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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차 >>
-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우루무치공항에 도착한 후, 우루무치역에서 야간침대열차를 타고 타클라마칸사막을 지나
카스에 도착하면서부터 이번 여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카스에서 쿤제랍패스를 넘어, 훈자를 거쳐 이슬람아바드까지 카라코람하이웨이를 완주한 후에, 라왈핀디와 페샤와르, 머리,
라호르 등 파키스탄의 여러곳을 둘러보고, 인도로 건너가 암리차르와 다람살라를 거쳐 델리에서 귀국행 비행기를 타게되는 여정이다.
- 이번의 오지 장기여행은, 22일 일정팀원과 36일의 추가일정팀원 16명과 인솔자 2명 등 모두 18명이 함께 하였으며,
투어인케이씨 카페와 웰컴투파키스탄 카페의 두 카페에서 공동으로 기획하고 인솔한 여행이었다.
- 이번 여정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이유로 참가하지 않겠다는 집사람을 설득하여, 근 1년만에 집사람과 같이 여행길에 나섰다.
- 집합장소인 김포공항 국제청사에 10:30경에 일행들이 모였다.
사전에 카페에서 두번에 걸쳐 사전설명회를 가진 덕분에, 대부분 낯이 익은 얼굴들로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 케이씨대장님과 2명의 회원은 10일전부터 실크로드여행길을 떠났기 때문에, 웰컴투파키스탄 카페의 주인장인 복마니님의 인솔하에,
15명의 일행이 중국 남방항공 CZ318편으로 김포공항을 출발한다 (12:30).
훈자의 왕자님으로 통하는 복마니님에 대해서는, 앞으로 여행기 내내 자주 언급을 하게 될 것 같다.
(김포공항 대합실에서 복마니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들)
- 김포공항을 출발한지 2시간 후에 북경공항에 도착했다 (오후 2:30 / 북경시간 오후 1:30, 이후로는 북경시간임).
(북경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는 중)
- 북경공항에서 남방항공 CZ679 국내선 비행기로 환승 후, 우루무치를 향해 출발한다 (오후 5:30).
(북경공항에서 화물 무게를 재는 곳에 올라 몸무게를 재어본다)
- 북경공항 출발 후 4시간이 지나, 우루무치공항에 밤 9:30에 도착했다.
밤시간대인데도 우루무치는 환한 대낮인 이유는, 그 넓은 중국대륙 전체가 동일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중국의 정책 때문이다.
신장지역의 생활에 맞는 실제 시간은, 북경시간에서 2시간 정도를 빼야한다.
- 이러한 연유로, 신장지역에서는 관공서 등에서 사용하는 북경시간과 이에서 두 시간을 뺀 신장시간이 병용되고 있으며,
일반인들의 생활에 관련된 시간은 신장시간이 더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위구르인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과 맞물려, 위구르인들의 일상은 신장시간에 맞추어져 있는 것 같다.
- 우루무치공항에서 3명씩 짝을 지어 택시를 타고, 홍산공원 뒷편에 위치한 숙소인 '여가주점'에 도착했다 (밤 10:30, 택시비 70위안).
10일간의 실크로드여행을 마치고 먼저 도착해있는 케이씨대장님과 두명의 회원께서, 호텔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 나는 몇년전만 해도, 우루무치라고 하면 어디 먼 나라의 신기한 지명으로만 여겼었는데, 배낭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2년 전 여름과
작년 여름, 올해까지 모두 3번을 방문하게 되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는 중에, 우루무치에 올 때마다 들리게 되는 홍산공원 부근을 지나노라니, 감개무량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 호텔방 배정을 한 후에 배낭을 방에 내려놓고,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야시장에서 저녁식사가 시작된다.
호텔방 예약 사정 관계로, 나는 집사람과 떨어져 철인님과 오늘밤 룸메이트가 되었다.
