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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人間革命 27卷
第2章 正義 (51~56)
<정의 51>
‘미에문화합창제’ 무대는 부인부가 ‘오늘도 힘차게’를 부르는 차례가 되었다. 부인부원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고 밝고 경쾌한 가락이 흘러나왔다.
미에의 부인부원에게 그것은 ‘기쁨의 노래’이고 ‘승리의 노래’였다.
모두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고 발랄하게 열창했다.
기쁨의 눈물을 글썽이며 노래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낮의 태양을 가슴에 받으며
진땀에 젖으며 페달도 가볍게
행복을 찾아서 몇몇해인가…
참석자들이 노래에 맞춰 박수 치는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였지만 부인들의 마음은 쾌청했다. 불법(佛法)이라는 태양을 품은 사람의 마음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오후 공연에는 종문(宗門)의 지원장(支院長)과 주지를 비롯한 승려와 그 가족이 초대를 받고 참석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노래가 끝날 때마다 옆자리에 앉은 지원장에게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노래를 설명하기도 했다.
“학회가마다 모두의 깊은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절복하러 가서 성실하게, 열심히 불법을 말하지만 물이나 소금 세례를 맞고 쫓겨납니다. 때로는 전철 막차를 놓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걸어서 귀가하기도 합니다. 그때에 학회가를 부르며 자신을 고무해왔습니다.
모두가 그러한 체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학회원은 오로지 광선유포를 위해 사신홍법(死身弘法)의 마음으로 꿋꿋이 살아왔습니다.
저는 그 모습에서 현대에 살아 있는 여래의 사자(使者)를 보는 듯합니다.
부디 승려 여러분도 다기진 학회원을 법의로 감싸듯 자애를 베풀어 따뜻하게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이치는 진솔한 창가(創價)의 세계를, 진정한 학회의 마음을, 진실한 동지의 모습을 심혈을 기울여 말하고 외쳤다.
<정의 52>
‘미에문화합창제’의 오후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가는 비가 오락가락 내렸다.
문화합창제 마지막에 신이치가 마이크 앞으로 나갔다. 신이치는 비가 오는 와중에도 열창과 열연을 선보인 출연자들을 찬탄하고, 참석한 지역의 초대 손님과 승려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각부의 벗에게 한마디씩 지침을 주었다.
“결혼해 자녀가 있는 부인부 여러분은 가정에서는 좋은 어머니가 되기 바랍니다. 또 좋은 아내이자 밝고 쾌활하고 현명한 주부가 되기 바랍니다. 자신의 위치, 자신의 세계에서 태양처럼 모두를 따뜻하게 감싸는 사람이 되는 일이 신앙을 실증하는 일이 됩니다.
또 장년부 여러분은 사회인으로서 힘 있는 존재가 되기 바랍니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역시 신심하는 사람은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신뢰를 얻는 일이 광선유포입니다.
여자부 여러분은 건강을 소중히 여기며 총명하면서도 꽃처럼 아름다운 인간성이 빛나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한 송이 꽃이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의 빛을 비추듯 ‘여자부원이 한 사람 있으면 모두가 밝아진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기원하고 있습니다.
남자부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남대학부 여러분은 사회 각 분야를 짊어질 명사(名士)로 성장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사회에서 실력을 쌓는 만큼 학회가 전진합니다.
소년소녀부와 중등부 그리고 고등부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하기 바랍니다.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어 효도하겠습니다.’ 하고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미래에 활약할 사람입니다. 학회의 후계자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위해 길을 열겠습니다.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 창가의 바통을 맡기겠습니다.”
신이치는 사랑하는 법우(法友)의 무너지지 않는 행복과 미에의 광선유포를 바라며 외쳤다. 한마디 한마디에 만감이 서렸다.
신이치의 가슴속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동지는 단연코 내가 지킨다’는 결의의 불꽃이 붉게 타올랐다.
<정의 53>
신이치는 문화합창제가 끝나자 참석한 승려와 간담회를 열었다.
