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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 브레이어(1876—1952)
- 제3권. 중세와 르네상스, Moyen Age et Renaissance 463-
제5장 13세기 Le XIIIe siècle 565
8절 성 토마스 아퀴나스 Saint Thomas d'Aquin 586
그러나 “천사 박사”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d'Aquin, 1225-1274)에게서 특히 알베르투스에 의해 세워진 관념들의 운동이 확정되고 정확하게 된다. 그는 1227년에 아퀴나스 백작 가문의 로카세카(Rocca-secca) 성에서 태어났으며, 1243년[열여섯]에서부터 도미니크 수도사가 되었다. 그는 1245[열여덟]년에서 1248[스물하나]까지 파리에서 알베르투스의 학생이었고, 그리고 퀠른에서도 배웠다. 1252[스물다섯]년에서 1259[서른둘]년까지 다시 파리 대학에 체류했으며, 거기서 1257[서른] 교수가 되었다. 1259년[서른둘]부터 1268[마흔하나]년까지 그는 이탈리아에 거주했다. 그리고 그는 도미니크파 헬레니스트인 기욤 드 메르베케(1215-1286)와 사귀었으며, 그에 의해서 그는 그리스어 원전에서 직접적으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번역물들을 가졌다. 1268년에서 1272[마흔다섯]년까지, 그는 파리 대학에서 가르쳤다. 거기서 그는 수도사들의 적들에 대항하여, 시제르 드 브라방(1240경-1284)과 인문학부에 있는 아베로에스주의자에 대항하여, 자신을 단죄하려고 애쓰는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들에 대항하여, 신앙을 스스로 옹호해만 했다. 1272년에 나폴리를 향해 파리를 떠났다. 그리고 1274년[마흔일곱]년에 리용 공의회에 가는 도중에 세상을 떴다. (586)
파리의 둘째 체류에서(1252-1259), 그는 롬바르두스(1100경-1160)의 평결문들에 대한 그의 주석이외에도, 세 편의 논저, De ente et essentia (1252), De veritate (1256-1259), 신의 제례와 종교 신앙을 혐오하는 자들에 반대하여(Contra impugnantes Dei cultum et religionem를 썼다([두파의] 걸승들에 반대하는 기욤 드 생따무르의 공격들이 있는 시기에[1255년]). 이탈리아의 체류에서 기욤 드 메르베케와 친교를 시작하면서 주석서들은 낸다: 즉 아리스토텔레싀 주석들로서 해석론(De Interpretatione) 분석론 후편(Analytica Posteriora) 자연학(Physique), 형이상학(12권), 윤리학, 영혼론, 기상학, 천체론(I에서 III까지), 생장론,정치학(I에서 IV까지), 그리고 원인들의 책의 주석(그는 이 책은 플로클로스의 신학 원론들과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기욤드 메르베케가 번역한다), 그리고 보에티우스의 신학적 논저들의 주석과 위 드니 아레오파기타의 신의 이름들의 주석을 썼다. 동일한 시기에 그는 이방종교에 반대하는 대전(Summa contra Gentiles, 1259-1260)을 썼고, 그리고 1265년부터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을 쓰기 시작하여 1273년까지 계속해서 썼지만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 그가 마지막 파리에서 체류기간에, 그는 논쟁적인 작품들을, 시제르 드 브라방에 반대하여 아베로에스에 반대하는 지적 단일론(De unitate intellectus contra Averroistas)을, 걸승파 수도원들의 적들에 반대하여 정신적 삶의 완전성에 대하여(De perfectione spiritualis vitae)와 수도회를 부인하는자들에 대한 반박론(Contra retrahentes a religiosa ingressu)을, 소요학파 사상의 적들에 대항하여 세계 영원성론(De aeternitate mundi dontra murmurantes)을 썼다. 결국, 그가 다양한 시기들마다 그리고 다양 주제들에 관해서도 글, 토론의 문제들(Quaestiones disputatae)와 자유토론 문제들(Quaestiones de quodlibetales)도 썼다. 이 책들은, 사람들이 그에게 고착된 시기들에서 제기되었던 주제들에 관하여, 그가 구두로 지지하는 효과적인 토론 작업들을 작성한 것이다. (587)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타일에 대하여 차분하고 또한 아마도 비할 데 없는 투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적 습관들은 우리들의 습관들과 매우 거리가 멀어서, 사람들은 토마스주의 체계가 현존하는지를, 또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에게서, 11세기와 12세기에 종합적인 작품들을 태어나게 했던 이런 감동과 이런 열정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작품들에서는 사유가 연속성을 가지고 제시되었다. 예를 들어 신학총서 속에는 항목의 조목들로 떨어져 있는 연속적인 질문들이 있을 뿐이다. 각 조목은 주제에 대하여 논증들로, 즉 찬성의 논증들과 반대의 논증들에 응답으로 나열되어 있다. 어떠한 멈춤도, 어떠한 일체의 관점도(예를 들어 신학총서의 제1부 문제 85, 조목 1-3의 예외를 제외하고) 이 토론들 속에서는 없다. 토론들 속에서 사람들은 단지 토론들을 쓸어가버리기를 바란다. 토론의 기술로서 이해된 변증법은 전능한 주인[지배자]이 되었다. 사람들은 논증들을 발명하기보다 논증들을 다루기를 배운다. (587)
9절 성 토마스(연속): 이법과 신앙 Saint Thomas(suite): La raison et la foi, 587
만일 사정이 그러하다면, 만일 철학자 또는 신학자가 조각나고 찢어진 것 같은 제안물에 불편함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가 자기 역할이 종합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있다. 왜냐하면 종합은 이미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진리는 이미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작업은 두 가지 큰 종합을 가정한다. 그는 그 큰 종합을 자기 자신의 작품의 선전제처럼 이미 만들어졌다고 받아들인다. 한편, [선전제로서] 종교의 진리들에 대한 조직화가 있다. 12세기에 평결론자들에게서 소개되었든 대로 조직화가 있다. 다른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종합이 있다. 신학총서와 같은 그의 작품들의 어느 한 부분은, 평결론들의 리듬을 이어가고, 후자의 작품은 결국에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리듬으로 되돌아간다. 이리하여 이방종교 총서는 우선 신을, 그리고 신으로부터 진행하는 피조물들의 위계를, 그리고 인간의 숙명과 영원한 삶 속에서 인간의 신으로 회귀를 다룬다. 그의 작품들의 다른 부분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주석을 단다.