- 이번 여행의 첫 저녁식사 시간에, 회원 각자가 간단한 자기 소개와 케이씨대장님의 여행일정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닭고기와 국수, 양꼬치, 맥주 등 푸짐한 메뉴의 본격적인 만찬이 이어진다.
(저녁식사 중)
(양꼬치를 굽고 있는 식당 주인)
- 밤 11시부터 시작된 술자리와 흥겨운 대화가 세 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자, 나는 새벽2시경에 일어나 호텔방으로 돌아와
취침에 들었다 (신장시간으로는 밤 12시).
(*) 신장위구르자치구 :
- 중국 영토의 1/6을 차지하여 (남한의 16배 크기) 중국에서 면적이 가장 큰 성으로 사막지역이 1/3을 점유하고 있고,
중국 석유보유량의 30%를 차지하는 등 풍부한 천연자원과 실크로드의 유산이 모여있는 곳이다.
- 위구르족과 한족을 비롯한 47개 민족이 살고 있으며, 인구는 약 2천2백만명이다.
위구르인은 한때 신장 인구의 90%를 차지했었으나, 1949년에 중국에 편입된 이래로 한족들을 이 지역으로 적극적으로
이주시키고 있는 중국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현재는 위구르인의 점유비가 50% 이하로 낮아졌다.
- 과거에 파미르고원과 천산산맥을 중심으로, 동투르키스탄(현재, 신장위구르자치구)과 서투르키스탄(현재,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구분되었었으나, 청나라 건륭제 때부터 중국이 본격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1944년에 카스를 수도로 하는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이라는 독립국을 선포하였으나, 1949년 9월에 중화인민공화국에 편입되었으며,
1955년 10월1일에 신장위구르자치구로 되었다.
- 한족과의 불신과 갈등의 골이 깊어, 현재도 약 50여개의 분리독립 운동조직이 활동중이라고 하며, 중국 정부에 대항하는 테러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 신장(新疆)의 뜻풀이 한 토막 :
- 신장의 한자어 뜻은, 새로울 '신(新)'에 영토 '강(疆)'으로, '새로운 영토'를 의미한다.
이 영토 '강(疆)'을, 신장의 지형에 맞추어 다음과 같이 풀이한 설명이 있다.
- 활 '궁(弓)' 안의 흙 '토(土)'는, 활로 얻은 (전쟁을 통해 얻은) 땅을 의미하며,
세 개의 한 '일(一)'자는, 위로부터 알타이산맥과 천산산맥, 쿤룬산맥을 의미하며,
두 개의 밭 '전(田)'자는, 위가 준가얼분지, 아래가 타림분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 2일차 >>
- 6:30에 기상하여, 홀로 호텔 주변을 산책해본다.
어젯밤 야시장이 열렸던 한국성 건물 앞의 광장을 둘러보노라니, 작년 여름에 한국성 건물 안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한국인 식당 주인과 얘기를 나누던 기억이 새롭다.
뒤에 케이씨대장님에게 식당과 주인의 근황에 대해 물었더니, 이번에 들러보니까 식당이 없어졌다고 하는 답변에 마음이 아팠다.
(한국성 건물 앞의 광장 - 청소부가 어젯밤 야시장의 쓰레기들을 치우고 있다)
- 8시에 호텔 앞에 집합하여, 짝을 지어 택시를 타고 우루무치 기차역에 도착하여 (12위안), 역 건물 옆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쌀죽과 만두로 아침식사를 한다 (3명에 24위안).
식사 후 역 주변을 구경도 하고 기차에서 먹을 과일도 구입하는 등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다가, 약속시간에 집결장소에 모였다.
(역으로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서며)
(아침식사를 한 식당)
(역 앞에서 과일을 구입하는 중)
(역 앞 집결장소에서)
- 이 우루무치역에서 기차 탑승시에, 이번 여행의 첫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 중국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기차 출발 30분 전에는 역 개찰구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상당히 여유있는 시간을 가지고, 사전에 인터넷으로 예약된 기차표를 끊기 위해 기차표 판매창구로 간 케이씨대장님께서는,
기차 출발 20분 전에도 집합장소로 오지 않는다.
