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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생의 무거운 짐, ‘容恕(용서)’의 문제 25-1 ♥
한 인간 裵鐘富(배종부) 목사의 ‘容恕(용서)’
♥ <성령의군대> 선교 후원 ♥
배종부 농협 3560393-047263
배종부 <성령의군대> 지도목사
서울 새성교회(장로교 통합)
서울 노원구 노원로 26가길 25, 코롱상가 3층
010-2940-1717
배종부 목사의 글, 설교, 유튜브 동영상을 보시고 감동이 되시는 분은
너무나 어려운 주의 종들과 고통 당하는 선교사님들이 많음으로,
어려운 개척교회와 열악한 선교사님들을 섬기는
<성령의군대>를 정성껏 후원해 주십시오.
1.容恕(용서)의 문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 - 2P
2.용서해야 하는가? - 15P
3.어디까지 용서해야 하는가? - 32P
4.용서할 수 없는 인간들 – 46P
5.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지 않으실까? - 59P
6.용서하지 않으면, 내게는 무슨 일이 있을까? -
7.시간이 가면 용서가 되는가, 그냥 잊혀지는가? -
8.인생은 끝없는 용서이다. -
9.한 인간 裵鐘富(배종부) 목사의 容恕(용서) -
10.그래도 생각하면 또 화가 나고, 용서가 되지 않는다. -
11.성경이 말씀하는 용서 -
12.나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인간이었다. -
13.그들도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14.잘못을 빌면, 착한 나는 宜當(의당)히 용서하지! -
15.배종부 목사를 배신한 자들에 대한 성령 하나님의 회개 촉구 편지 지시 -
16.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잊혀진 사람들 -
17.暴力(폭력)을 행하고 激憤(격분)을 풀고 나면 용서가 되지만, 후회가 된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하고 -
18.사랑한 만큼, 용서하지 못하게 된다 -
19.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인간들-그래서 살인, 이혼, 폭력, 응징, 이별... 등을 하게 된다 -
20.역대 잘못한 대통령 들을 전부 용서합니다. -
21.잊혀진 것은 용서가 아니다. -
22.주님! 용서합니다. -
23.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자도, 용서해야 하는가? -
24.잘못한 家族(가족)을 어디까지 용서할 것인가? -
25.그냥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라. -
1.容恕(용서)의 문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
위의 제목들은 63년 한 평생을 살아 오면서 나 배종부 목사가 ‘容恕(용서)’ 에 대하여 깊이 깊이 생각하고, 내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부딪치며 고통한 개념 들이다.
오늘도 늘 습관대로 새벽 2시 경 일찍이 잠에서 깨어 났는데, 주님께서 “용서해야 한다” 하셨다. 이 주제의 글들은 앞으로 한 달 이상을 써 내려 갈 것 같다. 일종의 나의 삶의 고백록 같은 것이다.
이 글들로 인하여, 나의 모든 인간관계가 容恕(용서)로 다 풀어지기를 간절히 주님께 기도한다.
‘容恕(용서)’ 에 대하여, 아래 글들을 쓰고,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최종적으로 정리해야, 앞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차분하게 하나 하나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써 내려 간다.
나의 고백의 글들을 읽으며, 당신도 용서할 수 있거든 기도하며 용서를 하고, 인간의 매듭을 풀고, 내 삶의 엉킨 것을 하나 하나 풀고 지나 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말 하듯이 글을 쓴다.
이 ‘容恕(용서)’의 주제로 쓴 글들이 수 천 페이지는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 사람에 대하여 수 백 페이지를 쓴 글들이 많다.
글을 쓰며 주님께 고백하고, 회개하고, 마음을 정리하고, 용서하고, 지나 간다.
그들은 풀지 않아도, 나는 이제 다 풀고 지나 가리라.
용서 (容恕)
【명사】【~하다 → 타동사】
지은 죄나 잘못한 일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 줌.
┈┈• 무례를 ∼하다
┈┈• ∼를 빌다.