또 다른 부분에서는 그가 받아들인 두 가지 종합들, 즉 계시된 진리들에 대한 신학적 종합과 이법에 접근할 수 있는 진리들의 철학적 종합들 사이의 연관은 성 안셀무스 와 아벨라르의 정신 보다 탐구에 있어서 그의 정신을 훨씬 더 차분하고 자족해하며, 훨씬 덜 갈망하고 덜 열정적이게 한다. 반면에 이 후자들에게서는 이법과 신앙 사이에 연관이, 감히 말할 수 있다면, 역동적인 방식으로 정의(défini)되었다. 신앙의 진리들은 이법에게 마치 무한정한 진보 속에서 신앙에 의해 관통하는 진리들처럼 제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연관이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는 정태적 방식으로정의되었다. 인간 지성에게 접근할 수 있는 철학적 진리들이 있다. 그런데 지성의 힘을 넘어서는 신앙의 진리들도 있다. 어떠한 진보도 전자에서 후자로 인도할 수 없다. 만일 사람들이 신앙을 재료로 해서 추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선] 전제들로서 제기된 신앙의 진리들로부터 귀결들을 끌어내면서이지, 이 진리들을 증명하면서는 결코 아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인간의 초자연적 숙명이 신앙 없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하는, 이런 이법에 의해 신적인 은총의 필연성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우선 이런 초자연적 숙명의 현존이 우리에게 폭로되어야만 한다. (588)
중요한 것은 다음을 아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런 순수하게 정태적 개념작업을 이론적 전통에서 빌려온 것이 전혀 아니고, 오히려 이런 개념작업이 그에게서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전적으로 빌려온 인식 학설로부터 나온 결론이다. “인간의 예지는, 그의 자연적 덕목으로는 신 자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도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예지의 인식은, 현재 삶의 양태에 따라서, 감관[상식]에 의해 시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관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감관들로부터 결론이 나오지 않는 한, 인간 지성에 의해 파악될 수 없다. 그런데 감각적 사물들은 우리지성을 그 사물들 속에서 신적인 실체가 무엇인지를 보도록 인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원인의 덕목을 동일하지 않게 하는 것이 결과들이기 때문이다.”이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론은 불가사의 한 것을 유심히 살피고자 원했던 이치[이성]의 경솔함과 반대로 보증으로 세워진다. 감각적 사물들은, 보나벤투라에서처럼, 신적인 현전을 거기서 보게하는 해석할 기호들(signes)이 아니라, 힘든 추론을 수단으로 해서 우리가 그 자체로서 파악할 수 없는 원인에까지 그러나 원인의 결과들에 관련된 원인의 관계들에까지, 우리가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단순한 결과들이다.
결국 이법과 신앙의 연관들에 대한 이런 개념작업의 원리 자체는 앞선 과학들 속에서 철학적 사유의 가장 힘 있는 원동력들 중의 하나를 제거한다. 우리는 이법과 신앙 사이에 모순을 말하기를 원한다. 그 모순으로부터 서로서로를 조정하기 위하여, 철학적 사유를 생성하게 하는 일치로 향하는 노력이 나온다. 성 토마스는, 진리가 진리에 반대될 수 없을 것이라는 이런 원리로부터 출발한다. 그 결과로 어떠한 신앙의 진리도 이법의 진리를 약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 나온고, 반대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인간 지성은 허약하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위대한 철학자의 지성도 천사의 지성에 비하여 보다 열등한 것처럼, 가장 단순한 농부의 지성이 철학자의 지성에 비해 열등하듯이, 이법의 진리가 우리에게 신앙의 진리를 모순되는 것을 보일 때 우리가 소위 말하는 이법의 진리가 오류 일뿐이라고, 그리고 보다 신중한 토론은 우리에게 그것의 거짓을 제시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는 것에 이르는 귀결이 나온다. 따라서 철학은 신앙에 봉사하는 체(servante, 하녀로) 남아있다. 마치 신앙이 자기 자체를 밝히기 위해 보조자에게 호소하지 않는 것처럼 신앙은 이법에 호소하지 않고, 게다가 신앙은 자기의 주장들을 추리적인 논증작업의 짜기[그물망]에 뒤섞는 것이 아니라(왜냐하면 철학은 인식의 양태인 한에서 완전히 자치적이다), 오히려 왜냐하면 신학은 이법이 신앙에 반대되리라는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이법을 지배한다. 이런 종류의 위계질서는 상호 조정의 모든 노력을 무용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진실한 갈등(충돌)도 원칙적으로 신앙과 이법 사이에서 두려워하게 하지 않는다. 게다가 시간적 힘과 정신적 힘 사이에서도 더 이상 두려워하게 하지 않는다. 그 정신적 힘은, 상층에서 그리고 바깥에서 오며,시간적 힘에게 자기[정신적 힘의] 조건들과 자기 책무의 한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589) (56TKE)
10절 성 토마스(연속): 인식론 Saint Thomas(suite): La théorie de la connaissance 58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식론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법과 신앙의 연관들에 대한 토마스의 이론과 실재성에 대한 토마스의 이론 사이에, 대립(une opposition)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철학의 발전을 설명하는 대조(un contrast)가 있다. 이법에 의한 인식하는 양태와 계시에 의해 인식하는 양태 사이에 불연속성이 꽉 차있다. 전자는 우리에게 후자로 결코 올라가게도 하지 않고 영감도 주지 않는다. 반대로 존재 자체 속에, 즉 실재성자체 속에, 신플라톤주의자들이 그것을 항상 가르쳤던 것처럼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또한 그렇게 믿었던 것처럼, 가득 찬 연속성이 있다. 비록 [존재의] 자기 속에 즉 실재적인 속에, 이법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실재적인 것의 여러 측면들과, 계시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진 실재성, 즉 천사들의 인식에 의해 그리고 천상의 통찰에 의해 도달한 실재성 사이에, 어떠한 분리도 단절도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인식이 아무리 하잘것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인식이 단번에 도달하는 찰나에, 그리고 존재가 하나의 유일한 담지라는 찰나에, 이법의 진리와 신앙의 진리 사이에 공유의 몫(une portion)이 없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추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만큼이나 계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몇몇 진리들이(신의 현존과 같은 진리들) 없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590)
이렇게 추상화된 고찰들은 역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밝혀질 수 있다.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신학과 신플라톤주의 신학 사이의 대조를 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을 오직 감각적 세계의 제1 원동자로서 파악했다. 그리고 그 신을 게다가 추론적 증명작업(une démonstration)에 의해서 이처럼 파악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물리학과 형이상학의 공통적 원리들로서 사용한다. 신의 현존(l’existence)에 대한 증명작업은, 세계의 개념작업 전체에 대한 직접적 원리의 적용으로부터, 즉 잠재성에 관한 현실태의 우선성으로부터 파생되었다. 따라서 제1원동자로서, 즉 순수 현실태(작동중) 신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 자연학적 인식 만큼이나 아주 같은 추리적 인식이다. 신플라톤주의 신학은 감각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그 신학은 우선 가지적 실재성 속에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신학은 소위말해 특별한 직관에 의해 그 실재성을 파악한다. 게다가 그 신학은, 자신이 신적 실재성에 도달한 상층(la hauteur)을 따르는 직관에게는 다른 이름을부여한다. 이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을 마치 우주에 대한 추리적 설명의 완성처럼 파악한다. 그것은 감각적 자료들로부터 출발하여 예속되어(assujetti) 있던 이법이 신에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법은 더 이상 멀리 갈 수 없다. (590)
또한 그 이법은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식은,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존재(l’être)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인식에 대한 토마스의 이론은 이중 관점으로 생각되었다. 한 측면에 의하면, 그 이론은 보편적이고, 그 양태들이 어떤 것이든 간에 인식의 모든 양태들에게 펼쳐지면서, 그 이론은 모든 인식의 조건들을 지적한다. 다른 측면에 의하면, 그 이론은 비판적이고 인간 인식에서 특별한 한계들과 특별한 조건들을 규정한다.첫 측면하에서 진다. 그 인식론은 플로티노스와 프로클로스가(원인들에 관하여(De Causis)와 동일한 신학 원론 속에서)풍부하게 전개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식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영혼은 어떤 방식으로든 모든 사물들이다.” 그런데 영혼은 어떤 방식으로든 감각적 사물들이고, 영혼은 이 감각적 사물들을 감관들에 의해 받아들인다. 왜냐하면서 감각작용, 즉 느끼고 느껴지는 공통 작동[현실태]는 영혼 속에, 사물들의 질료 없이도, 사물들의 형상을 남겨놓는다.그러나 사물들을 개별화하는 모든 우발적사고들과 더불어 놓는다. 다른 한편, 작동중[현실태]인 지성은, 지성 자신이 이해하는 같은 사물에 동일하다. 과학과 알려진 사물 사이에 차이는 없다. 그리고 감각적 인식이 즉 지복의 통찰이 중요하다면, 인식은 인식하는 주체 속에서 인식된 대상에 대해, 분석하기에 불가능한, 어떤 현전이다. 인식은, 마치 사람들이 종종 오류에 의해 그렇게 말하듯이, 동화작용(une assimilation)이 전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원리 덕분으로 단지 말해야 한다(그리고 거기에 둘째 측면이 있다). 즉 “알려진 것은 아는(인식) 자의 양태에 따르면 인식하는 것 속에 있다”, 즉 여러 경우들이 있을 수 있다. 그 경우들에서 동화작용은, 말하자면 알려진 것[수동]이 아는 것[능동]에 닮게 할 수 있다는 조작작업은, 인식[론]의 앞선 조건이다. 예들 들어 주체와 대상이 영혼과 감각적 사물 사이 만큼 다를 때, 예지적 인식은 하나의 “종(la espèce)”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이 종은 예지의 고유한 형식임과 동시에 이해된 사물의 이미지 또는 상사(une similitude, 모조품)이다. 이것은 “인상된 종(espèce impresse)”인데, 예지가 인상된[수동] 종을 정의[규정작업]에 맞게 끝내는 것, “표현된 종(espèce expresse)”으로 끝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인상된 종[감각적으로 들어온 대상]에 의해 예지는 사물을 이해하면서 그의 조작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어떠한 조작 작업도, 지복적 통찰 속에서나 또는 신이 자기 고유한 본질을 갖는 인식 속에서나, 유용하지 못하다. 따라서 조작작업(l’operation)은 모든 인식을 정의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인식은 그래도 존재의 직접적 현전(une présence)이다. (591) (56TKG)
11절 성 토마스(연속):신 현존의 증빙자료들
- Saint Thomas(suite): Les preuves de l’existance de Dieu 591.