다급해진 복마니님이 핸드폰으로 대장님과 통화를 해보니, 기차표 끊는데 시간이 지연되고 있으니, 회원들께서는 역 개찰구 앞으로 이동해
대기해달라고 한다.
- 우리는 개찰구의 역무원 바로 앞에 모여, '이러다가 기차를 못타는 거 아닌가?' 하는 초조한 마음으로 대장님을 기다리고 있다.
- 아마 기차 출발전 10분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 순간에, 케이씨대장님께서 땀을 흘리며 개찰구 앞으로 뛰어온다.
이후부터 우리일행은 "빨리 빨리"를 외치며, 개찰구와 X-ray 검색대를 지나 기차까지 달리기시합을 벌이게 된다.
역무원 한 명이 앞장서서 우리를 인도하며 뛰어가고, 우리는 무거운 배낭과 짐들을 등에 메고 손에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정신없이 역무원 뒤를 쫒아간다.
- 우리가 무사히 기차에 탑승하여, 모든 일행이 탑승한 것을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쉬자마자 기차가 출발한다 (9:50).
- 기차표 판매창구의 역무원의 컴퓨터 치는 속도가 너무 느리고 서툴러, 인터넷으로 예약된 기차표를 끊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대장님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우리 일행들이 기차에 탑승할 때까지 기차가 출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중국 역무원이 말했노라고 한다.
아무튼 우리일행은 바야흐로 대망의 장기여행이 시작되려는 찰라에, 운동 한번 제대로 한 셈이 되었다.
- 기차가 출발한 후 평상심을 되찾을 때쯤, 나는 대장님에게 물어보았다.
"만약 기차를 놓쳤으면 어떻게 할려고 하였느냐?"고 하였더니, "비행기 타고 가야지요."라고 대답한다.
- 나는 속으로 생각해보았다.
우루무치에서 카스까지의 항공료가 만만치 않을 터인데, 비행기보다는 침대버스가 더 낫지 않을까?
침대열차보다는 더 피곤하겠지만, 침대버스로 가면서 쿠얼러나 쿠처, 아쿠스 등도 잠깐씩이나마 둘러본다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특히, 타림분지 북쪽의 역사적인 오아시스 도시인 쿠처(구자국)는,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둘러보고 싶었다.
키질 천불동의 석굴과 후진 시대의 고승인 구마라습, 조선족 출신으로 '중국의 피카소'라 일컫는 한낙연과 당나라 시절의 혜초스님,
고선지장군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등, 많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고장이기 때문이다.
- 기차를 타기 위해 역 개찰구에서부터 기차까지 뛰어올 때의 긴박함을 서로 주고 받는 중에, 철인님께서 자신의 해프닝을 이야기하신다.
- 개찰구를 지나 X-ray 검색대를 통과할 때, 자신의 큰 배낭과 작은 배낭, 손가방 등 3개를 통과시켰는데,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손가방을 찾지 않고 기차 방향으로 달려가는 도중에, '아차, 내 손가방' 하였다는 것이다.
부리나케 검색대로 되돌아가보니, 자신의 손가방이 역무원 옆에 있었다고 한다.
역무원에게 그 손가방이 자신의 것이라고 하였으나, 역무원은 손가방을 인계해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손가방 안에는 캐논 카메라 등 무슨무슨 물건들이 들어있으니 내 가방이 맞는 것 아니냐라고 하며 항의를 하였더니,
가방 안의 물건들을 살펴본 후에야 손가방을 건네주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손가방을 건네받자마자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려서, 겨우 기차를 탈 수 있었다고 한다.
