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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 제11권
16. 초품 중 사리불의 인연을 풀이함
【經】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論】
【문】 반야바라밀은 보살마하살의 법이거늘 어찌하여 사리불에게만 말하고 보살에게는 말하지 않는가?
【답】 사리불은 일체의 제자들 가운데 지혜가 제일이니, 이는 부처님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다.
부처님을 제외하고
일체 중생의 지혜를
사리불과 견주려 하니
지혜와 지식에 있어서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네.
또한 사리불은 지혜롭고 많이 알아 큰 공덕이 있었다. 나이 여덟 살이 되자 18부(部)의 경1)을 외우고 경서의 모든 뜻과 이치를 통달했다.
이때 마가타(摩伽陀)2) 나라에 용왕 형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길리(姞利)3)요, 또 하나는 아가라(阿伽羅)4)였다.
때에 맞추어 비를 내리니 나라에 흉년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를 감사하여 항상 중춘(仲春)계절이 되면 모두 모여서 용이 사는 곳으로 가서는 큰 대회를 열었다. 풍악을 연주하고 진리를 토론하며 이 날 하루를 보냈다. 그 모임은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으니, 용의 이름을 따서 이 대회의 이름을 짓게 되었다.
이 날에는 의례히 네 개의 높은 자리를 마련했다. 하나는 국왕을 위한 것이요, 둘은 태자를 위한 것이요, 셋은 대신을 위한 것이요, 넷은 논사(論士)를 위한 것이었다.
이때 사리불은 여덟 살의 몸으로서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이 네 개의 높은 자리는 누구를 위해 베푼 것인가?”
이에 사람들이 대답했다.
“국왕ㆍ태자ㆍ대신ㆍ논사를 위한 것입니다.”
이때 사리불이 사람들과 바라문들을 관찰해 정신[神情]을 들여다보니 자기를 이길 자가 없었다. 문득 자리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앉으니, 대중들은 의아해하고 기이하게 여겼다.
혹은 생각하기를 ‘어리석고 무지한 짓이다’ 하고,
혹은 생각하기를 ‘지혜가 보통 사람을 지날 것이다’ 했다.
제각기 그의 신기하고 특이함을 가상히 여겼으나 또한 제각기 자존심[矜]을 품고 있었기에 그가 나이 어림을 부끄러이 여겨 직접 마주하여 이야기하지 못한 채 모두가 나이 어린 제자들을 보내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치와 이론이 월등히 뛰어나니, 이때 모든 논사들은 처음 보는 일이라 찬탄하며 어리석건 지혜롭건 크건 작건 모두가 굴복했다. 왕도 매우 기뻐하여 곧 관리[有司]에게 분부하여 한 고을을 봉헌해 항상 그로부터 물건을 보내주도록 했다.
왕은 코끼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방울을 흔들면서 열여섯 큰 나라와 여섯 큰 성에 이 사실을 널리 알리니,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때 이 사실을 알린 점술사[占師]의 아들이 있었으니, 이름이 구율타(拘律陀)요, 성은 대목건련이었다. 사리불과는 벗으로서 친한 사이였는데, 사리불은 재주가 총명하고 견해가 신중했으며, 목건련은 호쾌하고 고귀했다.
이 두 사람은 재주와 지혜가 비슷하고 덕과 행이 서로 같아서 다닐 때에도 함께 다니고 머물 때에도 함께 머물렀다. 짧건 길건 항상 정답게 지냈으며, 약속을 맺어 변치 않기를 원했다.
나중에 모두 세상을 싫어하여 집을 떠나 도를 배워 범지(梵志)의 제자가 되었다.
간절하게 도문(道門)을 구했으나 오래 지나도록 징조가 없기에 그의 스승인 산사야(刪闍耶)5)에게 이 사실을 물으니, 그는 대답했다.
“나도 도를 구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도과(道果)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없는 것인지, 과연 내가 도를 얻을 사람이 못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실제로 도를 얻지 못하고 있다.”
다른 어느 날 그 스승이 병들어 누우니, 사리불은 머리맡에 섰고, 대목건련은 발 곁에 서 있는데, 스승은 숨 가쁘게 임종을 재촉하면서 가엾은 듯 빙긋이 웃었다.
두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웃는 뜻을 물었더니 스승이 대답했다.
