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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월 25일 토요일. 맑음, 서늘한 바람, 맑음.
레바논에서 오후 2시 30분에 출발한 에게 항공 비행기는 30분 정도를 비행 한 후 섬나라 키프로스 라르나카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에게 항공(Aegean Airlines)은 그리스 아테네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항공사이다. 아테네와 테살로니키에서 다른 그리스의 주요 도시와 유럽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 허브 공항은 아테네 국제공항으로 항공사 동맹체인 스타얼라이언스의 회원사이기도 하다. 스튜어디스들이 그리스 냄새가 난다.
키프로스 상공에 들어서니 창밖으로 보이는 키프로스의 전경이 눈 아래 펼쳐진다. 초록색 들판과 하얀 건물들 그리고 주황색 지붕을 한 주택들이 질서 있게 보인다. 푸른 바다를 끼고 형성된 마을이다. 초록 들판 한가운데는 그리스 정교회 건물이 하나, 외롭게 대지를 지키고 있다. 공항 주변에는 사각 농지가 펼쳐지는데 그 모습이 유럽 같다. 곱게 하늘로 자라는 사이프러스 (Cypress)나무가 정다워 보인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측백나무과의 상록 침엽수로 높이는 40~45m 정도까지 자라는 교목이다.
키프로스(사이프러스)에서 숭배하던 나무로, 섬의 이름에서 나무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십자가를 만들던 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주로 묘지에 심었다. 페니키아와 크레타 섬에서 가옥과 선박 건조에 사용하면서 실용적으로 쓰이게 되었으며, 곧게 자라는 상록수의 수형이 아름다워 지금은 정원수나 가로수로 인기가 좋다. 잎과 열매에서 추출되는 정유는 진정작용이 있어 수다스럽고 성급한 사람에게 효과가 있으며, 특히 머리를 맑게 하고 심리적 장애를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호르몬 불균형과 난소의 기능 부진에도 도움을 주며, 과다출혈과 안면홍조, 발한, 노화피부, 지성 피부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밖에 남성용 향수와 비누를 만드는 데 방향제로 쓰이기도 한다.(백과사전) 우리 비행기는 오후 3시 경에 키프로스의 라르나카 국제공항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입국 수속은 순조롭게 잘 끝나고 우리는 입국장으로 나왔다. 1층이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2층 출국장 앞으로 나가야 한단다. 공항은 아담하지만 깔끔하고 깨끗하고 조용했다.
2층으로 올라가 밖으로 나가니 시원하다. 그렇다고 춥지 않았다. 주차장이 건너편에 있다. 하늘로 치솟은 조형물이 날카로워 보인다. 송곳 같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기다린다. 앉아있는 아내 목에 검은 점이 보인다. 날 파리 같은 모양이다 꾹 눌러 잡았다. 피가 툭 번진다. 모기였다. 아내는 참 둔하다. 모기가 물고 피를 빨아먹어도 모르고 있다. 물린 곳에 침을 발라 주었다. 모기를 생각하니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레바논 보다 날씨가 포근하니 이제 모기가 있는 것 같다. 여행 중 제일 싫은 것이 모기다.
주변에 고양이가 보인다. 버스 종류가 여러 대다. 타 도시로 가는 버스도 있다. 아무 버스나 타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425번을 타고 간다. 큰 버스인데 깨끗하고 무게가 있어 보인다. 요금은 두당 1.5유로(약 2,000원)다. 공항에서 시내는 그렇게 멀지 않다. 거리상으로 보면 걸어가도 될 것 같다. 6km 정도 되는 것 같다. 핸드폰의 maps.me가 작동된다. 버스는 빙빙 돌면서 마을을 들러 간다. 우리의 목적지를 벗어나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얼른 내렸다. 소박한 마을이다.