- 철인님의 해프닝을 기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예전에 나도 큰 배낭을 등에 메고 작은 배낭은 손에 들고 다니다가, 작은 배낭을 잃어버릴 뻔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여러 여행객들이, 배낭과 작은 가방을 2~3개씩 가지고 다니다가 분실한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부터 나는, 이동중에는 가능하면 작은 배낭을 큰 가방 속에 넣어서 다니곤 한다.
배낭이나 가방 수가 2~3개가 되다보면, 평상시에는 별 문제가 없겠으나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는 분실의 염려가 크기 때문에,
여행시의 주의사항으로 적어보았다.
더구나 분실 가능성이 많은 작은 배낭 안에는, 여행시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카메라가 들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철인님께서도 이후에는, 배낭과 손가방을 3개에서 2개로 줄여서 여행을 하셨다.
(철인님의 요 카메라가 분실할 뻔한 손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 우루무치에서 카스까지의 철도는, 총길이 1,446km로 1999년 12월에 개통되었으며, 27시간 안팎이 걸린다.
우리가 타고 가는 기차는, 하미에서 출발해 우루무치를 거쳐 카스까지 가는 K9786 쾌속열차다.
일행들이 탄 객실은, 상,하 복층으로 된 침대칸으로 한 방에 좌,우로 상,하 2개씩 4개의 침대가 있으며, 객차끼리 연결되는 부위에는
복층이 아닌 단층으로 상,중,하 3개씩 6개의 침대가 있는 구조이다.
나는 6개의 침대가 있는 방에 배정받았다.
(우리가 타고가는 기차)
- 우루무치역을 출발한지 3시간 정도 지난 후에 투루판역에 도착한다.
서안을 출발해 둔황을 거쳐 투루판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여행해본 사람에게는 매우 감회가 깊은 역이다.
투루판역에 내려서 우리나 한족과 외모가 완전히 다른 위구르인들을 보면서, '아, 내가 정말로 실크로드길에 들어섰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모두들 기차에서 내려 투루판역의 풍경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어본다.
(투루판역의 바깥 풍경)
(투루판역에서 다시 기차에 오르기 전에)
- 투루판역을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은 오후 1시경에, 식당칸으로 가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30위안).
- 기차는 천산산맥 남쪽과 타클라마칸사막 북쪽에 위치한 천산남로(서역북로) 실크로드길을 따라 난 철길을 달리고 있다.
일행들은 타클라마칸사막과 천산산맥 줄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거나 사진을 찍기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타클라마칸사막과 천산산맥 풍경들)
(*) 타클라마칸사막 :
- 위구르어로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의미로, '죽음의 모래바다'로 알려진 사막.
-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타림분지 중앙에 위치하며, 아프리카의 사하라사막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사막으로,
동서 1000km, 남북 400km에 달하며, 대한민국의 2.7배 크기이다.
- 북쪽의 천산산맥과 남쪽의 곤륜산맥, 서쪽의 파미르고원 등 높은 산맥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사막 북부와 남부의 가장자리에
비단길이 있다 (천산남로 또는 서역북로와 서역남로 비단길).
- 중국 정부가 석유 채굴과 자원 탐사 등 서부 대개발사업의 일환으로, 타클라마칸사막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2개의 사막공로를
건설했다.
ㅇ. 제1사막공로 : 민펑 ~ 룬타이간 530km로 1998년 완공.
ㅇ. 제2사막공로 : 호티엔 ~ 아쿠스간 430km로 2007년 완공.
(*) 타클라마칸사막 주변 지도 - 노란 선은 대표적인 실크로드를 표시하고 있다 (* 출처 : 한국어 위키백과)
- 저녁 6:30경에 도시락을 구입해 (20위안), 맥주와 더불어 저녁식사를 한다.
(대장님, 맛있수? - 거참, 먹어보라는 말 한마디 없이 다 먹어버리네 그려..)
