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판사 한기택'을 읽었다. 이제야 독후감을 적는다. 판사 한기택은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2005. 7. 24. 해외 가족 여행 중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대법원장 비서실장 김종훈은 이 책의 발간사에서 '우리는 떠난 그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다가 그 없이 살아야 하는 우리가 더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며 고인을 기렸다. 고인의 사망 후 유족의 생계를 걱정한 조관행 판사의 제안으로 모금이 이루어졌는데, 부장판사 이상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며칠 만에 1억 원이 모인 것은 고인의 죽음에 대한 판사들의 충격과 안타까움이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이수형을 비롯한 동아일보 법조팀 기자들이 '한기택, 그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고인의 삶을 정리하였고, 이어서 고인의 일기, 편지를 간추려 실었으며, 박시환 대법관을 비롯한 동료 판사 3명, 이 마르셀 수녀님이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실었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연보, 법률논문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한기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고인의 1주기를 즈음하여 펴낸 책이다.
이 책은, 김용철 대법원장의 퇴임을 몰고온 제2차 사법파동의 주역이 한기택 판사였음을, 완곡하고 온건하여 400여 명의 판사들이 서명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성명서를 작성한 사람이 다름 아닌 한기택 판사였음을, 고등학교 때 가졌던 꿈이 절대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고, 고인이 그 꿈을 이루었음을, 이상연씨와 대학 2학년 만나 619번의 데이트 끝에 결혼하였으며, 죽는 날까지 사랑하였음을, 고인이 중견법관이 된 뒤 목숨 걸고 재판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고 고인이 그 말을 실천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고인은 대학 1학년 때 경제철학회에 잠시 드나들었고, 대학교 2학년 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회지 피데스(Fides)에 가입하였고, 3학년 때 피데스 편집장을 맡고 있었는데, 당시 대부분의 단과대학 학회지 편집장은 사위를 주도하고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를 두고 고민하다가 사법시험을 보기로 결정하였다. 고인은 1980년 제24회 행정고시에, 1981년에 제23회 사법시험에 모두 합격하였다.
1982. 6. 23. 검사 시보 시절 이상연씨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즉, 우리 일상생활에서 죄가 되는 것이 터무니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 피의자나 피고인에 대한 검찰, 법원의 처분이 일정기간 범죄인을 사회에서 격리시켜 사회를 그들로부터 방위한다는 소극적 효과 이외에, 범죄인을 개선, 교화하고 그들이 죄를 범하게 하는 환경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무슨 효과가 있나 의심스럽다는 점을 고인은 고민하였다.
1982. 8. 23. 이상연씨에게 보낸 편지에는 '저는 출세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고인은 1986. 9. 1.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되어 법관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서울행정법원 판사로 있으면서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인정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를 규정한 헌법에 따른 것이며 국가가 시각장애인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제도가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비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시각장애인의 생존권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고 판결한 것을 비롯하여 약자에게는 관대한, 강자에게는 엄격한 판결을 하였다.
고인은 1981. 10. 11. 명동성당에서 크리스토폴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 귀의하였으며 죽는 날까지 하느님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다.
고인은 1989년 7월 민사판례연구회에 가입하였고, 1994년 3월 우리법연구회에 가입하였으며, 2005. 2. 14.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었다. 고인은 2005. 7. 24. 40대 후반의 나이에 어머니와 자녀, 그리고 형제 가족 등 14명과 함께 떠난 해외 가족 여행 중 말레이시아 코타키나 발루 바다에서 영면하였고, 현재는 미리내 성지 입구에 있는 유무상통 실버타운 안의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다.
고인이 좋아했다는 시를 소개함과 동시에 법조인 또는 법조인이 되려고 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면서 부족한 이 글을 마친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더디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빠르고, 슬픈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길고, 기쁜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짧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2007. 4. 21. 부산에서, 고인을 백만분의 일이라도 닮고 싶은 문형배 올림 (블로그에 방문하신 분이 일만 명이 되는 것에 즈음하여) |
출처: 착한사람들을 위한 법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착한 사람들
첫댓글 "착한 사람들을 위한 법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계시는 문형배 판사님의 블로그에서 스크랩한 서평입니다. 마을주민들께서도 한번 방문하셔서 판사님의 서평과 추천책을 참고하셨음 해서 담아왔습니다. 글쓴이가 절대 제가 아닙니다. ㅎㅎ
속았잖아요. 한참을 읽은 후에나 알았습니다. 하여튼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군요...어쩐지 서평을 다 쓰셨더라 했지요.... ㅎㅎㅎ
우리법 연구회라고 요즘 많이 언론에 기사가 나더군요. 특히 조중동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우리법 연구회를 거의 물어 뜯는 정도로 비판하는 법조인들의 연구모임 인데, 문형배 판사님이 요번에 회장으로 봉사하고 계시더군요. 우리법 연구회 검색하다가 판사님 블로그에 찾아 갔는데 뜻밖에 책을 익히는 판사님이더라구요.^^
시간은 무엇일까요? 물리적 개념의 시간은 동일 할 터인데..
그러게요.^^ 일단은 부지런함이 시간을 온전히 사용하는 비결아닌 비결이라 생각드네요.^^
간혹 하루종일 모니터를 보다 보면 눈이 흐릿해지고 눈물이 나면서 결막이 따가워져 옴을 느낍니다. '야 이러다가 눈도 안 보이게 되는거 아녀'라고 생각하다가 이렇게 열심히 살다가 눈이 안보여도 속상하진 않겠다라고 자위해 봅니다.진짜...그렇게 돼도 누군가가 나의 눈이 되어 주겠죠하면서 낙관적인 생각을 해 봅니다. 결국 시간이란 주어진 삶에 열심하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라......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건요. 얼마만큼 살아야 정답을 알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