좁은 골목길을 걸어간다. 오래되 보이는 카페 앞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난로가 켜 있다. 바로 광장으로 이어지며 그리스 정교회인 나사로 교회(Church of Saint Lazarus)가 나타난다. 참 반가웠다. 드디어 키프로스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키프로스(Cyprus 사이프러스)는 지중해에서 3번째로 큰 섬으로 터키 남쪽 64km, 시리아 서쪽 97km, 레바논 서쪽 100km, 이집트 나일 강 삼각주의 북쪽 402km 지점에 있다. 키프로스 섬은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가면서 4개의 지형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북해안과 카르파스 반도를 따라 160km 길이로 뻗어 있는 키레니아 산악지역은 대부분 900m가 넘지 않는 좁은 화강암 산맥으로 이루어졌다. 이 나라의 최고봉(1,951m)인 올림푸스 산(또는 트로오도스 산)을 포함하여 섬의 절반인 남서부를 차지한다(트로오도스 산맥). 이 지역과 키레니아 산맥 사이에는 비옥한 메사오리아 평야가 펼쳐져 있다. 섬의 남동부는 비옥한 해안평야와 합쳐지는 높은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중해성 기후를 나타내며, 섬 강우량의 1/2 이상이 겨울에 내리며 여름 강우량은 1/10도 채 안 된다.
모든 주요 강들은 트로오도스 고지에서 시작되는데 가장 큰 페디에오스 강은 파마구스타 만을 향해 동쪽으로, 카리오티 강은 모르푸 만을 향해 서쪽으로, 쿠리스 강은 에피스코피 만을 향해 남쪽으로 흐른다. 섬 면적의 1/6이 경작 가능한 땅이다. 주로 산맥 및 파포스 지역에 전체면적의 1/7을 차지하는 삼림이 분포한다. 주민은 주로 그리스 계와 터키계로 나눌 수 있다. 그리스어를 쓰는 주민은 섬에 거주한 역사가 가장 길고, 터키어를 쓰는 주민은 대체로 1571∼1878년에 이 섬을 점령했던 오스만 투르크의 후손이다.
1974년 터키군의 북키프로스 침공으로 그리스 계와 터키계 주민들은 각자의 구역에서 재정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키프로스 섬은 주로 농촌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6개의 주요도시가 있을 뿐이다. 니코시아는 현재 그리스계와 터키계 주민지구로 나누어져 있다. 우리와 같이 분단국가다. 한때 주요항구였던 파마구스타와 키레니아는 터키계 주민지구에 있고 남쪽 항구인 리마솔·라르나카·파포스는 그리스계 주민지구에 있다. 그리스 계 주민은 동방정교회에 속하고 터키계 주민은 수니파 이슬람교도이다.
북 키프로스의 터키계 주민지구의 1인당 GNP는 남 키프로스 전체의 수준보다 훨씬 낮다. 키프로스 섬에서는 예술 중에서도 회화가 단연 돋보이며 주요화가들로는 미카엘 카시올로스, 텔레마코스 칸토스, 크리스토포로스 사바 등이 있다. 또한 음악·춤·수공예 쪽의 민속예술도 풍부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니코시아에 있는 민속예술박물관에는 훌륭한 전통 수공예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일찍이 신석기시대 말기에 사람들이 거주했던 키프로스 섬은 청동기시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교역 중심지가 되어 미케네인과 아카이아인이 찾아와 정착했으며, 이들로 인해 그리스 문화와 언어가 들어왔다.
BC 800년에는 페니키아인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BC 7세기에 11개의 키프로스 왕국들이 아시리아의 영향력 아래에서 크게 번영하면서 세력을 떨쳤다. BC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후 키프로스 섬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 넘어갔다. BC 58년 로마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일찍이 AD 45년에 그리스도교가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사도 바울을 도왔던 바나바는 이 섬 태생이었으며, 사도 바울도 이곳에서 포교활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세기말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인 난민들이 들어왔다.
그러나 116년의 유대인 폭동을 진압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인들을 섬에서 추방했다. 395년 로마 제국이 분열된 후 키프로스는 잠깐 동안의 기간들을 제외하고 700년 이상 비잔틴 제국 황제들의 지배를 받았다. 7세기에 아랍 이슬람교도들의 침략이 시작되었고, 그 후 300년간 비잔틴 제국과 칼리프가 공동 영토로서 다스렸다. 영국의 리처드 1세가 십자군 원정중인 1191년 이 섬을 정복하여 예루살렘의 추방된 왕인 기 드 루시냥에게 주었다. 기 드 루시냥이 수립한 봉건 군주국은 중세기 내내 계속되었다.
