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나이 먹는 법
엊그제 선술집에서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 준 적이 있습니다.
술안주로 나온 파전에 성냥개비를 세워 불을 밝히고,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잠시의 소란을 용서해 달라고 양해를 구한 뒤에 신나게 젓가락을 두들기면서 "생일 축하한다."고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나이가 쉰이 넘었어도 놀 때는 이렇게 애들같이 놉니다. ㅎ
우리는 소주잔을 눈썹 높이만큼 들어서 건배를 한 뒤에, 참석한 사람들이 각자 1분간 그 친구에게 덕담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돈 많이 벌어라. 건강에 신경 좀 써라. 일 좀 그만해라. 마누라에게 잘해라. 별 얘기가 다 나왔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축하한다고. 네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작년보다 더 나아진 네 모습을 축하한다고. 그리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멋있는 어른이 되라고.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나이가 스물이 넘으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스물이 되고 보니 적어도 서른은 되어야 어른이 될 것 같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서른을 넘고 보니 이제는 마흔은 되어야 어른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이를 먹어도 이십 대까지는 늙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하는 것이고, 사십 대까지는 늙는 것이 아니라 성숙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50대 이후가 되어야 비로소 늙어 가는 것이겠지요.
저는 이제 늙어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늙는 것도 외길이 아니라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노인이 되는 길과 어른이 되는 길입니다. 노인과 어른은 절대 같은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이 들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말하는 어른이란 이런 뜻입니다. 사람이나 지역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 그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 그리고 사람이나 지역이 나아갈 길을 몰라 헤맬 때, 그 길을 명징하게 가리킬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어른은 권력의 방향추가 한 쪽으로 기운다고 해서 그쪽으로 같이 휩쓸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길을 가라고, 그 길이 바로 이 길이라고, 방향을 제시하고 외부에서 부는 바람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은 나이가 들면 혼자 살기도 힘든 사람이지만, 어른은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깊어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늘 삶의 거울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노인과 어른의 가장 큰 차이는, 노인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노인이 될 수 있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젊었을 때부터 부단히 자신을 가꾸고 다듬어야 겨우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은 젊은이들에게 존경받는 어른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세상입니다. 누군가를 존경하고 싶어도 존경할만한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에 어른이 없다고 습관처럼 말들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어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선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너그럽고 후덕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버럭 화를 냈던 것도 가벼운 웃음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하고, 과거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도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포용할 수 없었던 사람도 품안에 포용할 수 있어야 하고, 과거에는 움켜쥐기만 하고 나눌 수 없었던 것도 기꺼이 나누어 주는 후덕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어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나이 들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재물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물관이라고 해서 무슨 거창한 담론은 아닙니다.
그저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는 사람이 아니라 정의롭게 벌어서 향기 나게 쓰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재물 안에는 반드시 타인을 위한 몫이 포함되어 있음을 아는 사람일 것입니다.
^^
우리나라도 이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회 한 쪽에서는 절대빈곤과 상대적 빈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회가 되었고, 세대 간의 대립과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노인이 많은 사회보다는 어른이 많은 사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노인이 많은 사회는 말만 난무하고 허약한 사회이지만, 어른이 많은 사회는 흔들림 없이 강한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어른이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 얘기를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이 합니다. 당장 우리 지역만 해도 어른이 없다는 얘기가 지역의 유행가가 된지 오래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우리는 어른이 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가 노인이 아닌, 어른이 되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맛있게 나이를 먹을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세월이 주는 대로 나이를 먹게 되면, 지난 10년이 금방이었듯, 앞으로 10년도 금방 지나가서, 어느 날 거울 앞에 볼품없는 노인 한 명이 초라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노인이 바로 '나'이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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