(에이, 내가 돈이 없나, 입이 없나 - 나도 도시락을 구입해 맥주까지 마시는 중)
- 밤 9:20에 타림분지 북쪽에 있는 오아시스도시인 쿠얼러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기차역 풍경도 구경하고, 맨손체조를 하며 몸도 풀어본다.
(쿠얼러역에서)
- 맥주와 음료수를 마시며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 11시가 되어 열차 안이 소등을 하자 침대에 누워, 여러 상념에 빠져들다가
잠이 들었다.
'아, 내가 타클라마칸사막을 지나가고 있구나..'
첫댓글 넓디넓은 타클라마칸 사막에도 무덤이 있고 그 무덤을 찿는 후손이 있던데 위성이 없던 20년 전에 우째 찿아가는지 또 교통수단은 어케했는지를 궁금해하며 다녔는데 사진을 보면 너무 많이 변해버린 실크로드를 저도 다시 가 봐야지 합니다.득음님 당산동 모임에서 뵈어요.모임때 갈께요.
흐니님 다녀 오세요 저는 노참석
득음님..왜? 노참석이에요? 나 얼굴보고픈데...
흐니님은 보고싶포나도 그래도
이번 여행이 힘들어서 참가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파키스탄을 별로 가고싶지가 않았다
내가 알고 이미지는 위험국가, 장수마을 훈자, 무슬림국가 ,파키스탄 노동자 정도 였다
여행에 따라 나선것은 라다크까지 간다고 해서 간것이다
예전에 사천성 갈때 야딩과 쓰꾸냥산 등을 같이간 서재익님이 그 여행을 120% 만족이라고 했는데 나도 파키스탄 여행을
120% 만족이다 파키스탄은 가봐야 알수 있는 나라다 훈자의왕자 복마니님이 파키스탄에 살고 있는것을 이해할것같다
서양에서는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고 동양에서는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삶은 여행이다
나이가들면 몸이굳어지고 생각이굳어지고 호기심도 사라진다
그래서 시간과 만만치 않은 금전을 들여 여행을 떠날때는 산, 강 사람 문화 역사 시장등등 볼수있고 만날수 있는것은 하나라도 더볼려고 한다 다시 이나라를 못올것처럼
여유있고 게으르고 한가하게 살고있기 때문에 때로는 편안하고 익숙한 삶이 지루하 다
길을 나섰을 때만이라도 나사를 조여서 많이보고 경험하고와서
추억을 되새김질 하려고한다
생전 들어본 적이 없던 트루판, 타클라마칸이란 지명이 벌써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대장님은 우리 형부 좀 주지! 침 꿀~꺽~ 삼키는 모습이 아주!! 아주!!리얼합니다 ㅎㅎㅎㅎ
실크로드 여행가면 저런 지명 다볼수 있어요
패키지 여행만 다니다 배낭 여행 한번해보자고 해서 첫배낭 여행이 실크로드였는데 그때 자주다니던 산악회에서 회원만 모집해주고 알아서 기차표도 사고 숙박도 하라고 15명이 떠났는데 그때는 우루무치를 점만찍을수 있어도 감사하다고 생각할때 였어요 인터넷에서 자료 찿다가 케이씨카페에 올라온 케이씨카페 에서 첫실크로드 여행후기를보고 약수터님이 내가 원하던 카페가 이런곳이야 하며 당장에 당산동카페에들려 내몽고를 신청했는데 그때내몽고가 마감된후라
2만원을 더내야한다고 해서 그러면 나중에 가겠다고 했더니 수연씨가 더받지 않고 정가로해서 2010,7,1 ㅡ7,7일
내몽고 첫 여행을 한후 배낭여행자가 여행후기가 얼마나 절실하게 배낭여행하는데 필요하다는것을 알고 내몽고여행후기부터
지금까지 여행할때마다 여행후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약수터님이 그때 나보고 김수연이 김광철씨 딸이라고 했습니다
이 댓글 수연씨 기쁨에 웃고 ㅎㅎㅎ대장님 충격에 울것 같은. 흑흑흑.
