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준구미]
빗줄기가 멈춘 구름 사이로 옅은 햇살이 드러난다. 근처 몰운대로 산책을 나섰다. 입구 주차장은 한산하여 빈자리가 오히려 많다. 시멘트 경사로를 따라 몇 걸음을 옮기자 곧게 자란 소나무 숲이 마중을 한다. 흙길에 작은 자갈을 깔아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비가 그친 시간에 찾은 몰운대는 조용하다 못해 스산함 자체다. 어쩌다 마주치는 산책객은 한 두 명 정도다. 산책길 순환로 길이는 대략 3km정도로 정비가 잘 되어있어 반갑다.
다대객사에 올랐다. 조선 선조 25년(1592년) 녹도만호 정운 장군이 ‘장수가 나라를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찌 전쟁을 회피 하겠습니까! 제 한 몸 부서지고 물고기 밥이 되더라도 이 전쟁의 끝을 꼭 보고 죽을 것입니다’라고 출전을 다짐하고 전투를 벌이다 혼연히 전사한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에 다대포로 쳐들어온 왜구와 맞서 전투를 벌여 몸을 묻은 동네이기도 하다. 오솔길을 따라 내려간 바닷가에 자갈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비가 온 뒤라 파도는 거칠게 일렁인다. 물결의 크기에 따라 파도의 조화에 맞춰 구르는 돌의 화음은 파도 소리와 어울려 잠시 눈을 감고 즐기기에 금상첨화다.
다대포 해수욕장을 비켜 안고 내려다보는 산책로는 먼지 없이 흙길을 밟는 감촉이 정겹다. 기나긴 가뭄 끝에 대지를 적셔준 소나기가 고맙다. 나무 이파리는 생기가 느껴지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신선함을 준다. 구름과 안개 사이로 드러난 등대는 뱃길을 안내한다. 전망대 언저리에 머물러 안내판을 둘러본다. 쥐 섬, 모자 섬, 형제 섬 등 평소 모르던 지형을 알려준다. 호흡을 고르고 산책길을 돌아가는데 숲 속 물웅덩이는 동물의 갈증을 풀어주는 장소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화준구미 앞에 이른다. 화손대와 모자 섬 사이의 해협이다.
아시아의 물개로 불린 조오련이 일찍이 사의 찬미의 가수 윤심덕이 몸을 던진 험하기로 이름난 현해탄을 헤엄쳐 건넜다. 출발지가 이곳 화준구미다. 1980년 8월 11일 54km의 격랑을 헤치고 13시간 16분 10초 만에 다대포에서 대한해협을 건너 대마도에 도착하였다. 영국의 도버 해협과 더불어 험난하기로 이름이 난 대한해협을 헤엄쳐 건너 기상을 세계에 떨쳤다. 몇 사람이 도전하여 실패를 하였으나 철저한 사전 준비를 거쳐 마침내 이룬 쾌거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이 수영으로 한국의 기개를 드높인 횡단은 더 이상 뒤를 잇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과거와 현대를 연결해 준 화준구미. 임진왜란의 전쟁으로 엄청난 희생을 가져온 침입자의 첫 도착지는 역사의 깊이만큼이나 상처가 크다.
주변에 정겨운 산책길이 있다는 것은 혜택이다. 굳이 시간을 특별히 들이지 않아도 바로 접근할 수 있다. 산책은 사람들에게 주는 즐거움이 다양하다. 휴식과 삶의 보충이 이루어지는 장소 중 하나가 자연이다. 자연의 혜택 중에 숲과 물을 동시에 안겨주는 곳은 많지 않다. 산으로 갈까 아니면 바다로 갈까 선택의 고민이 필요 없다. 몰운대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주는 역사가 존재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에 안주하는 사람은 대부분 경쟁에서 뒤처지기 쉽다. 경쟁사회는 갈등과 동행하고 긴장을 동반하기도 한다. 인생의 단계마다 성취해야 할 과업이 존재하듯이 누구든 삶의 목표의식은 확인을 할 수 있다.
조오련이 대한해협을 헤엄쳐 건넌 도전 정신을 재조명 해 본다. 몰운대 산책길이 그 옛날 나라를 지키기 위한 싸움터였다는 사실은 잊혀 가는 것은 아닌지. 역사 인식은 어떻게 바뀌어 갈지 모른다. 임진왜란 때 왜구의 최초 침입지 몰운대가 조오련의 역사 기록으로 되돌아본다. 시민의 휴식처이자 자라나는 아이들의 자연 학습장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몰운대 화준구미가 다양한 기억의 장으로 인식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