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영락경 제4권
10. 인연품(因緣品)
[천안ㆍ천이 신통의 열 가지 공덕]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정안식(定眼識)과 정이식(定耳識)을 받아 지니고 읊고 외운다면 문득 열 가지 공덕을 얻으리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인가?
여기에서 보살마하살이 견줌이 없는 마음[無等心]으로 허공의 상(像)을 얻어서 언교(言敎)로 중생을 교화하여 부처님의 나라를 청정하게 하지 않으리라.
선남자와 선여인은 무수한 형상과 식(識)의 본말을 스스로 알고,
그 공(空)하고 적멸하여 있는 바가 없음을 알아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일으키느니라.
다시 족성자여,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아서 문득 법계의 청정을 능히 갖추는데,
다만 여래 일상(一相)의 형상 없음이 될 뿐이니라.
혹은 어떤 보살이 하나의 법인(法印)을 얻어서 한량없는 여래의 교법을 연설하는데,
스승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연히 깨친 것이니라.
[모습 없음이 모습 있음을 내는 것]
다시 족성자여, 하나의 법을 행함이 본래 광대하고 밑바닥도 없어서 모습 없는 법으로 온갖 법의 근본을 낳으니,
무엇을 모습 없음[無相]이 모습 있음[有相]을 내는 것이라 하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밖에 있는 색(色)이 푸르고, 희고, 붉고, 검고, 노란 것이 있음과 같으니라.”
해석보살이 아뢰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신(神)은 허공에 있어서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아니오며, 또한 5음(陰)의 이름도 없사온데,
어찌하여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희고 검은 것을 말씀하시나이까?
이 인연법은 불가사의합니다.
중생이 스스로 반연된 상념을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행이 있으면 곧 식이 있고, 식을 말미암아 어리석음을 낳으면 곧 사람의 몸을 이루나이다.”
해석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허공은 형상이 없지만 4대(大)의 색(色)인 땅ㆍ물ㆍ불ㆍ바람으로 말미암아 색이 있나이다. 이제 여래께 여쭙나이다.
어째서 이름하여 땅ㆍ물ㆍ불ㆍ바람, 그리고 푸르고 누르고 희고 검다고 말씀하시나이까?
부처님의 말씀과 같다면, 가령 푸름ㆍ노랑ㆍ하양ㆍ검정ㆍ공(空)과 식(識)은 허공 속에 있거늘,
어찌하여 푸름ㆍ노랑ㆍ붉음ㆍ하양 중의 푸르고 노랗고 붉고 흰 것이 모두 공이 아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시나이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각각 스스로 공하기 때문이니라.
공의 성품은 성품 있음을 알지 못하고, 성품 있음은 성품 없음을 알지 못하느니라.
마치 보살마하살이 일념(一念) 사이에 한량없는 항하 모래 수효 찰토의 여러 부처님 세계를 아는 것과 같으니라.
이루어지는 겁과 무너지는 겁을 낱낱이 알고, 그 중도를 알아서 다른 상(相)이 없느니라.
온갖 법의 인연은 스스로 나고 스스로 멸하며, 본래의 나는 공으로 인하여 생겨나고 생겨나면서 멸하지 않느니라.
다시 한량없는 아승기의 찰토를 관하고, 여러 보살이 지혜를 받아서 장엄한 찰토를 관하여 보니, 청정한 무리가 종자를 낳고 그로 인해 저 부처님 나라에 도의 가르침을 연설하여 펼치고 있다.
아승기의 여러 부처님께서는 나온 곳을 모조리 알아서 낱낱이 분별하시지만 또한 ‘나’라는 상념[我想]은 없느니라.
다시 여러 부처님 여래ㆍ지진ㆍ등정각에게 깊은 법요(法要)를 듣고서 받들어 지니고 이어받아서 모든 법의 근본을 버리지 않느니라.
그때에 보살은 또한 ‘나 있음’과 ‘나 없음’을 스스로 보지 않고, 보살의 행을 행하면서도 행 있음을 보지 않으니, 이것을 있음[有]으로 인하여 모습 없음을 일으킨다고 말하느니라.
그 가운데에서 상을 스스로 멸하지 않으니, 몸이 비록 관(觀)을 낳더라도 또한 스스로 보지 않아서 깨달아 아는 바가 없느니라.