“세상 사람들은 바른 안목이 없어 은애(恩愛)의 침해를 당하고 있다. 내가 보니 금지(金地)6)의 왕이 죽었는데, 그 대부인이 스스로 불더미에 뛰어들어 한 곳으로 가려 했으나 이 두 사람의 행과 보가 각각 다르므로 두 사람이 태어난 곳도 동떨어지게 달랐다.”
두 사람은 스승의 말씀을 기록해 두어 그의 허와 실을 입증해보고자 했다. 뒤에 금지국의 상인이 멀리 마가다까지 왔기에 두 사람이 기록과 맞추어 보니, 과연 스승의 말과 같았다.
그러자 처연히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들은 진리를 아는 그런 사람이 못 되는구나. 이를 스승께서는 우리에게 숨겼던 것이로다.”
그리고는 서로 맹세했다.
“만일에 먼저 감로의 법을 얻은 이는 반드시 도와서 함께 완성합시다.”
이때 부처님께서 가섭의 형제 천 사람들을 제도하시고 여러 나라를 유행하시다가 왕사성에까지 오셔서 죽원(竹園)에 머무셨는데 두 범지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 함께 왕사성으로 들어가서 그 소식을 들으려 했다.
그때 아설시(阿說示)다섯 비구 가운데 한 사람라고 부르는 비구가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와 걸식을 하고 있었다.
사리불은 그의 거동과 복장이 특이하며, 모든 감관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음을 보고는 가까이 가서 물었다.
“그대는 누구의 제자이며, 스승은 어떤 사람인가?”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석씨 종족의 태자께서 늙음ㆍ앓음ㆍ죽음의 고통을 싫어하여 집을 떠나 도를 배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는데, 그가 나의 스승이시다.”
사리불이 말했다.
“그대의 스승께서 가르친 것을 나에게 말해 주시오.”
이에 아설시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나는 나이도 어리고
배운지도 오래지 않으니
어찌 지극한 진리를 펴서
널리 여래의 법을 말하랴.
사리불이 다시 “그 요점을 간략히 말해 주시오”라고 말하니,
아설시 비구가 이런 게송을 읊었다.
모든 법은 인연으로 생기나니
그 가르침은 인연을 설함이며
이 법은 인연에 의해 다한다고
우리 큰 스승께서 말씀하셨네.
사리불은 이 게송을 듣고는 곧 초도(初道)7)를 얻었다.
곧 목건련에게 말하러 가니, 목건련은 그의 얼굴이 화평하고 기꺼운 것을 보고 맞이하면서 말했다.
“그대는 감로의 법을 얻었는가? 나에게도 말해 달라.”
사리불이 곧 그를 위해 들었던 게송을 말해 주니, 목건련이 말했다.
“한 번 더 설명해 주시오.”
이에 다시 말해 주었더니, 역시 그도 초도를 얻었다.
두 사람[師]이 250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부처님께로 오니, 부처님께서는 두 사람이 제자들과 함께 오는 것을 멀리서 보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저 범지들의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보았느냐?”
비구들이 대답했다.
“이미 보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두 사람은 나의 제자 가운데서 지혜가 제일이며, 신통이 제일인 제자가 되리라.”
그들은 제자들과 함께 점점 부처님께 가까이 오더니, 이윽고 부처님 곁에 이르자 머리를 숙여 절하고 한쪽에 서서 다 같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불법 가운데 출가하여 계를 받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 “잘 왔구나, 비구여”라고 말씀하시니,
머리칼과 수염이 저절로 깎여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지고 의발이 갖추어져 성취계(成就戒)를 받았다.
반 달이 지난 뒤에 부처님께서 장조범지(長爪梵志)8)에게 설법하실 때 사리불은 아라한도를 얻었다. 반 달 뒤에 도를 얻은 까닭은 장차 이 사람은 부처님을 따라 법륜을 굴릴 스승이 될 것이기에 배우는 이의 경지에서 앞에 나타난 모든 법에 스스로 들어가서 갖가지로 갖추어 알아야 했다. 그러므로 반 달 뒤에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이러한 갖가지 공덕이 매우 많나니, 그러므로 사리불은 비록 아라한이었지만 부처님은 이런 까닭에 반야바라밀의 매우 깊은 법을 사리불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문】 만약에 그렇다면 어찌하여 처음에 사리불에게 조금만 말씀하시고 나중에 수보리에게는 많이 말씀하시는가?
만일 지혜가 제일이기 때문이라면 응당 그에게 많이 말씀하셨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다시 수보리에게도 말씀하셨는가?
