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30
소백산 자락 길
코스 : 1 ~
2자락
거리 :
58.7km(자락길 : 28.2km)
소요시간 :
7시간
날씨 :
맑음
주행후기
:
제주도올레길,
북한산둘레길, 서울성곽둘레길, 지리산둘레길, 등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역
특성을
살린 도보길이 다투어
열린다. 내 고향 영주에서도
소백산자락길이 있다. 소백산자락
을 한 바퀴
감아 도는 전체 길이가
143km(360리)에 이른다. 모두 열 두 자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북 영주시, 봉화군,
충북 단양군, 강원도 영월군의 3도 4개시·군에 걸쳐져 있다.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 도솔봉 등의
봉우리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소백산자락은 명산에
걸맞게 대찰을 품고 있는
불교문화 유적의 대표적인
곳 중의 하나에 속해 있어 부석사를
위시한 성혈사, 초암사,
비로사, 희방사, 구인사 등등의
불교유적지가 많이있다.
올망졸망한 마을 앞을
지나기도 하고, 과수원 안길로 안내되는 가하면, 잘 보존된 국립공원
구간을
통과하기도 하여
원시상태인 숲의 터널과 돌돌 구르는 시냇물과 동행할 수 있어 자연
에
동화된다. 소백산자락길은 오솔길, 찻길, 등산길, 마을길로 도보 탐방의
길이지만 자전거
로
하기로한다.
2014.5.30.
동서울터미널 06:15 영주 행 첫 차편으로 출발
08:40 영주에 도착,
국밥으로 아침요기를 하고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찾아본다.
거동이 불편해서이지
화색도 좋으시며 반갑게 맞아주신다.
10시에 요양원을 나서
안정을 경유 풍기 학교를 돌아보고
순흥으로 넘어가는 잠뱅이재를
넘는다.
태장리(고려 충령왕,충숙왕, 충목왕의 태를 묻으면서 순흥도호부로 승격되며 태장리라
하였다)
태장리의 수호목 느티나무, 아직도 토속신앙이 전래되고
있다.
내고향
순흥은?
본래 신라의 급벌산군(及伐山郡)인데, 신라의 삼국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
급산군(岌山郡)으로 개칭하고,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흥주(興州)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018년(현종 9)에 안동(安東)의 속현(屬縣)이 되었다가
후에 순안(順安)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으며, 충렬왕 때는 임금의 태(胎)를
묻었다 하여 흥녕현(興寧縣)으로 승격되고 현령이 파견되었다.
같은 이유로 충숙왕 때 흥주
(興州)로, 충목왕 때 순흥부(順興府)로 승격했다.
조선시대인 1413년(태종 13) 도호부가
되었으나, 1457년(세조 3)에 발생한 단종복위 사건에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이 깊이 관련됨에 따라
순흥도호부를 혁파하여 없앴다.
1683년(숙종 9)에 주민들의 상소에 따라
226년 만에 다시 순흥도호부가 설치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있다.
순흥도호부가 있던자리,
초교시절 동네 가설극장이 들어오면 이곳에서 대한늬우스를 보곤 하였다.
이때 본 영화로 기억나는것은
쇠붙이를 삼키는 불가사리와 에밀레종이
있다.
비봉산
13:00 1자락 출발,
-
금성대군
금성대군의
이름은 유(瑜)로 조선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아였으며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고,
단종(端宗 조선 제 6대
왕)의 숙부이자
세조(首陽大君,世祖:조선제7대왕)의
동생이다.
-
금성단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70번지에
위치한 "금성대군신단"(錦城大君神壇;사적
제191호)이
있는
이곳은 순흥안씨(順興安氏)의 관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으로서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1495
~ 1554)과
퇴계(退溪)이황(李滉1501~1570)의 고고한 학문이 서려 있는
선비의
고장이다.
이곳
금성단(錦城壇)은 사묘(祀廟)와 제단(祭壇
2,654㎡)으로
금성대군(錦城大君)
을 기리는
곳이다.
-단종복위운동
1456년(세조 2)에는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
김문기(金文起)의"사육신"들이 단종 복위운동이 실패하자, 이에 연루되어 이곳
순흥으로
위리안치(圍籬安置)
되어 이곳에서 다시
순흥부사(順興府使) 이보흠(李甫欽) 과 함께
단종(端宗)의 복위를
꾀하다가 기천 현감의
고변으로 발각되어
(1457년 世祖3)되어 이
사건으로
단종과 금성대군은 사사되고
순흥부는 폐부가 되었으며,
역모에 동참한 혐의로 수천 명을
죽여 그
시체를 소수서원 앞 죽계천
(竹溪川)에 수장했는데,
그들의 피가 냇물을
따라 15리 가량이나
흐르다 끝난 곳을 지금도
"피끝마을"(동촌)이라고 하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13:00 1자락 금성단
출발,
순흥향교로 넘어가는
다리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향교는 발길을 처음
하였다.
봄가뭄이 심하여
순흥저수지가 바닥이 드러난다.
독립된 배점초교가 학생
감소로 내가 다닌 순흥초교 분교가 되었다가 지금은 폐교가 되었다.
삼괴정
13:36 초암사
갈림길
계곡을 건너지 않고
포장길로 간다.
14:09 초암사에 이르다. 갈림길에서 30분 소요되었다.
감로수로 목을 축인다.
절의 규모가 많이
커졌다.
초암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 하기전에 초막을 짓고
임시로 기거하였던 곳이라 한다.
이제부터 포장 길이 끝나고 등산로라서 자전거를 끌고 3km를
가야한다.
오솔길
휴식 공간도 넉넉하다.
가물어도 작은 소에는 물이
고여있다.
산새 소리와 더불어 물소리는 숲속의 화음을
이룬다.
"잠시만 쉬어가세요" 글귀에
들어가보니
중년의 부부가 다정히 담소를 나누다 반긴다. 잠시 통나무
의자에 앉아 휴식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
탁트인 앞을 가르키며 동쪽이며 봉화방향이라 한다. 텃밭에 채소나 일구며
산다한다.
깊은 산중의 독립가옥이며 두사람의 얼굴에서 편안한 행복감을 느낀다.
15:10 시원한 산수를 마시고
헤어진다.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지
않은 산마루에 오른다.
비로사로 내려가는
송림지대
오래전 이 길로 비로봉을
올랐었다.
15:33 비로사, 1자락 마침
15:40 2자락
출발,
비로사 부터는 포장 길이다.
금계저수지
1963,8. 칙칙폭폭 증기기관차를 타고 이 곳 풍기역을 통해 서울로 간 것이
고향을 떠난 길이
되었다.
오늘 죽령을 넘어
대강
까지의 목표는 허기와 해가 기울어져가 수철리에서 쉬기로 하며 소백산역 앞 팬션에 투숙을
한다.
팬션이라 1인
50,000원이다.
17:35 소백산역(옛
희방사역), 2자락
마침
너무나 배가 고파 씻지도 아니하고 초가집에 가서 이른 저녁을
한다.
밤늦도록 소쩍새의 노래와
심산의 청량한 공기에 취해 오히려 밤잠을 뒤척인다.
내일은 죽령옛길을 따라 죽령을
넘기로 한다.
첫댓글 올만에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