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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 Arithmétique. 03
제1장 인종지학과 초기 수의 조작들 L’ethnographie et ... 7
제2장 이집트 셈칙(셈법), Le calcul égyptien 26
제3장 셈법 과 피타고라스학자들 L’arithmétisme et Pythagoriciens 33-42
제2권 기하학 Géométrie 43
제4장 플라톤학자들의 수학주의 Le mathématisme des platoniciens 43
단원 A, 플라톤 문제의 지위 Section A. La position du problème platonicien 43
단원 B 플라톤주의 방법 La méthode platonicienne 49
단원 C. 형이상학의 뮈편과 뉘편 Les livres M et N de Metaphysique 61
제5장 형식논리학의 탄생. La naissance de la logique fomelle 71
제6장 유클리드 기하학 La Géométrie euclidienne 84
제7장 분석 기하학 La Géométrie analytique 99
단원 A. 페르마 Fermat 100
단원 B. 데카르트의 보편수학과 물리학 La mathématique universelle de Descartes et la Physique 105
단원 C. 1637년의 기하학 - La Géométrie de 1637 - 113
제8장 데카르트학자들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s cartésiens 124
단원 A. 데카르트주의의 문제들 Les problemes du cartésienisme 124
단원 B. 말브랑쉬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Malebrache 130
단원 C. 스피노자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Spinoza 130
제3권 미분 분석 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9장 미분계산의 발견 La découverte du calcul infinitésimal 153
단원 A. 고대 L’antiquité 153
단원 B. 나눌 수 없는 것들의 기하학과 라이프니츠의 연산법. 163
단원 C. 페르마로부터 뉴턴으로. De Fermat à Newton 177
제10장 라이프니츠의 수학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Leibniz 197.
단원 A. 토대 Le fondement 197
[1절] 문제의 제기: 논리학과 수학 Position du problème: Logique et mathématique 198.
[2절] 대수론과 분석론 L’algèbre et l’analyse 205
[3절] 지적인 역동론 Le dynamisme intellectuel 208
단원 B. 적용들 Les applications 211
[4절] 무한 과 길이[너비] l’infini et l’etendue 211
[5절] 무한소 계산과 [정]역학 Le calcul infinitésimal et la mécanique 215
[6절] 실체 La substance 219
[7절] 단자 La monade 222
[8절] 단자론 La monadologie 225
제11장 수학의 이상성과 형이상학의 실재론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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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라이프니츠의 수학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Leibniz 197.
단원 A. 토대 Le fondement 197
§116. [라이프니츠의 수학철학의 지위: 페르마와 뉴턴 대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전자는 과학적 탐구이고 후자는 철학적(형이상학적) 사유에 가깝다.]
