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보살소문경론 제6권
3.4. 방편에 회향할 줄 잘 앎을 성취함(1)
[문] 방편에 회향할 줄 잘 앎을 성취한다는 것을 묻겠다.
무엇 때문에 계율과 보시를 말한 뒤에 방편에 회향할 줄 잘 아는 것을 말하는가?
[답] 다른 도의 공덕을 나타내 보이려 하기 때문이다.
이 뜻은 무엇인가?
외도의 사람들은 자신의 즐거움을 구하기 때문에 계율과 보시 등을 닦아서 3유(有)에 회향하며,
또 성문승의 사람과 벽지불 등은 역시 스스로가 몸을 위하여 열반의 즐거움을 구하면서 계율과 보시 등을 닦아 열반에 회향하지만,
모든 보살마하살은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큰 열반을 구하며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한결같은 마음으로써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계율과 보시 등을 닦아서 위없는 큰 보리의 결과에 회향한다.
계율과 보시 등은 저 외도와 성문과 벽지불이 같나니,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훌륭한 도의 공덕에 회향함을 나타내 보이느라고 계율과 보시를 말씀한 뒤에 다음으로 방편에 회향할 줄 잘 아는 것을 말씀하셨다.
또, 계율과 보시 등을 닦음은, 세간의 즐거움의 과보에 탐착하는 마음을 막고 보호하기는 어려우므로 그 때문에 여래께서는 보시와 계율을 말씀한 뒤에 방편에 회향할 줄 아는 것을 말씀하셨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계율과 보시 등은 삼매의 행이 아니고 오직 욕심세계의 하늘과 사람 가운데 깨끗하고 미묘한 빛깔 등의 경계인 과보를 얻을 뿐이니, 그 깨끗하고 미묘한 빛깔 등의 경계는 비록 마음을 내어서 탐냄 등의 번뇌를 지킨다 하더라도 여읠 수가 없다.
왜 그러한가?
과거 끝없는 세상 동안에 익힌 탐냄과 욕망 등이 경계에 물들고 집착되어 마음이 그 빛깔 등의 경계를 좇음으로써 막고 보호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든 보살들은 그때에 지(地)의 방편법을 수행하나니,
곧 그때에 비록 다시 아직은 탐냄 등의 번뇌를 여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계율과 보시를 닦으면 탐냄 등의 번뇌가 마음을 물들게 할 수 없다.
또, 의심을 끊기 위하여 여래께서는 계율과 보시를 말씀한 뒤에 방편에 회향할 줄 잘 아는 것을 말씀하셨다.
이는 어떠한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
세간에 어떠한 사람이 보살을 의심하여
‘번뇌를 여의지 않고 계율과 보시 등을 닦지만 영리한 근기 때문에 함이 있는 법은 모두가 다 괴롭고 공(空)하고 무상한 줄 자세히 살피리라.
계율과 보시를 닦는 때에 탐냄 등의 번뇌는 보살을 물들게 할까, 보살을 물들게 하지 않을까?’ 라고 한다.
그러한 의심을 끊기 위하여 보살은 그때에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려하며 자기의 이익을 버리고 전륜왕으로서의 즐거운 과보까지 구하지 않고 오직 일체 중생의 즐거움만을 위하며 부처님의 보리를 구하면서 모든 선한 뿌리를 열반에 회향한다.
이런 이치 때문에, 보살이 비록 아직은 세간을 여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온갖 세간에 있는 것의 허물과 근심거리는 보살을 물들게 하지 못한다.
또, 깨끗한 계율에 의하여 깨끗함에 회향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깨끗하게 지니는 계율의 힘에 의하여 그 때문에 버릴 수가 있고, 버리는 힘 때문에 모든 구하는 것의 법이 다 성취된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계율과 보시를 말씀한 뒤에 방편에 회향함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수다라에서 말씀하시기를
“계율을 지니는 사람은 원하는 것과 하는 일이 모두 다 성취되느니라. 왜 그러한가? 계율이 깨끗하기 때문이니라”고 하셨다.
