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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월 19일 일요일. 종일 비가 내리지만 가끔 파란 하늘.
숙소에서 잘 잤다. 편안하다. 밤새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아침 식사는 1층에 있는 호텔 식당에서 제공해 준다. 소세지 2개, 계란 스크램블, 구운 토마토를 갖다 준다. 여기는 뷔페식이 아니라 주문식이다. 직원이 와서 주문을 받는다. 잘 먹었다. 손님은 별로 없는지 식당이 썰렁하다. 여기서 하루 더 자기로 했기에 짐을 대충 정리 해 놓고 숙소를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트리폴리다. 우산을 쓰고 걸어서 어제 버스를 탔던 샤르 헬루(Charles Helou) 터미널로 간다.
우린 목적지에 닿을 때보다 지나치는 골목길에서 더 소중한 것을 얻는 것 같다. 목적지에서 얻는 것도 있지만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 것 같다. 조금 일찍 인 아침 7시에 숙소에서 나왔다. 비가 엄청 내려 주변에 눈을 돌리 여유도 없다. 어제 걷던 길이지만 오늘은 순교자의 광장(Martyrs' Square)을 들렀다. 마침 비가 좀 소강상태다. 동서 베이루트 중심 선상에 서 있는 순교자 광장은 오스만 통치기간동안 처형된 순교자들을 위해 바쳐졌다.
1931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현대사에서는 최근 레바논에서 반복된 정치적 암살 또한 관련이 있는 곳이다. 최근 경제난에 불만을 품은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곳이다. 동상을 중심으로 곳곳에 천막들이 세워져 있고 시위의 흔적들이 흩어져 있는데 대부분 잘 청소되어 있다. 레바논 의회 청사 앞에 세워진 바리케이드를 뚫으려 하자 시위진압 경찰들이 방패와 곤봉으로 막으면서 양측 간 물리적인 충돌도 빚어진단다. 시위 참가자 중 일부는 잠시 베이루트 내 몇몇 주요 도로를 봉쇄하기도 했고, 일부는 타이어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레바논 국기를 든 반정부 시위대가 베이루트 수도 중앙 ‘순교자 광장’에 모여서 의회 청사를 향해 행진했다. 일부 시위자들은 “혁명, 혁명”이라고 외치기도 했고, “정부와 의회는 도둑들!”이라는 구호를 제창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에 걸친 전쟁과 내전을 가까스로 끝낸 지 이제 겨우 20여 년, 베이루트 시민들은 그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 와서 그런가 어디서 과격한 시위와 충돌이 일어나도 바로 다음날이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간다. 타이어를 태웠던 자리도 보인다.
중앙의 움켜 쥔 주먹에는 '혁명'이라는 말이 씌어 있다. 다음은 광장에 붙어있는 가장 눈에 잘 띄는 커다란 모스크(Mohammad AlAmin Mosque)를 둘러보았다.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내부는 다음에 구경하기로 하고 그 앞에 있는 로마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작은 교회 두 개가 로마유적지와 접하고 있다. Saint George Greek Orthodox Cathedral, St Elias Greek Catholic Cathedral이다. 규모가 큰 현대적인 성 조지 성당(Saint Georges Maronite Cathedral)도 높은 종탑을 자랑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 광장으로 왔다.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주변에 깔끔한 간이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동상 옆에 페트병과 콜라, 맥주 캔, 병뚜껑 등을 사용해서 만들어 놓은 조형물이 보인다. 국기를 들고 있는 시위대의 역동적인 모습이다. 커다란 레바논 국기도 게양되어 있다. 좀 더 걸어 올라가니 The Egg (Metropole Cinema) 라는 커다란 계란 모양의 건물이 있는데 색깔이 검, 붉은색 어두운 색으로 폐허가 되어있다. 예쁜 레바논 아가씨가 접근해 온다. 시티 투어 버스를 타고 시내를 둘러보란다.
그러고 보니 길가에 투어 버스가 정차해 있다. 이 와중에도 시티 투어 버스가 운행하고 있구나. 놀라웠다. 우리는 트리폴리를 가야하기에 다시 광장을 빠져나왔다. 어제와 같은 샤르 헬루 터미널이다. 10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베이루트에서 비블로스를 거쳐 트리폴리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해안도로의 풍광이 좋다. 운전수 뒤에 앉아서 좌우를 살피면서 간다. 구경거리가 많다. 왼쪽에는 바다를 끼고 가고 오른쪽은 주로 상가 건물들과 산비탈에 세워진 건물들이 시원하게 보인다.
