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NGO신문 4월 18일자 8면(민족NGO섹션)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조만간 종합하여 교육부에 청원을 낼 자료이니까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원고>
[국사교과서, 올해 이것만은 꼭 바꿔라!] 〈9〉
영원히 잃어버린 발해의 후손을 찾아라!
박정학/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고조선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이고, 그 세력범위가 몽골 지역 일부와 만주, 연해주까지라는 것은 모든 교과서 지도에서 볼 수 있다. 그 후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도 그렇게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교과서의 후삼국 시대, 고려 이후의 지도에는 발해의 영토였던 자리를 여진, 거란으로 표시하고 이민족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고조선이 건국된 서기전 2333년부터 고구려를 거쳐 발해가 멸망한 926년까지 3,259년 간 우리 민족 국가의 백성이었던 이 지역 거주자들을 버리자, 중국에서는 이를 주워서 자신들 역사인 요금원청의 선조들 역사라면서 발해-고구려-고조선-치우까지 자기들의 지방정권이었다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현재 우리 교과서가 중국 동북공정을 적극적으로 도울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을 한반도 안으로 줄이고자 노력했던 조선총독부의 반도사관도 명확하게 인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후삼국시대와 발해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그 후손들의 역사에 대한 바른 논리 정립을 통해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
발해를 뺀 후삼국시대라는 잘못된 표현
현 교과서에 적용된 모든 교육부의 지침에서 공통적으로 ‘통일 신라와 발해’라 하여 발해를 우리 민족국가로 인정하고,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는 “통일 신라와 발해가 병존한 시기를 남북국 시대로 명명하는 학계에 큰 흐름에 유의하라. 남북국 시대론의 의미와 함께 한계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서술한다.”(28쪽)고 하여 남북국 시대론도 거론하고 있다. 그러면서 발해가 제외된 ‘후삼국 시대’,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라는 용어도 사용함으로써 발해를 우리 민족에서 제외하는 듯한 모순된 기술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교과서에서도 공통적으로 ‘통일 신라와 발해의 발전’이라는 제목으로 신라보다 훨씬 넓은 땅을 가진 발해에 대해 기술하면서도, “신라와 후고구려(고려), 후백제가 서로 다투던 시대를 후삼국 시대라 한다.”(초, 65쪽)는 등 ‘후삼국 시대’라는 시대명을 쓰고 있다. 그런 한편, 비상교육 편『중학교 역사1』에서는 “남북국의 성립과 발전(90쪽)” “발해가 건국하여 남북국을 이루다(97쪽)” “남북국의 대외 교류(101쪽)”라고 서술하여, 민족 전체로서는 남국 신라, 북국 발해인 남북국 체제이고, 시대 이름은 ‘남북국 시대’가 아니고 남국에서만 해당되는 ‘후삼국 시대’라고 기술하고 있다. 바로잡아져야 할 시대 명칭이다.
발해의 주민을 이민족이라 표현
발해와 관련해서는 한국사 집필기준에서 “발해가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한 사실과…발해 멸망 이후 유민의 동향에 대해서도 서술한다.…발해의 주민 구성이 지배층은 고구려 유민, 피지배층은 말갈이라는 이분법적인 서술을 지양하고 고구려 유민과 말갈의 융합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유의한다(4쪽)”고 상당히 논리적인 지침을 내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고구려 유민이었던 말갈을 고구려인과 분리시켜 애매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교과서에서는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고구려의 옛 땅에는 발해가 세워졌다.”(초, 40쪽), “발해는 고구려 유민을 중심으로 건국되었다.”(중, 97쪽)면서도, “대조영이 고구려인과 말갈인을 이끌고 발해를 건국하였다.”(고, 38쪽) “고려는 후백제와 신라 세력뿐 아니라 발해인까지 받아들이며 실질적인 민족통일을 이루었다.”(초, 64쪽), “거란에 의해 멸망한 발해의 유민들을 포용하여 민족의 재통일을 이룩하였다.”(고, 48쪽)고 기술하고 있다. 발해의 주민을 고구려인과 말갈인, 그리고 거란으로 분리하고, 일부 유민만 받아들인 것으로 기술함으로써 고조선-고구려-발해의 백성이었던 대부분의 말갈, 거란인들을 아무 설명도 없이 이민족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려 때부터는 ‘이유 설명 없이’ 이민족으로 기술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는 ‘고려는 발해인까지 받아들여 실질적인 민족통일을 이루었다’고 하여 발해와 고려의 연결을 짓고 있으나, 고려보다 엄청 큰 영토의 발해 유민을 얼마나 받아들였는지 불투명하다. 그리고 고조선-고구려-발해로 연결되는 3,259년 간 우리 민족의 땅이었던 만주지역에서는 그 후 거란-몽골족이 요-원을 여진족이 금-청을 건국하여 고려, 조선과 대립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후 발해의 후손들에 대한 말은 일체 없어짐으로써 그들을 영원이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잃어버린 사람들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거란이 고려의 북쪽 땅이 원래 자기들의 땅이었다는 이유로 수차례 침범해왔으나 서희는 ‘그 땅이 원래 고구려의 땅이었는데 고려는 고구려를 이은 나라이니 도리어 땅을 내놓아라는 담판을 통해 물리쳤다’, ‘여진족은 만주지역에서 일어난 민족’ 등의 기술 외에 고려와 관련되는 집단에 대해 ‘송, 거란, 여진과 ’, ‘요, 몽골-원, 여진-금-청’ 등의 나라이름과 민족이름을 혼용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가 서희의 담판할 때의 역사 의식보다 못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 겨레였던 발해의 주민이었던 말갈, 거란을 발해의 후손과 분리하여 이민족으로 만드는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도와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발해를 명확히 우리 민족 국가로 인정한다면 후삼국 통일이 아니라 남북국통일이라 하고, 북국인 발해의 후손들은 요금원청을 세우고 남국인 고려웠다고 하여 그들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 확실하게 편입시키는 새로운 역사를 정립하여야 한다.

만주지역 영토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현 교과서의 지도들
<보도지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