미륵보살소문경론 제7권
3.4. 방편에 회향할 줄 잘 앎을 성취함(2)
[회향과 방편의 뜻]
[문] 회향의 뜻을 말하고 방편의 뜻을 말하여야 하리라.
어떤 것이 회향의 뜻이며, 어떤 것이 방편의 뜻인가?
[답] 만약 다른 곳의 선한 뿌리 공덕을 돌리어[廻] 부처님의 보리에 향(向)하면, 이를 회향이라 한다.
또, 부처님의 보리에 의하여 수행하는 마음을 일으켜 한량없는 여러 가지 문을 언제나 어디서나 모든 선한 뿌리를 모아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증득하려 하나니, 세속 진리[世諦]의 경계와 반야에 의하여 방편을 회향하며 널리 옮아오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은 세속 진리의 경계와 반야에 의하여 만약 원인은 결과와 흡사하다는 것을 알면, 한량이 있는 원인을 닦아서 깊은 마음으로 보살의 특수한 도의 공덕 등을 성취하고 훌륭한 법을 더욱 자라게 하여 한량없는 과보의 가운데에 놓아두나니, 그러므로 방편을 회향한다고 한다.
또, 같이[同] 또는 훌륭하게[勝] 회향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두 가지 회향]
간략히 말하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두 가지의 회향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 같이 회향[同廻向]함이며,
둘째 훌륭하게 회향[勝廻向]함이다.
같이 회향한다 함은 온갖 선한 뿌리가 모두 다 살바야 지혜에 회향하는 것이다.
훌륭하게 회향한다 함은 무진의수다라의 보시의 과보[布施果] 중에서 말씀하시기를
“밥을 구하면 밥을 주어서 목숨ㆍ변재ㆍ빛깔ㆍ힘ㆍ즐거움 등을 두루 갖추기 때문이며,
마실 것을 구하면 마실 것을 주어서 목마름을 여의게 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옷을 보시하면 빛깔을 얻고, 탈 것을 보시하면 즐거움을 얻고, 등불을 보시하면 눈을 얻으며, 음악을 베푸는 이는 깨끗한 하늘 귀를 얻는다.
이와 같이 하여 나아가 골수와 뇌를 베푸는 이는 금강의 몸이 견고하여 무너지지 않느니라”고 하신, 이와 같은 등과 같다.
또, 같이 회향함이라 함은 일체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며,
훌륭하게 회향한다 함은 아직 믿는 마음을 내지 못한 이에게 믿는 마음을 내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 계율을 깨뜨리는 이가 있으면 계율을 지닐 수 있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 듣고서 아는 지혜가 없는 이면 듣고서 아는 지혜를 얻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 게으른 이가 있으면 힘써 나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 잊기를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기억하여 지닐 수 있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 마음이 흐트러지고 어지러운 이면 선정을 얻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 지혜가 없는 이면 지혜를 얻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 아까워하는 이가 있으면 버림을 성취하게 하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것 등이다.
또, 같이 회향함이라 함은 여섯 가지 바라밀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며,
훌륭하게 회향한다 함은 바깥일을 버리기 때문이며,
일체 중생에게 크게 부귀한 자량을 두루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손발 등의 온갖 뼈마디와 모든 감관을 버리어 일체 중생들에게 모든 감관과 손발 등을 두루 갖추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등의 회향은 온갖 수다라 중에서 자세히 말씀하신 줄 알아야 한다.
또, 모든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려 하여 그 때문에 회향한다.
이 뜻은 무엇인가?
보살이 네 가지의 이치를 깨끗이 하려 하기 때문이니, 보시 등의 모든 큰 법을 부처님의 보리에 회향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하려 함이며,
둘째 보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려 함이며,
셋째 중생의 마음을 교화하고 순숙(淳熟)하여 깨끗이 하려 함이며,
넷째 온갖 부처님 법을 깨끗이 하려 함이다.
보살은 세간의 지위를 얻기 위하여 회향하지 않고, 자신의 즐거움을 얻기 위하여 회향하지 않고,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를 취득하기 위하여 회향하지 않는다.