그러나 그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따라간다. 이법이 도달할 수 있는 존재의 영역들(les régions)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묘사된 경계들을 넘어서지 못한다. 말하자면 신을 제1원동자로서 고려한 신학에 의해서 경계 지워진 자연적 세계가 그러하다. 사람들이 감각적 세계를 통하지 않고서 직접적으로 또한 명증하게 신의 현존을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사람들이 신앙에 의해서만 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러한 것은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오류이다. 그러나 이 오류들은 동일한 원리에 근거한다.사람들이 우선 ‘신 이다’[‘신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만, 사람들은 신의 현존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 원리이다. 어떤 이들은(마치 성 안셀무스처럼) 말한다: 신의 이름은 존재를 의미하는데, 그처럼 사람들은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나서 신이 현존한다에 이른다. 이들은 또한 말하기를, 신의 존재는 그의 본질과 동일하기 때문에, 신의 본질을 제기하는 것은 신이 현존한다는 것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이법의 힘들을 정의하면서, 그들은 신의 실질임(la quiddité, 사물임)은 신의 이름의 기호작용조차 아니고 [신에게] 도달될 수도 없다는 것을 본다. 그러면서 신의 현존의 모든 수리증명작업(toute démonstration)은 불가능하고 결론짓는다.
이 후자들은 그들이 무엇인가를 부인한다는 점에서 이유 있다. 우리의 이유[근거]는 너무나 허약해서 신의 완전함과 거대함 속에서 신의 현존의 이유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신의 현존이 수리 증명될 수 없다고 결론 짓는다면, 그것은 그들이 두 종류의 수리증명작업들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원인에 따른수리증명작업(demonstration propter quid)과 무엇을 위한수리증명작업(demonstrationquia)이 있는데,전자의 증명은 실질임(quiddité)을 수단으로 취급하고, 본질로부터 본질의 성질들로 또는 원인에서 결과로 나가간다. 후자의 증명은 결과로부터 원인으로 진행하며, 원인을 결과에 연관하여서 그 원인을 규정할 수 있다.그런데 신의 현존이 중요할 때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일반적 방식에서도, 토마스 아퀴나스는 전자의 증명을 마치 인간에게 접근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였다.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의 난점들 중의 하나가, 존재들의 실질임(quiddité)에 도달하기 위하여 추리적 절차를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성이었다는 것을 상기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안했듯이, 어느 누구도 소요학파이론의 이런 누락(cette lacune)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누락을 인간적 이치(la raison)의 누락이라고 만들었다. “심지어 감각적 사물 속에서, 본질적인 차이들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그 차이들은 우발적인 차이들에 의해 지적되었으며, 그러한 우발적 차이들은 본질적 차이들로부터 나오고, 동일한 방식으로 원인 그것의 결과에 의해 기호화 되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두 발(bipède)을 인간 차이로서 제기한다.” (592)
결과에서 원인으로 가는 또한 우발적인 것에서 본질로 가는 [둘째] 종류의 증명, 사물의 자연을 미리 인식함이 없이 그리고, 한 사물이 우리를 그 사물[자체]에까지 이끌었던 는 결과를 생산함이 없이는, 어는 것도 그것을 알게 하지 않고서, 한 사물의 현존을 제기하기를 허용하는 증명, 그것은 거기에 인간 정신이 그의 모든 탐구에서 정상적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의 현존을 제기하는데 우리를 인도할 다섯 길들이 있다. 그 길들은 어떠한 인식의 특별한 양식도 가정하지 않으나, 오히려 가장 일상적인 추론의 과정들을 이런 의문에 적용하게 만든다. (593)
첫째 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8권에서 빌려왔다. “움직였던 모든 것은 다른 것에 의해 움직여졌다. 원동자가 있는데 그의 차례가 되어, 움직였던가 또는 움직이지 않았던가이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것을 찾을 것이고, 우리는 제일 원동자를 갖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신이라고 부른다; 만일 그것이 움직였다면, 그것은 다른 것에 의해서 움직였다. 그러면 무한히 진행해야 하거나(이것은 불가능하고), 또는 그것으로부터 움직이지 않는 원동자[부동의 운동자]에 이르거나 이다.”
둘째 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2권에서 빌려왔다. “정돈된 모든 효과적인 원인들 속에서 첫째 항은 중간 항의 원인이며, 중간 항은 마지막 항의 원인이다. 게다가 하나 또는 여러 항들이 있을 것이다. 그 원인 제거되면, 그것의 원인이 원인인 것도 또한 제거된다. 따라서 첫 항이 제거되면 중간 항은 원인이 될 수 엇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효과적 원인들 속에 무한히 진행한다면, 어떠한 원인도 첫째 항[원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중간 항들인 모든 다른 항들이 제게 될 것이다. 그것은 명백하게 거짓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첫째 원인이 제기되어야만 하고, 그것이 신이다.
셋째 길은 우리가 존재들의 탄생과 소멸을 이루는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 존재들이 스스로 소멸하는 것으로부터, 존재들이 단지 가능적이라고, 다시 말하면 존재들이 이미 현존하는 한 존재에 의하여 현존으로 끌려 나오게 되었던 시간이 있다고 우리는 결론 짓는다. 그러나 만일 모든 존재들이 오로지 가능적이었다면, 그 결과로 어느 한 존재도 현존하지 않았던 한 찰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 그들 중의 어떤 것도 현존하기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그리고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기에 의한 필연적인 존재가 제기되어야 한다. 그 존재를 사람들은 신이라고 부른다.