비블로스를 지나 더 북으로 올라간다. 톨게이트도 하나 나온다. 그래서 고속도로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백향목 숲이 있는 브샤리(Bsharri)로 들어가는 갈래 길도 알 수 있었다. 내일은 이곳으로 갈 것 같다. 한적한 산기슭에 커다란 성채 유적(Mseilha Fort)이 나타나더니 물을 막아놓은 댐(Mseilha Dam/Lake)이 나타난다. 트리폴리에 가까워진다. 헤즈볼라가 장악하고 있다는 트리폴리, 여행자는 가지 말 것을 표시 되어있는 도시, 암살과 테러가 자주 일어난다는 트리폴리, 속으로 잔뜩 긴장된 트리폴리에 드디어 도착했다.
Connexion Beirut - Tripoli Bus 버스 정류장에 내려준다. 복잡한 광장이다. 버스터미널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길바닥 한가운데인데다 한창 공사 중인 건물들, 어디에도 여기가 트리폴리라는 표식이 없는 거다. 깔끔한 베이루트 시가지에만 있다 온 내게 처음부터 너무 강렬한 인상의 트리폴리. 인도에 처음 떨어졌을 때 분위기와 비슷하다. 광장과 접해 있는 5층 정도의 빌딩에는 싸우는 듯, 힘과 데모가 연상되는 레바논 국기가 그려져 있다. 거기에 하얀 주먹도 그려져 있다.
이 빌딩을 이정표 삼으면 베이루트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카메라에 건물을 담았다. 주변에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지만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오래된 상가와 사람들이, 내리는 비와 함께 엉켜서 엉망이다. 그 아래는 냄비와 접시, 주전자 후라이팬, 컵 등을 이용해서 커다란 나무를 만들어 놓았다. 이 도시와 딱 어울리는 조형물이라 생각이 들었다. 골목을 돌아서니 커다란 빌딩이 눈앞에 있는데 그 벽에 그려진 그림이 인상적이다.
7층 정도 높이의 빌딩 벽에 그려진 꼬마의 모습이다. 군복을 입고 위를 응시하는 모습이 너무 잘 생겼다. 국기도 보이고 낙서도 있다. 우리의 처음 목적지는 그랜드 모스크를 거쳐 시타 델에 올라가는 것이다. 세 개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트리폴리(아랍어로는 타라불루스, 영어는 Tripoli, 정식 명칭은 타라부루스아슈샴)는 지중해 동부 연안에 위치한 레바논의 도시로, 북부 주의 주도이며 베이루트(레바논의 수도)에서 북쪽으로 8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500,000명이며 레바논에서 베이루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항구 도시이기도 하다. 주민 가운데 80%는 수니파 무슬림이다. 페니키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원 전 7세기 카르타고에 의해 건설된 페니키아 식 도시로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다. 리비아의 수도와 이름이 같다. 고대도시의 흔적은 없고 현재의 시가지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시대의 유산이다. 아부 알리 강 양안에 펼쳐지는 구시가지와 알미나항(港)을 중심으로 하는 2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BC 700년경부터 그리스의 도시 트리폴리로 알려졌다. 그 후 페르시아·로마 시대를 거쳐 638년 이슬람 세력의 점령, 1105년 십자군의 점령 등이 있었고, 다시 이집트 토후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1910년 영국이 점령한 뒤 1941년 레바논의 영토가 되었다. 서남아시아 유전지대의 석유적출항이며, 이라크 키르쿠크로부터 뻗은 송유관의 종점이다. 주요산업은 정유·비누제조 및 잎담배·과일재배와 어업 등이다. 레바논 테러의 중심지로 알려졌다. 무장 군인이 곳곳에 주둔 중이다.
오래된 거리와 건물들 그리고 을씨년스러운 날씨, 비바람으로 도로는 엉망이다.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는 소년이 스쿠터를 타고 가다가 멈춰서 웃고 있다. 지리 공부를 서툴게 해서 길을 잘못 들었다. 멀리 모스크가 하나 보이길 레 그곳을 향해 한참을 갔다. 글을 모르니 이곳이 그랜드 모스크인줄 알았다. 이 모스크는 Taynal Mosque였다. 그 옆에는 공원묘지(Bab ElRamel Cemetery)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모스크와 묘지다. 성채가 잘 보인다고 했는데 우리 눈에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비가오고 추운 날이라 거리에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 한 사람을 만나 물어보니 택시를 타란다. 주변을 살펴보다가 3명의 아가씨들을 만났다. 시타 델의 위치를 물어보니 한참을 설명해준다.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은지 그중에 한 아가씨가 동료들과 헤어져서 우리를 직접 안내해 주었다. 언덕을 오르고 좁은 골목길을 간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엄청 잘 간다. 우리는 숨이 차서 아주 혼났다. 계단을 올라 휘어진 도로를 걸어가는데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성채의 모습이 조금 보여 엄청 반가웠다.
