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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6권[2]
[동산 화상] 洞山
운암雲巖의 법을 이었고, 홍주洪州 고안현高安縣에 있었다. 스님의 휘諱는 양개良价요, 성은 유兪씨이며, 월주 저기현諸曁縣 사람이다. 처음에 촌원村院의 원주院主에게 출가하였는데, 원주는 선사를 감당하지 못했으나 선사는 싫어하거나 꺼리는 생각이 전혀 없이 그곳에서 2년을 지냈다. 원주는 그의 효순孝順함을 보고 『심경心經』을 외우라고 했는데, 하루 이틀도 못 가서 훤하게 외워 버렸다.
스승이 다시 다른 경을 외우게 하려 하니,
선사가 대답했다.
“이미 외운 『심경』의 뜻도 아직 모르니, 다른 경을 배우지 않겠습니다.”
원주가 말했다.
“전에 신통하게도 잘 외웠는데, 왜 모른다 하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심경』 안의 딱 한 구절을 모릅니다.”
원주가 다시 물었다.
“모른다는 구절이 어디인가?”
선사가 대답했다.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모두 없다[無眼耳鼻舌身意]는 구절을 모릅니다. 화상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원주는 말이 막혔다. 이로부터 이 법공法公이 예사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원주는 곧 선사를 데리고 오설五洩 화상에게 가서 위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말했다.
“이 법공法公은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우니, 화상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오설이 허락하니, 선사는 오설이 거두어들인 지 3년이 지나자 계를 받고 모든 것을 다 깨친 뒤에 화상에게 말했다.
“스승께 말씀드립니다. 제가 행각行脚을 떠나고 싶으니, 화상께 허락을 청합니다.”
오설이 말했다.
“결택決擇을 찾고자 한다면 남전南泉에게 가서 물으라.”
선사가 말했다.
“한번 떠나면 반연攀緣이 끊어질 것이니, 외로운 학은 둥우리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오설을 하직하고, 남전에게로 갔다.
남전이 귀종歸宗의 재를 올리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법어를 내렸다.
“오늘 귀종을 위해 재를 지내는데, 귀종이 오겠는가?”
아무도 대답을 못 하자, 선사가 나서서 절하고 말했다.
“스님, 다시 물어 주십시오.”
남전이 물으니, 대답했다.
“길동무가 있으면 올 것입니다.”
이에 남전이 뛰어내려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비록 후생이지만 다듬을 만한 재목이구나.”
이에 선사가 말했다.
“양민을 천민 취급하지 마십시오.”
이로부터 이름이 천하에 퍼져 작가作家라 불리게 되었다.
나중에 운암을 참례하여 현묘한 뜻을 모두 깨우쳤다. 대중大中 말년에 신풍산新豊山에 머물면서 선의 요지를 크게 폈는데,
이때 어떤 사람이 와서 물었다.
“학인 화상의 본래 스승을 뵙고자 할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나이가 비슷하니 걸릴 것이 없느니라.”
학인이 다시 의문 나는 바를 물으니,
선사가 대답했다.
“앞의 발자취를 따라 밟지 말고, 새로운 질문을 하라.”
이에 운거雲居가 대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화상의 본래의 스승을 만날 수 없겠군요.”
나중에 상좌를 시켜 장경長慶에게 가서 이 이야기를 들어 묻게 하였다.
“어떤 것이 나이가 비슷한 것입니까?”
장경이 말했다.
“옛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을 그대로 하여금 여기까지 와서 무엇을 물으라 하는가?”
다시 물었다.
“스님은 남전을 뵈었으면서 어째서 운암의 제사를 지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나는 운암의 도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고, 또한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그가 나에게 설파해 주지 않은 것이 귀중할 뿐이니라.”
“어떤 것이 비로자나불의 스승이며, 법신法身의 주인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벼 줄기와 조 줄기니라.”
선사가 백안百顔에게 이르니,
백안이 물었다.
“요즘 어디서 떠나왔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근래에 호남湖南을 떠나왔습니다.”
백안이 다시 물었다.
“관찰사의 성이 무엇이던가?”
“그의 성을 알지 못합니다.”
“이름은 무엇이던가?”
“그의 이름도 알지 못합니다.”
“일터에 나온 적은 있는가?”
“나온 적이 없습니다.”
“일을 합당하게 처분하던가?”
“낭막郎幕들이 따로 있습니다.”
이에 백안이 말했다.
“비록 나오지는 않았으나 일은 바로 처리했어야 하느니라.”
선사가 소매를 떨치고 나와 버리니,
백안은 하룻밤이 지나서야 겨우 자신의 문답이 온당하지 못했음을 알아차리고 식당에 들어가 물었다.
“어제의 두 명의 두타는 어디로 갔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저올시다.”
“지난밤 비록 그대를 상대했었으나 밤새도록 불안하였으니, 불법이 퍽 어려운 것임을 알겠소. 두타가 만약 여기서 여름을 지낸다면 나는 두 두타를 곁에서 모시겠소.”