분석적 기하학처럼 무한소 계산은 두 번 발명되었다. 우리가 페르마의 발견과 데카르트의 발견 사이에서 알렸던 대립의 몇몇 특징들은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비교에서도 발견된다. 뉴턴은 실천가이기를 원했다. 수학적 방법의 영역을 넓히면서, 뉴턴은 특히 자연과학이 다룰 수 있는 수단들을 다양화하고자 애썼다. 뉴턴의 학파가 스승으로부터 유증된 (과학)기술적 절차들을 국수주의를 배제한다는 의미에서 보수주의의 정신 속에서 교양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들은 소위 말해서 18세기에 철학적 사변에서 자연 과학의 수학적 원리들(Principes mathématiques de la science de la nature)이 말하자면 그것들의 수학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실행되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뉴턴의 저술이 흄에게서는 과학의 완성된 전형이라면, 거기[과학]에 기하학적 정식들과 관계들의 사용이 기여하는 것은 정확성성의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력(引力)의 이미지가 현상들의 체계의 틀 안에서 물리적 우주의 변수들을 모으기 위해서 [정식들과 관계들에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은유적 요소(l’élément métaphorique)이지, 우리 눈앞에서 뉴턴 역학의 가치를 만드는 수학적 요소(l’élément mathématique)가 아니다. 따라서 마치 흄의 관념연합 이론들처럼 형이상학적 이론들 중의 인력 이론에 비교하는 주장이 설명되듯이, 19세기의 시작에서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1837)가 뉴턴의 모방으로 “산업적 인력(l’attraction industrielle)”의 법칙을 상상하는 저술에서도 역시 발견되는 주장도 설명된다. (197)
반대로, 라이프니츠의 발명은 철학적 개념작업으로부터 진행하며, 그리고 사물들의 일반적 체계의 토대(la base)가 된다. 그가 파르델라(Michelangelo Fardella, 1650–1718)에게 편지 쓰기를, “Fortasse non inutile erit, ut non nihil … attingas de nostra hac analysi infiniti, ex intimo philosophiae fonte derivata, qua mathesis ipsa ultra hactenus consuetas notiones, id est ultra imaginabilia, sese attollit, quibus pene solis hactenus geometria et analysis immergebantur. Et haec nova inventa mathematica partim lucem accipient a nostris philosophematibus, parim rursus ipsis auctoritatem dabunt.” [아마도 약간의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 철학의 가장 깊은 근원으로부터 끌어낸 우리의 이번 무한 분석을 통해, 수학 자체가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용어들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그것은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넘어 스스로를 드높이고 지금까지 오직 기하학과 분석학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수학적 발견들은 부분적으로 우리의 철학적 원리들(철학)로부터 빛을 얻을 것이다. 그것들은 자신들에게 다시 권위를 부여할 것이다.] (198)
수의 용어에 기초했던 퓌타고라스주의 이후에, 비합리수들의 발견에 연결된 플라톤주의 이후에, 그리고 데카르트 기하학의 분화하는 두 해석들인 말브랑쉬주의와 스피노자주의 이후에, 라이프니츠주의는 무한소 분석을 진행하면서 수학 철학의 새로운 단계를 표시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198)
1절, 문제의 제기: 논리학과 수학 Position du problème: Logique et mathématique 198.
§117. [라이프니츠의 새로운 논리학 발견: 상징논리학(un algorithme) 또는 성격논리학(la carateristique universelle)]
사실상, 라이프니츠에게서 수학적 철학의 관념을 개관적으로 고정시키는 임무는 어려움이 없지 않다. [그 이유는] 작품의 재료[내용]적인 상황들 때문만이 아니라, 작품이 증거 하는 천재성의 광활함 때문이기도 한다. (198)