아가씨는 성채 입구까지 데려다주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이름을 물으니 아야 체커(Aya chaker)라고 이메일 주소와 함께 적어주었다. 정말 감사했다. (생각날 때 해야지. 바로 이메일로 사진을 보냈다. 다음날, 받는이의 메일주소에 해당되는 메일서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쉬웠다.) 처음 만나는 트리폴리 시타 델의 인상은 견고하고 높아 보인다. 이 성채의 이름은 레이몽 드 생 질레(Citadel of Raymond de Saint-Gilles)이고 AD1103~1104의 기간 중 건설되었다.
AD 1297년 화재로 부분 소실되었다가 맘루크 에미르(Mamluk emir)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한다. 절묘한 곳에 세워져 있다. 시타 델에서 모든 트리폴리 시내 구역을 다 돌아 볼 수 있다. 그 만큼 트리폴리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졌다. 거기에 지금은 물은 없지만 해자도 있다. 아주 천혜의 요새다. 출입구는 세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오토만이, 또 하나는 맘루크가 나머지 하나는 십자군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앞에 탱크 두 대가 보인다. 약간 겁이 났다.
정문을 지키고 있는 군인에게 들어가도 되냐고 물으니 들어가란다. 입구에는 석관이 있다. 입장료를 받는 사무실이 있는데 사람이 없다. 그냥 들어갔다. 구경하는 사람이 우리 밖에 없었다. 안내 표지판도 없어서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들어가니 군인들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 나온다. 우리보고 여기는 들어갈 수 없단다. 성채는 잘 보존되어 있었다. 돌아서 깊숙이 더 들어가면 놀라운 보존 상태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비가 그치고 강열한 태양이 등장한다.
주변이 참 깨끗하게 보이는데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하얗게 눈이 덮인 언덕이 보인다. 커다란 소나무도 함께 성채를 지키고 있다. 생각보다 넓다. 계단을 올라 전망대로 올라간다. 정말 멋지게 사방으로 열려있다. 멀리 배가 떠 있는 바다가 보이고 저 밑 올드 타운 지역에는 초록색 돔을 가진 대 모스크가 보인다. 자세히 보면 그 사이에 부서진 건물도 가끔 보인다. 바로 밑에는 실처럼 가늘게 흐르는 어부 알리 강이 보인다. 그 강을 따라 도로가 양 옆으로 나있고 차들도 많이 주차해 있다.
사람도 많아 엄청 복잡하게 보인다. 비에 젖은 우중충한 구시가지는 바로 나온 태양으로 인해 빛이 난다. 어디든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멋진 것 같다. 우리가 다음에 어디로 걸어갈 것인지를 대충 살펴보았다. 전망대를 내려와 또 다른 옥상으로 올라간다. 성채 뒤편의 눈이 하얗게 덮인 산언덕이 보인다. 시원하다. 계단을 내려오니 성 안에 박물관이 있다.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지키는 사람도 있다. 몇 개의 유적과 흑백사진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박물관을 나와 출구로 향하는데 사각형의 공간이 나온다. 여기는 말이 먹이와 물을 먹이던 공간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잘 구경하고 나왔다. 구경하고 나와 큰 모스크가 있는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언덕을 내려간다. 어부 알리 강을 만났다. 강인지 하수도인지 구분이 안 되는 곳이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하수구와 비슷하다. 별로 깨끗하지 않은 물이 흐른다. 그 옆에 세워진 작은 모스크(Al Bertasi Mosque)가 예쁘다. 모스크 정원에 오렌지 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다.
Khan El Askar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화살표 방향으로 걸어가니 오래된 시장(수크)이 나온다. 좁은 골목에 상점들이 가득하고 물건과 사람들로 인해 위, 아래, 양옆이 복잡하다. 천정에는 화려한 핸드백이 가득 매달려 있다. 고집스럽게 밀고 들어가니 로터리가 나오는데 중앙에 우물 유적이 있다. 여기를 기점으로 사방팔방으로 길이 나누어져 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로 가니 광장이 나오고 그 앞에 Khan El Askar가 나온다. 뭔가 싶어 들어가 보니 2층으로 된 옛날 캬라반 같다.