신이치는 ‘학회는 어디까지나 광선유포를 위해 정성을 다해 사신홍법에 힘써 종문을 지킬 결심이며, 더욱 서로 연대해 전진하고 싶다’는 심정을 말했다. 그 뒤에도 출연자를 비롯해 운영을 맡은 멤버 대표와 간담하고 노고를 위로했다.
다음날인 4월 24일, 신이치는 잠시 시간을 내어 아내인 미네코와 함께 미에연수원 주변에 있는 이발관이나 일용품 가게를 찾아 평소 학회를 위해 힘써주신 데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일도 이웃 사람들과 교류를 나누고 이웃을 소중히 하는 일에서 비롯된다.
그러고 나서 신이치는 연수원이 있는 미에현 하쿠산초에 사는 미사와 가쓰코의 집으로 갔다.
미사와는 이 지역에서 지역부인부장을 맡고 있어 연수원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에는 부인부가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는 장소로 미사와의 집을 사용했다.
신이치는 이번 문화합창제 때도 준비를 위한 거점으로 쓰였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 분들도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않는다면 죄송한 일이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사와의 친정어머니인 하타 미쓰코는 이 지역에서 학회 초창기를 개척한 사람이었다. 신이치가 현지 회원에게 “당신은 누구에게서 불법이야기를 들었습니까?” “누가 격려해 일어섰습니까?” 하고 물으면 대부분 하타 미쓰코의 이름을 댔다. 신이치는 하타도 꼭 만나 광포 개척의 고투를 듣고 그 공적을 치하하고 싶었다.
한 사람 한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마음을 맺는다. 그리고 우정의 스크럼을 짜고 광선유포를 향해, 무너지지 않는 행복의 성을 향해 함께 걸어간다. 이것이 창가학회다.
신뢰로 맺어진 사람과 사람의 유대가 조직이라는 기구와 제도에 따뜻한 인간의 피를 흐르게 하고 신심의 고동을 전한다. 그러므로 개인과 개인의 대화 없이 창가의 인간조직은 없다.
신이치와 미네코는 오후 1시 전에 미사와의 집에 도착했다.
<정의 54>
미사와의 집은 이세와 간사이를 잇는 중심 도로가에 있는데 이 일대에 예전부터 역참이 있어 미사와 가(家)도 여관을 경영했다고 한다.
미사와는 오전 중에 “만일 괜찮으시다면 댁에 찾아뵙고 싶습니다”라는 신이치의 전언을 받은 상태였다.
미사와의 집에는 문화합창제에서 사용한 비품으로 가득했다.
급하게 큰 짐만 정리했을 때 신이치가 도착했다. 현관에 마중 나온 미사와 부부는 조금 긴장해 보였다.
신이치는 부부에게 웃어 보이며 남편 미쓰나라와 악수를 나눴다.
“오늘은 인사를 드리러 찾아왔습니다. 항상 부인부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치 일행은 불단(佛檀)이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 안 문틀 위에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유영이 걸려 있었다. 미쓰나리의 돌아가신 아버지라고 한다.
신이치는 그 말을 듣자 “그럼 아버님의 추선근행을 합시다” 하고 말했다.
근행이 엄숙히 시작되었다.
인근에 사는 학회원이 신이치의 방문을 듣고 잇따라 모여들었다. 바로 옆방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근행을 마친 신이치는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부러 와주셨으니 오늘은 좌담회를 합시다.”
모두 환성을 질렀다.
미쓰나리는 추선근행에 감사하다고 말한 뒤 근처에 사는 장모인 하나를 소개했다.
“실은 저희 부부가 신심을 하게 된 것도 장모님 덕분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야마모토입니다. 당신이 지역 광포를 위해 얼마나 힘써 오셨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일가친척과 지역 사람들에게 불법을 넓힌 공로자다.
신이치는 일어나 부처를 맞이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홍교의 실천자에게 최대로 경의를 표하는 것이 불법자가 갖춰야 할 삶의 자세다.