그리고 대신 대답하기를 청하니, 선사가 대신 말했다.
“너무나 존귀하십니다.”
운암이 원주가 석실로 떠나려는 것을 알고 말했다.
“석실에 가거든 그대로 돌아와서는 안 되느니라.”
원주가 대답이 없으므로 선사가 말했다.
“그곳에는 벌써 누군가가 미리 자리를 차지해 버렸습니다.”
운암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다시 가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선사가 대답했다.
“인정을 끊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인가?”
“흡사 해계서解雞犀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동산에게 물었다.
“때때로 부지런히 닦으란 말씀이 대단히 좋은데, 어째서 의발을 얻지 못했습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설사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대답했더라도 의발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니라.”
다시 선사에게로 와서 물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의발을 얻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문에 들어오지 않는 이가 얻느니라.”
“그 사람은 받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비록 받지 않지 않는다 해도 그에게 주지 않을 수는 없느니라.”
다시 물었다.
“뱀이 개구리를 삼키는데, 구해야 합니까,구하지 말아야 합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구하면 두 눈이 보이지 않고, 구하지 않으면 형상과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느니라.”
운암의 재齋에 어떤 이가 물었다.
“화상은 돌아가신 스승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비록 거기에 있었으나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없느니라.”
“받은 것이 없다면 재는 차려서 무엇 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없으나 그를 저버릴 수는 없느니라.”
또 재齋를 차리는데 물었다.
“화상께서 돌아가신 스승의 재를 차리시니, 그 스승을 인정하시는 것입니까?”
“반은 인정하고 반은 인정하지 않느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째서 전부를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만일 전부를 인정하면 돌아가신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안安 국사에게 물었다.
“전부를 인정하면 어째서 저버리는 것이 됩니까?”
안 국사가 대답했다.
“금 부스러기가 비록 귀중하나 백련白蓮이 말하기를,
‘아들을 아버지라고 할 수는 없다’ 했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봉지鳳池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반만 인정하는 것입니까?”
봉지가 말했다.
“오늘부터 들어가되 친히 뵙는 것은 잠시 보류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반은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까?”
봉지가 대답했다.
“여전히 그대가 인정한 일인가?”
“전부를 긍정하는 것이 어찌하여 도리어 돌아가신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 됩니까?”
봉지가 말했다.
“안[合頭을 지키고 있으니 내 몸을 빼돌릴 길이 없느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3신身 가운데 어느 몸이 수효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항상 이 일에 간절하였느니라.”
그 스님이 조산에게 물었다.
“돌아가신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항상 이 일에 간절했다’ 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조산이 대답했다.
“머리를 원하면 베어 가라.”
그 스님이 설봉雪峰에게 가서 물으니, 설봉이 주장자로 입을 쥐어지르면서 말했다.
“나도 일찍이 동산에 다녀왔느니라.”
어느 날 밤에 등불을 켜지 않고 있는데, 어떤 스님이 나서서 질문을 하자, 선사가 시자侍者에게 “등불을 켜라” 하였다. 시자가 등불을 켜니, 선사가 말했다.
“아까 질문하던 스님은 앞으로 나오너라.”
그 스님이 나서자, 선사가 말했다.
“두서너 홉의 밀가루를 이 스님에게 갖다 주어라.”
스님이 소매를 털고 나갔는데, 그 후 이 일로 인해 깨친 바 있어 의발로 한 차례 공양을 차렸다. 3년에서 5년이 지나 화상을 하직하매 화상이 말했다.
“잘 가라, 잘 가라.”
이에 설봉雪峰이 곁에 모시고 있다가 물었다.
“저 납자가 아까 여길 떠났는데 언제 다시 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갈 줄만 알지 다시 올 줄은 모른다.”
이 스님이 승당僧堂으로 가서 의발을 자리에 풀어 놓고, 천화(遷化:죽음)하였는데, 설봉이 그 스님이 천화함을 보고 선사에게 알리니, 선사가 말했다.
“그렇다 해도 오히려 노승으로 하여금 3생을 더 있게 할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두 스님이 길동무가 되어 행각行脚을 하다가 한 사람은 병이 나서 열반당涅槃堂에서 쉬고, 한 사람은 그를 간호했다. 어느 날 병난 스님이 길동무에게 말했다.
“내가 떠나려는데 같이 갑시다.”
이에 간호하던 스님이 대답했다.
“나는 병도 없는데 어떻게 같이 갑니까?”
병든 스님이 다시 말했다.
“아직까지는 동행했다 할 수 없고, 이제 같이 가야 비로소 동행입니다.”
간호하던 스님이 대답했다.
“좋소. 그렇다면 내가 화상께 가서 하직을 고하고 가겠소.”
그리고는 화상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고하니, 선사가 말했다.
“모든 것은 그대가 할 일이니 잘 다녀오라.”
