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해일륜_18. 사람이 현재(現今)의 육신을 버리고 새로운 몸을 받는 것을 변명함(捨身受身辨明)
객이 묻기를,
“사람이 육신肉身을 버리고 내생來生에 몸을 받고자 할 때에 그 형용은 어떠합니까?”
용성이 대답하기를,
“사람이 죽을 때에 사대로 조직된 이 육체가 움직여서 운전하는 바람 기운과 따뜻한 불기운은 위로 떠서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차고 찬 몸뚱이만 남아 있어서 썩어서 물이 되고 흙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때는 싱그러운 신식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신식神識은 비록 형체가 없지만, 청정하고 오묘한 색근(淨妙色根)이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범부가 대단히 알기 어렵다. 모든 귀신이 다 청정하고 오묘한 색근을 의지하여 보고 듣고 아는 것이다.
비유로 말할 것이다. 그대가 필시 꿈을 꾸어 보았을 것이다. 몽중夢中에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見聞覺知)과 말하고 움직임(言語動作)과 일체가 생시와 어떠하던가?”
객이 대답하기를,
“생시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용성이 말하기를,
“그것이 청정하고 오묘한 색근을 빌려서 말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대각께서는 이것 보기를 현재에 우리가 사람 보는 것과 같이 한다. 이 신식 자체가 바람과 같아서 분명히 있지만 형체는 없는 것이니, 산하석벽山下石壁이 걸림 없어서 순식간에 천리만리를 가는 것이다. 새로운 몸을 받기 전에는 이 신식이 법계의 바탕(法界體)에 머물러 오직 생각하는 힘만 있다. 이 신식이 인연因緣을 따라 몸을 받아 태어나는(受生) 것이니, 십만까지라도 몸을 받아 태어날 인연이 있으면 순식간에 당도하는 것이다.
대개 아는 것을 식識이라 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종자種子가 있으므로 싹이 날 수 있는 것과 같아서, 식이 있으므로 육체를 나게 하는 것이다. 지혜로부터 식이 나기 때문에 이름을 생각이라고 한다. 신식 자체가 뚜렷이 서 있으므로 자타自他의 구별이 있게 되었다. 괴로움(苦)과 즐거움(樂)과 선善과 악惡의 모든 경계를 알기 때문에 식이라고 한다.
종자로부터 움이 터서 큰 나무를 성취하는 것과 같이, 식識으로부터 사람의 몸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신식이 이 몸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것이 사람이 거울 가운데에서 얼굴이 나타나 있다가, 또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다시 강물 가운데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 신식과 부모와 인연이 합한 것은 거울에 비유하고, 신식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것은 강물에서 다시 얼굴을 나타내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아뢰야식이 온갖 변화가 있기 때문에 만물이 발생하지만 세상 사람은 식으로 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인도나라에 지적초知跡草라는 풀이 있는데, 꽃이 피면 크고 아름다우며 맛이 최상 가는 것인데,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그 꽃을 꺾으려고 가면 그 꽃이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곧 움츠러드는 것이니 식이 포함된 것이 아닌가?
또 나무가 있는데, 혹 새(鳥)나 거미(蛛)가 그 나뭇잎에 앉으면, 곧 나뭇잎이 갑자기 오므라져서 그 물건을 흡수吸受하여 먹으니, 비록 무정한 물건일지라도 아뢰야식이 포함되어 있는데,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대체로 신식은 분명히 있으나 알 수 없는 것이 마치 여자가 아이를 잉태함에 자기 배 가운데에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아이가 배 속에서 굼실굼실 노는 것은 알 수 있다. 신식은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다. 비유하자면 태양광명이 우주에 찬란함에 송장이나 더러운 똥에 비추어도 태양광명은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한 유리琉璃에 비추지만 태양광명은 더 깨끗한 것이 없는 것이다.
식이 인상印像을 잘 받아서 자체 안에다가 하나도 유실함이 없이 잘 간직하여 두었다가 인연을 만나면 모두 나오는 것이다. 종자種子를 밭(田)에 묻어 그 종자의 업성業性을 따라 형상形相이 나오는데, 맵고 쓰고 단 것이 다른 것과 같이, 선업을 지은 자는 얼굴이 단정하고 모든 복이 자연히 일어나는 것이다. 악업을 지은 자는 얼굴이 법도法度를 잃어서 혹 단정치 못하거나, 혹 자비덕상慈悲德相이 없어서 아름답지 못하여 복이 자연히 없는 것이다. 신식이 몸을 버리고 갈 때에 눈구멍이나, 귓구멍이나, 콧구멍이나, 입구멍이나, 털구멍이나 무슨 구멍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고, 나가는 곳이 없이 나가는 것이며, 들어갈 때에도 모든 구멍으로 찾아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몽중에 마치 물건을 보며 인축人畜의 소리가 역력히 들리며 천리만리를 다니며 놀더니, 잠을 깨어 놓고 보니 하나도 없으며, 식이 옮겨 갈 때에도 몽중에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대는 식을 자세히 알아야 할 것이다. 아뢰야식의 자체가 광대하고 큰 것이 진성眞性과 비등하며, 허공 전체와 같아서 들어가지 아니한 곳이 없으며, 맑고도 항상 유동력流動力이 강하며, 모든 만물의 종자를 머금고 있으며, 모든 선악업을 받아서 도장을 찍어(印) 두고 천진 화학적 작용이 구족하므로 산하대지 삼라만상이 형형색색으로 업을 따라 나는 것이다. 이것이 천진본연성의 묘용이며, 아뢰야식의 천진 화학적 작용이니, 그대는 자세히 깨쳐야 할 것이다.
