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9,10장
유다인들이 자기를 보호한 역사, 부림절 제정
(찬송 14장)
2024-6-26, 수
맥락과 의미
8장에서는 유다인을 멸망시키기로 한 날에 유다인들이 정당방위 할 수 있도록 하는 왕의 조서가 내려졌습니다.
9장에서는 그 조서에 따라 유다인이 자기를 보호한 역사를 기록합니다. 그것을 기념하여 부림절이라는 명절을 제정했습니다. 10장은 모르드개가 왕의 2인자로서 유다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이야기해줍니다.
1. 유다인을 죽이려는 대적들을 유다인이 죽임(1-19절)
2. 부림절을 제정(20-32절)
3. 모드르개가 페르시아의 2인자가 되고 페르시아가 안정(10장)
1. 유다인을 죽이려는 대적들을 유다인이 죽임(1-19절)
1) 왕의 명령과 모르드개의 명성으로 거룩한 전쟁(1-5절)
유다인의 대적들이 유다인을 12월13일에 제거하도록 허락한 왕의 조서가 있었습니다(1월에 발표, 3:12-15). 그러나 유다인이 오히려 자신을 공격하는 원수들을 제거할 수 있게 허락하는 왕의 두 번째 조서가 발표되었습니다(3월에 발표, 8:11-13). “제거하다”는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전쟁하여 이기는 것입니다.
12월 13일이 되었습니다. 페르시아 전 지역의 국민들이 유다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왕의 모든 관리들이 유다인들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유다인의 지도자 모르드개의 명성이 페르시아 전 지역에 퍼졌습니다.
2) 적들에 대한 전쟁의 승리와 안식(6-19절)
수산성에서 첫 번째 전쟁(6-10절): 수산 성에서 유다인은 500명의 적을 죽였습니다.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유다인을 죽이려는 주동 세력이었을 것입니다.
수산 성에서 두 번째 전쟁(11-15절):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에게 소원을 묻습니다. 그녀는 다음날인 14일에도 하루 더 적들을 죽이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미 죽은 하만의 열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왕은 허락했습니다. 하만의 열 아들을 나무에 달았습니다. 수산에서 유다인의 적들 300명을 죽였습니다. 재물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지방에서 전쟁(16절): 지방에서도 유다인들은 함께 모여 생명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적들을 75,000명을 죽였습니다. 재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이 전쟁의 목적은 부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유다인들이 벌인 전쟁의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보존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려는 대적들을 멸망시킴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벌인 자기방어 목적의 정당한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주요 적은 하만의 민족인 아말렉 족속이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아말렉 사람을 포함한 가나안 민족은 다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출 17:8, 14-16, 신 25:17-10, 삼상 15:18-19).
승리의 축제(17-19절): 적들을 이긴 후 유다인은 쉼의 축제를 했습니다. 지방에서는 14일에, 수도 수산에서는 15일에 축제를 했습니다. 잔치를 벌이고 함께 선물을 주고 받았습니다.
“쉼”(16,17,18,22절)을 누렸습니다(16절에는 “벗어나며”, 22절에는 “평안함”으로 번역). 가나안 정복 후에 하나님의 백성이 쉼을 누리는 것과 비슷합니다(신 25:19, 수 21:44, 삼하 7:1). 비록 남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상황이었지만 거기서도 가나안 정복과 기업을 누리는 것과 같은 쉼을 경험하였습니다.
2. 부림절을 제정(20-32절)
1) 모르드개의 편지: 유다인의 절기 부림절을 제정하여 지킴(20-28절)
모르드개는 페르시아의 모든 지역에 있는 유다인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매년 12월 14일과 15일을 특별한 명절로 지키게 했습니다. 주전 474년에 자연스럽게 시작한 기쁨의 축제를 매년 하도록 했습니다. 유다인이 대적으로부터 안식을 얻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좋은 날)이 되었습니다.”(22절)
예레미야 선지자는 포로로 있던 백성들이 돌아올 때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렘 31:13).
이 기쁨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주전 537년, 1차 포로귀환). 그로부터 60여년 지난 모르드개의 때(주전 474년)에 이방 지역에서도 하나님께서 그 기쁨을 주십니다.
모르드개는 유다인이 매년 12월 14일과 15일에는 축제하며 기뻐하고 선물을 보내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게 했습니다. 유다인은 자기들이 하기 시작한 것을 계속했습니다. 또 모르드개가 명령한 대로 계속했습니다.
