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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여래흥현경 제4권
14. 법인을 체득하는 것(2)
[여화법인(如化法忍)]
불자여, 무엇을 보살 대사의 여화법인(如化法忍)이라고 하는가?
보살이 두루 세속에 들어가 만일 이르는 곳이 있다면 중생이 모두 화(化)와 같은 줄을 관해서 알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알지 못하겠으면 화사(化事)를 생각해야 한다.
화(化)라고 하는 것은 모든 존재의 세계가 지은 행과 사상으로 인하여 변화된 것임을 말한다. 일체의 전도(顚倒)된 고통과 즐거움은 변화된 것들이다.
일체 세간은 모두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있다.
혹은 사상(思想)으로써 문득 번뇌의 뭇 생각[想]의 염(念)을 이루고, 인연으로 변화하여 생긴다.
그러므로 음향과 법률을 건립하고 펴고 찬탄하니,
무상(無想)의 가르침으로써 그들을 개화시켜 굳게 물러나지 않게 하고 평등하게 인도하며,
모든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고 뜻과 서원을 세우게 한다.
행(行)이 화(化)와 같다는 것은, 여래의 대애(大哀)의 행과 백성이 변화하여 생긴 것인 줄을 관찰하고 이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이를 법륜의 선권방편을 닦는다고 말하며, 지혜와 무외(無畏)와 네 가지의 분별하는 변재로써 자재하게 성달(聖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살이 세상을 교화시켜 제도하고, 세상의 공덕을 뛰어넘으니, 변재가 자유롭고 끝없이 넓어서 한량없이 많은 억천(億千)의 중생 속에 들어가 그 속에 처하여 자재를 얻는다.
능히 사람이 행하고 하늘이 움직이는 것을 명료히 알아 성로(聖路)가 없는 것을 보고 대도(大道)로써 보여주어 그 행하는 대로 어기거나 잃는 일이 없게 한다.
비유하면 요술로 만든 사람[化人]처럼 생각하는 것도 없고 짓는 것도 없으며, 마음의 작용을 일으키지도 않고 법에 머무는 일도 없다.
업(業)에서 생기지 않고 보(報)를 바라지도 않으며, 이르는 곳도 없고 세상에 나오지도 않는다.
또한 세상에서 정각을 이루지도 않고 법을 염(念)하지도 않으며, 모든 법을 익히지도 않는다.
또한 오래 머물지도 않고 잠깐 머물지도 않으며, 또 처하는 곳도 없다.
습속(習俗)을 행하지도 않고 세간사(世間事)를 키우지도 않으며 치우친 말도 없다.
모든 한정된 곳에 가까이 가지 않고 또한 한정하지 않는 일도 없으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으며, 독실한 믿음도 없고 또한 믿지 않는 일도 없다.
현성도 없고 범부도 없으며, 번뇌도 없고 원한도 없고, 없어지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는다.
또한 지혜도 없고 지혜롭지 않은 일도 없으며, 소유도 없고 미묘함도 없다.
세상에 의지하지 않고 인도하여 가르치지도 않으며, 모든 법계에 대해 지혜롭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다.
받아들이는 일이 없되 또한 받아들이지 않는 일도 없으며, 5음(陰)이 없되 또한 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생사(生死)도 없고 멸도(滅度)하지도 않아서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이와 같이 보살이 세상에 다니면서 보살행을 닦아 변재를 환히 깨달으나 교만하게 굴지 않는다.
세간을 모두 보고 스스로 잘난 체하는 일이 없이 수행해야 할 것을 따르나, 자기 몸을 위해서도 아니고 세속을 위해서도 아니다.
방일하지 않으므로 내가 없고 집착과 교만함을 여의나 또한 이것에 의지하지도 않으며 세속에 의지하지도 않는다.
그 오만하고 방자함을 버리나 생각하는 것이 없으며, 세상에 처하지도 않고 세상과 단절하지도 않는다.
또 법에 대하여 자재함이 넘치지도 않고, 인간계에 대하여 집착하고 의지하는 일도 없다.
개도(開導)하는 일도 없고 또한 중생계에 처하지도 않으며, 원하는 것도 없고 생각도 없고 청정한 것도 없다.
또 모든 법에 대하여 장엄하는 일도 없으며 모든 불법에 대하여 가진 것이 없으므로 구족하게 성취하여 마침내 대도에 이른다.
또 이 모든 법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니,
비유하면 저 변화한 것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것과 같다.
변화에 통달한 보살은 법인(法忍)에 머물러 평등히 모든 불도를 환히 깨닫고, 이미 성취하고 나서 성제(誠諦)를 세운다.
