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불사 세 성인을 영원토록 사모하며 15
첫째가 자비이며, 두째는 검소이다.
현공은 평생 근면하고 검소하셨습니다.
제7장. 노덕화상: 한 차례 맑은 바람 소리 우주에 가득 하네 (一聲清風遍寰宇)
현공께서는 생전에 자주 어느 한 승려의 일화를 들려주시곤 하셨습니다. 우리가 고봉사와 청천사에 갔을 때, 연강법사와 인생법사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현공이 들려주셨던 그 승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그래서 이분 승려에 대해 특별히 서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노덕老德화상은 현공과는 동년배이시며, 어렸을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나 어머니를 따라 밥을 구걸하며 생계를 연명하였습니다. 그러던 몹시 매섭게 추웠던 어느 해 겨울에 온갖 추위와 굶주림의 고통을 실컷 맛본 노덕 모자는 구걸하다가 동백현 평씨진 금산사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모친은 주지이신 해참海參법사께 자비를 베풀어 자신들 두 모자를 거두어줄 것을 애걸하였으며, 아울러 노덕을 거두어 제자로 삼아주실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해참법사는 노덕에게 승려가 되게 해주겠다는 대답은 하지 않으신 채 그를 데리고 위타보살상韋馱菩薩像 앞으로 데리고 가서는 노덕에게 위타보살님께 절하고 스승으로 삼으라 하셨습니다. 노덕은 몹시 얼뜨고 멍청하고 우둔하였기 때문에, 그의 모친은 그를 “노태”(老呆: 멍청이)라고 불렀습니다. 남양 방언에서는 “태呆(dāi)”자와 “덕德(dé)”자는 발음이 같았기 때문에, 세월이 오래 지나자 “노태”라고 부르던 이름이 그만 “노덕老德”이 되었습니다. 노덕화상은 바로 이렇게 출가하시게 되었기 때문에, 그의 머리를 깎아주어 승려가 되게 해주신 스승(剃度師)도 없으시고, 역시 법명도 없으시며, 더욱이 일찍이 계를 받은 적도 없으십니다.
이때부터 평씨진 사방 몇 십리 안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매일 어깨에 포대를 하나 메고서 밖으로 나가 탁발하는 노태화상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해참법사는 그에게 길을 걸어갈 때, “아미타불”을 부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해참법사가 시키는 대로 길을 걸으면서 성실하게 염불을 하였습니다. 마을의 아녀자와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그의 몹시 얼뜨고 멍청한 모습을 보기만 하면 항상 그를 놀리고 장난쳤습니다. 그러나 노덕은 전혀 화를 내는 기색 없이 오로지 몇 번이고 사람들에게 절을 하고, 입속으로는 멈추지 않고 “아미타불, 아미타불”하고 불렀을 뿐이었습니다. …… 누군가가 그를 우롱하며 “노덕아, 네가 나에게 이마를 땅에 닿도록 절하면 내가 먹을 양식을 주겠다.”라고 말하면, 노덕화상은 말씀하시길, “내가 절하지 않는 부처님이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장난으로 돌을 가리키면서, “이 속에도 부처님이 계시다.”라고 말하면, 노덕은 그 즉시 포대를 내려놓고서 돌을 향해 무릎을 꿇고서 곧 “쿵” 하고 머리가 돌에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절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재미로 항상 이렇게 그를 가지고 놀려대는 바람에, 노덕의 이마에는 계란만한 큰 혹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남을 속이고 골탕 먹이기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똥을 가리키면서 노덕에게 말하길, “이 속에 부처님이 계시다.”고 하면, 노덕은 말하길, “부처님께서 계시면 곧 절을 해야지.”라고 한 후에 그 즉시 소똥에 머리가 닿도록 절을 하였습니다.
또 심지어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장난으로 실 한 가닥을 그의 귀에다 걸어놓고서 말하길, “노덕아, 내가 너를 이곳에 묶어놓았으니, 너는 움직일 수 없어!” 그 사람의 이 말을 듣고서 곧이곧대로 믿고는 땡볕 아래 서서 울기 시작하였으며, 한나절 동안 그곳에서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그의 앞을 지나가다가 그에게 왜 우느냐고 묻자, 그는 어떤 사람이 자신을 묶어놓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무엇으로 묶어놓았느냐고 묻자, 그는 실로 묶어놓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에게 어디를 묶어놓았느냐고 묻자, 그는 귀를 묶어놓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그의 귀에 걸려있던 실을 집어서 그에게 주면서 말하길, “내가 널 풀어주었으니, 넌 이제 가도 된다.”고 하자, 노덕은 금방 울음을 그치고, 웃으면서 몇 번이고 계속해서 그 사람에게 절하며 염불하였습니다. ……
노덕은 탁발을 하고 절에 돌아온 후에는 반드시 먼저 위타보살상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는 말하길, “스승님,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한 후 탁발한 음식을 대전으로 가지고 가서 부처님께 공양하였습니다. 낮에는 밖에 나가 탁발하였고, 저녁에는 위타보살님께 절을 하였으며, 세월이 오래 지나도록 매일 똑같이 이렇게 하였습니다.