그 스님이 다시 열반당으로 가서 둘이 마주 앉아 온갖 일을 이야기하고서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초연히 떠났다.
설봉雪峰이 법상에 있는데, 공양주 스님이 그들이 차례로 떠난 것을 보고, 화상에게 가서 말했다.
“아까 와서 하직을 고하고 간 스님이 열반당에서 둘이 마주 앉아 죽었으니 매우 기이한 일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이 두 사람은 그렇게 갈 줄만 알았고 전해 올 줄은 몰랐다. 만일 노승에게 견준다면 아직 3생이 남았다.”
선사가 어느 때 대중에게 고했다.
“나의 헛소문이 세상에 떠도는데, 누가 있어 그것을 없애 줄 수 있는가?”
어떤 사미沙彌가 나서서 말했다.
“화상께서 법호를 하나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선사가 백추白槌하고 말했다.
“나의 헛소문이 벌써 사라졌도다.”
이에 석상石霜이 대신 말했다.
“아무도 그의 인정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다시 물었다.
“아직도 헛소문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석상이 말했다.
“장삼이사張三李四는 남의 일이니라.”
운거雲居가 대신 말했다.
“만일 헛소문이 난다면 우리 스승이 아니다.”
조산이 대신 말했다.
“예부터 오늘까지 아무도 그를 가리지 못했습니다.”
소산疎山이 말했다.
“용은 물에서 나오는 기능이 있건만 사람은 그것을 가려낼 능력이 없습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바르게 묻고 바르게 대답하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니라.”
“혹 화상께서는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대가 물은 적이 없었다.”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병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순식간에 한 생각이 일어남이 병이니라.”
“어떤 것이 약입니까?”
“계속하지 않음이 약이니라.”
동산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3조의 탑전에서 옵니다.”
선사가 다시 말했다.
“조사의 곁에서 왔다면 무엇 하러 이 노승을 만나려 하는가?”
스님이 말했다.
“조사는 다르지만 학인과 화상은 다르지 않습니다.”
선사가 다시 물었다.
“그대의 본래 스승을 만나고 싶은데 되겠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그 또한 선사께서 스스로 나와야 가능합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조금 전에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었느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듣건대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맹세코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여야 내가 성불하리라.’ 하셨다는데, 이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마치 열 사람이 함께 과거에 응시하였는데, 한 사람이 급제하지 못하면 아홉 사람이 모두 급제하지 못하고, 한 사람이 급제하면 아홉 사람이 모두 급제하는 것과 같으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화상께서는 급제를 하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나는 글을 읽지 않았느니라.”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스님이 대답했다.
“아무개라 합니다.”
이에 선사가 다시 물었다.
“어느 것이 그대의 주인인가?”
스님이 대답했다.
“지금 화상 앞에서 응대하는 것이 바로 그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애달프구나. 요즘 학인學人들은 한결같이 이렇구나. 그저 당나귀 앞과 말 뒤만을 알아서 자기의 안목을 삼고 있으니, 불법이 침체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객 가운데 주인도 가릴 줄 모르는데, 어떻게 주인 가운데 주인을 가려내랴?”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사리 스스로 대답해 보아라.”
스님이 말했다.
“제가 스스로 말할 수 있다면 이는 객 가운데 주인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기는 쉬우나 계속하기는 퍽이나 어려울 것이니라.”
운거雲居가 대신 말했다.
“저라면 ‘객 가운데 주인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선사가 설봉雪峰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설봉이 대답했다.
“영남으로 가려 합니다.”
선사가 다시 물었다.
“그대는 비원령飛猿嶺을 지나가지 않는가?”
설봉이 대답했다.
“지나갑니다.”
“올 때에는 어찌하겠는가?”
“역시 그리로 와야 합니다.”
“누군가가 비원령을 지나지 않고 여기에 이르는 이가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그 사람은 가고 옴이 없습니다.”
“그대는 이 사람을 아는가?”
“모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어찌 가고 옴이 없는 줄을 아는가?”
설봉이 대답을 못 하니, 선사가 대신 말했다.
“그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가고 옴이 없는 것이다.”
선사가 언젠가 말했다.
“부처님의 위로 향하는 일을 체득해야 겨우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있느니라.”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말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야기를 해도 그대는 듣지 못하느니라.”
“화상께서는 들으십니까?”
“내가 말을 하지 않을 때에는 듣느니라.”
선사가 어느 때 말했다.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에 가서 서야 하느니라.”
어떤 스님이 이를 석상에게 가서 말하니, 석상이 말했다.
“문 밖에 나서면 모두가 풀이니라.”
선사가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당唐나라 안에 몇이나 그런 이가 있을꼬?”
선사가 이 일을 들어 말했다.
“염관鹽官의 회상에 어떤 스님이 불법佛法의 이치는 알면서도 몸이 지사知事의 소임에 얽매여 있어서 수행을 못한 채 죽음에 이르렀다. 저승사자가 와서 그 스님을 잡아가려 하니, 그 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소임을 보느라고 수행을 못했으니, 7일만 말미를 주시오.’