우선 라이프니츠는, 그 자신이 여러 번 동시대인들에게 약속했던 무한에 대한 과학론(De la Science de l’Infini)”이라는 중요한(거대한) 작품을 작성하지 않았다. 그 약속에서 동료들은 무한소 분석의 방법들에 대한 정의의 진술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명석 판명한 용어들로 연결된 새로운 알고리듬(un algorithme)에 기초한 일반 이론을 발견했으며, 동시에 그 일반이론은 알고리듬으로 형이상학 입문을 만들었을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생각[관념]들은 논문들의 형식으로 17세기에 대중에게 공공연하게 전달되었다. 이 논문들의 간략하고 인상적인[놀라운] 정식들이 그것들의 진실한 의미를 절반만이 폭로되었다. 또는 그의 생각들은 언어로 번역된 편지들 속에서 나타났다. 그 언어는 라이프니츠가 그의 교신자의 특별한 용모(la physionomie, 개성)에 가장 알맞다고 가정했던 언어이다. 또는 그의 생각은 하노버의 왕립도서관에 보존된 쓴 글들의 무더기 속에서 각주(노트)들과 기획들의 상태로 지적되어 있었다. 또한 사람들은 그 글들에 대해 이제 철저한 목록을 출판할 일만 남았다. (198)
라이프니츠 철학의 “완전한 용어”는 마치 역사가가 차원들에 의해 접근되기를 무엇보다도 희망할 수 있는 이상처럼, 역사가 앞에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은 라이프니츠주의의 모든 연구에서, 이 연구의 진행이 멈추어지지 않을 정도로, “전망적 중심”을 규정하기보다 선행해야할 질문이기도 하다. 19세기 말까지 라이프니츠주의가 일반적으로 수학적 전형처럼 해석되었다. 그런데 러셀(Russell, 1872-1970)과 꾸뛰라(Couturat, 1868-1914)는 독립적인 탐구들의 결과를 거의 동시에 출판했다.이것은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또는 스콜라철학처럼, 논리적 전형의 철학이 될 것이다. (199)
이런 이유에서 라이프니츠는 산술학과 대수학을 자치적인 [분과]학문들로서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보다 일반적인 과학의 “견본들”일 뿐이며, 오히려 보편과학, 즉 상징학(la Symbolisme, 기호논리학) 또는 특성학(la Carateristique, 성격학, 명제논리학)이다. 이런 과학으로부터 당시에 수학의 여러 부분들의 발전이 의존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리하여 산술학과 대수학에 비해 기하학의 느림(지체)은, 오직 기하학을 위해 구성되었고 그리고 기하학에 정확하게 알맞은, 상징적 표기법(une notation symbolique)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올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천재성은, 그가 장소 분석/위상수학(Analysis situs)이라 불렀던 것의 창조에 의해서, 이런 빈칸을 채우려고 노력하는데 있다. 다른 한편, 만일 미분계산(calcul différentiel, 미분학)의 발견이 “발명하는 기술”의 한계들을 후퇴시켰다면, 그것은 적어도 라이프니츠에게서는 이 미분 계산이 보편 특성학(la carateristique universelle)의 밑그림(구도)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고, 이 미분 계산이 미분화와 적분화 계산의 과정들 속에 포함되어 있는 용어들에게 적합한 알고리듬을 기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학은 논리학의 응용이다. 따라서 수학에서 철학으로 이행은 라이프니츠에게서는 하나의 방향이다. 이 둘 사이에 논리학이 끼여 있다. 논리학은, 정확한 알고리듬의 사용에 의해 또 조합(combinatoire)의 엄격한 체계에 의해 새롭게 되기 위하여, 그리고 지적 세계의 총체에 펼쳐지도록 허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기 위하여, 그래도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근본적 범주들 위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라이프니츠 과학과 라이프니츠 철학 사이에 연결(connexion)의 문제는 소요학파와 스콜라학파의 고민들(les préoccupations, 편견들)에 상응하는 용어들에서 설명될 것이다. 그 문제는 술어(prédicat)와 주어(sujet) 사이에 내속 하는 관계 주위를 돌 것이다. “필연적이거나 또는 우연적인, 보편적이거나 또는 개별적인, 항상 진실한 전칭긍정 명제에서, 술어의 용어는 주어의 용어에 어느 정도로 포함되어 있다. praedicatum inest subjecto (술어는 주어 속에 내속해 있다.) 또는 진리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200)
§118. [라이프니츠의 새로운 논리학의 계승, 러셀, 꾸뛰라, 페아노, 화이트헤드 등도 빠스깔과 라이프니츠에게 영향을 입었다.]