넷째 길은 형이상학의 제2권을 새로이 사용한다. 우리는 두 가지 주장들을 이것들 각각의 관점에서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주장들이 한쪽은 더 거짓이고 다른 쪽은 덜 거짓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에서 절대적 진리에 또는 절대적 존재에 참조해서 만이 비교들이 가능하다. 그 절대적 존재가 신이다.
다섯째 길은 다마센 (Jean Damascène, 675-749)와 자연학2권에서 아베로에스(Averroès, 1126-1198)에게서 빌려왔다.“반대되고 불협화인 사물들이 유일한 질서로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규정된 목적을 향하여 모든 것과 각각에게 [그 존재] 자기의 경향을 귀속하게 하는, 한 존재의 통치[지배]의 덕분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세계 속에서 자연적으로 다양한 사물들을 보는데, 이 사물들이 드물지 않고 매우 자주 유일한 질서에 일치하려고 한다. 따라서 섭리에 의한 존재가 필요하며, 그 존재로부터 세계는 통제된다. 그것이 우리가 신이라고 부른다.”
이 모든 증빙자료들 속에서, 어떠한 종교적 감정도 또한 영혼에서 신으로 어떠한 도약(élan)도 개입시키려하지 않는, 분명한 감화작용(affection)이 있다. [여기에는] 초자연적 신의 숙명 속에서 인간과 신의 특별한 연관들을 바라볼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단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의 기술적인(technique) 용어들 만이 있다. 또한 이미 일찍부터 비판자들은 이런 증빙들의 가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의 가치와 연대적이지 않는지를 자문했다. 아마도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방종교 대전(Summa contra Gentiles)에서 우리에게 지적했던 것은 이런 종류의 비판이다. “두 가지 이유들이 이런 증빙들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첫째 이유는 증빙들이 세계의 영원성에 대한 가설로부터 진행한다는 것이다. 카톨릭에서는 이 가설이 거짓인 것으로 가정되었다‥…; 둘째 이유는 이런 증명작업들 속에서 가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가정이란 첫째 움직여진 것[첫 운동]은, 말하자면 [첫째 천구의] 천체의 물체는, 그 자체로부터 움직여진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첫째 운동이 활성화되어서, 따라서 [다른] 많은 것들이 일치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원성이 함축하는 모든 것과 함께하는 세계의 영원성(역사 없는 세계, 따라서 회복도 소비도 없는 세계), 점성술의 모든 위험과 함께 하는 하늘의 활성화(생명화)는 오류들인데, 이법이 신의 현존을 정립하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이런 오류들의 댓가에서 일까?
12절 성 토마스(연속):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크리스트교의 해석
- Saint Thomas(suite): Interprétation chrétienne d’Aristote. 594.
이런 비판은 정당하든 아니든 간에, 동시대인들의 눈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개별적인 상황을, 그리고 그에게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우리에게 이해하게 해주는데 알맞다. 소요학파의 철학에서 진실로 자치적이고 교리[독단]으로부터 독립적인 철학을 가치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그 철학이 교리와 일치했다. (594)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은 특징들로 소개됐는데, 그 특징들은 크리스트교 신앙이 거의 쉽게 화해할 수 있는 것 같지 않다. 한편으로 신이 있다. 그 신은 단지 천구들의 운동자이며, 또한 운동과 독립젂으로 현존하는 질료에서 운동을 생산한다. 다른 한편 세계의 창조이며, 전능의 신이 있다. 이 신은 시간 속에서 시작했고 끝내야만 한다. (595)
심지어대조가있는데, 이 대조는 정신적 피조물들, 즉 분리된 지성들 또는 영혼이라는 용어들 속에 있다. 아랍인들에 의해 주석이 달린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분리된 지성들은 천구들의 운동자들이다 그리고 지성들은 최고의 신과 동일한 자연[본성]과 동일한 기능을 갖는다. 사람들이 신의 관점에 비추어서 지성들의 의존성을 잘 못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크리스트교의 우주 속에서 천사들은 타락할 수 있는 피조물들이다. (595)
또한 영혼들은 많이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영혼은 유기화된 신체의 형식이며, 생물학적 기능들의 원리이다. 영혼은 자기 개별성을 갖는데, 자기 신체와 연관에 의해서 이며, 자기 신체는 자기 질료이다. 크리스트교 드라마에서 영혼은 창조된 개체이며, 자기 자신에 의해 꽉 찬 개체이며, 초자연적 숙명을 지닌 주체이다. 이 영혼은 죽음에서 부활에까지 신체 바깥에서 존속한다. (595)
영혼을 신체의 형상으로 간주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작업으로부터, 영혼은 신체와 더불어 파괴된다는 결론이 나올 것 같다. 또한 만일 영혼이 감각적 신체와 물체적 기관들로부터 독립적인 인식을 갖는다면, 그러면 즉 지적인 인식이 독립적인 것처럼, 신체와 어떠한 연관도 더 이상 갖지 않는 것이, 무감동의 영혼 그 아래에 있는 것이, 또한 모든 인간들에 공통으로 속하는 것이, 지성에 의해서 라는 결론이 나올 것 같다. 이런 비개인적 지성의 영원성은 개인적 불멸성과는 아주 다른 것이고, 영혼의 초자연적 숙명의 이미지를 무(néant)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595)
게다가 심지어는 도덕론 속에도 대조가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장점은 덕목들 위에 근거한다. 그 덕목들은 의지적 획득 작업들이며, 성격의 자연적 토대들을 이용하며, 인간의 시민적 업무들 덕분에 또한 도시국가의 구성원들과 자신의 정치적 또는 사회적 연관들 덕분에 증가된다. 반대로 크리스트교의 신비적 이상은 인간[성]을 벗겨내는 것이고 또한 완전히 벗겨진 영혼에게 신적인 은총의 향기들을 제공하기 위하여 인간성을 따로 떼어내는 것이다. (595)
이런 부정할 수 없는 대조들 앞에서 아퀴나스의 반대자들은 학설의 분산들을 드러나게 하였다. 아퀴나스의 전술 전체는 학설의 이런 모든 분산들을 근본적이고 결정적이며 아주 충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분산[수렴]으로, 즉 방법적 분산으로 변형하는데 있다. “인간적 철학은 피조물들을, 피조물들이 이런 것들 저런 것들인 한에서 고려한다. 그런 것들에서부터 철학의 부분들이 나온다. 이 부분들은 사물들의 류들에 해당한다. 그러나 크리스트교 신앙은 피조물들을 이런 것들 저런 것들인 한에서 고려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신아은 불을 불인 한에서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불이 신적 높이를 재현하는 한에서 그리고 불이 어느 정도 신 그 자체에게로 배열되는 한에서 고려한다‥…. 철학자는 피조물들속에서 그 피조물들의 고유한 본성에 따라 그것들에게 알맞은 것을 고려한다. 예를 들어 불 속에서 높이[상층]으로 향하는 운동을 고려한다. 신자들은 피조물들 속에서 피조물들이 신과 연관들이 있는 한, 그것들에게 알맞은 것을 고려한다. 예를 들어 피조물들이 신에 의해 창조된 한에서 피조물이 신에 복종하는 한에서 이런 류의 사물들을 고려한다.” (596)