저승사자가 말하였다.
‘내가 가서 염라대왕께 아뢰어 왕이 허락하면 7일 뒤에 올 것이고, 허락하지 않으면 바로 올 것이오.’
7일 뒤에 사자가 다시 와서 찾으니 찾을 수 없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그가 왔을 때에는 어떻게 대꾸해야 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벌써 그에게 잡혔느니라.”
어떤 스님이 조계에서 왔는데,
선사가 물었다.
“듣건대 6조께서 황매黃梅에서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으셨다는데 사실이던가?”
스님이 대답했다.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지 않았을 뿐 아니라 황매에도 오지 않았습니다.”
선사가 다시 물었다.
“오지 않았다면 그렇게 어마어마한 불법은 어디에서 얻었는가?”
“화상께서는 불법을 남에게 주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얻기는 얻었으나 너무 대드는 사람이로군.”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어느 겁부터 잃었는가?”
초경招慶이 대신 말했다.
“화상은 어디서 받으셨습니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옛사람의 ‘백 가지 대답을 해도 한 물음도 없다’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맑은 하늘에 밝은 달이니라.”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지금의 ‘백 가지를 물어도 한 대답도 없다’는 뜻입니까?”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자욱하게 끼었구나.”
“화상께서 어떤 도리를 보셨기에 이 산에서 머무십니까?”
“두 마리의 진흙 소가 싸우다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구나.”
“백천의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보다 하나의 수행도 없는 스님에게 공양하는 것이 낫다는데, 백천의 부처님께는 어떤 허물이 있습니까?”
“허물은 없느니라. 그저 공덕을 쌓는 편에서 한 말이니라.”
“공덕을 쌓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잘 간직할 줄 모르는 것이니라.”
“듣건대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새의 길을 걸으라.’ 하셨다는데, 어떤 것이 새의 길입니까?”
“한 사람도 만나지 않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걷는 것입니까?”
“발밑에 실오라기 하나도 없는 것이니라.”
“그러면 본래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대는 어째서 뒤바뀌는가?”
“저에게 무슨 뒤바뀜이 있다 하십니까?”
“만일 뒤바뀌지 않았다면 어째서 하인을 상전으로 잘못 아느냐?”
“어떤 것이 본래의 사람입니까?”
“새의 길을 걷지 않는 것이니라.”
“6국國이 편치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신하에게 공이 없느니라.”
“신하에게 공이 있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나라가 평안하니라.”
“평안해진 뒤에는 어떠합니까?”
“군신의 도가 합하느니라.”
“신하가 죽은 뒤에는 어찌됩니까?”
“임금이 있는 줄 모르느니라.”
“선지식이 세상에 나오면 학인學人은 의지할 곳이 있거니와 열반에 드신 뒤에는 어찌하여야 모든 경계에 미혹되지 않겠습니까?”
“마치 허공 속의 바퀴 같으니라.”
“그러나 지금도 끝없이 허망하게 일어나는 것이야 어찌하겠습니까?”
“태워 버리는 것이 좋으니라.”
“화상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몇 사람이나 불법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까?”
“한 사람도 소중히 여기는 이가 없느니라.”
“어째서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까?”
“그들은 제각기 기상이 왕과 같기 때문이니라.”
선사가 운거雲居에게 물었다.
“그대는 물질[色]을 사랑하는가?”
운거가 대답했다.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아직 멀었다. 정신 차리게나.”
이에 운거가 도리어 물었다.
“화상께서는 물질을 사랑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사랑하느니라.”
“그렇게 물질을 볼 때는 어떠하십니까?”
“마치 한 덩어리의 무쇠토막과 같으니라.”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스님이 대답했다.
“화상께서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자기의 이름인 양개良价를 부르니, 스님이 대답을 못했다. 이에 운거가 대신 말했다.
“그렇게 하시면 학인은 벗어날 길이 없겠습니다.”
그리고는 또 말했다.
“그렇게 하시면 화상에게 완전히 당하는 것입니다.”
선사가 태太 장로長老에게 물었다.
“어떤 물건이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고 항상 활동하고 있으며 옻칠처럼 새까맣다 하니, 그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장로가 대답했다.
“허물은 활동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에잇, 꺼져라.”
이에 석문이 대신 말했다.
“찾을 수 없습니다.”
이에 어떤 이가 나서서 물었다.
“어째서 찾을 수 없습니까?”
석문이 말했다.
“옻칠처럼 새까맣기 때문이니라.”
설봉雪峰이 장작을 운반하는데,
선사가 물었다.
“무게가 얼마나 되는가?”
설봉이 대답했다.
“온 누리의 사람이 달려들어도 들지 못합니다.”
선사가 다시 말했다.
“잘도 여기까지 왔구나.”