라이프니츠주의의 이런 해석은 원문들 속에서, 즉 아르노와 편지(Correspondance avec Arnauld, 1686-1690) 속에서 또 형이상학의 담론(Disours de Métaphysique, 1686)[1846년 발견, 발간] 속에서, 또는 우리가 방법적 출판에서 꾸뛰라에게 빚지고 있는 일련의 논문들에서, 견고하게 묶여있다는 것은 의심스럽지 않다. 한편 1686년 시기 주변에, 라이프니츠는 전통적 논리학의 내부에 남아있으면서, 그는 아르노 같은 권위 있는 사상가들을 실체들의 개별성에 관한 그리고 “예정 조화론”에 관한 자신의 경제적 관점들에 합류하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한편 그의 모든 경력을 통하여, 그는 도면들을 초벌로 그리기를 그치지 않았고, 이미 그의 첫 논문인 조합기술에 대하여(De Arte Combinatoria, 1666)[스물]의 목표 였던 아리스토텔레스 삼단논법의 확대를 위하여, 그리고 보편 특성학(la carateristique universelle)을 위하여, 건축물의 조각들을 구축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런 시도들의 고집과 다양성의 흔적들을 에르하르트와 꾸뒤라가 모았는데, 이런 시도들은 우리에게 효과있는 라이프니츠주의의 검토에서 이상적 라이프니츠주의의 권리들을 유보하기를 강요했다. 이상적 라이프니츠주의는 아마도 한정적 체계 안에서 실현하기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라이프니츠가 실재적으로 주장했던 주제들에게 그것의 그림자를 투영하기를 끊이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라이프니츠에게서 수학적 주지주의의 마지막 궁지를 설명해야 할 때, 무한소 분석이 확장하는 것 또는 보충하는 것의 효과로서 삼아야만 했던, 논리적 틀로부터 자신도 모르는 권위에 호소하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200)
[앞 문단에 이어서] 다음도 의심스럽지 않다. 이런 쓴 글들에 대한 고려는 라이프니츠 연구들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했다는 것이다.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그의 비판들의 중심으로 삼으면서, 라이프니츠주의의 진술에서 난점들 자체의 몇 가지를 도입하는 것은 아마도 러셀에 이르러서이다. 라이프니츠는 무한소 논리학의 발명에 의해서 이 난점들을 배제할 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모든 경우에서, 라이프니츠의 공간 개념작업이 이끌어낸 모순들을 모든 이의제기들의 바깥에다가 결정적으로 놓기에 성공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201)
다른 한편 꾸뛰라(1868-1914)가 그것을 제시했던 대로, 그는[러셀을] 라이프니츠의 논리적 묘사들로부터, [이론적] 구축의 이상적 도식[계획]을 스스로 되찾았는데, 어떤 불(1815–1864)같은 이 또는 어떤 그라스만(1809-1877)같은 이가 구축의 몇 가지 부분들을 세우기에 영광을 가졌고, 페아노(1858-1932) 같은 이와 화이트헤드(1861-1947) 같은 이와 더불어 체계적인 완성을 발견했다. 마치 한 동시대인이 다른 동시대인들에 관해서 실행했던 것처럼 20세기 초에 실행했던 것이 이리하여 라이프니츠에게 도달했으며, 그것은 빠스깔에게 도달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 추론적 학설에 반대하는 도움을 빠스깔에게 물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선천적 종합판단들에 대해 칸트의 이론을 반박할 것을 라이프니츠에게 물었다. (201)
§119. [라이프니츠는 잠재성과 증명성을 동일하게 놓음으로서 보편적 진리와 특이적 진리를 성립시키고, 충족이유율을 동일성 원리와 같이 다루었다. 브룅슈비끄는 충족이유율이 외교적 술수 같다고 한다.]