이제 어떻게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우리가 지적했던 네 가지 문제들 속에서, 이런 전략을 사용했는지를 보자. 우선[첫째로] 운동자인 신으로부터 창조자인 신으로 [이행] 이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은 자연학 그대로 단지 규정된 결과를 생산하는 규정된 원인들만을 생각한다. 따라서 자연학은 능동자들만을 인식한다. 즉 능동자들의 행동에 의해서, 이런 행동에 앞서고 또 외적인 물질로부터, 능동자들 속에 잠재적으로 내용으로 들어있는 존재를 끌어낼 수 있는 능동자들만을 인식한다. 능동자들은 오로지 변화와 운동을 생산한다. 말하자면 잘 규정되지 않은 잠재적인 존재로부터 잘 규정된 현실태의 존재로 이행을 생산한다. 결국 이것들의 행동[작용]은 순간적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 속에서 펼쳐져야 한다. 그런데 모든 “길들”은 아퀴나스의 사유 속에서 우리를 보편적 원인에 귀착하는 다시말하면 하나의 능동자로 – 모든 사물들이 그것들이 무엇이든 간에 일방향[일률적]으로 한 능동자의 결과들이 되는 – 귀착하는, 따라서 존재의 원인 즉 무로부터(ex nihilo) 생산하고 순간적으로 작업하는 하나의 원인으로 귀착하는, 결론으로 이끌어 간다. 거기에 중요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사유의 새로운 해석을 즉 첫째 길을 가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길을 자연학에서 발견한대로, 그 첫째 길은 사실상 천구들의 순환 운동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다. 따라서 부동의 원동자는 그 아래 방향으로 규정된 원인으로, 다시 말하면 하늘들[천구들]의 질료 속에 포함되어 있는 순환운동을 잠재태에서 현실태로 이행하게 하는 원인으로, 남게 된다. 그런데 천구들에 대한 모든 언급은 토미스트의 증빙 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제일 운동자가 본질 원인(causa essendi) 또는 창조 원인(causa créatrice)의 모습을 띠게 하는 방식으로 첫째 길을 소개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이방종교 대전, II, 6), 제일 운동자를 움직이게 하는 하늘들이 달 아래 영역의 사물들을 위한 생장작용의 원인이다. 그것은 제일 원동자가 존재 원인이라는 것을 증거한다. 이러한 고찰 덕분에, 아퀴나스는 반대들에 대해 아주 조용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듯이 이런 증빙이 세계의 영원성을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항상 작동중인[현실태인] 영원히 하늘들의 운동들을 생산해야만 한다. 반대는 모든 힘을 잃어버렸다. 만일 사람들이 처음에 세계의 영원성이 세계의 독립성과 자기 창조의 부정을 함축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말이다. 그래서 아비센이 이미 그렇게 했듯이, 신이 영원으로부터 세계를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따라서 신이 영원하다는 것이고, 또는 신이 시간 속에서 시작했다는 것이고, 세계는 결과로서 그리고 신의 피조물로서 남아있다. 게다가 세계의 영원성 덕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공한이법들은 아퀴나스에 따르면 설득력이 없다. 신을 위한 세계의 원동자이라는 사실은 세계가 피조물들에 속한다는 관계이기도 하고, 또 그 귀결로서 필연적으로 신의 존재에 속하지 않는 관계이다. 이러한 문제[질료]에서 이법은 확실하게 찬성에도 반대에도 결론 지울 수 없다. 세계가 시간 속에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드러내주는 것은 신앙과 연관해서 인 것으로 남는다. 둘째 길에서 그는 효과 원인을 이해하는데,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경우 일반인 것처럼 운동원인의 단순한 방향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효과[결과]들을 존재에 이끄는” 원인의 방향에서 이다. 이리하여 이 [둘째] 길은 그를[아퀴나스] 창조의 원인으로 인도할 수 있었다. (597)
셋째 길에서, 이 길은 필연과 가능성, 본질과 존재에 관해 인도한 사색인데, 이런 사색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에 아주 낯선 것이다. 우리가 곧 보게 될 것인데, 아퀴나스에게 보편적 원인으로 결론짓도록 허락하는 사색이다. 이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존재와 본질 사이에 구별의 문제의 기원을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발견한다.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존재가 자기의 실질임(quiddité)을 탐구하기 앞서 현존하는지를 탐구할 것을 권했다. 결코 현존하지 않는 존재의 실질임(quiddité)은 전혀 아니다. [마찬가지로] 염소-사슴(bouc-cerf)의 실질임도 전혀 아니다. 만일 이 환상적 동물이 현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아랍인들이 그리고 아퀴나스가 다루는 방식은 본질과 존재의 연관들의 문제를 제기하였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시작용들의 연속 또는 확장[외연]이 아니었다. 전자들의 방식은 후자[아리스토텔레스]의 방식과 정반대로 대치된다. 한 사물이 자기의 실질임을 규정하기에 앞서 현존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반대로 실질임 현존에 관한 모든 문제에 앞서 규정된 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 용어법을 사용하자면, 본질이 실재적으로 존재로부터 다른(차이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질문에는, 즉 겉보기에 매우 추상적이고 기술적인(techinque)인 질문에서 신학적 고민이 그 밑바탕에 들어 있다. 사물의 존재가 사물의 본질과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사물이 자기에 의해 현존한다고, 그리고 사물이 필연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에게만 속하는 특권을 사물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신은 오로지 가능하다는 다른 모든 자연[본성]들에게 속한다. 그것들[자연들]의 존재는 그것들과 다른 것으로부터 온다. 본질 자체는 가능할 뿐이며, 그리고 그의 존재 없이도 사유될 수 있다. 만일 그 존재의 본질이 현존하는 것이라는 유일한 존재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는 마치 우발적 사고처럼 본질에 덧붙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는 본질이 무엇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 능력[힘]의 완성이다. 따라서 본질과 연존 사이에 커다란 심연이 있다는 것이 문제인데, 그 심에 대한 부정은 신을 무용하게 했었다.이 정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에 아주 반대된다.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보다 더 충실했는데, 그때는 아베로에스가 본질과 현존 사이에 이법의 차이만 있다고 말했을 때이다. 그가 말하기를 사람들은 본질을 현존하다고 생각함이 없이도 본질을 항상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효과적[현실적]으로 현존하지 않을지 모를 본질은 완전히 상상적인 것(사물)이다. 거꾸로 존재를 – 본질은 그 존재로부터 있게 되는 것 - 유일한 필연성으로 제기 하면서, 사람들은 사물들의 뿌리에다 가장 보편적인 형상을, 즉 존재를 소유하는 모든 사물들이 참여작용들과 효과들일 뿐이라고 여기는 형상을, 놓는다.
