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섭다던 사춘기다. 그나마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는 두 시기, 사춘기와 갱년기로 대치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지 않은 걸 감사하게 생각했다. 주변의 다른 엄마들에게 사춘기 아이와의 전쟁기를 들으며 미리 몸집을 불려야 하나, 맷집을 늘려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사춘기 아이들과의 첫 전쟁을 치르고 나니 훈장은커녕 내 존재감만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첫 아이를 낳으며 난 엄마가 됐다. 박보라가 아닌 ‘누구의 엄마’가 내 이름이 됐다. 생각해 보면 그전에도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라는 이름을 가졌었지만, 그땐 어떠한 책임감도 느끼지 못했다. 되려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다른 쪽이라고 뻔뻔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은 달랐다. 그건 왠지 모를 무거운 책임감이 부수적으로 따라왔다. 그 작고 여린 생명이 뭐라고 내게 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두 명의 아이들이 더 태어나고, 자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난 막연히 기다리는 쪽에 서게 됐다. 그들을 통해 내 존재가 완성되길 바랐던 것도 같다. 왜냐하면 내 이름은 반쪽짜리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는 반쪽이 붙지 않으면 완성되지않을 이름. 그건 절대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상대적 이름이었다.
난 매일매일 같은 자리에서 아이들이 내게 가까이 와 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에게 반항하는 건 이제 부모의 품을 떠날 준비를 하는 거라 했던가. 곁을 떠나는 것들의 속성이 그러하듯, 그 온도는 참으로 차갑기만 하다. 겉뿐 아니라 안까지 빙(氷)벽을 치고 만다. 그들은 이제 영원히 내게 오지 않을 것처럼 꼬리마저 자르고 도망가고 있었다.
“너희들 키울 때 생각나네. 다 그런 거지.”
기다림에 지친 내게 엄마가 말을 걸었다. 내가 언제 그랬냐며 퉁명스레 받아 치려다가 문득 엄마의 주머니칼이 떠올랐다. 엄마에겐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결혼 전, 독일에서 2년을 살다 오신 적이 있어서다. 그중 가장 신기했던 건 소위 ‘맥가이버칼’이라고 불리는 스위스제 빨간 주머니칼이었다. 한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에 층마다 난 홈을 손톱으로 당겨 열면 그 작은 몸통에서 신기한 것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칼, 가위, 와인 오프너 심지어 이쑤시개까지 없는 게 없었다.
사과 하나를 깎더라도 다른 엄마들처럼 휴지나 신문지에 둘둘 싼 과도가 아닌 주머니칼을 꺼내던 엄마는 말 그대로 신비로운 존재였다.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 엄마를 슈퍼우먼, 만능해결사로 생각하는 것처럼.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스위스제 주머니칼은 더 멋진 물건이 아니었다. 세상엔 그것보다 훨씬 멋지고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 주머니칼은 점점 잊혀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뭔가를 찾으려고 연 서랍 속에서 잡동사니와 함께 굴러다니던 엄마의 주머니칼을 발견했다. 잠시 찾으려던 걸 멈추고 손톱으로 그 안에 있는 모든 걸 끄집어냈다. 녹슨 데 하나 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나이 든 엄마가 여전히 자식들을 위해 가진 모든 걸 꺼내어 도와줄 수 있다는 듯 의기양양했다.
오늘은 어머니날이다. 이쯤 되면 꼭 실리는 기사가 있다. 그건 훌륭한 어머니 이야기도, 어머니를 추억할 만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오지 않는 자식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그나마 바빠서 못 가니 죄송하다고 전화 한 통 해 주는 자식은 낫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매번 곧 갈 거라는 말만 남길 뿐이다. 어머니는 오지도 않을 자식을 문 밖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들어가곤 했다. 물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똑같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벌써 서랍 속에 굴러다니는 주머니칼 신세가 되었나 싶어 조금은 씁쓸해졌다. 한편으론 괘씸한 마음에 도시락도 싸 주지 말까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정말 유치하단 생각이 들어 포기해 버렸다. 하지만 날 알아주는 사람이 없단 상실감은 내 이름의 존재마저 희미하게 지워버리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모든 인간관계는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일지도 모른다. 저마다 누구의 엄마, 아빠, 딸, 아들, 친구, 동료가 되어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만 하루도 되지 않아 아이들에게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엄마, 죄송해요. 그럴 마음이 아니었다는 걸 잘 알잖아요. 요즘 제가 좀 힘들어서 실수했나 봐요.’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풀어졌다. 물론 앞으로도 이런 일이 수없이 반복될 거란 걸 잘 안다. 하지만 오늘도 난 그들을 기다린다. 내일도, 모레도 기다릴 것이다. 아마도 우리 부모님이 그러하듯 평생 기다리는 쪽에 서서 또다시 지쳐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다린다는 건 희망을 갖는 거다. 언젠가 내 이름을 완성해 줄 그들이 꼭 와 줄 거라는 희망. 그렇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된다.
존재를 알아주길 바라는 자의 반쪽짜리 속성이 그러하듯, 오늘도 난 그들에게 말을 건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버블티 먹으러 가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