【답】 사리불은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서 지혜가 제일이요, 수보리는 제자들 가운데서 무쟁삼매(無諍三昧)9)를 얻은 것으로 으뜸이다.
무쟁삼매의 특징은 항상 중생을 관찰하여 마음에 번뇌를 내지 않게 하고 가엾이 여기는 행을 많이 하는 것이요, 보살들은 큰 서원을 세워 중생을 제도한다.
곧 가엾이 여기는 모습이 같으므로 수보리에게 명하여 말하라 하신 것이다.
또한 이 수보리는 공삼매(空三昧)를 행하기 좋아했다.
부처님께서 도리천(忉利天)10)에서 여름안거를 보내 법랍[歲]을 하나 더하신 뒤 염부제에 내려오셨는데,
이때 수보리가 석굴 속에 있으면서 생각했다.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내려오셨으니, 내가 부처님께 가야 하는가, 가지 말아야 하는가?’
또한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지혜의 눈으로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관찰하면 그것이 부처님을 뵙는 가운데서 으뜸이다≻ 하셨다.’
이때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내려오셨기 때문에 염부제 안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하늘 무리가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은 또한 하늘 무리를 보았다.
좌중(座中)에 부처님과 전륜성왕과 하늘 무리로 이루어진 대중이 있었는데, 그 모임은 매우 장엄스러워서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이에 수보리가 생각했다.
‘지금 이 대중이 아무리 뛰어나게 수승하나 형세가 오래 머물 수 없으니, 달아 없어지는 법으로서 모두가 무상(無常)으로 돌아가리라.’
이러한 무상관의 초문(初門)에 의하여 수보리는 모든 법은 공하여 있지 않는 것임을 모두 알았고, 이러한 관찰을 행하자 곧 도를 증득했다.
이때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먼저 부처님을 뵙고 예배ㆍ공양하고자 했는데, 화색(華色)11)이라는 비구니가 여자라는 불편함[惡]을 버리기 위해 곧 전륜성왕과 7보로 장엄한 천 명의 태자로 변화하니, 사람들이 보자 모두 일어나 자리를 피해 떠나버렸다.
변화한 왕이 부처님께 가서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 비구니로서는 최초로 부처님께 예배를 했다.
부처님께서 비구니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처음 예배한 것이 아니라 수보리가 최초에 예배하였느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수보리는 모든 법이 공함을 관찰하였으니, 이는 부처의 법신을 본 것이며 참 공양을 얻은 것이다.
이는 공양 가운데 으뜸이니, 산 육신에다 예경한다고 해서 공양이 되는 것이 아니니라.”
이런 까닭에 “수보리는 항상 공삼매를 관하여 반야바라밀다의 공한 모습과 상응한다”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반야바라밀다를 말하게 하셨다.
또한 중생들은 아라한은 모든 누(漏)가 이미 멸하고 다했음을 믿고 공경하는 까닭에 그에게 명해 말하게 하셨으니, 대중이 맑은 믿음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보살들은 누가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만일 그들로써 알리고자[證] 한다면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사리불과 수보리로 하여금 함께 반야바라밀을 설하게 하셨다.
【문】 어째서 사리불이라 하는가?
부모가 지어 주신 이름인가, 아니면 수행의 공덕에 의해서 지어진 이름인가?
【답】 이는 부모가 지어 준 이름이다.
염부제에서 제일 안락한 곳에 마가타국(摩伽陀國)이 있고 그 안에 왕사(王舍)라고 하는 큰 성이 있으니, 왕의 이름은 빈바사라(頻婆娑羅)12)이다.
마타라(摩陀羅)13)라는 바라문출신의 논사가 있었는데, 왕은 그 사람이 토론에 능하다 하여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읍을 주었다.
마타라는 줄곧 가정에 머물렀는데, 아내가 딸을 하나 낳았다. 눈이 사리새[舍利]를 닮았으므로 그 딸을 사리14)라 불렀다.
다음에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무릎 뼈가 굵고 크므로 구치라(拘郗羅)15)[秦진나라 말로는 큰 무릎(大膝)이다.]라 했다.
이 마타라 바라문은 줄곧 집에 있으면서 아들딸을 기르며, 배우던 경서는 모두 폐지하여 잊고 다시 새로운 것을 익히지 않았다.