넷째 길은 동일한 결과에 도달한다. 이런 이유에서 각 사물이 - 그 사물이 작동 중[현실태로]이라는 점에 따르면 - 자기의 결과를 생산하고 활동하게 하는 것은, 규칙으로부터이다. 그런데 넷째 길은 우리를 한 존재에게 데리고 간다. 그 존재는 작동 중인 존재이기에 때문에, 모든 다른 사물들을 위하여 보편적으로 그것들의 존재 이유이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길은 개별적이고 자연적인 원인들과는 다른 한 원인을 요청하는 데로 우리를 인도한다. (598)
사람들은 어떤 우회로를 통하여창조적이고 초월적 신이 제일 운동자의 지위를 신앙의 지령(l’injonction) 보다 위에 차지했는지를 보았다. 신앙의 지령은 이법으로부터 이법이 증빙들을 차기를 요구했다. (598)
근대 독자에게는 이 질문이 매우 한가한 것으로 보일지라도,천사들에 대한 이론은 토마스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에게서 가장 심각한 불행(pierre d'achoppement, 뜻하지 않은 장애물)의 원인들 중의 하나로 드러났다. 이런 질문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학의 마지막에서 부여했던 증빙이 다수의 부동의 원동자들에게 충분히 자연적으로 인도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구들의 천문학적 체계 속에 있었던 운동하는 지성들에게도 그만큼이나 자연적으로 인도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구들의 각각은 [각각에게] 고유하고 구별된 운동으로부터 활성화되었다고 가정되었기 때문이다. 운동하는 지성들 사이에 현존할 수 잇는 연관은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그림자(l’ombre)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체계가 살아갈 수 있는 만큼이나 사람들은 그 체계를, 모든 지성들이 한 나아의 지서에 의존하는 유일신론 처럼 또는 구체적으로 작용하기는 하나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다신론처럼, 생각할 수 있다. 체계가 무엇이든 간에, 이미 오랜 전통을 따랐던 위 드니가 분리된 지성을 천구의 위계에 대한 천사들에게 동화시켰었는데, 그 분리된 지성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였던 것이다. 그 지성들은, 마치 천구의 초기부분들의 운동자들과 같아서, 여러 종류의 신들과 같았다. (599)
사람들은 어떻게 프란체스코 학파가 아비체브론(1021경-1058경)과 후고 생 빅토르(1096-1141)를 따라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이런 분리된 실체들은 순수 형상들이 아니며, 이것들은 질료[물질]과 형상으로 혼성되어 있다. 비결정성이 있는 도처에서, 그리고 다수성과 유한성이 있는 도처에서 물질[질료]가 있다. 이리하여 실체 전체에 공통하는 하나의 질료가 있다. 그 실체는, 그 실체가 이런 형상에 또는 다른 저런 형상에 의해 규정[결정]되기에, 정신 또는 영혼이 된다. 그리고 다양한 지성들은, 이것들이 다양한 형상들에 의해 규정된 공통의 토대를 갖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599)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신적 실체들의 질료형상적 혼성작업을 완wjs히 부인 한다. 그의 논증들 중의 하나는 일반적 개념작업에 도달하는데, 아비케브론이 물질로 그리고 질료와 형상의 연관으로 만들었던 개념작업이다. 아퀴나스에게서 생성작용(la génération)은 형상이 물질에게. 마치 우발적사고가 실체에게처럼, 첨가되는 것에 있다. 이때부터 이렇게 생산되고 혼성된 존재 안에서는 어떠한 진실한 생성작용도, 어떠한 진실한 통일성[단일성]도 없다. 그것은 단순한 합계 또는 보태기이다. 그러나 만일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사람들이 물질을 마치 잠재적인 존재로서(대리석) 생각하고, 그 잠재적 존재가 일련의 운동과 다양한 변질에 따라 현실태인 존재(조각상)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질료형상적 혼성작업이 신체에 만 속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것이다. 반대로 지성들은 질료 없는 순수 형상들이라는 것,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 인식을 묘사한대로, 지적 인식의 특성들이 증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에 따르면 이해하는 작동에서 지성은, 지성이 이해하는 가지적인 것과 동일하다. 그런데 가지적인 것은, 마치 물질 속에 형상처럼, 지성 속에서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물질 속에 받아들여진 형상은 분할된다. 형상은 우발사고들과 연결되면서 스스로 개별화된다. 형성은 반대 형상의 현전을 배척한다. 형상은 물질 속에 일련의 운동에 의해 도입된다. 반대로 예지의 대상인 형상은 단순하며 불가분성이며, 보편적이고 우발사고들로부터 자유롭고, 자기와 반대 형상의 현전 덕분에 더 잘 알려지며, 지성이 덜 움직일수록 그만큼 더 잘 이해된다. (600)
그러나 만일 분리된 지성들이 순수 형상들이라면, 어떻게주제의 불편함들을 회피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한 존재가 순수형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신의 단순성과 동일시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에는 형상과 질료의 양태와, 본질과 존재의 양태와도 아주 다른 혼성의 양태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이 두 항들은 신속에서만 동일하다.반대로 창조된 사물 전체 속에서 본질, 즉 실체, 다시 말하면 이 사물이무엇인 것(ce qu’est cette chose, quod est), 그리고 사물의 존재 자체, 즉 그 존재 자체에 의해 사물이 존재라는 이름을 받을 만한 것(ce par quoi elle mérite le nom d’être, quo est) 사이를 구별해야한다. 만일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면, 사물의 잠재태와 사물의 현실태를 구별해야 한다.이러한 구별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가져온 것인데, 알베르투스에서처럼 천사를 신으로부터 떼어내는 데 쓰일 것이다. 이 구별은 사람들이 증빙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추상화된 발언일 뿐이다. 왜냐하면 천사가 피조물이라고 말하는 것, 그의 본질은 그 자체로서 존재의 잠재성을 갖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 있는 것[quod est]은 의해서 있는 것[quo est]과 구별된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동일한 정식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혼성작업은 그것[이런 구별]을 가지고 진실한 개체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곧 보게 될 것이지만, 개체성[불가분성]은 물질 속에 참여된 한 형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천사들, 즉 순수형상들은 그들 사이에 마치 종들처럼 다르지, 마치 개체들처럼 다르지 않다.그러한 것은 유일한 하늘과 유일한 최초 원동자를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했던 바로 그 추리작업의 덕택이다. (600)
셋째 난점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영혼과 신체 사이에서 주장하는 개별적 연관 속에 있다. 최근의 한 해석자에 따르면 “영혼의 개체성[불가분성]은 영혼의 개인적 불멸성과 영혼의 실체적 형상의 기능을 동시에 간직하는 방식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여기 문제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는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영혼은 조직화된 신체의 형상이다. 영혼과 신체는 두 개의 독립된 실체가 아니다. 그러나 둘의 통합으로부터 인간이 이루어지고, 그 인간은 하나의 유일한 존재이다. 자연적 통합 없이 영혼은 스스로 파악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영혼은 영혼 그 자체에 의해 스스로 인식될 수 없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점에 관해서 선언할 할 있었던 것은, 영혼이 자기 자체에 의해 비물체적인 사물들의 용어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영혼은 영혼이 있다는 것을 지각한다고 말하기에 이른다[귀착한다]. 왜냐하면 영혼은 자기의 고유한 작용[작동]들을 지각하기 때문이다(Summa contra Gentiles, III, 46).
