 있는 주검을 보니
적송이구나
섬은 얼마를 더 젖어야
가라앉는 것일까
한 사발의 소금물로 남을
덕적도 기억
빛의 꼬리
하늘을 붙잡고
나무를 끌며
차창 밖에서 줄곧 따라오더니
*「漁遊池」에 이르자
물고기처럼 날렵하게 헤엄쳐
눅눅한 어둠을 말아 올린다
작업장 한 쪽에서 잠자던 흙
동그랗게 뜬 눈
물레 위에 앉히고
가는 곳마다 먼지를 깨워
잡초같은 시간을 건져 올린다
이제 나를 밀어 의자에 앉혀
눈 먼 흙덩이
묵은 그리움에 손 담그게 하더니
윙 윙 물레를 돌린다
심장을 돌린다
솟아 나온 힘줄 따라
스르륵 뱀 한 마리 살아날 때
군살이 빠진다
뭉쳐진 삶이 흐늘거린다
마침내
빛이 도자기를 낳았다
*어유지(漁遊池): 지명-물고기가 노니는 연못이란 뜻.
창 조 시 단
차 수 경
<한맥문학>으로 등단, 명지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페인트공의 오후
일당 십오만 원어치의 무게
밧줄에 매달려
사내는 대지보다 하늘 가까이에 있다.
먼 열도 아득한 사막의 풍운이 되어
전갈 발자국을 덮고
물결처럼 굽이치며
낯선 도시를 건설한다.
허공엔 시간이 풀어지는 소리 뿐
사내의 걸음 소리 들리지 않는다.
햇살 흘러 넘치는
고층 아파트 베란다
아이의 초롱한 눈동자가 부시다
사내의 땀방울에
살며시 걸린 띠구름
날갯짓 사이로
지는 해 잡힐 듯
멀어져 간다
냄새에 취하여 흔들거리는 오후
장미의 문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머쓱한 얼굴들
경계의 가시
갈래 꽃잎으로
층층이
가둬 두었던 인심
볕 좋은 오월 한낮
은하(銀河)처럼 모여
흐드러지게 쏟아내는
붉은 비밀
창 조 시 단
김 종 우
61년 논산출생, 한국문인협회, 시인협회, 놀뫼문학동인.
고향 나들이 길
유년의 기억들이 더러는
처마밑 거미줄에 걸려
퍼득거린다
앞서거니 뒤서며
한 구비마다
떠나버린 시간을 두레박질하는
움푹패인 눈 우물 뒤로
“저 곳엔 뭣이 있었는디”
흐린 눈이 더욱 흐린 고향 나들이 길
바람이 쓸고 간 뜰 갈색 나뭇잎 깔아놓고
고만고만한 얼굴들 끌어 모은다
“양철네도 갔구먼”
저녁연기에 그을린 낮 달이 굴뚝을 넘다 지쳐
텅 빈 마당에 아픈 다리를 편다
“내 살아 또 올는지...”
이끼 낀 이름들을 불러보며
돌아서는 고향 나들이 길
편 지
넋두리
한 줄을 그어놓고
문을 닫아버립니다.
아직도 한마디
보태지도 못하고
무슨 말부터 꿰어야 할지
백지 그대로 놓고 있습니다.
못견디게 그리웠다 할까
건강이
어떠냐고 여쭐까
사흘밤을 부시닥거렸으나
백지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달빛이 쏟아집니다
사랑합니다.
신 작 동 시
백 우 선
오늘 오후
그림 그리기가
싫은데…… 싫은데……
그래도, 그래도 그려보잔다
아, 참!
물감을 풀고
종이를 펼치고
그림붓에 물감을 듬뿍 찍어
손바닥에 슥슥 발라
찍어낸다, 손, 야아――
코에도 발라, 히히――
거울 한 번 보고, 히히히――
종이에 눌러 본다
에헤―― 이건 실패
이번에는 발바닥에 붓질을 하는데
이히―― 간지러워, 애해해―― 간지러워
몸을 배배 꼬아가며 칠을 해
철벅, 종이를 밟는다
하나, 둘, 셋, 넷,……, 열!