이때 남천축에 한 바라문 출신의 큰 논사가 있었으니, 이름이 제사(提舍)16)였다. 그는 열여덟 가지 큰 경[十八大經]을 모두 통달했는데 왕사성에 들어갈 때엔 머리에는 불을 이고 구리[銅]로 배를 감았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
“내가 배운 경서가 매우 많아서 배가 찢어질까 걱정이다. 그러므로 감싼다”라고 대답했다.
“머리에는 어찌하여 불을 이고 가는가?”라고 물으면,
“매우 어둡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물었다.
“해가 떠서 밝은데 어찌하여 어둡다 하는가?”
그가 대답했다.
“어두움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햇빛이 비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어리석음의 어두움에 덮인 것이다.
지금은 비록 해의 광명이 있으나 어리석음 때문에 오히려 어둡다.”
사람들이 말했다.
“그대가 아직 바라문인 마타라(摩陀羅)를 만나지 못했구나.
그대가 그를 본다면 배는 쭈그러지고 총명함[明]도 어두워지리라.”
그 바라문은 즉시 북 있는 곳으로 가서 논의를 청하는 북을 쳤다.
왕이 북소리를 듣고는,
“누구의 짓이냐”고 물으니,
신하들이 대답했다.
“남천축에 한 바라문이 있어 이름이 제사인데 큰 논사입니다. 토론할 대상을 구하기 위해 토론을 알리는 북을 쳤습니다.”
왕이 매우 기뻐하면서 곧 대중을 모아놓고 말했다.
“능히 힐난[難]할 자가 있다면 그와 토론해 보거라.”
마타라는 이 말을 듣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내가 오랜 동안 공부를 쉬었고 또한 새 업을 짓지도 않았으니, 내가 이제 그와 겨룰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가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오고 있었는데, 도중에서 때마침 두 송아지가 싸우려는 것을 보자 문득 혼자 생각하기를,
‘이편의 소는 나요, 저편의 소는 그라고 생각하고 이것으로 점을 쳐서 누가 이길지 알아보리라’ 했다.
그런데 이쪽의 소가 지고 말았다. 그는 문득 큰 걱정을 하면서 생각했다.
‘점괘가 이렇다면 내가 질 모양이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려는데 어떤 아낙이 병에 물을 담아 가지고 그의 앞까지 와서는 땅에다 던져 깨뜨렸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또한 매우 불길하고 심히 불쾌하도다.’
매우 불쾌한 마음으로 대중들이 모인 곳에 들어가서 그 논사를 보니, 얼굴 모양과 기상에 이길 징조가 갖추어지고, 자기는 질 것이 분명했다.
어쩔 수 없이 그와 더불어 토론하는데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곧 지고 말았다.
왕이 몹시 기뻐하면서 말했다.
“크게 지혜롭고 밝은 사람이 멀리서 우리나라에 오셨으니, 다시 한 고을을 봉해 주어 포상하고자 하노라.”
이에 신하들이 논의해 말했다.
“하나의 총명한 사람만 오면 한 고을을 봉하시면서 공신에게는 상을 주지 않으시고 빈 말씀으로 칭찬만 하신다면 국가를 다스리고 안정시키는 도가 아닌 줄로 여기나이다.
이제 마타라가 토론해서 졌으니 응당 그에게 봉했던 읍을 빼앗아서 이긴 자에게 주어야 합니다.
다시 또한 이기는 이가 생기면 다시 빼앗아서 그에게 주면 될 것입니다.”
왕은 그들의 말을 따라 당장에 빼앗아서 뒷사람에게 주었다.
이때 마타라가 제사에게 말했다.
“그대는 총명한 사람이니, 내 딸을 그대에게 시집보내겠노라.
사내아이가 태어나 대를 잇게 될 테니 이제 나는 멀리 다른 나라로 가서 본래의 뜻을 구하리라.”
제사는 그 딸을 맞아 아내로 삼았다.
그의 아내가 임신을 하고 꿈을 꾸니, 어떤 사람이 몸에는 갑옷을 입고 손에는 금강방망이를 들고 산들을 두드려 부순 뒤에 큰 산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꿈을 깬 뒤에 그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이러이러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자 제사가 말했다.
“그대가 아들을 낳으면 모든 논사들을 모두 굴복시키되 오직 한 사람만은 굴복시키지 못하고 그의 제자가 될 것이오.”
사리부인은 잉태한 뒤로 그 뱃속의 아기 때문에 엄마까지도 매우 총명해져 토론에 매우 능숙해졌다. 그의 동생인 구치라가 누이와 토론하면 항상 지기만 할 뿐 상대가 되질 못했다.