容 얼굴 용; ⼧-총10획; [róng]
얼굴, 모양, 모습, 몸가짐, 담다, 그릇 안에 넣다
恕 용서할 서; ⼼-총10획; [shù]
용서하다, 헤아려 동정하다, 깨닫다, 밝게 알다
1. 히브리어
(1) 하말 - 아끼다, 불쌍히 여기다, 긍휼히 여기다.
(2) 카파르 - 덮다, 속죄하다, 용서하다, 달래다, 지워버리다, 취소하다, 자비롭다.
(3) 카파르 - 관용하다, 용서하다.
2. 헬라어
(1) 압히에미 - 면제하다, 용서하다, 취소하다.
3. 한자
잘못이나 죄를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는 것.
용서에 대한 성구
1. 무엇을 용서하는가?
(창50:17) - 허물을 용서함
(마6:14) - 사람의 과실을 용서함
(막11:25) - 혐의를 용서함
(고후2:10) - 무슨 일에나 용서함
(고후12:13) - 공평치 못한 일을 용서함
2. 용서해야 할 이유
(마22:39) - 하나님의 계명이므로
(눅6:37) - 너희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눅23:43) -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롬12:20) - 유익이 되기 때문에
(골3:13) - 주께로부터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3. 우리도 용서할 것을 분부하심
(막11:25) - 용서해야 용서를 받는다.
(눅17:4) - 회개하면 언제든지 용서를 하라.
(엡4:32) - 하나님이 용서하심 같이 용서하라.
(골3:13) - 주께서 용서하심 같이 용서하라.
4. 용서 받을 수 없는 죄
(마12:31) - 성령을 훼방하는 죄
(마12:32) - 성령을 거역하는 죄
(히6:4-6) -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죄
(히10:26-31) - 은혜의 성령을 모욕하는 죄
조지 허버트
남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자기가 건너야 할 다리를 파괴하는 사람이다.
빌리 제올리
하나님은 큰 지우개를 가지고 계신다.
블레크 - 영국의 시인
상호 각자 잘못을 용서하라. 그런 것이 천국의 문이다.
용서는 모든 것을 녹이는 불용광로입니다
행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더라.
예루살렘 교회에서 7명을 집사로 뽑았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스데반입니다. 평신도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예수를 반대하는 이들이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어 내어 돌로 쳐 죽였습니다. 스데반이 죽을 때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5-56)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
그 때에 결론을 성경은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행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더라.
자기를 돌로 쳐 죽이는 자를 용서하며 죽는 스데반의 모습은 용서의 감동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키워드는 ‘용서’입니다.
정신과 의사 메닝거(K. Menninger)는 모든 질병의70%는 스트레스에서 온다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런데 스트레스의 90%는 미움, 다툼, 용서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헤밍웨이 소설에서 ‘용서’ 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스페인 사람 이야기입니다. 어느 집의 아버지와 아들이 다투었습니다. 아들이 마드리드로 가출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후회하고 아들을 찾는 광고를 가장 큰 신문인 엘리베랄 신문에 실었습니다.
<파코야!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하였다. 아빠.>
그 날 정오에 호텔에 간 아버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파코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 800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파코는 스페인에서 가장 흔한 이름입니다.
용서를 기다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아픔 속에서 자기를 용서 받기를 갈망하며 기다리는 이들이 많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용서란 무엇인가요?
1.용서란 자기 치료제입니다.
용서를 하면 가장 치료 받는 사람이 자기입니다. 용서를 하면 가장 유익을 보는 사람이 자기 자신입니다. 용서 받는 사람보다 용서하는 사람이 더 이득을 보게 됩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쳐 죽이고 있는 사람들을 용서하였습니다. 그렇게 용서하는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천사의 얼굴 같았습니다.
돌로 쳐 죽이는 사람들은 악마같이 대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에 맞아 죽는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 같았습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승자입니다.
딕 티비츠(Dick Tibbits) 심리학자는 용서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용서는 당신을 다시 삶의 운전석에 앉게 하여 준다.
용서는 틀을 다시 짜서 당신의 삶의 이야기를 바꿀 수 있게 하여 준다.
무엇보다도 용서는 당신을 치료한다.