설봉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운거雲居가 대신 말했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들어도 들리지 않는 줄을 알았습니다.”
소산이 대신 말했다.
“그저 여기에 왔을 뿐인데 어찌 들 수 있다 하는가?”
어떤 스님이 와서 뵈니,
선사가 그의 특이함을 보고 일어나 절을 받고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서천西天에서 왔습니다.”
“언제 서천을 떠났는가?”
“공양 뒤에 떠났습니다.”
“너무 더디군.”
“돌고 돌면서 산과 물을 구경하느라 그랬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하는가?”
이에 그 스님이 앞으로 나서며 손을 모으고 서자, 선사가 허리를 굽혀 읍揖하고 말했다.
“차나 마시게[喫茶去].”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산 구경을 하고 옵니다.”
“산꼭대기까지 갔었던가?”
“갔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사람이 있던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산꼭대기에 가지 않았구나.”
“산꼭대기까지 가지 않았다면 어찌 아무도 없는 줄 알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거기서 잠시 머물지 않았는가?”
“저는 괜찮았지만 서천西天의 누군가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선사가 운거雲居에게 물었다.
“어디를 다녀오는가?”
“산을 돌아보고 옵니다.”
“어느 산이 살 만하던가?”
“어느 산인들 살 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당나라 안의 모든 산을 몽땅 그대가 차지했겠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들어갈 문을 얻었구나.”
“길이 없습니다.”
“길이 없다면 어떻게 나를 만나러 왔는가?”
“길이 있다면 화상과 간격이 생깁니다.”
“이 사람은 뒷날 천만 사람이 잡아도 잡지 못할 것이다.”
선사가, 늑담氻潭에 가서 정政 상좌가 대중에게 설법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신기하구나, 신기해. 도계道界가 불가사의하고, 불계佛界가 불가사의하구나.”
이에 선사가 얼른 물었다.
“도계다, 불계다 하는 것은 묻지 않겠으나 도계와 불계라고 말한 이는 어떤 사람인가? 이 한마디만 대답하라.”
이에 상좌가 양구良久하여 말이 없자, 선사가 재촉했다.
“왜 얼른 말하지 못하는가?”
상좌가 말했다.
“다투면 얻지 못합니다.”
“대답하란 것도 전혀 말하지 못하는 주제에 다투면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가?”
상좌가 대답을 못하자, 선사가 말했다.
“부처와 도는 그저 이름뿐이거늘 어째서 경전을 인용해서 대답하지 못하는가?”
이에 상좌가 말했다.
“경전에서는 무어라 했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뜻을 얻고는 말을 잊으라 했느니라.”
상좌가 다시 말했다.
“아직도 경전의 뜻을 마음에다 두어 병을 만드시는군요.”
선사가 말했다.
“도계다, 불계다 하는 병은 얼마나 되는가?”
상좌는 그로 인해 죽었다.
선사가 설봉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가?”
설봉이 대답했다.
“구유통[槽]을 베고 옵니다.”
“도끼를 몇 번 찍었는가?”
“한 도끼로 끝났습니다.”
“저쪽 일은 어찌하는가?”
“손을 쓸 곳이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 이쪽 일이다. 어느 것이 저쪽 일인가?”
설봉이 대답이 없자, 소산疎山이 대신 말했다.
“낫과 도끼가 없는 경지에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스님의 머리를 베려 할 때에는 어찌합니까?”
“당당함이 끝이 없느니라.”
“그러나 지금 떨고 있는 몸은 어찌하시렵니까?”
“사방 이웃 다섯 집에 누군들 없으랴?
잠시 주막거리에 머물렀다 간들 무슨 이상할 일이겠느냐?”
선사가 또 학도學徒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하였다.
“천지天地 안, 우주宇宙 사이에 하나의 보배가 형체 속에 숨겨져 있다. 사물을 인식하는 데 영특하나 안팎이 공적하고 적막하여 찾기 어려우니, 그 지위가 현묘하고도 현묘하다. 다만 자기에게서 구할지언정 남에게서 빌리지 말아야 하니, 빌릴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어 모두가 남의 마음이니 제 성품만 못하며, 성품은 여여해서 청정하니, 이것이 곧 법신法身이다. 초목草木의 생성에 대한 견해도 이와 같도다. 머무를 때에는 반드시 벗을 선택하여 때때로 듣지 못하던 것을 듣고, 멀리 갈 때에는 반드시 좋은 벗에 의탁하여 자주자주 눈과 귀를 밝혀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이룬 이는 벗이다’ 하였으니,
선한 이를 가까이하면, 마치 안개 속을 다니는 것 같아서 옷을 적시지는 않으나 차츰차츰 눅눅해지고, 쑥이 삼이나 대 속에 나면 붙들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진다. 흰 모래가 진흙과 함께 있으면 함께 검어지나니, 하루 스승으로 모셨으면 종신토록 하늘같이 존중하고, 하루 주인으로 모셨으면 종신토록 아버지같이 대해야 한다.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선사가 병든 스님에게 물었다.