그는 잉태한 아기가 반드시 크게 지혜로울 것임을 알았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도 이렇거늘 하물며 태어난 뒤에야 어떠하겠는가’라고 생각하고는 곧 집을 버리고 떠나 학문을 닦았다.
남천축까지 가서 손톱도 깎지 않은 채 열여덟 가지 경서를 읽어 모두를 환하게 통달했다. 그러므로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장조(長爪) 범지라 불렀다.
그의 누이가 아기를 낳은 지 7일 뒤에 횐 요에 싸서 그의 아버지에게 보이니, 아버지가 생각했다.
‘나를 제사라 부르니, 내 이름을 따라 우바제사(憂波提舍)17)[우바란 진나라 말로는 따른다는 뜻이며, 제사는 별의 이름이다.]라 하리라.”
곧 이 우바제사는 부모 때문에 지어진 이름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사리부인에게서 태어났다 하여 모두가 사리불(舍利弗)[불(弗)은 진나라 말로는 아들이다.]이라 불렀다.
또한 사리불의 세세에 걸친 본원은 석가모니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지혜제일의 제자가 되어 사리불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본원의 인연에 의한 이름으로, 이러한 까닭에 사리불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문】 만약에 그렇다면 어째서 우바제사라고 말하지 않고 단지 사리불이라고만 하는가?
【답】 당시 사람들은 그의 어머니를 귀히 여겼다. 곧 그녀는 뭇 여인들 가운데 총명하기가 으뜸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사리불이라 불렀다.
【經】 보살마하살이 일체종(一切種)18)으로써 일체법을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하느니라.
【論】 보살마하살의 뜻은 앞에 보살을 찬탄하는 품에서 말한 바와 같다.
【문】 무엇을 일체종이라 하고, 무엇을 일체법이라 하는가?
【답】 지혜문을 일러 종(種)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한 지혜의 문으로 관찰하고,
어떤 사람은 둘ㆍ셋ㆍ열ㆍ백ㆍ천ㆍ만 나아가서는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아승기 지혜의 문으로 모든 법을 관찰한다.
지금은 온갖 지혜의 문으로 온갖 종자에 들어가서 온갖 법을 관찰하나니, 이것이 일체종이다.
범부들은 세 가지로 관찰하나니, 욕계를 여의고 색계를 여의고자 하는 까닭에 욕계ㆍ색계의 추악함과 거짓됨과 혼탁함을 관찰한다.
부처님의 제자에게는 여덟 가지의 관찰이 있다.
곧 무상하고, 괴롭고, 비어있고, 나 없고, 병과 같고, 종기 같고, 화살이 몸에 박힌 것 같고, 매우 괴로워함과 같다고 관찰한다.
이 여덟 가지 관찰은 4성제(聖諦)에 들어가면 열여섯 가지 행[十六行]19) 중의 넷이 된다.
열여섯 가지란,
먼저 고를 관찰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무상함ㆍ괴로움ㆍ공함ㆍ나 없음이요,
고의 원인을 관찰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쌓임[集]ㆍ인(因)ㆍ연(緣)ㆍ남[生]이요,
고가 멸함을 관찰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다함[盡]ㆍ사라짐[滅]ㆍ묘함[妙]ㆍ벗어남[出]이요,
고의 멸에 이르는 길[道]을 관찰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길[道]ㆍ바름[正]ㆍ행함[行]ㆍ자취[跡]이다.
들고나는 호흡에도 또한 열여섯 가지 행이 있다.
하나는 드는 호흡을 관찰함이요,
둘은 나는 호흡을 관찰함이요,
셋은 호흡의 길고 짧음을 관찰함이요,
넷은 호흡이 온몸에 두루함을 관찰함이요,
다섯은 몸의 모든 활동[行]을 제거함이요,
여섯은 기쁨[喜]을 느낌이요,
일곱은 즐거움[樂]을 느낌이요,
여덟은 마음의 모든 활동을 받아들임이요,
아홉은 기쁨을 짓지 않음이요,
열은 마음을 가다듬음[攝]이요,
열하나는 심해탈(心解脫)을 이룸이요,
열둘은 무상함을 관찰함이요,
열셋은 흩어지고 무너짐을 관찰함이요,
열넷은 욕망을 여읨을 관찰함이요,
열다섯은 멸을 관찰함이요,
열여섯은 버림[棄捨]을 관찰함이다.