<정의 55>
하타는 일흔 여섯 살이었다.
신이치는 하타가 입회한 경위와 광선유포를 위해 고투한 세월을 차레 차례 물었다. 왜냐하면 하타의 체험을 통해 모인 동지들과 함께 ‘진정한 신심은 무엇인가’를 확인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타는 신이치의 질문에 “그러니까, 저는” 하고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롭고 희망찬 시대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던 때에 크게 의지하던 남편이 자녀 아홉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다. 가장 어린 아이가 아직 한살이었다.
히타는 죽을힘을 다해 살았다. 가난 속에서 바둥거리며 사는 나날이었다. 여러 신앙에도 매달렸다.
냉수로 목욕재계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암담한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그러한 무렵에 이웃사람에게서 불법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1956년 여름의 일이었다.
75만세대 달성을 목표로 나아가는 광선유포 홍교의 조류가 미에의 산촌에도 도도히 퍼지고 있었다.
하타에게 불법 이야기를 한 사람은 부인부원인 쓰유자키 아키였다. 쓰유자키는 결혼해거 오사카에서 살다가 남편을 여의어 친정이 있는 하쿠산초로 돌아오게 되었다.
생선 행상을 하면서 여자 혼자의 힘으로 딸 셋을 기르며 고생스럽게 사는 사람이었다.
쓰유자키는 입회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반드시 행복해지는 신심이에요.” 하고 확신있게 주장했다.
하타는 ‘이 사람은 나와 똑같은 처지인데 왜 이토록 밝을까. 학회의 신심의 힘 때문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타는 쓰유자키의 확신과 생기 넘치는 모습에 반해 입회하기로 결심했다.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손에 넣는 일도 신심의 실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실증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지 않는 인간의 강인함과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발랄한 삶의 태도를 확립하는 일이다.
생명의 빛, 인격의 빛을 빛내는 일이다.
<정의 56>
입회한 하타에게 쓰유자키는 근행과 함께 홍교에 힘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힘주어 말했다.
“니치렌대성인불법(日蓮大聖人佛法)은 자행화타에 걸친 신심입니다. 자신도 주위사람도 함께 행복해지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이 아니지 않습니까. 예컨대 주위 사람이 굶어죽는데 자신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행복해지나요? 아니지요. 자신만 극락에 가기 위해 기원하는 종교는 진정한 종교가 아닙니다.
대성인 불법은 자신이 금세에서 부처가 되는 신심입니다. 그것을 성불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행복만 생각하는 부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불법을 가르쳐 행복해지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하타는 그 말에 감탄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불법대화를 하러 다녔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맹렬히 반발하고 나섰다.
먼저 타종의 승려가 화를 냈다. 주위 사람들도 그것에 선동되어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 하고 욕을 퍼붓고 불법대화를 하러 가면 물이나 소금을 뿌리고 돌을 던졌다.
‘왜 이런 일을 당할까!’
냉수로 목욕재계를 하는 다른 신앙을 믿었을 때는 전혀 일어나지 않던 일이다. 하타는 쓰유자키와 함께 소속조직인 오사카의 사카이지부 간부를 만나 지도를 받았다.
“니치렌대성인은 이 법문을 말하면 반드시 마(魔)가 출래하느니라”(어서 1087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생의 생명이 탁해져 사람들이 악법이 옳다고 믿는 말법이라는 시대에 정법을 설하니 반대를 당하거나 탄압을 받는 일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또 대성인은 어서 곳곳에서 ‘행해(行解)를 기위 힘쓰면 삼장사마(三障四魔)가 분연히 다투어 일어난다’(어서 1087쪽)는 천태대사의 말을 인용해 진심으로 신심을 하면 그것을 방해하려는 장마가 다투어 일어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불도수행에 힘쓰면 마가 다투어 일어난다고 각오하는 일이 신심의 첫 걸음입니다. 신입회원에게 홍교의 실천과 함께 그것을 철저히 가르쳐야 광선유포를 위한 조직의 기반이 반석같이 다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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