제노바와 베네치아에서 온 상인들이 무역을 점차 지배했고, 마침내 15세기에 이곳은 베네치아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573년 오스만 투르크가 키프로스 섬의 지배권을 얻었다. 그들은 정교회 대주교관구를 복구시켰으나 지배 초기의 교화는 나중에 억압과 방치로 변했다. 18세기에 격렬한 봉기가 일어나기 시작하여 19세기까지 계속되었다. 1878년 영국은 계속 주권을 갖고 있던 투르크 술탄과의 합의에 따라 키프로스 지배권을 맡았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 키프로스를 합병했다.
나중인 1915년 섬을 그리스에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이 제안은 소멸되고 키프로스는 1924년 영국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스 계 주민이 벌였던 에노시스(그리스 복귀)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그것을 반대하는 키프로스인과 영국인들에 대한 테러 행위로 더욱 격렬해졌다. 소수파인 터키계는 키프로스의 분할을 주장했다. 이에 대한 절충안으로 1959년 다수 그리스 계 대표와의 공동 정부가 승인되었고, 키프로스는 1960년 독립 공화국이 되었으나 폭동과 에노시스 운동은 계속되었다.
1974년 그리스 계 장교들의 주도로 키프로스 국민군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터키 군이 출동했고, 1개월 동안의 휴전 후 키프로스 북부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후 두 민족 간의 대립이 무력 충돌에까지 이르는 사태가 되자 1964년 유엔군이 개입하였고, 이후 키프로스공화국은 사실상 2개의 분리된 행정체계와 생활권을 구성하였다. 남과 북이 갈라지는 분단국가로 있다. 니코시아는 현재까지 분단된 수도로 알려져 있으며, 터키군의 침공으로 폭파된 니코시아 국제공항은 폐허가 된 채 그대로 봉인되어 있다.
건물의 일부를 UN군이 쓰고 있는 것 외에는 공항이 봉쇄된 상태며, 현재 키프로스 제 1의 관문은 동부 해안에 있는 라르나카 국제공항이다. 국제적으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받고 있는 남부의 키프로스 공화국은 2004년에 유럽 연합의 회원국이 되었고, 2008년 1월 1일에는 유로 존에 가입하였다. 유로화를 사용한다. 성경에서는 이 섬을 구브로(행 13:4~5)라고 부르고 있다. 구약성경(겔 27:6~7)에 엘리사 섬과 깃딤 섬의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성경 시대에 이곳은 직물과 회양목(도장나무), 상아로 유명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나사로 무덤 교회는 죽은 지 나흘 만에 예수님께서 살려주신 나사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교회다. 9세기경에 아름다운 나사로 기념교회를 지어 나사로 전승을 보존해 오고 있다. 이 교회에는 성경인물의 성화들로 교회를 가득 채우고 있다. 교회 강단 옆 지하로 내려가면 나사로 무덤인 석관이 있다. 나사로 석관에는 ‘친구 나사로 잠 들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성경에는 베다니에 살고 있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가 어디서 다시 죽었는지 기록이 없다.
전승에 따르면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통해 주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도자, 시기하는 바리새인들이 나사로를 없애기 위해 물이 새는 배에 나사로를 강제로 태워 지중해로 떠내려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사로를 태운 배는 구브로 섬의 키티온(Kition=Larnaca)에 도착했단다. 그는 키프로스에 와서 30년간 살면서 전도했단다. 최초의 비숍(Bishop 주교)되었고 순교하여 라르나카에 묻혔다고 한다. 실제로, 사도행전 11장 19절에 보면 스데반의 순교와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는 일이 일어난다.