이미 깨달아 아는 바가 없다면 또한 이 ‘나’라는 상념도 일으킴이 없느니라.
스스로 계교하고 나서 문득 일체 모든 법을 능히 분별하는데,
무명(無明)은 행을 반연하고, 행은 식을 반연하고, 식은 명색(名色)을 반연하고, 명색은 갱락(更樂:觸)을 반연하고, 나아가 나고, 늙고, 죽음 또한 마찬가지니라.”
[12인연법]
그때에 구행(具行)보살이 이런 생각을 다시 했다.
‘일체 모든 법은 인연으로 서로 생겨나고 인연으로 서로 멸한다.
처음 뜻을 발함으로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여러 가지 법의 모습을 관하여 요달한다.
연(緣)이 생겨나면 생겨나고 연이 멸하면 멸하나니,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갱락이 멸하고, 갱락이 멸하면 애착함이 멸하고, 애착함이 멸하면 수(受)가 멸하고, 수(受)가 멸하면 있음[有]이 멸하고, 있음이 멸하면 생겨남이 멸하고, 생겨남이 멸하면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고달픔이 멸한다.
요점을 취하여 말하면,
5음(陰)은 뭇 행의 근본이니 의지함이 없고 의지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일어나 좇아 온 곳을 알고 저 스스로 모든 법계를 살펴서 관하니 법의 지혜가 청정하여 변재를 버리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이 12인연(因緣)을 생각하여 분별하는데,
어떻게 무명은 행을 반연하는가?
여기에서 선남자나 선여인이 무명의 근본을 말미암아 착하고 악한 행을 지어서 열두 가지 착하지 못한 근본을 다 낳아 차츰차츰 5음의 형상을 이룸이니,
이것을 무명이 행을 반연한다고 말하느니라. ’
그때에 과행(過行) 비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팔을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한 채 부처님께 여쭈었다.
“제가 배운 12인연의 깊고 깊은 법을 제가 이제 마땅히 말씀드리겠나이다.
무명(無明)이 행(行)을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행이 식(識)을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식이 명색(名色)을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명색이 갱락(更樂)을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갱락이 6입(入)을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6입이 애착함[愛]을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애착함이 수(受)를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수(受)가 있음[有]을 반연하여 문득 열두 가지를 내고,
있음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프고 괴롭고 고달픔을 반연하여 다시 열두 가지를 내나이다.
가령 제가 이해한 12인연은
어리석음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갱락이 멸하고, 갱락이 멸하면 6입이 멸하고, 6입이 멸하면 애착함이 멸하고, 애착함이 멸하면 수(受)가 멸하고, 수(受)가 멸하면 있음이 멸하고, 있음이 멸하면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달픔이 멸하나이다.”
[환법의 요술의 비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는 법상(法相)을 헐지 말라.
마치 요술쟁이[幻師]가 이 땅에 머물면서 그 요술[幻法]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요술은 이 땅을 손상하지 않고 땅도 또한 요술을 손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요술쟁이는 이 조화(造化)를 만들어냄이 낮과 밤이 없이 하니, 이 요술을 보는 자가 있다면 모두 다 믿고 아는 것과 같이,
보살마하살도 마찬가지니라.
신족의 힘으로 12인연을 분별하면 부처님의 경계에 그 찰토(刹土)를 나타냄이 없고, 본래 세상은 있지 않지만 지금은 세상 있음을 나타낸다.
다시 부처님이 있는 찰토로써 부처님이 없는 찰토를 능히 나타내고,
색(色) 없는 찰토로써 형색(形色)이 있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로써 둘을 헐지 않고, 둘로써 하나를 헐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 요술은 능히 온갖 세계로 하여금 다 요술 같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니,
마치 일체 세계가 사람들이 기뻐하는 바를 따라 다 요술이 되는 것과 같다.
요술[幻]은 약간(若干)이 있어서 한 가지 법이 아니니라.
혹은 어떤 환법(幻法)은 그 이름을 한량없는 온갖 법문이라고 하는데,
이 환법을 얻은 보살은 문득 일체 모든 법을 나타내기를 모두 요술처럼 할 수 있느니라.
이미 환법을 얻으면 문득 환지(幻智)를 얻어서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느니라.