용서는 과거의 상황이 당신의 현재를 지배하지 않도록 가르친다.
타인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용서는 시작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거는 기대치를 낮추라.
겸손과 공감의 기술을 터득하라.”
용서는 자기 아픔이 씻겨지는 자기 치료제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따라 다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기가 다윗에게 몰렸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죽을 고비를 수 없이 넘겼습니다. 사울이 3,000명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왕이면 왕의 권위를 지키면서 신하들에게 다윗을 잡아 오라고 하여도 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직접 다윗을 잡으러 3,000명을 이끌고 다니는 것을 보면 대단한 결의였습니다. 꼭 잡고 말겠다는 각오가 보이고 있습니다. 다윗이 엔게디 굴 속으로 도망 가서 숨었습니다.
성지순례한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나는 약 두 시간 정도 등산하여, 엔게디 그 곳을 가 보았습니다. 더운 날씨에 이목사님과 둘이 엔게디 산을 올랐습니다. 험한 산이었고, 더운 날씨라 올라 가는 이도 없고 내려 오는 이도 없었습니다.
사막인데 물이 철철 흘렀습니다. 둘이서 물 속에 들어 갔다 나왔다 하면서, 산을 올랐습니다. 물론 옷 입은 채로 물 속에 들어 가서 마냥 걷는 맛도 좋았습니다. 젖은 옷이 금방 말랐습니다.
높은 산은 올라 가기만 하여도 피곤한 곳입니다...”
다윗이 자기 사람들 몇 명과 함께 굴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사울이 굴 속에 들어 와서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의 신하들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죽이십시오.”
굴 속에서 자고 있는 사울을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용서하였습니다. 그리고 옷자락만 벴습니다. 사울이 푹 자고 일어나 나갈 때 뒤따라 나갔습니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엎드려 절하며 외쳤습니다. 손에는 옷자락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나의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삼상 24;11-14)
사울이 말했습니다.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안다."(삼상 24;16-20)
하나님은 용서 받는 사람보다, 용서하는 사람을 더 크게 사용하십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왕의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용서 받는 기쁨보다 용서하는 기쁨이 더 큰 법입니다. 용서하면 자기가 더 커 집니다. 용서는 자기 치료제입니다.
2. 용서는 용광로입니다.
용서는 서로의 허물을 용광로와 같이 다 녹여 줍니다. 그렇기에 용서는 희망이요 축복입니다. 스데반이 자기를 돌로 쳐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하였습니다. 그 때 모습을 성경은 확실히 증언하여 주고 있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행 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자고 결정한 사람들입니다. 다 모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두 스데반을 보았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이들을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하며 죽는 모습이 천사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다, 한 명도 안 빼놓고 주목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목하였다는 말은 너무나 놀라서 자세히 뚫어져라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모두가 심령이 녹아지고 있는 순간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얼굴로 복음을 전한 사람입니다.
어느 그리스도인 장례식에 한 사람이 와서 구슬프게 울고 있었습니다.
“누구십니까?”
“나는 이 분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전하셨나요?”
“아니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이 분 얼굴만 보면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았어요. 말씀 없이 얼굴로 복음을 주신 분이세요.”
이 분이 바로 스데반입니다. 용서하는 얼굴은 복음이요 용광로였습니다. 모든 것을 녹일 수 있었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참전 용사 기념비 앞에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자네는 자네를 붙잡아 고문했던 사람을 용서하였는가?”
이 말이 떨어지자 말자 다른 사람이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내 눈에 흙이 들어 가도 그렇게 나를 고문하였던 사람을 용서할 수 없어.”
이 말을 듣고 물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자네는 아직도 그 사람들의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구먼. 용서를 못 하면 용서하는 순간까지 그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딕 티비츠(Dick Tibbits) 심리학자는 <살기 위해 용서하라>(forgive to live)라는 책에서 용서의 유익을 세 가지로 말했습니다.
1. 평화를 경험하기 때문에, 용서하여야 합니다.
2. 희망을 보기 때문에, 용서하여야 합니다.
3.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로 바로 가기 때문에, 용서하여야 합니다.