하만이 제비(부르)를 뽑아 유다인을 죽이기로 한 날이 바로 12월 13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명절의 이름을 “부림”이라고 했습니다. 유다인뿐 아니라 유다인과 화합한 자들이 대대로 두 날, 14, 15일을 명절로 지키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2)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부림절을 강조하는 두 번째 편지(29-32절)
부림절을 제정하는 첫 번째 편지는 모르드개가 보냈습니다. 두 번째 편지는 “아비하일의 딸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함께 보냈습니다(29절). 2:15의 표현을 그대로 씁니다. 에스더가 왕후로 뽑히는 과정에서 쓴 말입니다. 그녀는 바로 이때를 위해 왕후가 되었고 그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화평하고 진실한 말”(30절)로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같은 말이 스가랴서 8장 16-17절에도 나옵니다.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스가랴 8:16).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하는 것입니다. 부림절이라는 절기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진실과 평화가 있는 공동체로서 살기로 헌신했습니다.
31절은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이름의 순서를 바꾸어서 말합니다. 두 사람이 명하여 부림절을 제정했습니다.
“금식하고 부르짖은 것을 말미암아” 이 절기를 제정했습니다. 4장에서 백성들이 금식하고 부르짖은 것(4:1-3)이 이런 구원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부림절은 축제의 날이지만, 마지막은 금식과 부르짖음을 말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셨을 때, 그냥 즐거워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그 큰 탄식과 고통에서 구해주신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부림절은 율법서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교회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이 절기를 제정하였습니다. 에스더 성경에서 이 절기가 나온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약 절기로 인정하게 합니다.
3. 모드르개가 페르시아의 2인자가 되고 페르시아가 안정(10장)
1장에서 아하수에로 왕의 페르시아 왕국을 말하면서 시작했습니다. 10:1은 그 나라에서 세금을 걷으며 나라가 안정되었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모르드개는 왕 다음으로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백성의 이익(좋은 것)을 도모하고 모든 종족(씨라는 뜻)을 안위했습니다(평화롭게 함).
부림절에 대한 편지에서 “평화”를 선언한 대로 모르드개는 계속해서 그 백성에게 평화를 제공했습니다. 비록 이방인 나라에 있었지만, 모르드개는 이방 나라에도 유익을 주고 자기 백성에게도 유익을 주었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되어 이집트에 유익을 주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한 것과 같습니다.
2절에서는 말합니다. 모르드개에 관한 것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이것은 유다의 왕들에 대해 쓴 표현입니다(왕상 11:41 등). 모르드개는 이방 나라에서 유다인의 왕과 같은 역할을 했음을 암시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이것이 에스더의 긴 이야기입니다. 남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 전체는 멸망할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은 살아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려는 자들을 오히려 죽이면서 살아남았습니다.
이 날을 기념하여 부림절이라는 명절을 제정했습니다. 모르드개가 페르샤의 가장 높은 지위에서 다스리면서 하나님의 백성은 평화와 행복 가운데 살았습니다. 이 모든 회복의 이야기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신 일입니다.
지금도 유다인들은 12월에 부림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림절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부림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낮은 곳 말구유에 태어나 우리의 고통과 죄를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페르시아 왕에게 중보한 에스더보다 완전한 중보자이십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다 죽어야 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의 공로로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간구하십니다.
오늘도 살아갈 때 특별한 환상이나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 성도들과 교회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합시다.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실 때, 고통에서 해방해 주실 때 온 마음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즐거워합시다. 성도들이 함께 즐거워하며 함께 나눔을 실천합시다. 이 모든 것의 시작과 중심에는 주일의 예배와 성도의 교제가 있습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에스더 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
에스더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냥 유다인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지혜롭게 강인하게 살아남은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에스더 성경은 구약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은 유다인의 민족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백성을 선택하시고 거룩함을 나타내는 백성으로 성장시키는 이야기입니다.
에스더 성경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가 에스더를 왕비로 선택한 것은 하나님이 섭리가운데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만이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려는 음모를 시행하도록 허락하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의 간청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이 자위권을 행사하도록 해 준 것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구약 성도는 12월마다 부림절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축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상이나 음성이나 큰 기적으로 나타나시지 않아도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방지역에서 하나님께서 진실과 평화가 있는 공동체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부림절(주전 474년)을 제정한 16년 후에(주전 458년) 에스라는 페르시아로부터 다른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율법을 바로 배우고 순종하며 신앙을 새롭게 했습니다. 얼마 후 주전 445년에 느헤미야가 돌아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신앙 공동체를 새롭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