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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은 1971년 국립공원,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노천박물관으로 일컬어질 만큼 700여점의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산재한 곳이다. 유흥준 교수가 93년 출간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의해 “경주에 와서 남산을 오르지 않으면 경주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는 인식이 크게 확산되면서 남산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아졌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단체 수학여행단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남산을 오르는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남산 이용자의 급격한 증가는 자연환경 파괴와 문화재 훼손 등 문제도 발생시키고 있다. 어떤이는 지난 천년을 꿋꿋이 견뎌온 남산 석조 문화재의 훼손 가능성에 관한 주장이 갑자기 늘고 있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남산은 기반암이 지표면에 노출된 대표적인 악지형으로 큰 연교차와 잦은 폭우, 그리고 형산강 지구대를 따라 부는 강한 바람 등을 고려하면 문화재 보존에 매우 열악한 환경조건을 가졌다. 이는 남산의 문화재가 인위적인 훼손뿐 아니라 자연현상에 의한 훼손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남산의 토양이 대부분 침식에 약한 사양질(砂壤質)로 돼 있어 집중호우로 인한 지표토 유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29개 등산로를 이용하는 방문객의 증가는 토양층을 딱딱하게 만들어 강수를 흡수하지 못하게 하고, 집중호우가 내리면 지표면을 쓸어내리면서 홍수침식을 유발시킨다. 이는 문화재 주변의 식생 및 토양환경을 변화시켜 문화재를 지지하고 있던 기반을 파괴시킨다.
셋째, 불과 30㎞밖에 떨어지지 않은 울산과 포항 등지에서 배출된 고농도 대기오염 물질이 해풍과 계곡풍에 의해 주기적으로 남산에 몰아쳐 석조 문화재의 부식을 가속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문화재 자체의 부식이나 훼손 그리고 복원에 초점을 맞춘 미시적인 대책도 필요하지만 인간의 자연환경 파괴가 문화재 훼손에 영향을 준다는 인식 아래 거시적인 대책 마련도 시급한 실정이다.
현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남산 종합정비 기본계획을 수립중이다. 그러나 집중호우나 산불뿐 아니라 방문객 증가로 인한 식생과 토질의 변화, 대기오염에 의한 훼손 가능성에 대한 정밀조사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등산로를 연차적으로 폐쇄하고 특정 지역에 대해 일정기간 출입을 제한하는 구역별 안식년제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돼야 한다. 여기에 지속적인 예산확보와 사적 추가지정에 따른 민원 해소, 문화재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문화재 정비 지양 등은 앞으로 꾸준히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정비계획 등 남산 관리대책의 마련은 그 절실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남산의 문화재 보호를 위해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상설 자문단의 구성 등 절차상의 문제도 꼼꼼히 검토해야 하는 것은 물론, 남산에 대한 국민적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은 두말할 나위없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의 찬란한 문화유산인 남산을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공부하는 것은 우리 것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따른 제반 문제점을 미리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세계유산의 명성에 흠을 남기는 일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