“쉽지 않겠구나, 사리여.”
병든 스님이 대답했다.
“생사의 일이 큽니다, 화상이시여.”
선사가 다시 말했다.
“어찌 차조 밭으로 가지 않는가?”
병든 스님이 말했다.
“그러시다면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는 초연히 떠났다.
스님이 물었다.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려 오히려 나기 전과 같을 때는 어찌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한 사람 그대가 빈손인 줄 알지 못하는 이가 있다네.”
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했다.
“제방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절이 있다지만 여기에는 뼈를 깎는 말이 있느니라.”
이때 어떤 사람이 나서서 물었다.
“듣건대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방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절이 있다지만 나의 여기에는 뼈를 깎는 말이 있다’ 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사실이니라. 오너라. 그대의 뼈도 깎아 주마.”
스님이 다시 말했다.
“사방 팔면에서 스님께 깎아 달라고 합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깎지 않겠노라.”
“다행히 좋은 솜씨가 있으신데 어째서 깎아 주지 않으십니까?”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명의는 손을 쓰지 않는다’ 했느니라.”
운문雲門이 서봉西峰에 이르니,
서봉이 물었다.
“나는 동산의 뼈를 깎는다는 말만 들었을 뿐 자세히 알지 못하는데, 상좌께서 나에게 자세히 말해 주지 않겠는가?”
이에 운문이 앞의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니, 서봉이 이내 합장을 하고 말했다.
“그토록 자세히 알고 있었던가?”
운문이 다시 이 일을 들어서 서봉에게 물으니,
서봉이 대답했다.
“동산이 앞에서 말하기를,
‘오너라. 그대의 뼈도 깎아 주마’ 했는데,
나그네의 자리에 제2기가 왔을 때에는 어째서 깎지 않았습니까?”
서봉이 한참 생각한 뒤에
“상좌야” 하고 부르니,
상좌가 대답하였다.
이에 서봉이 말했다.
“흙더미로구나.”
선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손을 펴서 배우고, 새의 길에서도 배우며, 현묘한 길에서도 배운다.”
이에 보수寶壽가 수긍하지 않고 법당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저 노장에게 무슨 그리 급한 일이 있는가?”
이에 운거雲居가 화상에게로 가서 말했다.
“화상의 그런 말씀을 어느 한 사람은 수긍하지 않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수긍하는 이를 위해서 말했지 수긍하지 않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니라. 그런데 그 수긍하지 않는 자를 나오라 하라. 내가 만나 보고자 하노라.”
운거가 말했다.
“수긍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선사가 물었다.
“사리闍梨는 금방수긍하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이 있다 하더니, 어째서 다시 수긍하지 않는 이가 없다 하는가? 말해 보아라.”
“나서면 수긍하는 것입니다.”
“확실히 그러하다. 수긍하는 것이 수긍하지 않는 것이요, 나서는 것이 나서지 않는 것이로다.”
어떤 이가 물었다.
“싱싱하게 푸른 대가 모두 진여眞如요, 빽빽한 개나리는 반야般若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두루 하지 않은 색이니라.”
“어째서 두루 하지 않은 색입니까?”
“진여도 아니요, 반야도 없느니라.”
“드러나기는 합니까?”
“세상에 드러나지 않느니라.”
“어째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습니까?”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니란 뜻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지만 그대는 어떠한가?”
“모르겠습니다.”
“알게 해주리라.”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베풀어 주시지 않으십니까?”
“봐도 봐도 어찌할 수가 없구나.”
“어째서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대는 어찌하여 남의 말에 끌려 다니는가?”
“그렇다면 말씀이 없겠습니다.”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지.”
“하실 말씀이 없는데 어째서 아니라 하십니까?”
“아무 말도 안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서로가 만나서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으나 뜻을 움직이면 곧 안다 하였는데, 이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합장정대合掌頂戴하였다.
보자報慈가 이 일을 들어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동산이 입 속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합장정대했는데, 단지 그런 것이 합장정대인가?”
스님이 대답이 없자, 스스로가 대신 말했다.
“하나의 맥이 양쪽으로 통했느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맑은 강 저쪽에는 무슨 풀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싹트지 않는 풀이다.”
“강을 건너서 이른 이는 어떠합니까?”
“온갖 것이 모두 다하였느니라.”
선사가 또 말했다.
“싹트지 않는 풀이 어째서 향상香象을 갈무리하는가? 향상이라 함은 지금의 공부가 결과를 이루는 것이요, 풀이란 본래 싹트지 않는 풀이며, 갈무리한다 함은 본래 원만圓滿한 행상行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갈무리한다 하느니라.”
어떤 비구니가 승당僧堂 앞에 와서 말했다.
“이렇게 많은 무리가 몽땅 내 자식들이로다.”
