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의 ‘320d 럭셔리’를 타봤다. 럭셔리는 320d의 라인 중 하나다. 호화 편의장비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가격도 320d중 가장 비싸다. 같은 집안 형님인 520d와 가격이 비슷하다. 개별 소비세를 인하하고도 무려 5500만 원이나 한다. 시승 전, ‘너무 화려하고 비싸지 않나?’라고 생각했었다.
3시리즈는 BMW의 간판타자다. 1975년 데뷔해 5번의 세대교체를 거쳤다. 탄탄한 주행성능을 앞세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한때는 BMW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판매모델이 다양해진 지금도 BMW 총 매출의 약 30%를 책임지고 있다. 3시리즈는 지금의 BMW를 만든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20d는 디젤엔진을 얹은 3시리즈다. 이름 그대로 직렬 4기통 2.0L 디젤 터보엔진을 단다. BMW가 3시리즈에 디젤엔진을 도입하기 시작한 건 1990년의 3세대부터다. 1.6L 또는 2.5L 엔진을 얹고 318tds, 325td 등으로 불렀다. 2.0L 엔진의 320d는 4세대 때 등장했다. 한국 시장엔 5세대가 되서야 발을 들였다.
국내에 상륙한 5세대 320d는 인기가 좋았다. 3시리즈 장기인 민첩한 몸놀림은 물론 높은 연비까지 품었었다. 올해 등장한 6세대 320d는 효율을 더욱 높였다. 변속기를 바꾸고 무게도 약 20㎏ 덜어냈다. 덩치는 확연하게 키웠다. 길이는 93㎜를, 좌우 바퀴간 거리는 앞 37㎜, 뒤 48㎜를 늘렸다.
그래서 신형 320d는 이전에 비해 한층 길고 넓어 보인다. 5시리즈와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다. 뒷모습은 생김새마저 매우 닮았다. 따라서 뒤쪽에선 둘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 앞모습은 실제 수치보다 더 넓적해 보인다. 바깥쪽으로 밀어내고 아래쪽으로 낮춰 단 헤드램프 때문이다. 헤드램프 안쪽은 옆면을 드러낸 라디에이터 그릴과 연결해 입체감을 살렸다.
신형 320d는 다섯 가지 종류가 있다. 일단 최고출력을 21마력 낮추고 연비를 1.7㎞/L 끌어올린 320d ED와 ‘일반’ 320d로 나뉜다. 그리고 이 일반 320d에 옵션으로 구성을 달리 한 세 개의 라인이 더 준비된다. BMW는 이를 모던, 스포츠, 럭셔리라 부른다. 320d ED와 일반 320d의 겉모습은 비슷하다. 휠의 디자인과 크기가 다른 정도다.
하지만 일반 320d와 세 개 라인의 겉모습은 조금 다르다. 세 개 라인은 안개등과 머플러 주변에 몇 조각의 패널을 덧댄다. B필러도 유광 검정으로 마감한다. 휠 디자인도 좀 더 고급스럽다. 라인끼리 비교해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덧댄 패널의 형상과 소재, 라디에이터 그릴의 핀 색상, 휠의 디자인과 크기 등이 각각 다르다.
시승차는 320d 럭셔리다. ‘럭셔리’라는 이름 그대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냈다. 안개등 위쪽엔 두 개의 크롬 바를 가로로 붙였다. 뒤 범퍼 아래쪽에 붙인 바도, 라디에이터 그릴의 안쪽 핀도, 옆 창문을 두른 몰딩도 크롬 소재다. 휠은 촘촘하게 살을 나눈 17인치다. 앞 펜더엔 ‘럭셔리’라고 쓴 엠블럼을 단다. 도어를 열면 드러나는 도어 스텝에도 ‘BMW 럭셔리’라는 문구가 있다.
실내 기본 구성은 모든 320d가 같다. 여러 면을 겹쳐 입체감을 살린 ‘레이어드 디자인’의 대시보드도, 8.8인치 와이드 모니터도 모든 320d가 기본으로 품는다. 레이아웃이 어찌나 화려한지 차에 오르면 주눅이 들 정도다. 그런데 세 개 라인의 실내는 한층 더 고급스럽다. 대시보드와 변속레버 주변, 도어 트림 등에 고급 소재로 만든 패널을 붙이기 때문이다. 럭셔리의 경우 붉은 색을 띄는 호두나무를 쓴다.
시트를 씌운 가죽도 일반 320d와는 다르다. 일반 320d는 인조, 세 개의 라인부터는 천연 가죽이다. 앞 유리에 속도 및 다양한 정보를 띄우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실내 구석구석을 은은하게 밝히는 엠비언트 라이트도 일반 320d에는 없다. 스티어링 휠 열선과 뒷좌석 열선, ‘하만-카돈’사의 오디오 시스템 등은 럭셔리만 단다.
럭셔리는 이외에도 서라운드 뷰와 컴포트 엑세스 등의 고급 편의 장비를 단다. 다른 320d는 물론, 위급인 520d에서도 볼 수 없는 장비들이다. 서라운드 뷰는 전·후방 카메라보다 한 단계이상 진화한 주차 보조 장비다. 세 개의 카메라가 하늘에서 차를 내려다보는 듯한 영상을 모니터에 띄워 주차를 돕는다. 컴포트 엑세스는 열쇠를 소지하기만 해도 도어를 열고 잠글 수 있는 장비다. 뒤 범퍼 아래에 발을 넣어 손대지 않고 트렁크를 여는 기능도 포함한다.