또한 여섯 가지 염(念)이 있다.
첫째는 염불(念佛)인데, 부처님은 곧 다타아가타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20)이니, 이러한 열 가지 명호를 생각하는 것이다.
나머지 5념(念)은 뒤에서 설명하겠다.
세간의 지혜ㆍ세간을 벗어나는 지혜 및 아라한ㆍ벽지불ㆍ보살ㆍ부처님의 지혜 등 이러한 지혜로써 모든 법을 아는 것을 일체종(一切種)이라 한다.
일체법이라 했는데, 의식이 반연하는 법이 곧 일체법이다.
이른바 안식(眼識)은 색을 반연하고, 이식(耳識)은 소리를 반연하고, 비식(鼻識)은 냄새를 반연하고, 설식(舌識)은 맛을 반연하고, 신식(身識)은 촉(觸)을 반연하고, 의식(意識)은 법을 반연한다.
눈을 반연하고, 색을 반연하고, 안식을 반연하며, 귀와 소리ㆍ코와 냄새ㆍ혀와 맛ㆍ몸과 촉감에 대해서도 이와 같으며, 나아가 뜻을 반연하고, 법을 반연하고, 의식을 반연한다.
이것을 일체법이라고 부르니, 이것은 식이 반연하는 법이 된다.
또한 지혜로써 반연하는 법이 곧 일체법이다.
이른바 괴로움을 아는 지혜로써 괴로움을 알고,
원인을 아는 지혜로써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멸함을 아는 지혜로써 괴로움의 사라짐을 알고,
길을 아는 지혜로써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알며,
세속의 지혜로써 고ㆍ집ㆍ멸ㆍ도ㆍ허공 및 비수연(非數緣)의 멸21)을 안다.
이것이 지혜로써 반연하는 법이다.
또한 두 가지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
곧 색법과 무색법,
볼 수 있는 법과 볼 수 없는 법,
대할 수 있는 법과 대할 수 없는 법,
유루와 무루, 유위와 무위,
마음과 서로 응하는 법과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법,
업과 서로 응하는 법과 업과 서로 응하지 않는 법[단주에 말하기를 심법(心法) 가운데 생각[思]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업과 상응한다. 곧 이것은 생각이기 때문에 제한다.],
가까운 법과 먼 법 등 이와 같이 갖가지 두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단주에 말하기를 ‘현재와 무위는 가까운 법이요, 미래와 과거는 먼 법이다’ 했다.]
또한 세 가지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
곧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
유학ㆍ무학ㆍ유학도 아니고 무학도 아님,
견도(見道)에서 끊음ㆍ수도(修道)에서 끊음ㆍ끊지 않아도 되는 법[不斷]22)이다.
또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5중(衆)과 12입(入)과 18계(界)이다.
이러한 종종의 세 가지 법[三法]으로써 일체법을 포섭한다.
또한 네 가지 법이 있다.
곧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법과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닌 법,
욕계에 얽매인 법ㆍ색계에 얽매인 법ㆍ무색계에 얽매인 법ㆍ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법,
원인이 선한 법ㆍ원인이 불선한 법ㆍ원인이 무기인 법ㆍ원인이 선도 아니고 불선도 아니며 무기도 아닌 법,
인연을 반연하는 법[緣緣法]ㆍ인연을 반연하지 않는 법[緣不緣法]ㆍ인연을 반연하기도 하고 인연을 반연하지 않기도 하는 법[緣緣不緣法]ㆍ인연을 반연하지도 않고 인연을 반연하지 않는 것도 아닌 법[非緣緣非不緣法]이다.
이러한 네 가지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색법ㆍ심법ㆍ마음에 상응하는 법ㆍ마음에 상응하지 않는 법ㆍ무위의 법이다.
이러한 갖가지 다섯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괴로움을 보고 끊는 법[見苦斷法]ㆍ원인[集]을 보고 끊는 법ㆍ멸(滅)을 보고 끊는 법ㆍ길[道]을 보고 끊는 법ㆍ사유로써 끊는 법ㆍ끊지 못하는 법[不斷法]이다.
이러한 갖가지 여섯 법 내지 한량없는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
이것이 일체법이다.
【문】 모든 법이 매우 깊고 미묘하여 불가사의하니, 일체 중생으로도 알기 어렵거늘 하물며 한 사람이 온갖 법을 다 알고자 함이겠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대지를 재려는 것과 같고, 대해의 물방울을 세려는 것과 같고, 수미산을 재려는 것과 같고, 허공의 끝을 알려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알 수가 없거늘 어찌 일체종으로써 일체법을 알려 하는가?