이에 아무도 대답을 못했는데, 어떤 사람이 선사에게 이야기했더니, 선사가 대신 말했다.
“나는 태어났음으로 인하여 존재한다.”
어떤 스님이 발우를 들고 늘 가던 속인의 집에 갔더니,
속인이 물었다.
“스님은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스님이 대답했다.
“무엇을 가리겠소?”
속인이 풀을 한 줌 갖다가 발우에 채워 주면서 말했다.
“상좌께서 바로 말할 줄 알면 공양하겠지만 말하지 못하면 그냥 가시오.”
스님이 대답을 못했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선사에게 이야기하니, 선사가 대신 말했다.
“이것은 가리는 것이니, 안 가리는 것을 갖다 주시오.”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마음과 법, 둘 다 잊고 본성은 진실하다면, 몇 번째 자리에 해당되겠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두 번째 자리입니다.”
“어째서 그를 첫 번째 자리라 하지 않는가?”
“마음도 아니요 법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법 둘 다 잊었을 때는 마음도 아니요, 법도 아니거늘, 어째서 다시 그렇게 말하는가?”
그리고는 대신 대답했다.
“참이 아니면 자리를 얻지 못하느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아비가 젊다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나이가 몇이던가?”
“어떤 것이 자손이 늙었다는 것입니까?”
“나는 평소에 사람들에게 현묘함을 이야기했었느니라.”
또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다만 마음으로 알지언정 현상으로써 구하지 말라.’ 하였으니, 이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문으로 들어오는 이는 보배롭지 못하느니라.”
“문으로 들어오지 않은 이는 어떠합니까?”
“여기에는 아무도 알아볼 이가 없느니라.”
또 물었다.
“마음과 법이 멸할 때가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입으로만 말할 수 있은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입으로 따지는 것을 믿지 말고 곧장 그렇게 해야만 한다. 설사 그렇게 하여도 역시 부처 쪽의 일을 배우는 것이니라.”
“스님께서 그 부처의 위로 향하는 사람의 경지를 설명해 주십시오.”
“부처가 아니니라.”
또 물었다.
“4대大가 좋지 않을 때 병들지 않는 이도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있느니라.”
“병들지 않는 이가 화상을 봅니까?”
“내가 그를 볼 자격은 있지만 그가 뉘라서 나를 짐작하겠는가?”
“화상께서 병드셨는데 어찌 그를 봅니까?”
“만약 내가 본다면 병이 들었다고 볼 수는 없느니라.”
“바야흐로 그러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것이 그대의 굴택[窠窟:둥지]이니라.”
“그렇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차지하는 것이야 신경을 쓰지 않는다.”
“차지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음이 화상께서 소중히 여기는 지점이 아닙니까?”
“차지하는 것을 신경 쓰지 않거늘 소중히 여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어떤 것이 화상께서 소중히 여기는 곳입니까?”
“그대를 향해 주먹을 들지 않는다.”
“어떤 것이 학인이 소중히 여길 곳입니까?”
“나를 향해 합장하지 마라.”
“그렇다면 서로가 아무런 관계가 없겠습니다.”
“누가 그대와 아는 사이인가?”
“끝내는 어떠합니까?”
“누가 기꺼이 크게 되려 하고, 누가 기꺼이 작게 되려 하겠는가?”
“우두牛頭가 4조를 만나기 전에 여러 새가 꽃을 물고 와서 공양했던 것은 어떠합니까?”
“구슬이 손바닥에 있는 것 같으니라.”
“만난 뒤에는 어째서 꽃을 물고 오지 않았습니까?”
“온몸이 갔느니라.”
“어떤 이가 마음ㆍ뜻ㆍ의식이 없는 사람입니까?”
“마음ㆍ뜻ㆍ의식이 없는 사람이 아니니라.”
“만나 뵈올 수 있겠습니까?”
“그는 남이 전하는 말을 들은 적이 없고 남의 부탁도 받은 적도 없느니라.”
“가까이 모실 수는 있겠습니까?”
“그대뿐만 아니라 노승도 할 수 없느니라.”
“화상께서는 어째서 가까이하시지 못하십니까?”
“마음과 뜻과 의식이 없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조개 속에 진주가 있는데 그 조개도 압니까?”
선사가 말했다.
“알면 잃느니라.”
“어찌하여야 되겠습니까?”
“앞의 말을 따르지 말라.”
또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허공의 마음으로 허공의 이치에 합한다’ 했는데, 어떤 것이 허공의 이치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탕탕蕩蕩해서 겉[表]도 끝도 없느니라.”
“어떤 것이 허공의 마음입니까?”
“사물을 걸지 않는다.”
“어찌하여야 부합되겠습니까?”
“그대가 그렇게 말하면 부합되지 않느니라.”
또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병[佛病]을 가장 고치기 어렵다’ 했는데, 부처가 병입니까? 부처에 병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부처가 병이니라.”
“부처가 어떤 사람에게 병이 됩니까?”