그대는 계란鷄卵을 보는가? 그것은 둥글둥글하여 눈도 귀도 없으며, 두루뭉수리하여서 아무런 지각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당당히 산 물건이니 이 계란 전체가 아뢰야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어서 만일 아뢰야식과 분리되면 곧 썩고 마는 것이다. 이 계란을 따뜻한 곳에 두면, ‘꼬끼오!’ 하고 우는 산(生) 물건이 그 가운데에서 나온다.
소나무 씨가 비록 작으나 낙락장송이 그 가운데서 나오고, 고기 알이 비록 작으나 장강대해長江大海를 툭툭 쳐서 파도를 일게 하는 큰 고기가 나오며, 매의 알(鷹卵)이 비록 작지만 창공蒼空을 능멸히 하는 송골매가 나오니, 알卵로 있을 때에 보면 무정지물과 같으나, 당당히 산(生) 물건이 아닌가?
참외(眞苽)나 가지(茄子) 등 물건이 비록 무정한 물건이나 부인이 그 밭 가운데 들어서 오줌을 누면 딱딱 벌어지니, 어찌 단순히 무정지물이라고만 볼 것인가? 만물이 서로 상생상극相生相克이 있으니, 무엇이 있어서 상생상극하는가? 다 아뢰야식의 작용이다. 그러하므로 천지 만물이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고, 오직 아뢰야식이 지은 것이다.
인도국에 향초가 있는데, 이름이 첨바라화瞻婆羅華라 하니 그 꽃과 흑임자黑荏子를 한데 혼합하여 잘 쪄서 익힌 뒤에 기름을 짜면 향취가 아름답다. 이것이 옮겨 가는 것이 없이 곧 옮겨 가는 것이니 식이 옮겨 가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객이 묻기를,
“생시에는 육안이 있기 때문에 볼 수 있지만, 사후死後에는 눈과 귀와 코가 없는데 볼 이치가 만무합니다.”
용성이 대답하기를,
“눈먼 장님(盲人)은 어찌 보는가?”
객이 대답하기를,
“장님이 본다는 것은 참 거짓말입니다.”
용성이 대답하기를,
“그대가 칠흑같이 어두운 밤(漆夜) 삼경三更에 무엇을 보는가?”
대답하기를,
“오직 어두운 것만 봅니다.”
용성이 말하기를,
“그 어두운 것을 보는 것은 장님과 같은 것이니, 그것이 곧 보는 것이다. 장님이 밤에 꿈을 꾸는데 몽중에 일월日月이 명랑明朗하고, 만물이 분명한 것을 보니 그것이 육안으로 보는 것인가? 그 보는 것은 밝은 마음이 보는 것이다. 사람이 비록 몸은 죽을지라도 밝은 마음은 죽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신식을 어떻게 아는 것입니까?”
용성이 말하기를,
“신식은 저장貯藏하여 둔 곳도 없고, 형체도 없지만 갖가지 형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종자를 따라서 움이 나오는 것이니, 만일 종자가 썩어지면 움이 나지 못하는 것이다. 종자를 따라 움이 나서 큰 나무가 된 것이고, 또다시 나무 끝에 꽃이 피고 과실이 맺혀 종자가 익었지만, 그 나무 전체를 해부하여 보아도 그 종자는 어디로부터 온 곳도 없다. 이와 같아서 신식으로부터 사람의 육체가 되었지만, 육체를 해부하여 식을 찾아보아도 식이 있는 곳이 없고, 또 식을 여의고는 이 몸도 없다.
또 비유하자면 저 과실이 나무로부터 익기(熟也)를 마치는데, 과실 가운데에 씨가 있으니 과실과 종자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그러하여 목숨을 마칠 때에 신체 가운데로 식만 또렷이 나서서 떠나는데 형체를 볼 수 없으니, 부모처자권속과 금은옥백金銀玉帛을 다 버리고 오직 식만 홀로 가는 것이다.
이 식은 형체는 없으나 자기는 몸이 분명 있는 것을 보는데, 이 식이 경계를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화합하고, 음욕淫慾에 연애戀愛로써 서로 얽힌 것이며, 생각으로써 서로 집착한 것이고, 착한(善) 인연으로써 반연하여 화합하기도 하며, 악惡한 인연으로써 반연하여 화합하기도 하며, 지혜훈습智慧薰習한 것으로써 업연業緣을 따라 몸을 받아 태어나는데, 아버지가 될 사람의 식과 어머니가 될 사람의 식과 육체가 서로 교접할 때에 자식이 될 자의 신식이 만 리 밖에 있더라도 일순간一瞬間에 당도하여 인연이 화합된 뒤에서 잉태가 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명경을 가져다가 사람의 얼굴에다가 대하는데, 얼굴이 없더라도 나타나지 못할 것이며, 명경이 없더라도 나타나지 못할 것이니 명경과 얼굴과 두 가지 인연이 화합한 뒤에야 얼굴이 나타나되 가는 털끝만큼(毫髮)도 틀림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신식이 이 몸을 버리고 저 몸을 받는데, 혹 복도 받고 죄도 받지만, 마치 꿀벌이 맛에 취하여 꽃 위에 앉아서 맛을 탐착하다가 그 꽃을 버리고 다른 꽃으로 옮겨 가되, 혹 나쁜 꽃을 버리고 좋은 꽃으로 옮겨 가기도 하며, 혹 좋은 꽃을 버리고 나쁜 꽃으로 옮겨 가기도 하는데, 이와 같아서천당지옥이 다 자기의 신식身識으로 지은 것이지 누가 명령을 해서(命令的) 지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