이렇듯 보살이 불법은 화(化)와 같아 처하는 곳이 없는 줄을 두루 살피기에 불도에 두루하되 획득하는 것이 없고,
중생의 행을 하되 모든 음개(陰蓋)가 없으며,
몸을 일으키지 않고 일체신(一切身)에 들어가 개도하여 건립하는 것이 있으나 집착하는 일이 없다.
만일 색(色)을 보더라도 색이 화(化)와 같은 줄을 알아 집착하는 일이 없이 평등히 진제(眞諦)인 본제(本際)를 구족한다.
자연의 밝음으로써 비추는 것이 있으나 해탈법에 의지하는 일이 없으며,
일체법에 대하여 생긴 것이 있음을 나타내나 생긴 것이 없다.
마치 저 요술로 만든 사람이 생각하는 일이 없으므로 본성이 청정하여 말을 들으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과 같다.
모든 계율을 따르되 또한 상념이 없으니,
마치 요술로 만든 사람이 감동을 준다 하여도 변이로써 만들어진 것일 뿐인 것과 같다.
이제 일체 여래의 성스러운 도량에 이르러 물러나는 인연이 없고 또한 생긴 일도 없어 장애가 없이 일체력(一切力)을 이루나 모두 생각하는 것이 없다.
마치 저 요술로 만든 사람이 그 마음이 모두 통달하였다 하나 위신산(圍神山)을 가리어 장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이 아홉 번째인 여화법인이다.
[여공법인(如空法忍)]
불자여, 무엇을 보살 대사의 여공법인(如空法忍)이라고 하는가?
보살이 중생계를 관찰하여 들어가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아 연(緣)으로 삼는 상(相)이 없는 것이다.
모든 법도 이와 같아 모든 불토에 들어가되 실제로 들어가는 것이 없다.
또 모든 법은 허공과 같아 두 가지 일이 없으며, 보살도 이와 같이 서원하는 바가 없는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다.
모든 불토를 감싸안는 것 역시 이와 같이 속박하는 일이 없으니, 여래께서 들어가신 힘을 일으켜 함께 노닌다.
마치 허공이 들어가는 곳이 둘이 아닌 것처럼 도(道) 또한 이와 같아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없고,
지혜 역시 이와 같아 모든 법이 들어가는 곳이 이 같은 줄을 분별한다.
보살 대사가 법인을 체득하는 것이 허공과 같으며, 성혜(聖慧)에 이르는 것 역시 이와 같다.
모든 승(乘)에 대하여 획득하는 것이 있으나 모두 허공과 같으며, 몸과 입과 뜻이 획득하는 것이 자재하여 허공과 같다.
체득한 모든 법이 뜻으로 생각한 것에 인하여 성취된 것이니, 마치 허공과 같다.
모든 법은 심은 일이 없으므로 없어지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는다.
보살도 이와 같아 일체법에 대하여 자재를 얻으니, 끝도 없고 시작도 없다.
비유하면 허공에 처소가 없어 능히 파괴할 자가 없는 것처럼, 모든 신통과 지혜도 처소가 없어 파괴되는 일도 없다.
허공처럼 모든 불력(佛力)에 자연히 머물며 모든 세상에 머무는 일이 없어 곧 자연의 경계가 된다.
보살이 이와 같이 중생을 건립하되 또한 건립된 것이 없으니, 모든 것이 화(化)와 같다.
마치 허공이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또한 낳는 것도 없으나 세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살 대사도 이와 같이 머무는 일이 없고 성취하는 것도 없되 청정히 장엄하는 것이 있어서 그로 인해 모든 세계를 두루 드러낸다.
마치 허공에 처소가 없고 방면(方面)이 없고 끝이 없고 또 바닥이 없으나, 깊고 넓게 창달하여 두루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같다.
보살도 이와 같아 처소가 없고 방면이 없으나 이르는 곳이 있어, 일체법에 대하여 넓게 통달하고 모든 행을 평등히 다스려 두루하지 않는 일이 없다.
마치 허공을 의지하여 머물고 서므로 낳는 것이 없지만, 온갖 것을 나타내어 백성들의 뭇 형상들을 감싸안는 것과 같다.
보살도 이와 같아 행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되 뭇 행을 따라 다니며 나타내는 것이 있으나, 또한 낳는 것이 없다.
마치 허공이 형상이 없으나 또한 형상을 나타내지 않는 일이 없고, 청정한 행도 없고 더러운 행도 없되 그로 인하여 가르쳐 인도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 세속의 형상이 없으나 세속의 형상을 벗어나는 일도 없고, 한량없는 형상이 없으나 그로 인하여 나타내는 것이 있다.
마치 허공이 영원토록 견고하지도 않고 잠깐 서는 일도 없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 영원히 존립하지도 않고 잠깐 동안 머물지도 않는다.
비유하면 그림자가 나타나나 그림자가 없는 것과 같다.
