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칼바람 매섭게 불던 어느 겨울날 버찌를 만났다.
발걸음이 쩍쩍 얼어 붙을 정도로 추워서 퇴근길이 힘든날, 주차장에 차를 급히 세우고나서 아파트 현관을 향해 냅다달렸다.
마치 누군가 1층에서 내리고 나는 넘 추워서 초고속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뭔가 시커먼 덩어리가 발끝에 달렸다가 구석지에 툭 떨어지는거다.
난, 넘넘 놀래서 급 사투리가 나왔다. '엄마얏!! 우메우메 뭐여뭐여!!! 요것이 뭐이당가?' 몇번의 오두방정을 떨면서 구석지를 보니 오돌오돌 떨면서 나를 째려보는지 겁내하는지 분간못할 이상한 애가 있는거였다. 나도 순간 너무 놀래서 ' 야! 너 뭐야? '하고 화가난듯 되묻지만 지가 뭔 말을 하겠어? ㅎㅎ
주먹만한 새끼 고양이가 추위를 피해 현관문 앞에 몰래 숨어 있다가 내가 후다닦 달려오는 바람에 발등에 걸렸다가 엘레베이터가 순간 열리는 순간, 쑊!!! 같이 딸려 들어온거다.ㅎㅎ
서로 말없이 째려보다가 우리집 4층에서 문이 열리고 내가 내리려고 하자 지도 후다닥 도망치듯 내렸다.
계단으로 쏜살같이 내려가는듯 해서 나도 얼른 집으로 들어 갔다.
남편한데 '허이구 새끼고양이 땜에 숨 넘어간줄 아라써!' ' 어찌나 놀랬든지 지금도 가슴이 꽁당거리네' 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아무래도 궁금하다. 현관문을 빼꼼이 열고 고녀석의 행방을 쫒는다.
계단및에 작은 물체가 쪼그리고 있었다.
난, 순간 반가웠다.
날씨가 추워선지 도망갈 생각을 않았다.
거실에 있던 남편이 ' 추운데 문열고 뭐하는거야? 고양이를 어쩌겠다고... " 하며 약간의 짜증을 부린다.
다시 문을 닫고 다른일을 보려고 해도 자꾸 문밖에 신경이 쓰였다.
'이 추운 날씨에 쟤를 어쩐다지?' 참말로 측은하네? 엄마도 잃었나봐? ' 난, 최대한 슬픈 목소리로 가엽운 표정을 지었다.
남편의 측은지심을 이용해볼 심산이다.
내 작전은 성공이다. ㅎㅎ 남편은 ' "새끼 고양이가 뭐 어쩐다고? 고양이는 멸치를 좋아 한다는데 한번 줘 볼까?" 한다.ㅋㅋㅋ
멸치 몇마리를 꺼내들고 밖으로 나가서 손을 내밀어 잡으려 하자 '야아옹' 하고 발톱을 세운다.
비록 새끼지만 길고양이 새끼라서 그런지 순순히 잡히려 들지 않았다.
할수없이 뭐 먹을만한거 없나 궁리를 해보지만 멸치도 생선이니까 좋아할것 같았다.
한마리를 들고 다시 유인책에 나섰지만 앙탈을 제법 부리며 손등을 할퀴려 하자 전자랜지 장갑을 끼고서 다시 새끼고양이를 덥쳤다.
성공!!!!
버찌를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 걔 이름을 버찌라고 지어줬다. 반년전에 요키 한마리를 키웠는데 호수공원에 놀러 나갔다가 잃어버렸다. 그 강아지 이름이 버찌였다. 그래서 새끼고양이에게도 걍 버찌라고 불렀다)
갑자기 따뜻한 공간으로 들어오자 신경질적으로 세우던 발톹도 내리고 눈망울에 가득 차있던 경계심을 풀면서
수건에 않혀 주었더니 쌔곤히 잠이든다.
우리 둘이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있는 작은 영혼 앞에서 앞으로 닥쳐올 역경과 슬픔은 예상치 못하고
그저 특별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버찌가 잠든 사이 인터넷을 뒤져 고양이의 특성과 좋아하는 음식을 공부하고 메모했다.
목욕을 싫어한대서 물티슈로 닦아냈지만 아무래도 찝찔해서 조심스레 목욕을 시켰는데도 모든걸 포기한 전쟁포로마냥 순순히 몸을 맡겼다.
사실 난 고양이를 무척 싫어한다.
그 날카로운 눈빛하며 자존심 강한 입매무새. 슬금슬금 음흉한 걸음걸이며 어딘가 몰래 숨어서 지켜볼듯한 몸짓이 꼭 심부름센타 직원같아 싫었다.
동물도 식물도 어리고 여린것은 아름답다.
지금 내앞에 내가 지독하게 싫어한 고양이지만 새끼라서 그런지 정말로 귀엽고 이쁘다.
어쩌다가 엄마를 잃었는지 주먹만한 몸짓으로 세상모르게 잠들어버린 이 가여운 녀석을 앞으로 어떡할지는 알바 아니었다.
둘이서 살다보면 별 할 애기 없이 그저 티브이나 대충 보면서 지내는 저녁이 대부분이다.
누군가 말했던 기억, 남자의 주성분은 일과 명예와 사랑이라고...
첫번째인 일을 명예퇴직이란 회오리를 맞고서 사회에서 밀려날때 남편은 점점 말을 잃어갔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지금부턴 내가 벌어 먹여줄게. 잘만 놀아줘' 하며 대담하게 위로해 보지만 어디 직장에서 나름 잘 나가던 때를 그리 쉽게 잊을수 있겠는가? 아무렇지도 않은듯 애써 명랑한 표정을 짓지만 속으론 울고 있을것을....