- 이런 점들이 일치되었다. - 그리고 이점들은, 마치 근본적 중요성을 라이프니쯔주의의 평가로서 취급하였듯이, 지성으로서 취급하였다. - 우리는 사실상 라이프니츠의 사유가 그의 과학적 발견들의 압박 하에서 굴절되지 않았는지를 자문해야만 한다. 아마도 그 자신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게다가 이런 대체작업의 최종 귀결들의 끝에까지 감히 완전히 밀고 나가지 않고서, 라이프니츠는 그의 질료의 요소들 안에 개념의 정확한 분할에 근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 대신에, 무한소 과학에 알맞은 방법을 대체하였다. 수학의 과정 전체로부터 역학, 심리학, 형이상학의 여러 문제들에 적용은 학설의 견고하고 직접적으로 풍부한 부분들을 구성했던 것으로 적절하게 나타난다. (201)
꾸뛰라가 라이프니츠주의에 대한 그의 해석을 요약하는 정식 자체를 이러한 관점에서 고려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 모든 진리는 형식적으로 또는 잠재적으로 동일하다(identique). 또는 마치 칸트가 말할 것처럼, 분석적(analytique)이다. 이런 귀결로서 [진리는] 정의들의 수단으로 그리고 동일성의 원리의 수단으로 선천적으로(a priori) 증명될 수 있어야 한다” - 그리고 러셀은 라이프니츠의 철학(philosophie de Leibniz)에 관한 그의 저술의 프랑스어 번역판 「전문」에서 이런 해석과 연결하였다. - 그러한 정식이, 그의 표현 자체에서 그 정식이 해결한다고 주장하는 난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잠재적(virtuel) 동일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따라서 사람들이 명제가 논리적 조작 작업의 유한한 수의 도움으로 을 증명할 수 있다고 이해했다면, 그러면 모든 진리들은 용어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의미에서 논리학으로부터 정당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고, 진리들은 칸트의 의미에서 분석적(analytiques)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잠재적인 것(le virtuel)은 형식적인 것(le formel) 안으로 되돌아간다. 이 두 단어는 잠재적으로(virtuellement) 불편함이 없이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런 제거는 라이프니츠의 사유를 배반한다. 형식성과 잠재성 사이에는 유한과 무한 사이의 거리가 있다. “필연성들의 분석은 본질들의 분석이다. 이런 분석은, 자연적으로 후천적인 것으로부터 자연적으로 선천적인 것으로(a natura posterioribus ad natura priora) 가면서, 초기 용어들에서 종료된다. 그리고 이처럼 수들은 단위들로 분해된다. 그러나 우연적인 것들 또는 현존들 안에서, 사람들은 분석을 원초적 요소들로 환원할 수 없음에도 자연적으로 후천적인 것으로부터 자연적으로 선천적인 것으로 이런 분석이 무한으로 간다.” 따라서 만일 사람들이 이런 항목들을 휘젖지 않기를 원한다면, 빠스깔이 어디선가 말하듯이 자기의 고유한 관념들을 오해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라이프니츠의 분석이 학파의 논리학에 정반대의 입장 취하기를 원한다면, 그 학파에서 “무한 퇴행”은 소피스트 증명의 전형일 것이다. 라이프니츠가 분석이라는 부르는 것은 분명하게 칸트의 용어법에서는 자연적으로 종합적 과정이다. (202)
의심할 바 없이 이유율은 보편적 증명성(la démonstrabilité universelle)의 원리이다. 그러나 이런 증명성(cette démonstrabilité)은, 보편적이고 영원한 진리들이 또는 특이한 진리들이 중요하다는 것에 따라서, 완전히 차이 있는 수용을 허용한다. 보편적 진리들의 증거는 명제의 유한한 수의 도움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특이한 진리들은 무한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보편적 진리들의] 경우에서 증명해야할 명제는 모순율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제 대신에 “동등가들로 대체의 방법”에 의해 귀착될 수 있다. 이 영역에서 라이프니츠의 눈에는 과학이 홉스도 이미 인정했던 분석의 형식을 입고 있다는 것에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이유율은 동일성의 원리와 서로 섞여 있다. 