만일 사정이 그러하다면, 인간의 개체성의 문제는 일반적 규칙에 따라서 해결된다. 그 규칙은 형상과 질료의 혼성된 존재들을 개체화의 작업에 적용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안다: 형상은 그 자제로서 종적이며, 그리고 존재들의 동일한 종에서는 그것은 종별화로서 동일한 형상, 즉 종의 모든 개체들 안에 있는 형상이다. 개체들을 서로 서로 따로 떼어놓는 것, 따라서 그것은 물질이며, 그 물질에게 형상이 통합된다. 사람들은 어떻게 물질이 개별화작업의 원리가 되는지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다음을 구별해야만 한다: 그것은 개체성[불가분성]을 만드는 물질 일반에 통합된다는 사실이 아니다. 종으로서 인간은 이미 물질 속에 갇혀있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인간을 영혼과 신체의 혼성체라고, - 그러기 위해서 개체가 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 정의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개체를 이루는 것, 그것은 표시되는 지칭되는 물질(la matière désignée, materia signata)이며, 말하자면 규정된 차원들 하에서 고려된 물질이다. 이것은 형상을 개체화[불가분화]하는 물질이며, 동일한 종에서 수적인 다양성을 생산하는 물질이다 왜냐하면 물질이 형상에게 시간과 공간에서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배타적 지위를 부여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또한 왜냐하면 그것의 허약함 때문에, 물질이 형상을 결함있고 불완전한 방식으로만 받아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601)
물질 속에 참여된 형상을 위하여 한 개체가 되는 것, 따라서 그것은 모든 방식으로 한계설정이며, 약화이며, 축소작업이다. 마치 신체의 형상과 같은 인간 영혼은 이런 조건들에 종속되었고, 그리고 개체성을 신체를 근거로 해서만 획득되었다. 영혼은 신체의 형상이고 형상과 더불어 완전한 상응이 있다. 이로부터 이런 개체성은 신체의 숙명을 따라야만 하고 신체와 더불어 사라져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어야만 아마도 그럴듯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육이 아니다. 그가 말하기를 “인간 영혼은 하나의 형상이며, 이 형상은 그것의 존재에 따르면 물에 의존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신체가 다양화됨에 따라서, 영혼들도 다양화되어 있다는 귀결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의 다양화 작업은 영혼들의 다양화 작업의 원인이 아니다. 그리고 따라서 신체들이 일단 파괴되면, 영혼들의 다수성이 끝난다는 것은 필연성이 아니다.”(Summa contra Gentiles, II, 81.) (602)
사람들은 여기서 어떻게 크리스트교 신앙이, 마치 바깥에서 오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주의를 제한하러 오는지를 안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가 소요학파주의 속에 영혼의 영속적 개체성의 학설을 틀 속에 가두기 위해 어떻게 절차를 실행했는지를 보다 가까이 보는 것이 좋다. 그의 신체 바깥에서 인간 영혼의 개체성의 영속성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는 철학적 유일한 이유만을 갖는다. 그것은 인간 영혼 속에서, 물체적 기관들을 요청하는 조작작업들을 넘어서, 하나의 지성이 현존한다. 그 지성은 매개 없이도 물질에 참가하지 않고서도 자기 대상들을 안다. “따라서 지성적 영혼은 물질에 의해 파악되지 않거나 또는 마치 다른 물질적 형태처럼 물질 속에 잠겨져 있다.” ((Summa contra Gentiles, II, 68, 마지막부분) (602)
그러나 이런 해결은 다른 난점, 매우 심각한 난점에 이른다. 이 난점은 지성과 나머지 인간 영혼과 연관들에 관한 것이다. [한편] 사람들은, 그리스와 아랍의 해석가들이 이점에 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로부터 부여했던 일련의 해석 전체를, 즉 신체의 기관들에 대해 지적 조작의 독립성 속에서 증거를 – 예지는 영혼을 마치 신체의 형상처럼 정의하는 속에 그 증거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 본다는 해석자들의 거의 만장일치를 이미 안다. 다른 한편, 지성은, 지성이 현실적으로 사유할 때, 자기의 대상과 동일하다. 그런데 이런 대상은 보편자들이거나 또는 특수한 형상들이다. 그 결과로 지성은 물질에 독립적인 보편적 형상으로만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지성은 개별화작업을 허용할 수 없다. 모든 인간들에서 동일하기 때문에, 지성은 영혼의 어떤 것이 아니다. (602)
이러한 문제의 주위에는 아랍의 소요학주의와 경쟁 속에 있는 토마스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숙명이 역할을 하고 있다. 알베르투스는 그것의 중요성을 이미 보았고, 그리고 진실로 말하자면 기술(技術)적으로 다른 형식들 하에서 그 문제는 서양인들의 머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602)
크리스트교인이든 아랍인든, 모든 소요학파학자들에게서 공통의 출발점이 있다. 그것은 마치 추상화의 조작작업처럼 지적 조작작업을 표상하는 방식이다.그 조작작업에 의해 종별화 형상들은, 감각적 자료들 속에 그리고 이 자료들의 다소 정교화된 이미지들 속에 있는 잠재성을 포함하여, 이런 이미지들 또는 환영들(phantasme)로부터 이끌려 나왔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조작작업에 필연적인 예지들의 수를 두 가지로환원시켰다. 능동적 예지와 가능적 예지이다. 능동적 예지는 종별화의 형상들을 환영들로부터 끌어낸다. 마치 백지상태로 있는 듯한 가능적 예지는 모든 생성의 경향이 있어서, 이렇게 추상화된 형상들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이런 예지들은, 조작작업들 속에서 물체적 기관들을 필요로 하는 조작작업들과 예지와의 연관 속에서만 기능한다. 이 예지들은 예지들 자체만으로 여러 인식들을 부여하지 못한다. (603)
난점은, 일단 이런 조작작업들이 서술되었기에, 그것의 주제가 어떤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이런 예지들이 “분리되어” 있어서 또는 단지 둘 중의 하나, 즉 능동 예지이거나, 반면에 가능 예지는 영혼의 일부이거나, 또는 마지막으로 두 가지 예지가 영혼에 속하는가? 첫째 부분은 무슬림 철학자 아베로에스(1126-1198)의 것이고, 둘째 부분은 페르샤 철학자 아비센(980-1037)의 것이며, 셋째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것이다. 그러나 아비센의 주제는 그 자체로 비논리적이다. 왜냐하면 능동에지의 현실태와 가능 예지의 잠세태 사이에 그런대로 연관 과 그런대로 비례가 있고, 전자는 후자와 동일한 주제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실한 반대자는 아베로에스이며, 게다가 그에게는 파리 대학에서 상당한 찬성자들이 있었다. (Summa contra Gentiles, II, 76.)(603)
그에게 반대하여 지적인 실체가 신체의 형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을 충분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이런 증명작업을 위한 도움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예를 들어 천구들의 영혼들을 부여할 수 있고, 천구들이 자신들이 선하다는 욕망에 의해서 각 천구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더군다나 그것을 증명했다고. 즉 “지적인 실체는 물질을 위하여 있는 형식적 원리일 수 있다”(Summa contra Gentiles, II, 58.)고 주장했다. (603)
그러나 그러한 것이 증명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지성을 영혼의 다른 잠재성들에 첨가하는 것은 다음 차례로 영혼의 통일성과 개체성을 위태롭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또한 증빙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적인 잠재성은 영양의 잠재성과 감각적 잠재성과 이 점에서 다르지 않는가? 형상들의 다수성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가 개입하는 것은 여기에서 이다.