이미 환지를 얻었다면 문득 환행(幻行)을 얻어서 뭇 고통을 능히 다 없애느니라.
보살마하살이 환지와 환행을 이미 얻었으면, 문득 그 가운데에서 환지로써 온갖 행을 다 분별할 수 있고 낱낱이 사유하여 본제(本際)를 잃지 않느니라.
가령 저 환법은 안의 땅에 의지하지 않고, 바깥 법을 나타내도 또한 밖을 의지하지 않아서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안의 법[內法]이 있음을 나타내게 하느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이니, 공의 성품으로 안팎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며,
나는 마땅히 온갖 세계를 초월했다고 말하니, 또한 세계로써 안팎의 공한 법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허공은 성품이 그러하여 법계를 부수지 않고, 법계는 허공의 성품을 부수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그 가운데에서 허공의 성품을 얻어 갖가지로 일체 법계를 관하는데, 또한 법계를 관하지 않기도 하고 또한 법계를 부수지 않기도 한다.
이 세계에 약간의 형상이 있음을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중생의 착한 행과 악한 행의 과보도 보지 않고 낱낱이 분별하여 그 일을 찾아 연구하느니라.
이는 성품의 공함이 스스로 그러할 뿐이지 능히 그렇게 시키는 것은 없다.
관하고 나서 다시 관하여 3유(有)를 분별하는데, 그 가운데서 12인연을 계교하느니라.
[어리석음과 세 가지 행의 일]
어리석음을 말미암아 안식(眼識)을 일으키는데 세 가지 행의 일이 있나니,
어떤 것이 셋이 되는가?
마치 족성자가 눈으로 외부의 색깔은 보지만 착하고 착하지 않은 것은 모두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는 본식(本識)을 말미암아 무명이 물들임을 행하는 것이니라.
혹은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몸ㆍ입ㆍ뜻을 일으켜 세 가지 착하지 못한 법을 행하다가 점점 스스로 깨달아서
‘애달프구나, 내가 본래 지은 것은 무명의 근본을 말미암아 지금 12인연을 초래했구나’ 하면서
무명을 좇아서는 스스로 고칠 수 없음을 아느니라.
다시 다음에 선남자나 선여인이 어리석음을 말미암아 행을 초래해서 뭇 죄의 근원이 죄를 말미암아 생겨난다.
‘나는 이제 고요한 정의(定意)를 마땅히 염(念)해서 이 12인연이 어리석음을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인가, 행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인가를 관해야 한다’고 하고,
다시 스스로 사유하기를
‘무명의 맑고 고요한 은닉(隱匿)의 법이 무엇을 말미암아 온갖 반연의 집착을 능히 내는가?
나의 몸ㆍ입으로 행하고 짓지 않은 것이면 말미암아 생길 수 없으리라’고 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세 가지 행을 분별하여 있는 바가 없음이라고 말하느니라.
[공관의 삼매를 얻어서 12인연을 분별함]
보살마하살이 공관(空觀)의 정의(定意)를 얻어서 12인연을 분별하는데,
어리석음을 반연하여 행이 있으면 문득 반연의 과보가 있지만,
어리석음이 본원이 아니라면 무엇을 말미암아 행이 있으랴?
몸ㆍ입ㆍ뜻의 법인 세 가지 일이 서로 원인이 되어 온갖 법을 내고 있으니,
그 까닭에 여래는 수없는 겁에서 12인연을 분별하고 사유해서 지금 성불하여 비로소 믿고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뜻을 발하여 보살의 도를 구하면서 몸을 버리고 몸을 받으면서도 12인연을 분별하여 고통의 근본을 사유했지만 그 근원을 다하지 못하였다.
지금 내가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이루고서야 비로소 12인연을 창달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과행 비구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네가 비록 여래 앞에서 12인연을 말하였지만, 그 근본은 능히 갖추지 못하였다.
어째서 근본이 없느냐?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 이 세상에 머물면서 항하 모래알과 같이 많은 겁을 지나도록 12인연을 선포해 말씀하여도 오히려 능히 다할 수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네가 이제 다하려고 하느냐?”
그때 저 비구가 여래의 앞에서 몹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장차 저는 신족을 잃지 않겠습니까?’하면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아래에 엎드려 절하고는 문득 물러나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