반대로 둘째[특이한 진리들의] 경우에서 이유율은 인간적 힘들을 넘어서는 탐구의 출발점이다. “Non datur progressus in infinitum in rationibus universalium seu aeternarum veritatum, datur tames in rationibus sigularium. Ideo singularia a mente creata perfecte explicari aut capi non possunt, quia infinitum involvunt.” - [보편적인 또는 영원한 진리의 이유를 찾아 올라갈 때, 그 이유는 무한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나 개별적인 것들의 이유는 무한 진행이 주어진다. 따라서 창조된 마음에 의해 개별적인 것들이 완벽하게 설명되거나 파악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무한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실이 원리로부터 연역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오직 신에 속한다. 단지 신만이 항목들의 무한성을 깨달을 수 있다. 그 항목들의 연결은 실재적인 것의 단위를 제기할 수 있게, 그리고 과학의 동질성을 재확립할 수 있게 해준다. 신은, “기하학자”인 것만큼이나 쉽게 “예언자”이다. (203)
라이프니츠에게서 “이유율은 순수하게 기원(l’origine)의 논리학인데, 형이상학과 신학의 성격을 치장(옷입고)하고 있다는 것을 꾸뛰라와 더불어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또는 적어도 사람들은 일종의 외교적 술책이라고 이렇게 번역할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그의 사유의 표현에서 이 술책에 도움을 청했다. “나의 중대한 원리들 중에 하나는 어떠한 것도 이유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철학적 원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토대에서, 내가 이것에 대해 처음에 말하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은 신적 지혜의 고백(l’aveu)과 다른 것이 아니다.” (203)
§120. [라이프니츠의 알고리듬(논리연산): 논리학의 폭을 확장하였다. 그렇다고 범논리학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은 (열역학, 파동역학, 전자기학 등의) 수학들(알고리듬)을 생성하게 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라이프니츠에게서 이유율은 동일성 원리와 아주 다른 범위에 있다. 전통적 논리학의 형식은 유한의 고려에 의해서 구성되었고 유한의 틀 속에서 조심스럽게 가두어져 있었다. 그 전통의 형식은 무한으로 펼쳐지게 되는 모순 없이 알 수 없다. 만일 모든 현실적인(actuel) 것이 유한하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생각했듯이, 무한은 잠재성(une virtualité)이다. 그러나 단어의 아주 부정적 의미에서, 그것은 실현하기에 무능을 의미한다. 무한의 잠재성이 실현작업의 무제한적 용량이 되기 위하여, 그것은 무한의 현실성(l’actualité)와 결합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신의 개입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신안에서 증명되기 때문에, 무한히 추구되어야만 용어들의 해결에 참여하게 되는 인간이 사물들의 자연 속에서 자신을 결정적으로 멈추게 해야만 하는 장애물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그리고 인간이 근본적이고 환원할 수 없는 비합리성에 조금도 부딪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에밀 부뜨루가 강력하게 그것을 말했듯이, “신은 무한소 계산의 일반화의 보증자이다.” (204)
사람들은 라이프니츠가 무한의 진행(progression de l’infini)으로부터 증명의 규칙과 진리의 기준(un criterium)을 끌어냈다고 믿었다고 이해한다. “Quod si … continuata resolutione praedicati et continuata resolutione subjecti nunquam quidem demonstrari possit coincidentia, sed ex continuata resolutione et inde nata progressine ejusque regula saltem appareat nunquam orituram contradictionem, propositio est possibilis. quod si appareat ex regula progressionis in resolvendo eo rem reduci, ut differentia inter ea quae conicidere debent, sit minus qualibet data, demonstratum erit propositionem esse veram” [그런데 만약… 술어에 대한 지속적인 분석과 주어에 대한 지속적인 분석을 통해 결코 일치점에 도달할 수 없다면, 그러나 지속적인 분석과 그로부터 생겨난 진행, 그리고 그 규칙에 의해 모순이 결코 발생하지 않음이 밝혀진다면, 그 명제는 가능하다. 