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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하시고 효자이시며, 문인이시고 숭례문을 건축하신분으로
최영, 이성계, 정몽주와 같은 세대(고려말~조선초)였던
죽정 최유경(崔有慶)
죽정 최유경 (竹亭 崔有慶)은 조선전기 경기우도도관찰출척사, 대사헌, 참찬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무덤이다.
2003년 4월 21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20호로 지정되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지(慶之), 호는 죽정(竹亭). 할아버지는 선부전서(選部典書) 상호군 최득평(崔得枰)이고, 아버지는 감찰대부(監察大夫) 최재(崔宰)이다.
20210506 죽정 최유경 묘소 탐방
4월 7일 포은 정몽주, 4월 10일 애국 순교자 민영환 의 묘소가 제가 거주하는 곳에서 15Km 이내에 있어 다녀왔습니다.
5월 6일에는 1960년대에 숭례문을 해체하여 다시 복원 할 때 발견되었던 숭례문 상량(上樑) 에 최유경이 건축하였다는 기록이 적혀 최유경은 청빈하였고 효자이며 문인이고 또한 건축가로서 최영, 이성계, 정몽주와의 동시대(고려말~조선초)의 사람이면서도 또한 필자인 임충섭의 고향(충북 진천군 초평면 화산리 오경 죽정내 마을)과도 아주 밀접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하여 5월 6일 죽정 최유경 묘소에도 다녀왔습니다.
"뉴스매거진" 신문 2018년 5월16일자 신문에 저의 고향(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화산리 오경 죽정내 마을)과 관련한 기사가 있어 올려보았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죽정 최유경은 청주에서 태어나셨고 최유경 선생이 진천에서 근무 할 당시에 막내
최사흥을 진천에서 나았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17087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로 95 (창덕문) Gyeonggi-do Giheung-gu, Yongin-si Gomae-ro 95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51-2 창덕문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관련항목 보기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최유경의 사당.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효성과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이름이 높아 태종 때에는 청백리로 녹선되고, 세종 때에는 효자정문이 내려졌다. 이곳에 소재한 사우(祠宇)를 효렴사(孝廉祠)라 한 것은 그의 청렴한 기상과 효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방도 393호선을 따라 기흥초등학교에서 고매동주매마을로 향하는 샛길로 약 900m 가량 지나면 좌측에 최유경 묘역이 있는 자봉산 골짜기가 나오는데, 효렴사는 묘역 입구 도로변에 인접하여 위치해 있다.
1413년 평도공 최유경의 사후에 조정에서 공세리 자봉산 아래 구동을 사패지(賜牌地)로 내려 이곳에 최유경의 묘소와 사당을 마련되었다. 효렴사는 원래 평도공 묘역 골짜기를 북동쪽으로 감싸는 산자락 끝에 남동향으로 위치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일부가 소실되고, 1960년대 후반에 화재를 당해 나머지 건물도 모두 소실되었다. 1986년에 후손들이 건립을 발의하여 3년 뒤인 1989년에 중창이 완료되었다.
효렴사는 뒤로 산을 등지고 앞쪽으로 시야가 트여 전답이 펼쳐진 배산임수의 형세에 자리잡아 석축을 쌓아 지대를 높여 건축하였다. 장대석 기단 위에 전면 5칸, 측면 2칸으로 구성하여 전퇴를 놓아 화강석을 깔고, 기둥 위에는 이익공을 두고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내부에는 뒷면에 붙여 위패를 모시는 단을 꾸미고, 그 위로는 닷집을 만들었으며, 앞쪽을 넓게 비워 놓아 마치 사찰의 불전과 같은 구성이다. 효렴사 주변에는 담장을 둘러 경역을 나누고, 앞쪽으로 소슬삼문을 세워 창덕문(彰德門)이라고 현판하였다. 창덕문 앞 좌우에는 계단 위에 해태상이 있다. 전면 향우측에 있는 신도비는 귀부와 이수를 갖춘 것으로, 비명과 음기는 본래 조선 전기에 변계량이 찬한 것인데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새로 세웠다.
일반적으로 사당은 복잡한 장식을 피하고 단정한 모습을 갖는 것에 비해 효렴사는 규모나 장식에서 당당하고 화려하여 근래에 신축된 사당의 취향을 보여준다. 또한 사당건축이지만 기능상 재실로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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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운신의 폭이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