국제 정신 분석가 이무석 교수가 말해 주는 용서 이야기입니다.
신학박사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극히 가난한 집에서 태어 났습니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날마다 술에 취하여 살았습니다. 항상 식구들에게 폭행을 가하고 난동을 피워서 하루도 가정이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술 심부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돈을 주지 않고 술을 사 오라고 호령을 내렸습니다. 가난하여 돈이 없었습니다. 술을 사 오지 않으면 그 날은 폭행에 난동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술을 사 오라고 하면 빈 술병을 들고 주막으로 갔습니다. 돈이 없어서 문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주인이 불쌍하다고 하면서 술병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공짜로 반 병을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술병을 받아 들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놈아! 왜 반 밖에 없나? 네가 반을 마셨지?”
그리고 마구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아프게 맞았습니다. 억울하였습니다. 눈물이 핑그르 돌았습니다. 그 후 아버지를 원망하며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살았습니다. 모든 식구가 아버지와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아버지를 찾아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인 아내가 연탄재를 방안으로 가지고 와서 물감과 섞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버려진 연탄재가 좋은 재료가 되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쓸 모 없는 연탄재 같은 분이시다. 그러나 내가 오늘 여기에 있기까지는 아버지가 꼭 필요하였다. 아버지가 있기에 내가 있다.”
그는 곧 아버지를 용서하였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아지를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홀로 살고 있던 아버지와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용서는 새 출발입니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어 내는 도끼에 향을 묻혀 줍니다. 향나무를 찍은 도끼에서는 향 냄새가 피어 납니다. 자기를 괴롭힌 사람을 용서하며 향기를 묻힐 때 새로운 생활이 시작됩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애굽에서 죽자 형님들은 요셉이 자기에게 복수할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창 50;16-17)
이 말을 들은 요셉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왜 울었을까요?
형들이 벌벌 떨고 있는 것이 가엽게 보여서 울었을 것입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 50;19-21)
요셉은 용서하였습니다. 모두가 울었습니다. 용서는 모든 허물을 다 녹여 버리는 용광로입니다.
속상한 일, 억울한 일, 모욕을 당한 일로 인하여 밤 잠을 자지 못 하고 새벽까지 뒤치락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수면제가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러나 그 모든 영혼의 쓰레기를 태우는 소각제가 용서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나면 벌들이 윙윙거리고 날아 옵니다.
나비가 두 날개를 여유있게 날리며 다가옵니다.
매미와 쓰르라미가 우렁차게 노래하는 환희를 맛보게 됩니다.
펜실바니아에 피터 밀러라는 나이 많으신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온 교우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교회 이웃에 교회를 핍박하고 목사님을 헐뜯고 모욕하는 악질 이웃 한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살인죄를 짓고 사형 언도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이 소식을 듣고 60마일 약 100 km나 되는 먼 곳을 걸어 갔습니다. 워싱톤 장군이 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에게 사형을 면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끈질긴 요청에, 목사님에게 워싱톤이 물었습니다.
“왜 살려 달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목사님이 대답하였습니다.
“저 사람은 나의 가장 큰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워싱턴 장군은 감동을 받고 사면장을 써 주었습니다.
목사님은 15 마일 약 23km 떨어진 사형 집행장까지 뛰었습니다. 마침 교수대에 묶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목사님을 보자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 늙은 목사가 내가 교수형을 당하는꼴을 보고 기뻐하려고 오는구나!”
목사님은 사명장을 찢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 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참았습니다. 목사님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 가 사면장을 보여 주며, 악질 원수를 살려 주었습니다.
그 후 그는 목사님과 교회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용서는 용광로라는 사실을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구 선생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였습니다.
일본 헌병이 한국 청년을 매수해서 김구 선생을 암살하도록 지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얼마 안 가서 붙잡혔습니다. 사람들은 그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한 청년을 처형하려고 김구 선생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청년을 잡았습니다.“
김구는 여유있게 말했습니다.
“풀어 주어라.”
그리고 그 청년을 안고 말했습니다.