박해를 피해 믿는 자들이 주변의 베니게와 안디옥, 그리고 여기 키프로스 섬으로 가게 된다. 바로 그 즈음에 나사로도 흩어지는 무리들 틈에 끼어서 여기에 온 것 같다. 나사로가 구브로의 라르나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우리는 숙소를 찾는다. 숙소는 이 광장 주변에 있다. 찾기 쉬웠다. 알키스티 시티 호텔(City Alkisti Hotel)이다. 오래된 건물이다. 1층은 상가인데 문이 닫혀있다. 주인장이 주말에는 근무하지 않아 열쇄가 들어있는 키 박스를 알려주었다. 건물 우편 아래 열쇄 함이 있었다.
숙박비는 이미 지불되어있다. 보물찾기 하듯이 키 박스에서 103호가 적혀있는 열쇄를 손에 넣었다. 큰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2층에는 마주 보는 문들이 보인다. 103호 문을 열었다. 잘 열린다. 아주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가 우리를 반겨준다. 실내 설비가 아주 예쁘게 잘 꾸며져 있다. 온풍기도 잘 나온다. 생수 2개와 사과 2개도 손님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온수도 아주 잘 나온다. 숙소는 만족이었다. 짐을 풀어놓고 밖으로 나왔다.
나사로 교회가 또 다른 색깔로 다가온다. 해가 서쪽으로 기운다. 슈퍼를 찾아가기로 했다. 시장이라고 알려진 Larnaka Municipal Market으로 찾아간다. 골목을 걸어가다가 작은 광장이 나오고 그 광장을 중심으로 슈퍼와 채소가게 정육점 등이 이어진다. Chris Pan Supermarket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슈퍼인데 가게 정면에 온통 만화, 그레피티로 그려놓았다. 슈퍼에 들어서니 좁고 어둡다. 도서관 같이 물건들이 쌓여있다. 소시지와 버터, 그리고 계란을 샀다. 치즈를 잘라서 팔고 있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가게를 나와 건너편에 있는 정육점에 갔는데 시간이 늦었다고 물건을 팔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같으면 팔 텐데 이상하다. 인터시티 버스를 타는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내일 니코시아로 가는 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 아주머니가 마침 나오길 레 버스 타는 곳을 물었다. 바닷가로 나가 왼쪽으로 400m 정도 걸어가면 정류장이 있단다. 바다를 구경할 겸 걸어 나왔다. 해변이 펼쳐진다. 해변을 따라 600m 거리를 프로미네이드라고 부른다. 1920년대 심어진 야자나무, 키 큰 가로수로 도로를 따라 심어져 있다.
환전소를 비롯해 세계 유명 브랜드 음식점과 카페, 호텔 등이 줄지어 보인다. 네온이 들어온다.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바다로 걸어가 보니 인터시티 버스를 타는 정류장이 있고 시간표도 보인다. 다시 해변으로 나왔다. 바다를 보니 좀 쓸쓸해 보인다. 작은 라이온 석상이 있다. 사자 조각상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좀 특별해 보인다. 사자는 베네치아의 상징으로 베네치아 식민지 시대 때 세운 것이란다. 날개 달린 사자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있는 기둥 위에 날개 달린 사자는 바로 산 마르코의 주인, 마가를 상징하는 표시이며 베네치아의 수호상이다.
피니코우데스 비치와 프로미네이드 거리는 라르나카에서 제일 핫한 관광지다. 고운 모래와 수심이 얕고 해변이 길어서 인파가 몰리는 해수욕장이다. 해가 진다. 밤바다도 검게 변한다. 산책길도 검게 변하고 사람들도 그림자 같다. 숙소로 돌아온다. 나사로 기념 교회는 조명이 들어와 황금빛으로 풍성하다. 화려하지만 은은한 분위기다. 숙소에 들어와 소시지를 삶아서 사과와 함께 먹는다. 키프로스에서의 처음 맞는 밤이구나. 내일 숙소를 예약하고 하루를 접는다.
1월 25일 경비- 숙박비 52,761원. 버스비 3, 슈퍼 5.7
계 8.7유로*1350=11,745원
누계3,05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