지난 2월 운남성 갈때 약수터님 여행 후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케이씨 카페 실크로드 여행기도 내가 발견해서 약수터님 보여 주었더니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것 같았어요
그때 남자들만 실크로드를 간 단체사진(남자11명 : 보이는게 다가 아닙니다)
우리 실크로드갈때는 남자5 명에 여자10명 이고 처음만난 사람들이 인솔자도 없이 7,27 ㅡ8,10(15일) 성수기때
뙤약볕에 장난이 아니었는데 그 고생이 다 나중에 도움이되고 추억이되고
약수터님이 내몽고 여행기쓸때 처음 써보는것이라 글 쓸줄도 사진 올릴지도 몰라서 일본에 있는 히메님에게 일일이
물어서 여행기 올렸는데 지금은 능숙해져서 격세지감입니다
이것이 인연이되어 히메님도 이카페로 귀주성도 운남여행도 하게 되었지
푸하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수연씨가 광철씨 딸이라고...
츠암나~ 남정네들 눈이라...증말 작동을 제대로 못하십니다요.
아님 득음님이 식탁이 부실해서 시력이...
시력이 제대로 작동을 못한 게 아니고요. 카페 방문 전에 통화한 수연씨의 목소리가, 꾀꼬리같이 너무 낭랑했기
때문이라요. 그라믄 청력이 잘못된 건가?
아무튼 이 부녀지간 발언 때문에, 수연씨와 케이씨대장님 모두 쇼크 먹었었지유.. ㅎㅎ
첫 사랑에 실패만 안 했어도 수연이 같은 딸이 있었을거에요,,,,보통 이리 말하지요,,,,ㅎㅎㅎ
수연이가 좀 어려보이고 저는 좀 들어보이고ㅎㅎㅎ
암튼 이 이야기는 오래 갈듯 합니다,,,ㅎㅎㅎ
ㅋㅋㅋ 약수터님 완전 웃겨요... 어떻해 화물 무게 재는 곳에 올라 가셨는지... 지금도 기억이 새록 새록... 다시한번 이 팀 그대로 멀리 떠나고 싶습니다... 그립네요.. 벌써...날좀 보소 날좀 보소~~~ 여행기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상에 복마니가 노출이 않되어있는데... 이번에 완전 노출이 다 되어 버렸습니다... T.T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파키스탄 여행이 벌써 오래 지난 추억이 된것같아요
약수터님 여행기 덕에 그길을 다시 걸어봅니다
왕자님은 많이 알려져야해요. 왜냐하면 왕자님이니까
북경공항에서 잰 몸무게가, 이번의 장기 오지여행 후에는 좀 빠질 거라 예상했는데, 집에 와서 재보니 그대로네요.
아마도 복마니님께서 우리들을 너무 잘 멕이고 즐겁게 인솔한 덕분이 아닌가 합네다.
복마니님은 온라인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상에서도, 마땅히 널리 노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유.
왜냐하면 훈자의 왕자님 몸매는 끝내주니까.. ㅎㅎ
우루무치 역에서의 사건은 두고두고 교훈이 될겁니다,,,,,







거진 2시간 전에 도착해서 인터넷으로 예약한 표를 바꾸는데 애 먹었습니다
줄은 길고 겨우 제 차례가 왔는데 신분증으로 18명의 여권을 들이대니 역무원이 급 당황,,,
한 30분 걸린듯합니다,,,기차 출발 시간이 지날것 같으니까 역무원이 먼저 애기하더라구요,,,우리 다 타야 출발하니까 걱정말라구요,,,,
암튼,,,,시끕했어요,,,
대장님이야 골치 아프시겠지만, 나는 기차를 놓치길 은근히 바랬었지요.. ^^
좀 불편하더라도 침대버스로 가면서, 타클라마칸사막에 있는 오아시스마을의 분위기 등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무척 아쉽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