“그대에게 병이 되느니라.”
“부처가 그를 알고 있습니까?”
“그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를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에게 병이 됩니까?”
“그대는 ‘그의 가풍家風에 누가 된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또 물었다.
“말 속에서 적중的中함을 얻는다면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적중했는데 무엇을 또 취한다 하는가?”
“그렇다면 적중한 것이 아니겠습니다.”
“적중하지 못했는데 여전히 적중함이 있겠는가?”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천만의 사람 속에 있으면서 한 사람에게도 향하지 않고, 한 사람에게도 등지지 않나니, 그를 어떤 사람이라 부르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이 사람은 항상 눈앞에 있으면서 경계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대의 이 말은 아비 쪽에서 하는 말인가, 자식 쪽에서 하는 말인가?”
“저는 아비 쪽에서 말한 것이라 여깁니다.”
선사가 수긍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전좌典座에게 물었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얼굴도 등도 없는 사람입니다.”
선사가 수긍하지 않으니,
또 다르게 대답했다.
“이 사람은 얼굴이 없습니다.”
“한 사람을 향하지도 않고 한 사람을 등지지도 않는 것이 그대로 얼굴이 없는 사람이거늘, 무엇 때문에 그렇게들 말하는 것인가?”
이어 선사가 대신 대답했다.
“숨이 끊어진 사람이니라.”
또 물었다.
“온갖 곳에서 어긋나지 않는다면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는 아직도 공훈功勳 쪽의 일이다. 공 없는 공이 있는데, 그대는 어째서 그것을 묻지 않는가?”
“공 없는 공이란 저쪽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뒷날 눈이 있는 사람은 그대의 그런 말을 비웃을 것이니라.”
“그렇다면 조화롭겠습니다.”
“조화롭기도 하고 조화롭지 않기도 하며, 조화롭지 않은 것도 아니니라.”
“어떤 것이 조화로운 것입니까?”
“그쪽 사람이라 해서는 안 되느니라.”
“어떤 것이 조화롭지 않은 것입니까?”
“가릴 곳이 없느니라.”
그리고는 갑자기 시자侍者를 불러 시자가 오자, 선사가 양구良久하다가 말했다.
“대중에게, 추운 자는 불을 쪼이고, 춥지 않은 자는 상당하라고 일러라.”
선사가 언젠가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는 모름지기 구절과 구절이 끊이지 않게 하여야 한다. 마치 장안長安으로 통하는 여러 길과 같이, 설사 실오리 같은 길이라도 끊이지 않는 것과 같아야 한다. 만일 한 길이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있으면 이는 곧 군주君主를 받들지 않는 것이니, 이 사람의 목숨은 경각에 달렸을 것이다. 설사 훌륭하고 묘한 법을 배웠다 하여도 역시 군주를 받들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그 밖의 것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 세상의 사소한 일 때문에 큰일을 잃지 마라. 가령 흉내를 내어서 약간의 옷과 밥을 얻는다 해도 나는 필경 노비로 다시 태어나 갚아야 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옛 어른이 말하기를,
‘모든 종류에 따라 각각 분제分齊가 있다’ 했으니,
기왕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옷과 밥에만 얽매이지 말고 인연에 맡겨 집착을 내지 말아야 한다.
나의 가풍家風은 이러할 뿐이다. 수긍하든 안 하든 끝끝내 그대들 마음대로 동서 왕래함을 윽박지르지 않겠노라. 진중珍重하라.”
선사가 함통咸通 10년 기축己丑 3월 1일에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더니,종을 치게 하고는 의젓이 앉아서 떠나니, 대중이 통곡하였다.
그러자 다시 깨어나서 말했다.
“무릇 출가한 사람은 마음을 사물에 의지하지 않아야 하나니, 이것이 참 수행이다. 어찌 슬프고 안타까울 일이 있으랴?”
그리고는 원주를 불러 우치재愚癡齋를 차리라 하니, 원주가 슬피 울면서 재를 차렸다. 7일째가 되자 선사도 조금 먹더니, 마지막 날에 말했다.
“중들이 어찌 이다지 경솔한가? 큰 길을 떠나는데, 어째서 이렇게 소란스럽고 슬퍼하는가?”
여드레가 되는 날, 목욕물을 데우게 하여 목욕을 하고 단정히 앉아서 떠나니, 나이는 62세요, 승랍은 41세였고, 시호는 오본悟本이요, 탑호塔號는 혜각慧覺이었다. 제자를 경책하는 게송들이 문도들 사이에서 많이 퍼졌으나 상자에 감추고 여기에는 수록하지 않는다.
정수淨修 선사가 찬탄하였다.
스님이 동산에 머무니
무리가 5백이 모였네.
눈으로 소리를 듣고
경계와 반연이 꿈과 같았다.
시냇가의 곧은 대요,
하늘가의 상서로운 봉황이라.
세 가지 몸에 떨어지지 않기에
나는 이를 애통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