트리폴리 (Tripoli)의 칸 알 아스 카르 (Khan Al Askar) 주변의 소외된 지역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는 미래의 고용 가능성과 경제 기회를 향상시키기 위해 일련의 교육 및 추가 교과 활동이 제공되었다. 사무실도 있고 종교 행사도 치러지는 성채 같다. 우리가 걷는 이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아 재미있다. 골목길에 작은 수레를 붙여 놓고 커피를 팔고 있는 노점상을 만났다. 사람들이 커피를 작은 컵에 하나씩 받아 들고서 마신다. 우리도 한 잔 주문했다.
아주 친절하게 웃음을 담아 진한 커피 한잔(300원)을 준다. 엄청 달고 구수하다. 교회 건물과 모스크 건물이 같이 있다. 함께 공존하는 모습이 참 의아해 하면서 불안해 보였다. 구수한 냄새가 난다. 마침 점심인지 배가 출출하다. 작지만 오래되 보이는 팔라펠 샌드위치 가게다. 먼저 만들었던 팔라펠이 다 팔려 다시 병아리 콩을 가지고 둥그렇게 만들어 부지런히 뜨거운 기름통에 넣어 튀겨낸다. 기름통에 넣는 손기술이 예사롭지 않다. 이주 능숙하게 만든다. 정직해 보인다.
우리도 콩이 다 만들어지기를 기다렸다. 사람들이 줄을 선다. 미국에서 왔다는 아주머니 두 분이 내 뒤에 서고 우리는 태국에 왔다는 대학생 뒤에 섰다. 태국 학생들은 이곳 레바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단다. 사람들이 하나 둘 줄을 선다. 팔라펠은 터키와 시리아에서 먹어보던 음식이다. 특히 시리아에서는 절인 고추를 주어서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팔라펠(영어로는 Falafel)은 병아리 콩 또는 누에콩을 고수 씨, 셀러리, 양파 등과 함께 페이스트 상태(밀가루 반죽)로 만든 다음 작고 동그랗게 뭉쳐서 튀긴 크로켓이다.
이집트부터 이란에 걸쳐, 중동의 많은 지역에서 친숙한 음식으로 샌드위치 재료로도 많이 쓴다. 납작 빵인 쿠브즈에 팔라펠과 양상추, 토마토, 오이절임, 참깨를 갈아서 만든 타히니 소스 등을 넣은 샌드위치는 중동 각 지역에서 가벼운 식사로 판매되고 있다. 이런 서민적인 샌드위치가 유럽과 미국 각지에 전파되면서 일반화되었고, 파리와 뉴욕에서는 전문점이 많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다. 채식주의 샌드위치다. 팔라펠은 현재 이스라엘, 이집트, 시리아와 여러 중동 국가에서 자신들의 전통음식이라고 주장하는 음식이다.
팔라펠의 유래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집트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주장하는 쪽이 있지만, 이스라엘에서 대표적인 먹거리로 꼽힌다. 이집트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는 쪽은 이집트의 그리스도교인 콥트 교도들이 금욕기간인 사순절에 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는데 이 때 누에콩으로 만든 팔라펠을 고기를 대체해서 먹었다고 주장한다. 이 요리가 후에 중동 지역으로 퍼지게 되는데, 때때로 이 지역 사람들은 누에콩 대신 병아리콩을 대체해서 팔라펠을 만들었다고 한다.
1920년대에 들어서 팔라펠은 팔레스타인 지방의 젊은 세대 유대인들에게 대표적인 간식거리로 되었고, 1950년대에 들어선 이스라엘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쿠브즈라는 둥글고 얇은 빵에 넣어주기도 하고 넓적하고 얇은 빵에 샤와르마 같이 둘둘말아 주기도 한다. 쿠브즈는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의 납작빵이다. 이집트에서는 에이시라 부른다. 쿠브즈를 주머니 모양으로 벌리고 그 안에 상추, 써니양상추, 적양배추, 피클, 토마토, 오이절임, 가지, 팔라펠을 순서대로 넣은 다음, 요구르트 타히니 소스를 뿌린다.
아내와 손에 하나씩 들고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다. 양도 풍성하고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 가격이 아랍어로 씌어 있지만 눈치껏 알 수 있는 하나에 1,000파운드(600원)이다. 아랍어 숫자를 보고서 우리도 알 수 있다고 아내와 둘이서 웃었다. 이정표를 보고서 그랜드 모스크(Mansouri Great Mosque)를 찾았다. 그랜드라고 하지만 별로 커 보이지는 않았다. 그랜드 모스크는 옛날에 교회였단다. 외형을 보니 옛날의 교회 모습이다.