【답】 어리석음의 어두움에 가리면 매우 괴롭고 지혜의 광명이 비추면 즐겁기 그지없다.
일체 중생은 누구나 괴로움을 싫어하고 오직 즐거움만을 구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일체의 으뜸가는 큰 지혜를 구하고, 일체종을 관찰하고, 일체법을 알고자 한다.
이 보살은 큰 마음을 일으켜 두루 온갖 중생을 위하여 큰 지혜를 구한다. 그러므로 일체종으로써 온갖 법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마치 의원은 한두 사람을 위해서는 한두 가지 약만 쓰면 족하지만, 만일 온갖 중생의 병을 고치려면 온갖 종류의 약을 써야 되는 것과 같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온갖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까닭에 일체종으로써 온갖 법을 알고자 한다.
모든 법이 매우 깊고 미묘하고 한량없듯이 보살들의 지혜도 매우 깊고 미묘하며 한량이 없다.
앞의 대답에서 일체지인(一切智人)을 해석하는 가운데서 이미 널리 말한바 있으니,
마치 함(函)이 크면 뚜껑도 큰 것과 같다.
또한 만일 이치를 벗어나 일체법을 구한다면 얻을 수 없고, 이치로써 구한다면 얻지 못할 일이 없다.
비유하건대 불을 일으키려 할 때 나무를 비비면 불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나무를 쪼개어 불을 구한들 불은 얻을 수 없다.
마치 대지의 끝이 있고 해도 스스로 일체지인이 아니거나 큰 신통력이 없으면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만일 신통의 힘이 크다면 이 삼천대천세계의 끝을 아는 것이다.
지금 이 땅은 금강 위에 있고, 삼천대천세계의 네 끝은 허공이다.
이것이 땅의 끝을 아는 것이니, 수미산을 헤아리려 하는 것도 이와 같다.
허공을 헤아리려 한다면 헤아리지 못할 것도 없으나 허공은 존재하지 않는 법[無法]이기 때문에 헤아리지 못한다.
【經】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마하살이 일체종으로써 온갖 법을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만 하는지요?”
【論】 【문】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갖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내셨다. 나타내시고는 바로 말씀하셔도 되거늘 어찌하여 사리불로 하여금 묻게 한 뒤에 말씀하시는가?
【답】 물은 뒤에 말씀하심은 부처님의 법으로서는 응당 그러한 것이다.
또한 사리불은 반야바라밀이 매우 깊고 미묘하고 형상 없는 법이어서 이해하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것임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지혜의 힘으로써 갖가지로 생각했다.
“만일 모든 법의 무상함을 관한다면 이것은 반야바라밀인가, 아니면 반야바라밀이 아닌 것인가?”
하지만 스스로 알 수 없었기에 물었던 것이다.
또한 사리불은 일체지가 아니었으니, 부처님의 지혜 가운데에서는 마치 어린애와 같았다.
아바단나경(阿婆檀那經)23)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부처님께서는 기원(祇洹)에 머무시고 계셨다. 해질 무렵 경행을 하시는데 사리불이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이때 어떤 매가 비둘기를 쫓으니, 비둘기는 부처님 곁으로 날아와서 숨었다. 부처님께서 경행하시면서 그 비둘기를 지나니 그림자가 비둘기를 덮었다. 그러자 비둘기는 편안해지고 두려움이 제거되어 다시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나중에 사리불의 그림자가 비둘기 위에 이르니, 비둘기는 다시 소리를 지르면서 처음과 같이 두려움에 떨었다.
이에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의 몸과 저의 몸에는 모두 3독(毒)이 없거늘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둘기를 덮으면 비둘기는 소리를 내거나 두려워하지도 않더니 저의 그림자가 그 위를 덮으면 비둘기는 전과 같이 소리를 내고 두려워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3독(毒)24)의 습기가 다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대의 그림자가 덮일 때엔 두려움이 제거되지 않는 것이다.
그대는 이 비둘기가 몇 생 동안이나 비둘기가 되었는지 전생 인연을 관찰해 보거라.”
