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경선 교수 " 바다 그 기억을 그리다" 중주 순회전 개최
현 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인 류경선 교수가 지난 2월 서울 인사동 소재 "인사아트" 에서 정년퇴임 기념전으로 "바다 그 기억을 그리다" 란 주제의 사진전을 시작으로, 대형 자동차에 탑재한 핀홀 카메라를 통하여 촬영한 사진을 전국의 사진동호인들의 열화같은 성원에 힘입어 전국순회전시를 시작한지 10개월이 되었다. 대전 전시를 시작으로, 울 산 , 대구 전시에 이어 8월에는 중국 초청전시를 마첬으며, 오는 10월 27일에는 충주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다.
이 전시는 금년의 국내전시에 이어 내년 5월과 7월에는 일본의 동경과 오사카에서도 전시 스캐줄이 잡혀있는 실정이다. 이번 충주 전시에서도 추청지방의 많은 사진인들의 참관이 기대된다. (글 : 사진가 덕암 장한기)
지속과 기다림의 미학
최봉림 CHOI Bong-Lim (사진평론가)
19세기는 인간의 손보다 빠르게, 눈보다 정확하게, 그림보다 값싸게 외계현실을 재현하기 위해 사진을 발명하였다. 그리하여 거의 모든 현실은 인간의 손보다 빠르고 눈보다 정확하며, 그림보다 값싼 사진 이미지를 통해 재현되기 시작했다. 사진의 모든 기술적 발전은 보다 빠르고 정확하며, 보다 값싼 이미지를 양산하려는 목적에 전적으로 바쳐졌다. 1826년경에 니엡스 Niepce가 찍은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사진은 노출시간이 8시간 이상으로, 이 시간 동안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건물의 양편 모두를 비추었기 때문에 명암의 대비가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여러 기술적 장애들로 이미지는 흐릿했다.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프로세스인 다게레오타입 역시 움직이는 물체는 감광제의 느린 감도, 어두운 렌즈 때문에 포착할 수가 없었음으로, 다게레오타입의 최초의 적용은 움직이지 않는 사물의 기록에만 한정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노출시간은 10분대로 줄었고, 1841년을 전후로 순간 포착의 문제가 다게레오타입의 현안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자 노출시간은 2-3분대로 단축되고 이미지의 선명도는 더욱 개선되었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사진촬영의 노출시간은 급기야 8,000분의 1초로 줄어들었고 해상력은 1,600만 화소에 이르게 되었다. 인간의 손보다 빠르게 눈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그림보다 값싸게 외계현실을 재현하기 위한 모든 기술적 진보는 더 바랄 수 없이 완성되었다.
욕심을 보태지 않는다면 이제 더는 기술의 완성이 필요 없는 첨단영상의 시대에, 한 노작가는 속도와 해상력, 용이함에 관련된 카메라의 기술적 성과를 스스로 거부했다. 빠르고 정확하며 편리한 사진과 결별했다. 그리고 느리고 흐릿하며 불편하기 짝이 없는 사진기를 선택했다. 세계 최초의 사진처럼 8시간은 아닐지라도, 십 여분, 1시간 혹은 3시간의 노출시간에 이르는 사진기를 싣고, 니엡스의 사진처럼 흐릿한 핀홀카메라로 변한 트럭을 타고 전국의 해안선을 돌아다녔다. 렌즈도, 뷰 스크린도, 셔터장치도 없는 기원의 사진기와 함께 그는 기억의 언저리를 맴도는 흐릿한 회한과 그리움의 풍경을 오랫동안 반추하고자 했다. 핀홀카메라와 함께 저 해변과 수평선을 응시하면서, 지난 기억의 풍경이 거대한 암상자 camera obscura로 변한 1톤 탑차의 0.5mm 핀홀을 거쳐 아스라하게 맺히기를 기대했다. 잊어버린 기억처럼 캄캄한 대형 카메라 옵스큐라의 스크린에 사라진 젊음의 회한이 저 바다의 풍경처럼 서서히 밀려와 오랫동안 감광되기를 고대했다.
