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적천사 탐방기 (2007년 11월 24일)
눈이 내린다는 소설이 지났는데도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는 때에 대송회에서 청도의 적천사 탐방에 나섰는데 청도에 들어서니 감의 명산지답게 온통 감뿐인 감의 나라였는데 들판에도 빨간 감뿐이요,가로수도 감나무 일색에다 가정집 마당에도 감나무가 몇그루씩 있는등 감의 천국이었다,
청도읍의 원동을 지나서 꼬불꼬불한 계곡길을 몇모리나 돌아서 10리 정도를 올라가니 적천사 입구에 닿았는데 우람하게 버티고 선 두그루의 은행나무가 먼저 반겨 주었는데 용문사의 은행나무나 영동 천태사의 은행나무 만큼이나 크고 우람했으며 천연기념물 402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었는데 수령이 800여년에다 높이가 30미터요, 폭도 30미터 정도이고 나무 둘레는 11미터에 달했는데 전해 오기로는 고려 명종 5년(1175년) 보조국사 지눌이 이사찰을 중건할 때 직접 심었다고 하며 비석으로도 전해오고 있으며 보조국사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란것이라고도 하며 지금도 굵고 많은 열매가 열리고 있으며 수세도 왕성하고 모양도 훤칠하고 아름다웠다.
은행나무를 지나니 "화악산 적천사"라는 편액이 나왔는데 적천사는 신라 문무왕4년 민중불교를 주장한 원효대사가 토굴로 창건하였고 828년(흥덕왕3년) 흥덕왕의 셋째 아들인 심지왕사가 이절에서 수도하면서 진표대사로부터 법을 받고 백련암, 은적암, 옥련암, 목탁암, 문주암을 창건하는등 사찰을 크게 중창하였으며 1175년(고려 명종 5년) 보조국사가 절 북동쪽에 영산전을 세우고 오백성중(아라한)을 모시는 한편 오백대중(나한)을 상주케 하고 불교 입문자를 참선 수행케 함을서 고승대덕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전해오고 있었다.
천왕문으로 들어서니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이 사천왕상은 부처님이 계시는 도리천아래 수미산의 중턱에 있다는 사천왕천에서 네방위를 옹호하는 신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청정한 도량을 지키기에 항상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이절의 사천왕상은 입술과 입가운데 붉은 색이 단연 눈길을 끌고 있으며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악귀를 밟고 있지만 얼굴은 험상궂거나 분노하는 표정이 아닌 오히려 웃음까지 띄고 있는 정감어린 모습이었다.
거칠것이 없다는 누문인 무차루와 법당등을 둘러 보았는데 지금은 비록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말사에 해당하는 작은 사찰이나 절을 찾을 때 그절의 역사속 선지식을 만난다는 것은 늘 가슴벅찬 일일진데 800여년전 불교가 국교인 고려시대에 대각국사 의천등 왕자들도 스님되기를 주저하지 않을 불국토였던 시기에는 수백의 스님들이 참선 수도하였을 것이고 또 입구의 은행나무로 인하여 보조국사 지눌스님을 만나고 스님의 법향을 조금이나마 느낄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천사는 그 은행나무만큼 내 마음에 사표가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찰을 구경후 우거진 송림과 가파른 바위길을 30분정도 오르니 산죽이 반가이 맞이하는 도솔암에 올랐는데 임자가 밑에서 보면 절벽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으며 도솔천이란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곳으로 석가모니도 현세에 태어나기 전에 이 도솔천에 머물며 수행했다고 하고 현재는 미륵보살이 여기에서 설법하며 하생하여 성불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미륵보살의 정토로서 조용하고 그윽한 암자였다.
도솔암의 약수는 가슴속까지 시원할 정도로 시원하고 깔끔하였으며 위치가 상당히 높은 듯 원근 산악과 봉우리가 눈아래 모여 있는데 전망을 볼수록 빼어나서 가슴이 탁 트이고 맑아졌으며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곳이었는데 거창 의상봉아래의 고견사의 삭도와 같은 케이불카가 설치되어 있어서 각종 생필품을 공급받고 있었다.
도솔암을 내려온후 걷기 좋은 따뜻한 날씨에다 길도 흙길이어서 청도읍까지 걷기 운동을 한후 전국적으로 유명한 큰공장인 귀뚜라미 보일러회사 앞에서 모두 만나서 박철수동기의 별장이 있는 매전면 유전리로 갔는데 마을 앞으로 운문댐 하류의 맑은 하천이 흐르고 있었고 양지바른곳에 자리잡은 300여평의 넓은 별장은 대문도 2개나 되고 청도의 상징인 감나무도 군데군데 있어서 까치밥인 빨간 홍시가 매달려 있었다.
이곳에서 늦은 점심겸 숫불구이를 하였는데 여정수교수가 산지에서 직접 구해온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구워서 먹으니 고소하고 연한 맛이 그만이었는데 여정수동기는 영대 축산과와 서울대 대학원 축산과를 졸업한 농학박사로서 동물 유전공학과 가축육종학의 선구자로서 세계적인 권위자이며 영국 국제인센터 "명예의 전당"에도 등재되어 있는 명사였다.
식후에 모두 김용우의 목소리를 듣고싶다고 해서 감미롭고 맑고 깊은 음색의 김용우의 가곡을 듣고 환담하다가 어두워져 갈때에 대구에 들어왔는데 교외로 갈수록 깊은 동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송 설 산 악 회 부 회 장 이 영 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