보살행을 하면서 만일 이것을 환히 깨닫는다면 마침내 구경(究竟)을 얻을 것이다.
허공처럼 행하면 모든 번뇌[塵勞]가 나타나되 더러움이나 허물이 없고, 모든 원한이 나타나되 원망과 증오가 없다.
보살도 이와 같아 도력으로써 뭇 악마를 항복시켜 모두 청정하게 하고, 그 마음이 깨끗하고 고요하여 평등히 일체 세간의 모든 것을 감싸안는다.
또 허공이 세간을 평등히 감싸 차별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 모든 법에 대하여 평등하며, 보살 대사는 또 모든 법에 대하여 장애 받는 일도 없고 망실(亡失)하는 일도 없다.
마치 허공이 모든 것을 평등히 감싸안아 허공을 한정지으려 해도 끝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 모든 법에 대하여 지성(志性)이 함께 노닐며 또 그 도심(道心)이 끝이 없다.
왜냐하면 그 허공이 평등히 두루 미치는 것처럼,
보살도 자신에 대해 수행하여 청정을 성취하고 평등하게 나아가 하나의 두루한 업이 되기 때문이니 한 가지 일로써 한량없는 것으로 바뀌어 모든 국토를 두루 다닌다.
마치 허공과 같아 모든 불토에서 구경에 이르지 않고도 구족하며 모든 방면에서 머무는 일이 없이 모든 방면에 들어가 신통을 이루니, 온갖 덕이 한량없고 훌륭하고 기이한 일을 자연히 구족한다.
모든 법을 획득하여 도무극(度無極)에 이르고 견고한 술법을 얻되 뜻이 허공과 같다.
마치 금강과 같아 모든 소리에 대하여 상념이 없이 온갖 음성으로 개도(開導)하니, 어기거나 버리지 않고 법륜을 굴린다.
만일 보살행을 다 갖추어 이 인(忍)을 이룬다면 자재를 얻을 것이니, 이르는 곳도 없고 오거나 가는 일도 없어, 모두 향하는 곳이 없을 것이다.
마침내 자재를 얻어 없어지는 일이 없이 문득 무위법에 대하여 자기를 말미암게 될 것이며 망실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실제 있는 몸을 없애고 진체(眞體)를 성취할 것이며, 율과 교를 따르고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어 하나의 모양[一相]이 될 것이다.
그 몸이 자재하여 모양 없음[無相]에 들어가니 무상이기에 한량이 없다.
부처님의 힘은 한이 없으시니 몸이 두루 자재하여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시다.
자기의 행을 보호하여 몸이 무너지는 일이 없되 자신을 말미암으며, 견고하고 평등하여 항복시켜 모든 곳에 들어가신다.
만일 부처님을 뵙는다면 그로 인하여 눈이 청정해질 것이며, 이미 음개(陰蓋)가 없어 욕행(欲行)을 여의되 또한 행하지 않는 일도 없을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이 한없이 고요한 것처럼, 들어가는 곳은 인(忍)이 없는 것으로써 하되 인(忍) 아닌 곳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공덕이 이미 두루 미치어 담박한 데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허공에는 위험한 액난이 없는 것처럼,
모든 보살이 행하는 일을 환히 깨달아 청정에 들어가면 마음이 평등하여 허공과 같으므로 모든 불법을 무너뜨리거나 잃는 일이 없다.
큰 바다가 한량없이 수특(殊特)하여 유입(遊入)된 일이 있으나 단절되는 일은 없는 것처럼
모든 불토에 들어가 무한한 국토의 경계와 중생들을 건립하고 유도한다.
허공이 바닥이 없고 모든 색상을 여의며 뭇 음향이 없는 것처럼,
두루 시현(示現)하는 데 따르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곧 개화시켜 구족히 성취하게 한다.
뜻이 견고하기가 허공과 같아 능히 막고 무너뜨릴 자가 없으며, 그 마음이 강하여 모두 구경을 얻어 세계와 평등하되 또한 허공과 같아 일체 있는 것이 없다.
만일 견고하다면 모든 세상에 나아가는 일이 없어서 모든 은애(恩愛)를 없앨 것이며 능히 대도를 구족할 것이다.
만일 겁(劫)이 다하도록 천지를 태워 모두 타 없어진다 하여도 허공은 태울 수 없으니, 허공이 모든 불세계를 총괄하여 받아들이듯이
보살도 이와 같이 모든 힘에 들어가 무상정진(無上正眞)의 지혜를 건립한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 대사가 모든 법은 허공과 같은 줄을 깨닫는 것이니 열 번째 법인이다.”
보현보살이 이 경을 말할 때, 모든 보살 대중과 모든 하늘과 용신과 아수륜과 세상 사람들이 환희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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