"내가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한국 청년을 여기서 만나니, 실로 감격스럽다.“
이 청년은 김구 품에 안겨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소리쳐 말했습니다.
“독립군으로 끝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김 구 독립운동에 생명을 걸고 충성을 다 하였습니다.
용서는 용광로입니다. 모든 것을 녹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가 없는 곳은 살벌한 곳입니다.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상처에는 상처로, 죽임에는 죽임이로입니다.
어느 운전수가 실수로 부잣집 아들을 치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장이 물었습니다.
“벌금을 원하십니까? 이 사람을 감옥에 넣기 원하십니까?”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나는 부자라 돈이 필요 없습니다. 이 사람 감옥에 앉아 있는 꼴도 못 보겠습니다. 아들을 죽인 대로, 죽여 주십시오.”
그래서 길거리에 눕혀 놓고 자동차를 운전하여 치어 죽였습니다.
세상에... 용서가 없는 곳은 살벌한 곳입니다.
반대로 용서가 있는 곳은 푸근한 사랑이 넘치는 곳입니다.
미국에서 되어진 이야기입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교도소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독방에 20대 남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감방 주변에는 온갖 오물들이 널려 있었고,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지만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벽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리스터 웰본이라는 남자인데, 네 명 여자를 죽인 사건에서 한 명을 죽인 죄로 잡혀 사형 언도를 받고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도소에는 밥 맥얼리스트라는 교도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한지 1년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리스터가 교도소로 들어 오는 순간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감방을 찾아 갔습니다. 벌레가 우굴거리고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밥은 리스터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야기를 하여 주었습니다. 성경 이야기도 하여 주었습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혼자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기도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도관 밥이 그 방을 방문하였을 때, 달라진 모습을 보았습니다. 방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습니다. 둘이는 손을 잡고 같이 기도드렸습니다. 그 날부터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는 바쁘다고 아들 러스티를 방치하여 두었었음을 알았습니다. 러스티는 동네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살았습니다.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아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학교도 그만 두었습니다. 다리 밑에서 잤습니다. 때로는 공중 화장실에서 잤습니다.마약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교도소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러스티는 성경공부를 통하여 놀랍게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 공부를 하던 러스티가 어느 날 자기의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자기가 살해한 여자의 가족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는 고백을 처음으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죄를 예수님을 통하여 용서하여 주셨다는 확신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족들에게 입힌 피해를 보상할 길이 없어서, 아프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자기를 괴롭혀서 너무나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하여 가족들을 만나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며칠 후에 러스티는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살해한 여자의 오빠가 보낸 편지였습니다.
이 오빠 역시 러스티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러스티가 괴로워하고 있던 그 순간에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동생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주님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러스티를 용서한다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사형 집행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습니다. 오빠 부부가 러스티를 찾아 왔습니다. 둘은 부둥켜 안고 울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얼마 후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러스티는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용서는 용광로입니다.
3. 용서는 새로운 출발입니다.
용서하면 새로운 출발이 됩니다.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는 순간부터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용서는 신선한 시작이며, 새로운 출발에 필요한 분위기를 창출하는 매체다.”
용서 받은 사람은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용서하는 사람도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 용서는 시작입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는 사람을 용서하였습니다. 그의 얼굴은 천사 같이 빛나며 새로운 천국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로 새로운 출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용서 받은 사람 가운데 바울이 있습니다. 바울도 스데반을 죽이는 데 옆에 있었습니다. 행8장 1절에서 바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바울은 9장에서 변화되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이 갑자기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을 죽을 때 동참하였습니다. 그 때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같이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그 때 이렇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저렇게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천사같이 평안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그 때부터 바울에게는 심경의 변화가 일어 났을 것입니다. 용서 받으면서 새로운 출발이 되었습니다.
용서는 새 출발입니다. 용서받는 사람이나 용서하는 사람이나 같이 새롭게 출발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자기 치료제입니다. 용서는 용광로입니다. 용서는 새로운 출발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한 젊은 부인이 어두운 밤 으슥한 골목에서 어떤 청년에게 큰 봉변을 당하였습니다. 핸드폰 전화 신고를 받은 경찰들이 즉시 현장으로 달려 왔습니다.