1954년 음력 12월에 노덕화상은 병이 났지만, 그러나 탕약을 마시기를 거절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람을 보기만 하면 묻기를, “언제가 음력 12월 8일입니까?” 매일 반드시 몇 번이고 똑같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해참법사가 슬쩍 그에게 묻기를, “늘 음력 12월 8일을 묻는데, 왜 그러느냐?” 그러자 노덕화상이 대답하길, “제 스승님(위타보살님)께서 저에게 음력 12월 8일에 아미타 부처님께서 저를 데리러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해참법사는 그의 말을 마음속으로 새기면서 그를 찬탄하셨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 덧 그가 말한 음력 12월 8일이 되었는데, 노덕은 오히려 정작 다시 묻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절 안의 승려들이 그에게 일러주길, “오늘이 바로 음력 12월 8일인데, 자네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가?” 노덕은 그 말을 듣자, 마치 매우 놀라는 듯이 묻기를, “정말입니까? 그럼 저는 가야 합니다.” 그리고는 그는 그 즉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위해 목욕할 물을 길어다 줄 것을 청하였으며,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곧 바로 단정하게 앉아 염불을 하며 원적하셨습니다.
노덕화상이 왕생하신 지 거의 2년 가까이 되었을 때, 행상꾼 몇 사람이 장사를 하러 무한에 갔다가 무한 거리에서 어깨에 포대를 메고 탁발하고 있는 어리벙벙한 화상을 우연히 보았는데, 그 생김새가 노덕과 비슷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그 화상 곁에 가서 아는 체를 하며 말하길, “노덕, 자네는 어떻게 무한까지 왔는가?” 그 말에 그 어리벙벙한 화상이 그들을 쳐다보면서 마치 바보처럼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하길, “탁발하지요!” 그래서 그들이 말하길, “우리와 함께 돌아가겠는가?” 그 어리벙벙한 화상이 대답하길, “난 며칠 있다가 돌아가겠소.”
이 행상꾼들은 무한에서 돌아와서 평씨진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무한 거리에서 우연히 노덕을 만난 일을 들려주고 나서야 노덕이 이미 왕생한 지 2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만난 사람은 분명히 노덕화상임이 틀림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인연생거사)
나무아미타불! 노덕화상의 사적은 남양 지역에 있는 승가대중들 속에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러나 세월이 이미 오래 되어 전해오는 중에 오히려 와전된 것들이 많습니다. 현공께서 생전에 일찍이 이를 귀찮게 여기지 않으시고서 노덕화상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려주셨기 때문에, 말학은 반드시 진실하게 서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말학과 인지법사가 시간을 내어 일부러 평씨진까지 가서 한 차례 자세하고 철저하게 조사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평씨진 관음사 주지이신 인천印川법사를 비롯하여 몇 분의 대덕거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저희들은 그해 금산사에서 해참법사를 따라 구오사미驅烏沙彌를 지낸 적이 있는 진계秦啟장로거사를 찾아뵈었습니다. 진계노거사는 금년에 이미 83세의 고령이시며, 금산사 뒤에 있는 마을에 살고 계셨습니다.
(주)구오사미: 절에서 음식을 보고 날아드는 까마귀를 쫓거나 파리 따위를 날리는 7세에서 13세까지의 사미를 말한다.
노거사는 12살 이전에는 늘 금산사에서 살았으며, 또한 해참법사가 인권印權이란 법명을 지어주셨기 때문에, 노덕화상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분이십니다. 말학은 제가 알고 있는 노덕화상에 관한 일부 자료와 의문 나는 점들을 먼저 진계노거사에게 말씀드려 인증과 대답을 해주시길 청하였습니다. 진계노거사께서는 끈기 있게 일일이 대답해주셨으며, 더구나 친히 저희를 데리고 금산사의 유지遺址와 노덕화상의 묘지를 참관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저희는 일대一代 성승聖僧의 묘지가 제멋대로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가시나무로 겹겹이 덥혀 있는 모습을 직접 보니, 말학은 저도 모르게 참지 못하고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계속 칭념하였으며, 눈물이 적삼을 적셨습니다. ……
이 기연機緣을 이용해 말학은 옛 대덕의 선시 《주종鑄鐘》을 빌려 노덕화상께 정례를 올리고 찬탄합니다.
큰 용광로 풀무 속에서 몸을 바꾸어 나오니, 집게와 쇠망치로 치지 않았는데 힘이 30만 근이네. (大爐韝裏翻身出, 不犯鉗錘勢萬鈞.)
한 차례 맑은 바람 소리 우주에 가득 하니, 꿈속의 사람을 몇이나 불러 돌아오게 하였는가? (一聲清風遍寰宇, 喚回多少夢中人?)
15편♣
첫댓글 한산 습득이 생각나게 하네요. 감사합니다 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