발을 떼는데, 쩌어억――
야아―― 멋지게 나왔다, 발!
히히히―― 해해해――
어질이와 밝을이
어질이는
산,
밝을이는
시냇물
어질이는
네모,
밝을이는
동그라미
어질이는 가만가만 걷고
밝을이는 살랑살랑 달리고
어질이는
산새랑,
밝을이는
물고기랑
놀고
어질이는 푸른 숲
산새로 날고
밝을이는 푸른 물
물고기로 흐르고
푸른 숲이 푸른 물에 낯 씻으러 오고
푸른 하늘이 푸른 물에 거울 보러 오고
흰구름이 푸른 물에 멱감으로 오면
산새도 날아와
물장구를 치고
물고기도 솟구쳐
물무늬를 수놓고
어질이의 산이랑
밝을이의 물이랑
산새랑, 물고기랑
솜털구름 오르내리며
하늘이랑 놀고
효영이
효영이는 여름내
감자랑 살았다
〉
잎에 선을 치고
줄기에 점을 넣으면서
멍멍이랑
밭고랑을 타면서
무릎에 자줏빛
꽃물을 들이면서
효영이는 여름내
감자랑 살았다
엄마
아빠는
예쁘다고
누나를 끌어안고
엄마는
버릇없어진다고
흘기죽죽 바라보고
악어
수족관 악어를 처음에는
죽은 걸로 알았는데
턱밑이 볼록볼록하는 걸 보니
살은 것 같기도 했다.
이상해서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이번에는 눈도 한 번 까암박한다.
또 어떻게 하나 한참을 들여다봐도
더 이상은 움직이지를 않는다.
텔레비전에서는 그렇게도 힘차고 무섭던데
수족관에서는 살은 것 같지도 않다.
자기 동네를 떠난데다
좁은 데 갇혀서 그럴까…?
손으로 별짓을 다해도
눈뜨고 입 벌린 채
가만히만 있다.
차라리 죽어버리려고 저러는 걸까…?
아니, 내가 까부는 걸 구경 중인 걸까…?
나는 그만 그 자리를 떴다.
[시작 노트]
즐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경지라는 말이 있다. 시보다 동시를 쓸 때 그런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불행한 일이 많은 세상이다. 행복을 추구하되 행복만을 노래해서는 안 되겠지만, 밝은 작품을 쓸 때는 그래도 행복감에 젖곤 한다.
내가 지금까지 닦아온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여 어린이의 시각과 어법으로 대상이나 상황을 살피고 표현하려 한다. 설명을 피하고 보여주려 하며 쉽되 깊이 있게 하려 한다. 말의 맛도 잘 살리려 하며 대상을 새롭게 보려 한다. 곧 때묻지 않은 직시, 참신한 발상, 시어의 맛있는 울림, 오래 가는 여운 등을 통해 좋은 동시를 받아 빚어내려 한다.
어린이를 비롯하여 청소년, 어른들까지 동시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1953년 전남 광양 출생
․<현대시학>으로 시 등단(1981)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1995)
․시집 : 우리는 하루를 해처럼은 넘을 수가 없나
춤추는 시, 길에 핀 꽃,
봄비는 옆으로 내린다.
신 작 동 시
배 진 희
갯벌에서 2
갯벌에서 호미들고
발바닥이 미끌미끌
꼼지락 꼼지락
달랑게 찾으러 뛰어가면
급할때일수록
느리게 느리게
엄마가 타이르듯
갯벌이
꼬옥꼬옥 발가락을
붙잡아 준다
기찻길
서로 밀고 당기다가
젓가락처럼 나란히 나란히
제 거리를 잘 지키며
서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사이좋게 바라보며
둘 중에 하나만 없어도
다닐 수 없는 기찻길
나란히 나란히
만나지 않을 것 같아도
서로 마주보고 격려하며
뿌리는 하나인 기찻길
수영장에서는
똑같은 물이지만
수영장에서는
물고기처럼
지느러미 하늘하늘해야
물과 더 친해지고
얼음 썰매장에서는
팽귄처럼
날개를 낮추어
뒤뚱뒤뚱 날아다닐수록
얼음과 더 친해진다
똑같은 물이지만...