사리불이 즉시 숙명지삼매(宿命智三昧)25)에 들어가 관찰해 보니, 이 비둘기는 비둘기로부터 왔으며, 마찬가지로 1생ㆍ2생ㆍ3생 나아가서는 8만 대겁에 이르기까지 항상 비둘기의 몸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지나는 일은 볼 수가 없었다.
사리불이 삼매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 비둘기가 8만 대겁 동안 항상 비둘기의 몸이었으나 이보다 이전의 일은 더 알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만일 지난 일을 다 알 수 없다면 미래의 일을 관찰해 보거라. 이 비둘기가 언제라야 벗어나겠는가?”
사리불이 곧 원지삼매(願智三昧)에 들어가서 이 비둘기를 관찰해보니, 1생ㆍ2생ㆍ3생 나아가서는 8만 대겁 동안 비둘기의 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지난 뒤의 일은 역시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삼매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이 비둘기를 보건대 1생ㆍ2생에서 8만 대겁에 이르기까지 비둘기의 몸을 벗지 못하겠으나 그 뒤의 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과거ㆍ미래 현재의 끝까지를 모르겠사옵니다.
이 비둘기가 언제라야 벗어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비둘기는 성문이나 벽지불이 아는 한계를 넘어서고 다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대겁 동안 항상 비둘기의 몸을 받으리라. 그러다가 죄를 다하고 비둘기의 몸을 벗어나면 5도(道) 가운데 헤매다가 나중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5백 생을 지나야 비로소 예리한 근[利根]을 얻게 되리라.
이때 어떤 부처님이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제도하신 뒤에 무여열반에 드시니, 남기신 법이 세상에 있으리라. 이 사람은 5계를 받은 우바새가 되어 비구에게서 부처님을 찬탄하는 공덕을 듣고는 여기에서 비로소 발심하여 부처가 되기를 서원하리라. 그런 뒤에 3아승기겁 동안 6바라밀을 행하고 10지(地)를 구족해 부처가 되며,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 뒤에 무여열반에 들리라.”
이때 사리불이 참회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한 마리의 새에 대해서도 그 본말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물며 어찌 일체법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만일 부처님의 이러한 지혜를 알 수 있다면, 부처님의 지혜를 위하여 차라리 아비지옥(阿鼻地獄)26)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겁의 고통을 받는다 해도 마다하지 않으리다.”
이렇듯 모든 법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묻게 되는 것이다.
1)
열여덟 가지 바라문 성전(śāstra)을 말한다. 18명처(明處)라고도 한다.
2)
범어로는 Magadha.
3)
범어로는 Kṛmi.
4)
범어로는 Agala.
5)
범어로는 Sañjaya. 육사 외도 가운데 한 사람을 말한다.
6)
범어로는 Suvarṇabhūmi.
7)
성문사과의 첫 번째인 수다원도를 말한다.
8)
범어로는 brahmacārin Dīrghanakha.
9)
범어로는 araṇā-vihāriṇāṃagryaḥ. 공도리에 안주해서 다른 이와 쟁론에 빠지지 않는 마음상태(삼매)이다.
10)
범어로는 Trāyastriṃśa. 삼십삼천이라고도 한다. 욕망으로 이루어진 세계인 6욕천 가운데 두 번째 천으로 수메루산 위에 있다고 한다.
11)
범어로는 Utpalavarṇā.
12)
범어로는 Bimbisāra.
13)
범어로는 Māṭhala. 사리불의 조부(祖父)이다.
14)
범어로는 Śārī.
15)
범어로는 Mahākauṣṭhila.
16)
범어로는 Tiṣya. 사리불의 아버지를 말한다.
17)
범어로는 Upatiṣya.
18)
범어로는 sarva-ākāra.
19)
범어로는 ṣodaṡa-ākāra. 열여섯 가지 행상으로 4성제를 관찰하는 법을 말한다. 16행상(行相)이라고도 한다.
20)
범어로는 각각 tathāgatha, arhat, samyaksaṃbuddha.
21)
수(數)란 심소법(心所法)을 말한다. 수연의 멸이란, 지혜의 심소법에 의해 번뇌를 단절하고 얻는 진멸(盡滅), 곧 열반의 경지를 말한다.
22)
일체의 무루법(無漏法)을 말한다.
23)
범어로는 Avadānasūtra.
24)
탐ㆍ진ㆍ치를 말한다.
25)
범어로는 pūrve-nivāsa-jñāna-samādhi.
26)
범어로는 avici-mahānaraka. 무간지옥(無間地獄) 혹은 무택대지옥(無擇大地獄)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