내부도 성당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만수리 그레이트 모스크는 1294 년에서 1314 년까지 맘루크 시대에 성모 마리아 십자군 교회의 유적을 중심으로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맘루크 트리폴리 (Mamluk Tripoli)에 세워진 최초의 건물로 위대한 왕실 모스크의 전통적인 무슬림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내부에는 두 개의 마드라사까지 갖추고 있다. 마드라사(Madrasa)는 현대 아랍 지역에서 ‘학교’라는 뜻으로 쓰이는 일반 명사이지만, 중세 이슬람권에서는 이슬람 법을 주로 연구하고 교육하는 고등교육기관이라는 뜻으로 쓰였으며, 이는 중세 유럽의 대학에 비견할 만한 존재였다.
각종 이슬람 학문의 전수는 9세기까지는 모스크(mosque)에서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고, 이것이 나중에는 모스크에 기숙사가 붙은 형태로, 그 후에는 모스크와 기숙사와 학교가 하나를 이루게 되었다. 와크프(waqf)에 의해 체계적으로 지원받는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와크프는 공익이나 자선 목적으로 재산을 기탁하는 행위, 혹은 그렇게 하여 세워진 기관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모스크 안에서 교육을 위해 지정된 방을 마드라사라고 불렀는데, 마드라사가 독립된 기관이 된 이후에는 모스크와의 경계 설정이 불분명했다고 한다.
레바논은 예전부터 기독교가 세를 불리고 있었고 시리아에서 독립해 나간 이후로도 국교가 이슬람이 아니다. 인구 구성비도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거의 반반인데 이곳 트리폴리는 이슬람이 훨씬더 많다. 사각형의 시민공원(Municipality Garden)이 나타난다. 공원에는 영감님들 몇이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렌지 나무들이 많다.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탐스럽게 생겼다. 꽃들도 많이 피어있다. 바로 옆에 시청(Municipality of Tripoli) 건물이란다. 작지만 견고해 보인다.
트리폴리에서 가장 인기있는 상징적인 것이 바로 시계탑(Sultan AbdulHamid Clocktower)이다. 트리폴리 구 시가지 중심이다. 여기서 베이루트 행과 브샤리 행 세르비스가 발착한다. 작은 미니버스들이 많다. 손님을 태우려고 외치는 소리도 많이 들린다. 손님을 발견한 기사 총각이 다가온다. 바로 베이루트로 간단다. 작은 미니버스에는 벌써 사람들이 가득차 있다. 밖에는 비가 내린다. 차는 엄청 속도를 내며 달려간다. 중간에 쉬는 일도 별로 없다. 날이 많이 기울었다. 도우라에 도착했다.
길을 건너가서 내일 가려는 브샤리 행 버스를 알아보았다. 복잡한 거리에서 친절한 사람들이 방향을 알려준다. 골목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가라고, 막상 가보니 아무것도 없는 거리인데 여기서 브샤리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단다. 장소만 알아두고 돌아나와 큰 길을 건너 함라로 가는 미니버스를 탄다. 오늘은 시위대가 없지만 차량과 사람들로 엉켜서 복잡하고 시끄럽다. 15번 버스를 탄다. 어제 탄 버스다. 콜라 지역을 거쳐 간다. 어제 내린 코르니체 해변 도로에서 내렸다.
또 길을 건너 언덕을 올라간다. 작은 과일 채소 가게에서 토마토를 샀다. 작은 슈퍼도 보인다. 들어가서 소고기와 버터를 샀다. 함라 거리에 들어서니 벌써 어둡고 거리에는 네온사인이 들어와 화려하다. 가게들이 문을 다 열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으니 거리가 활기차고 멋지다. 숙소에 도착하니 피곤이 밀려온다. 소고기를 버터에 삶아서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엄청 맛있다. 여기서 이틀 밤을 잤으니 내일은 다른 숙소로 옮겨 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숙소를 찾아 예약을 했다.
여기서 멀지 않은 엠버시 호텔(Embassy Hotel)이다. 가격이 좀 저렴해서 선택을 했다. 이 호텔을 선택한 것은 최악의 선택인 줄 아직은 알지못해 다행이다. 위험하다는 트리폴리를 무사히 잘 구경하고 왔다. 레바논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면서 한편으로는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 누룽지로 숭늉을 만들어 마시니 정말 흐뭇하다. 하루의 피곤과 긴장이 삭 사라지는 것 같다.
1월 19일 경비- 트리폴리행 버스비 10,000, 커피 500, 팔라펠 샌드위치 2,000,
도라행 버스비 6,000, 미니밴 2,000, 토마토 2,000, 소고기 6,584,
버터 2,750, (숙박비 59,994원). 31,834*0.6=19,100원
계 79,0940원.
누계2,550,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