또, 베푸는 등의 보시로 다하는 원인을 멀리 여의어 회향함으로써 모든 보살은 일체종지의 원인을 취득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방편에 회향할 줄 잘 안다.
또, 보살에 네 가지 일이 있으면 보시 등의 공덕이 다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지 않으며,
둘째 세간의 사람과 하늘에 날 곳을 구하며,
셋째 방편에 회향함이 없으며,
넷째 나쁜 벗을 친히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는 보살은 온갖 보시 등의 선한 뿌리가 다하여 없어진다.
만약 보살이 보시 등을 행할 적에 세 가지 법이 언제나 앞에 나타나면, 보살은 그때에 보시 등의 공덕이 다하는 원인을 멀리 여의고 일체종지를 성취할 수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 보리심을 바르게 두루 앎이며,
둘째 중생을 가엾이 여김이며,
셋째 여래의 말씀과 가르침을 어기지 않는 것이다.
또, 방편을 섭수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은 아주 작은 선한 뿌리까지라도 섭수함으로써 넓은 과보를 성취할 수 있다.
곧, 저 보시 등에서 세간의 중생들은 하늘과 사람의 과보를 취득하지만, 저 보시 등에서 모든 보살마하살은 부처님 보리를 취득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방편에 회향함을 성취한다.
여래께서 방편의 수다라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방편 지혜[方便智]로써 한 입에 넣을 음식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에게 베풀어 주면, 곧 일체 중생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느니라.
왜 그러한가?
보살은 방편 지혜를 지니기 때문에 한 입에 넣을 음식을 축생에게 베풀어 주는데도 마음이 언제나 일체중생과 같이 여기는 것이어서 그 선한 뿌리는 모두 일체 종지에 회향하기를 원하느니라.
보살의 보시는 두 가지 일을 위하여 일체 중생에게 베풀어 주느니라.
첫째는 일체지의 지위를 구함이며,
둘째는 큰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방편의 힘으로써 보시를 할 때에 여섯 가지 바라밀을 모두 다 만족시킨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보살마하살이 빌고 구하는 사람을 볼 때에 아까워하거나 시샘하는 마음을 거두어 조복하면, 크게 버림의 마음이 더욱 자라기 때문에 곧 보시바라밀을 성취하느니라.
또, 모든 보살은 자신이 지니는 계율로써 계율 지니는 사람에게 보시하고 모든 계율 깨뜨린 사람에게는 계율을 성취하게 한다. 이를 보살마하살의 계율 지님의 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또, 모든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과 성내지 않는 마음과 안정된 마음으로 보시하면, 이를 보살마하살의 인욕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또, 모든 보살이 거타니(佉陀尼)와 포사니(蒲闍尼) 등의 갖가지 음식을 보시하는 몸ㆍ입ㆍ뜻의 업과 가고 오는 거동은, 이를 보살마하살의 정진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또, 모든 보살이 보시를 할 때에 오롯한 마음의 한 생각으로 기뻐하고 산란하지 않고 딴 일을 구하지 않으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선정(禪定)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또, 모든 보살이 보시를 할 때에 법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어
‘누가 버릴 수 있을까, 누가 받을 수 있을까, 누가 과보를 받을 수 있을까?’라고
보살이 이와 같이 자세히 살피지만 하나의 법도 보이지 않나니,
‘누가 버릴 수 있을까, 누가 받을 수 있을까, 누가 과보를 받을 수 있을까?’라고 하는
하나의 법도 보이지 않는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등은 방편의 수다라에서 밝히신 방편에 회향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
[문] 깨끗함과 깨끗하지 아니한 회향을 말하여야 하리라. 보시와 같은 것 중에서 깨끗함과 깨끗하지 아니함이 있다면, 이 회향 중에서도 이와 같은 깨끗함과 깨끗하지 아니함이 있어야 하리라.
[답] 수행으로 인한 결과는 그 밖의 온갖 수다라에서 자세히 말씀한 것과 같은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