한편, 신형 3시리즈의 뒷좌석은 이전보다 한결 쾌적해졌다. 무릎 공간도, 머리 공간도 넉넉해졌다. 짐 공간도 50L 늘어난 480L다. 반가운 변화다. 사실 이전 3시리즈는 패밀리 세단으로 타기엔 다소 빠듯했다. 뒷좌석은 무릎이 앞좌석 등받이에 닿을 만큼 비좁았다. 짐 공간은 유모차 하나 접어 넣으면 가득 찰 정도였다. 하지만 신형 3시리즈는 5시리즈 부럽지 않을 정도의 공간을 자랑한다.
엔진은 이전 320d와 같다. 최고출력도 최대토크도 그대로다. 최고 184마력, 38.8㎏·m의 힘을 낸다. 덩치는 커졌지만 무게는 조금 줄어서 가속성능도 그대로다. 0→ 시속 100㎞ 가속을 7.6초에 마친다. 최고속도도 큰 차이 없다. 세대를 거듭났지만, 최고출력과 가속성능이 변함없다는 건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연비는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전보다 기어를 2개 늘린 8단 자동변속기 덕분이다. 이전 320d는 1L의 연료로 17.6㎞를 달렸다. 반면 신형은 22.1㎞를 달린다. (국내 구연비 기준, 320d ED는 23.8㎞/L) 이전보다 국내 기준으로 약 25%, 유럽 기준으로 약 20% 높아진 수치다.
공회전시 엔진 소음은 여전히 크다. 하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조용해지는 특성도 그대로다. 손끝에 스미는 진동은 이전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이전에는 320d ED에만 달던 EPS(전자식 파워 스티어링)를 모든 320d에 도입했기 때문이다. EPS는 연비 향상에 살을 보탠 숨은 조연이기도 하다. 스티어링 휠 돌리는 감각과 제자리로 돌아오는 반응은 기존의 유압식과 다를 바 없다.
수치상의 가속성능은 같지만, 가속의 질은 이전과 다르다. 기어를 바꿔 타는 과정이 이전보다 한결 매끄러워졌다. 기어를 내려 무는 속도도 조금 빨라졌다. 또한 고속 안전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최고속도에 다다른 속도에서도 허리에 전해지는 감각이 은근히 든든하다. 아울러 고속에서의 피칭 현상도 줄었다. 이전 세대는 거친 노면을 빠르게 달릴 때 앞뒤로 요동치는 현상이 있었다. 그래서 뒷좌석에 앉았을 때 불편했다. 그러나 이젠 모든 탑승자가 먼 거리를 편히 갈 수 있을 만큼 개선됐다.
신형 3시리즈의 휠 베이스는 2810㎜다. 이전에 비해 49㎜ 늘어났다. 두 세대 이전의 5시리즈(E39, 2830㎜)와 비슷한 수치다. 앞뒤 바퀴 간격을 넓히면 장점이 여럿 생긴다. 신형 320d의 고속 안정성과 피칭 현상이 개선 된 것도, 실내 공간이 넓어진 것도 모두 늘어난 휠 베이스 덕분이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보통, 휠 베이스를 늘리면 몸놀림이 둔해진다. 신형 320d도 예외는 아니다. 신형 320d는 앞머리를 비트는 감각이 이전에 비해 조금 무뎌졌다. 스티어링 휠로 전해지는 깔끔한 손맛도 다소 줄어들었다. 댐퍼의 세팅이 부드러워 진 탓도 있지만, 좌우 거동이 커진 것도 늘어난 휠 베이스 때문이다.
하지만 신형 320d에도 BMW 특유의 탄탄한 주행성능은 담겨있다. 고유 리듬이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머리를 꺾는 템포와 관절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특성을 파악하면, 이전세대 못지않은 운전재미를 느낄 수 있다. 조금 더 날 선 감각을 원한다면 M 스포츠 서스펜션과 가변식 스포츠 스티어링으로 거동을 다진, 320d 스포츠를 선택하면 된다.
5세대 320d는 ‘좋은 차’였다. 탄탄한 주행성능과 높은 효율을 뽐냈었다. 그러나 몇 가지 단점도 있었다. 좁은 뒷좌석과 짐 공간이었다. 고속으로 달릴 때의 승차감도 문제였다. 반면, 6세대로 거듭난 320d에선 단점을 찾기 힘들다. 이전세대의 장점이었던 효율은 더욱 끌어올렸고 승차감도 개선했다. 또한 공간에 대한 콤플렉스도 말끔하게 해결했다. 신형 3시리즈는 마치 이전세대의 3시리즈와 현행 5시리즈의 중간 모델처럼 느껴졌다.
320d 럭셔리의 매력은 한층 더 깊었다. 320d 럭셔리는 동급 경쟁자는 물론, 위급 모델 보다 더 화려하고 고급스러웠다. 다양한 편의장비는 다소 높은 가격이 아깝지 않을 만큼, 커다란 만족감을 줬다. 시승 후, 320d 럭셔리의 존재 이유가 납득이 갔다. 패밀리 카로 전혀 손색이 없는 넓은 실내 공간이 밑바탕 되었기에 가능했다. ‘이 가격이면 520d가 낫지 않을까?’라는 내 생각은 희미하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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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민 | 사진 이인주 <차보다 빠른 검색 모토야 www.motoy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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