사실, 지난 시절의 추억은 거의 언제나 흐릿하고 기억의 주변부에는 회한과 그리움의 감정이 어둡게 드리우기 때문에 핀홀카메라가 아니면 작가의 지난 시간과 흘러간 세월의 기억을 암시할 수 없었다. 핀홀카메라의 영상만이 덧없이 사라져간 젊은 시절, 내일로 미루다 잃어버린 희망의 기다림을 언제나 적절히 드러냈다. 따라서 작가에게 있어서 핀홀카메라는 단순한 현실의 재현의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응시한 저 해변의 풍경을 통해 작가의 지난 시절을 되찾는 장비였고, 이루지 못한 꿈, 한없이 기다리기만 했던 그리움을 탐구하는 도구였다. 텅 빈 겨울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게 하는 핀홀카메라만이 아무도 오지 않는 저 바다를 바라보는 여인의 시선에, 이제는 서두를 것 없는 노작가의 시선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일반 사진기의 선명한 이미지는 부재하는 존재의 이미지에 도달할 수 없었고, 60분의 1초, 125분의 1초의 응시 시간만으로는 기억의 화면을 서서히 덮는 저 구름의 덧없음을 되뇔 수 없었다. 사진기의 기원인 핀홀카메라만이 작가의 오랜 기억과 그가 잊어버렸던 회한을 재현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노작가에게 있어서 거대하고, 크고 작은 핀홀카메라들은 회한의 기억을 어렴풋이 부르는 추억의 도구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여유롭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을 표상한다. 느리고 흐릿한 핀홀카메라의 이미지는 바쁘게 움직이는 일상으로부터 결연히 벗어나 과거의 몽상에 우리를 초대하고, 그 부드러운 이미지는 무한히 넓은 과거의 수평선을 향해 마음을 열어보라고 부드럽게 충고하기 때문이다. 추억에 잠기는 회환과 그리움을 어리석음으로 비웃는 현대사회와 그 사회의 요구에 따르는 우리를 향해 시대의 흐름에서 약간 뒤로 물러서라고 느린 어투로 잡아당기는 것이다.
작가의 ‘느린 삶의 갈증’은 현대 카메라의 빠른 박자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의 흐릿한 관조의 이미지는 지난 시간을 놓치지 않고, 지금의 시간을 급히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않겠다는 현명함에서 나온 것이다. 저 바다 바람을 가상의 여인과 함께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지난 과거의 나 자신을 되찾고 현재의 나를 사려 깊게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따라서 하염없이 밀려오는 저 구름은 현재의 자아를 평가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변모하는 자아를 다시 한 번 살펴보라고, 그 모습이 보일 때까지 기다리라고 침묵의 언어로 속삭일 뿐이다.
현대사회에 속한 모든 사물, 풍경은 짧은 생명의 운명 속에 있다. 느린 지속, 오랜 기다림을 위해 현대가 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오늘날의 모든 것은 신속하며 즉각적이기 때문에, 오늘의 사진은 기다리고 조금도 주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40여년을 사진에 헌신한 장인은 느리고 느린 핀홀카메라와 더불어 바다를 관조하면서, 끊임없이 삭아들며 이어지는 순간들의 포착을 옹호하는 현대의 취향에 거스른다. 지속과 기다림의 미학 속에서 태어난 한 여인의 뒷모습을 응시하면서 오랫동안 우리 시선을 바다에 머물게 하고, 시간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반성하게 한다. 기다림의 혜안을 지닌 장인만이 탄생시킬 수 있는 저 지속의 이미지는 한 여인의 기다림처럼 한없이 우리를 겨울해변에서 서성이게 하면서 지난 삶의 얼굴을 불현듯 스치게 하고야마는 것이다.
한국디지탈포토포럼(KDP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