"어떻게 생긴 사람입니까?”
부인은 정신 없이 외쳤습니다.
"곱슬머리였습니다. 곱슬머리!“
그 때 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곱슬머리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곱슬머리 청년은 즉시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뒤늦게 경찰서로 달려 온 부인의 남편은 너무나 곱슬머리 청년을 보자 말자 죽을 정도로 잔인하게 패기 시작하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말려도 소용 없었습니다. 경찰들이 빨리 뜯어 말리지 않았으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며칠 후 곱슬머리 진짜 범인이 잡혔습니다. 이 청년은 무협의로 풀려 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곱슬머리 청년은 이를 갈며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기회만 보면서 칼을 가슴에 품고 다녔습니다. 기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을 품었습니다. 오직 복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어머니가 알았습니다.
“아들아!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
"어머니! 나 너무 억울해 견딜 수가 없어요. 확인도 안 하고 나를 죽일 듯이 팼어요. 변명할 틈도, 이야기 할 여유도 주지 않았어요. 그 놈을 기어코 죽이고 말겠어요.”
"아들아! 그 사람 입장으로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라. 예수님은 자기를 죽인 사람들까지도 용서했단다.“
"어머니, 말리지 마세요. 나는 너무 억울해요."
어머니는 아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이상한 소리에 곱슬머리 청년이 잠에서 깨어 났습니다. 옆 방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였습니다. 나가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복수의 마음의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로소 용서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딤전1:12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마태복음 6:14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18:21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 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 오매,
25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가복음 11:25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6:37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누가복음 11:4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누가복음 17: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분노의 해악성
품은 화를 잘못 다스리면, 화병이 된다. 그리고 이 화병은 정신은 물론, 육체와 생활에 큰 손상을 입힌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정신 신체 의학연구 개척자인 월터 캐논 박사는 [화의 구름]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 구름이 뇌신경에 모이면 눈에 핏발이 서고, 얼굴이 붉게 상기되며, 말을 더듬게 되는 증세가 생긴다고 분석한다.
캐논 박사는 화의 해악성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한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며, 피가 위와 장기에서 심장 중추신경계근육 등으로 역류한다. 소화관의 기능이 중지되고, 간에 저장되어 있던 당분이 유출된다. 그리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우리는 순간 순간 절제할 수 없는 화, 그 짐을 예수께 맡기며 살아야 한다.
실수는 상처를 남긴다
켄터키 주에서 헤이즐 패리스가 살았다. 렉싱턴이었다고 한다. 그의 어린 아들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한 방안을 세웠다.
아들이 잘못을 했을 적마다 그를 데리고 가서 문설주에다 못 한 개씩을 박았다. 얼마 못 가서 그 문설주는 소나무 가지에 솔잎처럼 못이 총총 박혔다.
그 다음 패리스는 그 아들에게 좋은 일을 할 때마다 못 하나씩을 빼주겠다고 약속했다. 얼마가 지나서 그 문설주에 박힌 못은 다 빠졌다.
그러나 못자국은 그대로 남았다.
예수님의 많은 이적 가운데도 흉터 없애는 이적은 하나도 없었다. 상처는 떠났으나, 흉터는 남아 있는 네 손가락을 보라. 당신의 무릎에서 정강이까지를 훑어 보라. 맹장을 떼어 낸 당신의 옆구리를 만져 보라.
상처는 떠났으나 흉터는 남아 있으리라.
한없이 자비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회개하면 용서하신다. 그러나 우리 잘못의 흔적은 남는다.
흉터가 꼭 부끄러운 것인가?
물론 선한 일을 하다가 얻은 흉터는 자랑스러운 것이다.
잘못해서 얻은 흉터라고 해서 볼 적마다 상심해야 하는가?
그것은 자학이다.
그 흉터는 당신의 실수의 흔적인 동시에 거기 있던 상처를 낫게 해 주신 하나님의 흔적이 은총의 아닌가?
고린도후서 2:10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에베소서 4: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골로새서 3:13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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