아우구스투스주의자들은, 아비체브론(1021경-1058경)과 이점에서 일치하면서, 물질적 혼성체 속에서 물질이 여러 형상들에 의해서 형태가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덜 완전한 존재들로부터 더 완전한 존재로 올라가는 정도에서, 하나의 형상에 고등한 형상이 첨가되러 온다. 말하자면 요소 속에 요소의 형상이 첨가된다. 식물 속에 영양의 영혼이, 동물속에 감각적 영혼이 등등으로 첨가되듯이, 상위 형상은 하위 형상에 첨가되려고 실행한다. “하위 형상들은, 모든 형상들이 보편적 제일 형상에 이끌려지기까지, 상위 형상들에 의해 감싸여져 있으며, 제일 형상은 자기 속에 모든 형상들을 통합하고 있다.” 아비센에 의해 이미 비판받은 이 주제는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존재 속에 형상들의 다수성은 진실한 실체를 창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유일한 형성을 부여받은 한 혼성체가, 마치 한 신체처럼, 이미 하나의 실체이라면, 새로운 형상은 우발적인 속성의 자격으로 이미 현존하는 실체에 보태어질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604)
이러한 토론에서 일련의 위계화된 형상들로 이루어진 우주의 이미지 와 개체들로 이루어진 우주의 소요학파의 이미지 사이에 충돌을 보는 것은 쉽다. 전자에서 각각의 형상은 말하자면 자기를 채워주러 오는 형상을 갈망한다(이런 이유로 통일성은 개체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전체 속에서이다). 후자 속에서 개체들의 각각은 그 자체로 이런 조작의 원리를 지니고 있다. 각 개체 안에 있는 형상의 통일성에 대한 주제가 이 둘째 영감[착상]에 매여있다. 그러나 또한 이런 주제 덕분에 인간 개체의 통일성을 위협했던 위험은 완전히 민려난다. 왜냐하면 지성이 조직화된 신체의 형상일 뿐만 아니라, 또한 지성은 이 신체의 하나이자 유일한 형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형상으로부터 감각적 또는 식물적 모든 능력들(les facultés)이 흘러나오고, 이 능력들의 조작작업들은 신체의 기관들에 의해 집행된다. 이런 방식으로 인간 신체의 형상은 완전히 가지적인 영혼이다. 이 영혼은 자기와 신체의 관계로부터 자기의 개체성을, 그리고 인식에 대한 자기의 조작작업들에 대한 비물질적 특성으로부터 자기 독립성을 끌어낸다. (604)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성의 개체화[불가분성작업]에 반대하는 매우 강한 논증이 남아있다. 작동 중인[현실태로서] 지성은 자기의 대상과 동일하기 때문에, 그리고 지성의 대상은 보편적 형상이기 때문에, 지성은 다양한 개별체들로서 다양화될 수 없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대답한 것은 신학적 힘을 통한 진실한 타격에 의해서 이다.그가 말하기를 “사람들은, 신이 동일한 종류의 여러 예지들이 있었다는 것을 행할 수 없다고, 제시하기 위하여 매우 조잡하게 논증한다. 사람들이 믿기로는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모순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화되어 있는 것이 예지의 본성[자연]으로부터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다양화 작업이 모순을 함축한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뒤따르지 않을 것이다. 한 사물이 자기 본성[자연]속에 한 성격의 원인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아무것도 막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사물은 그 성격을 다른 원인의 덕분에 소유한다. 이리하여 자연에 의하여, 장중함은 높이[상층]에 있는 이런 성격을 가지지 못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중함은 높이에 있을 수 없다. 그러한 것이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모든 사람들의 예지가 유일하다면, 왜냐하면 예지는 다양화라는 자연적 원인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예지는 초자연적 원인 덕분에 모순 없이도 다양화[작업]를 인정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자: 논증한다는 이런 방식이 다른 주제들에게 확장되지 않기 때문에, 그 만큼이나 우리의 고유한 현실에서도 아니라는 것이라고만 하자. 왜냐하면 이리하여 사람들은, 신이 죽은 자들을 부활시킬 수 없다고, 그리고 맹인이 시각을 회복할 수 없다고 결론지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다: 매우 표현적인 이 원문에 의해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법[이유]에게 - 신앙에 의해 확정된 신적인 전능과 마주하여 - 자신의 한계들을 재인식하도록 지시[명령]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605)
세계의 원인인 한에서 신까지 추론에 의해 거슬러 올라가도록 해주는 감각적 세계의 추리적자연학[물리학]이 있는 것처럼, 또한 이법의 과도한 힘들을 초과하는 계시된신학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품행을 지도하기 위하여, 선과 행복을 향한 의지의 자발적 방향에 지지받는 자연적 도덕론도 있고 또한 초자연적 숙명도 있다. 그 숙명 속에서 인간은 성스런 은총에 의해서만 인도될 뿐이며, 그 은총은 이법에 의해 밝혀진 의지에게 속하지 않는다. (605)
자연적 도덕론의 근본적 이념들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빌려왔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으로부터 그는 우리 의지가 자연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의지의 목적인 선을 향하여 인도되었다는 생각을 유지했다. 그리고 우리의 임의 자유(libre arbitre)는 자유롭지 않는 우리의 목적을 선택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추론된 숙고에 의해 우리를 목적에 맞게 인도하는 수단들을 선택하는데 있다. 따라서 자연적 빛이 있어야만 한다. 그 자연의 빛은 우리에게 실천적 추론과정들의 전제들을 제공한다. 이런 자연적 빛은 신데레시스(syndérésis)에 의해 드러나는데, 신데레시스는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는 자연적이고 움직이지 않는 안정 상태(un habitus, état stable)이다. 이 안정상태는 개별적인 규범들로 분할된다. 자연의 빛으로부터 의지의 곧음이 나온다.덕목들은 획득된 습관들(안정상태들)이며, 이들은 우리의 임의 자유 덕분에 우리가 최상의 수단들을 선택할 수 있는 사실에서부터 온다. 이런 관점은, 도덕 법칙과 권리 법칙은 신의 이법 위에 정초되었다고 가정한다. 그 이법에 신의 고유한 의지가 복속된다. “영원한 법칙은 신적 지혜의 이법일 뿐이다. 신적 의지는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이법에 복속되며, 그 귀결로서 영원한 법칙에 복속된다.” 이런 이법상 권리의 불변성은 나중에 이에 대해 오캄주의자들이 항의하게 될 것이며, 그럼에도 이 불변성은 권리의 근대 이론들의 모든 부분에 기초로서 남을 것이다. 그리고 17세기에 그로티우스(Grotius, 1583-1645)가 그 일부분을 받아들인 것은, 스콜라철학자 (Gabriel Vasquez, 1549–1604)를 매개로 해서, 토마스 아퀴나스로부터이다. (606)
사람들은 군주들의 정부론(De Regimine Principum, 1300경)에 대해 부분적인 위작을 인정했는데. 예전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속하는 것으로 여겼다. 적어도 이책의 마지막 분분에는 1301년경에 톨로메오 다 루까(Ptolémée de Lucques ou Tolomeo da Lucca, 1236경–1327경)에 의해 쓰여졌으며,그는 우리가 그를 보았던 대로 토마스 정신은 그의 철학으로 분간되어 있는 것처럼, 정치적 소재로 삼아 토마스 정신을 찬탄할 정도로 잘 재현했다. 도시국가에서 선을 추구하는 시민 권력이 자치를 갖는 것은, 이법이 사변적 소재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동일한 자치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시민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든 정신적 권력들의 – 신으로부터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임무를 받아들였던 정신적 권력의 - 목표들 대립하게 된다면, 오류 속에 빠질 것이고 다시 세워야만 한다. 이로부터 완전한 추리적 성격이, 시대적 소재로서 토마스의 영감을 받은 이런 정치에 대해 거의 실재론적인 성격이 결과로서 나온다. “왕국은 왕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왕이 왕국을 위해서이다.” 왕은 모든 사람들의 선의 탐구 이외에, 자기 권력에 대해 다른 존재 이유를 갖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왕이 자기 자신의 선에게 자기 신하들의 선을 제물로 바치게 한다면, 신하들은 왕의 시각에 따른 모든 강제로부터 분간하게 되어, 왕을 왕의 권리로부터 폐위를 선언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 왕이 추리적 국가가 크리스트교 국가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왜냐하면 진실한 선을 표시하는 것은 신적인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교육은 교회의 감독직에 속하기 때문이다.”그리고 교회가 왕들을 축출하고 해임하는 권리는 갖는 이유이다. 이런 종류의 온건한 신정정치는 시대적 권력에게 신학이 추리적 철학에 넘겨준 권력에 상응하는 자치를 넘겨준다. 이런 신정정치는 동일한 시기에(1301-1302)에 비텔보(Jacques de Viterbe, it. Giacomo da Viterbo, 1255경-1307)에 의해 쓰여진 크리스트교 정부에 관하여(De regimine Christiano)와 대조를 이룬다.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은둔자인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신 속에서, 소위 말하는 민족주의(국가주의) 왕국들의 증가에 반대하여 훨씬 더 엄격한 신정정치를 주장했다. (607) (56T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