선인장
뾰족한 가시를
가졌다고 멀리서
바라보지만
불볕더위에
물 한 모금
아끼려고 가시를 만들고
선인장 줄기에
올록볼록
물 탱크처럼 물을 저장하더니
가시로 어여쁜 꽃이
필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종소리
땡
땡
땡
종소리 울리면
마음의 문 열리어
나도 모르게 스며든
슬픔 근심의 뿌리들이
하얀 구름되어 흩어지고
새로운 기쁨 즐거움 희망이
마음속에 파란 잎으로 피어나고
땡
땡
땡
종소리 울리면
마음속에 눌러 앉았던
미움 노여움의 껍질들이
살며시 일어나
바람 처럼 날아가고
사랑의 노래 소리로
마음속에 물결 흐르네
[시작노트]
때로는 바람에 몸을 기대고
따라가고 싶다
바람이 부는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창조문학 동시 신인상 수상
․전국 주부백일장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
․전국 교육체험수기 교육부장관상 수상
․예원 동인
․동시집 푸른들의 아이들
동 시
최 일 환
63년도 조지훈 선생 추천으로 등단, 한국문협, 국제펜클럽, 창조문학회원, 동시집 꽃씨봉투외 9권, 시집 남쪽섬들외 10권, 명지문학상, 크리스천문학상, 자유시문학상 등 다수 수상.
봄비 오는 날
창가의 하늘은
가장 어린 비를
조심조심 내려주시고
창가의 나뭇가지는
가장 어린 싹을
조심조심 내보내고
들릴 듯 말 듯
봄비의 속삭임을
들으려고
창가의 아기는
귀가 트인다
새싹의 작은 눈을 보려고
봄비 오는 날 아기는
눈이 커진다.
아기 사진
아빠는 즐거울 때만
웃는 아기 사진을 보고
엄마는 기쁠 때만
웃는 아기 사진을 보지만
아빠가 찡그릴 때도
아기 사진은 아빠를 보고 웃고
엄마가 화낼 때도
아기 사진은 엄마를 보고 웃는다.
동 시
이 복 자
한국아동문학작가상 수상(2003),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아동문학연구회 운영위원, 현재 동화중학교 교사, 시집 내 안에 피워둔 불꽃 외, 동시집 떡볶이 친구 외.
의자야, 나 뜨끔했어
새 학년이 되어
형들 쓰던 책상 의자 물려받았다.
의자가 약간 흔들흔들한다.
쉬는 시간마다 흔들어
목수실에 가 새것으로 바꿔 달랬더니
아저씨 뚝뚝 딱딱 금방 고쳐 주셨다.
목표 달성 실패.
이번엔 뒷다리 두 개에 몸을 실어 흔들었다.
질질 끌고 목수실에 가 새것으로 바꿔 달랬더니
아저씨 또 뚝뚝 딱딱 고쳐주시며
“두 번 수술한 다리니 많이 아플 거야.
잘 다뤄!”
의자 다리 두 번 부순 죄
아저씨 기억력 무시한 죄
새것 좋아하다 들킨 양심
〉
머리에 이고 와
몸무게가 미안해 조심스레 앉았다.
파도
파도에게 다가가
“나 잡아 봐라”
놀려보아요.
찰싹 발길 차고는
‘잡고 말거야’
바짝 달려오지요.
파도에게 다가가
“내 꿈 어디 있니?”
물어 보아요.
오던 걸음 되돌리고는
‘소라 속에 숨겨 뒀지.’
용용 달아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