어느 날이었다
무심코 저녁 설걷이를 하다 돌아보는 순간 티브이를 보고 있는 남편의 등이 왜그리도 초라해 보이던지.
울컥 눈물이 났다.
오목 가슴이 싸아해 지면서 목젖애린 속 울음을 몰래 삼켰다.
나는 냉장고를 열어 찬물 한컵을 마시고 참외를 꺼내 깎는다.
골프 체널을 열심히 보는척 하는 남편에게 바짝 다가 앉으면서 다리를 슬슬 문지르며 말한다.
'여보! 요즘 당신은 점점 더 멋있어 진다? ㅎㅎ 나 몰래 바람 피우는거 아니지? 하니 남편은 어이 없다는 눈빛으로
두 눈을 흘긴다. ㅎㅎㅎ
'체널권좀 나에게 넘기시지? '하며 깍아논 참외를 먹어줬다.
이렇듯 하루하루가 겨울바람에 바람든 무우처럼 싱거워질때 느닷없는 손님이 초 긴장을 일으켜 준 것이다. ㅎ
목욕을 끝낸 버찌가 한숨 자고 나더니 누워 있는채 고개를 살짝 치켜들면서 "엄마" 하고 부른다
물론 야옹하고 울었지만 새끼라서 그런지 내 귀엔 꼭 엄마하고 부른것 같았다.
- 천방지축 연애기는 잠시 미루겠다. ㅎㅎ
대신 길고양이 버찌 이야기롤 할텐데 사람과사람의 인연도 중요하지만 동물과의 인연도 그 정의 깊이 면에선 별 차이가 없는것같
다.
연민과 측은지심으로 시작 된것도 정들다 보면 그 정이 전부가 될때가 있다.
어떤 불행 속에도 행복은 움추리고 있듯 우리부부는 버찌와의 기막힌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
친구들이여!!! 즐건 주말 되시라!!!!
첫댓글 이른시간 정현이 친구 생일글 올리러 왔다가 잘읽고가네.
미운정 고운정~~정이란 묘한것!
고개숙인 남편들... 젊은나이에 정년...길잃은 고양이...슬픈현실!!
그래도 힘내자. 명수기 화이팅!!!
부지런하구나~ ㅎㅎ 향상 일찍이야, 너희집 오골계는 어제 몇마리 없어졌니? ㅎ
정 작가~
썻다하면 명작이고 대박이구만~~
명숙인 서울 올라온 뒤부터
바로 문단에 등록하고~
뭐든 조잘거리는 작가를 했으면 엄청 인기쟁이였을거야~~ㅎ
요즘도 팔도유람 잘하고 계신감?
체력관리 잘하고 여행수기좀 올리시게....ㅎㅎ
나도 고양이는 싫어하는데 길고양이에 얽힌 이야기 기대된다. 그나저나 모두들 새벽잠이 없어,정말 늙은거 아니냐? 아니 아니되옵니다. 아직은 그럴 나이가 아니옵니다 ㅠㅠ
예전에는밥보다 잠이 더좋았는데 요즘은 늦잠이더 힘들다. 버찌이야기 잼날거야.ㅎ
오늘메뉴는 뭐니?ㅎ
이름을 버디라고 하지 !
ㅎ그것도 좋은 이름될뻔했네?ㅋ 걍 내가 버디정 할게ㅋ
초딩 육학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할머니가 고양이갓 낳은 새끼를 방으로 데리고 와서 일년 정도 키웠었다 이름 나비로 짓고 작은 프라스틱 그릇에 모래를 넣어 그곳에서 볼일을 보게 하고 눈이 무서웠지만 나름데로 정성을 다 했는데
시글거리더니 가 버렸다 ..간 녀석을 뒤안 감나무 밑에 묻어 주고 울었는데 요즈음도 가끔 꿈응 꾸는데 고양이를 보는 날은 좋은일이 생긴다 참으로 신기한거있지... 명숙아 걔 때문에 많은 복이 들어 올지도 몰라 정성을 다 하길 바래... 고양이는참치 통조림 좋아 해 우리 얘들 고양이만 보면 참치를 갖다줘서 힘들었던 때도 있었어..ㅎㅎ^^가장 도도한 짐승이 고양이라고 하더구나..^^
천방지축,, 혹시 신랑 한테 들켜서 잠시 쉬냐? 설마 아니겠지 ㅎㅎ^^
ㅎ ㅎ 고먕이를 키워보니까 강아지는 싱거위.ㅋ 그 도도함의 매력에 푹빠져. 깔끔은 한술더 뜨고 ㅋ
키워보면 개는 쨉도 안된다 ㅎ ㅎ ^^ 개 애호가들 미안하이 ㅎ ㅎ^^
난 고양이 눈이 싫어~~ 낸시랭인지. 어깨에 고양이를 얹고 다니는것도 한쪽어깨가 무거워보이고...ㅋㅋ
난 강아지 두마리 키우는데... 이참에 고양이도 고려할까
근데 예쁜고양이 물어보니까 300만원 달라더라
고양이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어, ㅎㅎㅎ . 꼭 이쁘고 도도한 애인같애.ㅋㅋㅋ 마누라 질투 엄청 받을 수 있으니까 신중히 생각할것.
명숙네 부부가 인정이 많구먼 ... 복 받을거야 ! 따뜻한 글 올려줘서 감솨 !!!
따뜻한 마음으로 읽어줘서 오히려 감쏴아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