만약 분석과정에서 진행 규칙을 통해, 일치해야 할 것들 사이의 차이가 주어진 그 어떤 양보다 작아지도록 사태가 귀결되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 명제는 참이라 증명된다.] 그러나 또한 사람들은, 그가 동등하게 인식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동일한 소논문(dans le même opuscule)에서 이런 규칙은 완성된(achevée) 증명작업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한다. “Petri norio[notio] est completa, adeoque infinita involvit, ideo nunquam perveniri potest ad perfectam demonstationem, attamen semper magis magisque acceditur, ut differentia sit minor quavis data.” [페트루의 개념은 완전하며, 그리하여 무한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결코 완벽한 증명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점점 더 가까워지므로, 그 차이는 주어진 어떤 것보다도 작아지게 된다.] (204)
따라서 우리는, 애매함이 없이 또 암시 없이 라이프니츠의 철학이 말하자면 범논리학(un panlogisme)이라고 말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술어와 주어의 관계가 완성된 증명작업의 요청들에 만족해야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실재적 논리학의 원리들은 또는 대수학에 의존하는 일반적 어떤 분석은”, 이에 대해 라이프니츠가 말브랑쉬에게 말했듯이, 우리에게 전통적 논리학으로부터 무한소 계산으로 귀착하게 한다. 게다가 선택지의 둘째 항목은 라이프니츠의 철학적 야망을 이전에 만족시켰다는 것, 또 마치 데카르트가 그의 기하학에서처럼 라이프니츠가 그의 방법 중에 가장 설득력 있는 “견본들(les échantillons)”만을 보았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수학이 개별적 경우의 자격으로 되돌아가는 보편 논리학의 체계를 그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 번 더 말하자면, 그러한 것은 라이프니츠에 의해 라이프니츠주의의 꿈이 지칠 줄 모르는 상상작용의 구름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꿈꾸었던 것에 관련 있다. 그리고 두 세기 동안에 사람들이 생산성 없다고 믿을 수 있었던 것에 관련 있다. 라이프니츠주의 역사적 토대는, 성격학(la caractéritique)이 무매개적으로 잠재성과 풍부성[생산성]을 표명하기에 성공했던 거기에서, 말하자면 미분/차이 알고리듬(Algorithme differentiel)의 정립에서, 탐구되어야만 한다. 파리 여행의 앞선 시기에 라이프니츠 사유를 활기 있게 했던 모든 미분소의 직관들은, (카발리에리와 홉스에게 빌려온 직관들 인데, 전자는 순수 수학의 지평 위에 있고 후자는 역학 철악의 지평 위에 있으며, 이 직관들은 갈릴레이의 의해 던져진 배아들을 발전시켰던 것들이다.) 라이프니츠에 의해 발견된 알고리듬으로부터 그들의 충만한 지적인 명석함을 받아들였다. 반면에 레이븐훅(Leeuwenhoek, 1632-1723)의 현미경 작업의 발견물들은 그들에게 경험적 확인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새로운 수학 주변에서, 카시러(Cassirer, 1874-1945)가 보았던 한 작품에서 그것을 보았던 것처럼, 라이프니츠 철학의 체계가 조직화되어 갈 것이다. 이런 작품에 대해 우리가 보기에, 럿셀과 꾸뛰라가 그것의 근본적 정확성과 깊이(심층) 잘못하여 이의를 제기 한 것과 같다. 라이프니츠가 쓰기를, “나의 형이상학은 전적으로 수학적이다. 말하자면 수학을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205)
2절, 대수학과 분석학 L’algèbre et l’analyse 205
§121. [라이프니츠의 무한소 분석학(미적분학): 수학 연산의 제한된 영역에서 무제한 영역으로 확장, 연산계산(알고리듬)을 통한 역동적 세계를 열다.]
과학적인 초기 논문들 중의 하나인 「단리 할인에 관한 법적-수학적 고찰(Meditatio juridico-mathematica de interusurio simplice, 1683)」에서, 라이프니츠는 매우 단순한 예를 들어, 무한소 논리학에 지지를 받는 과학의 독창적 개념작업을 지적한다. (205)
가정해보자, 내가 몇 날 지나서 예를 들어 한 해 지나서, 여기에서 단위로서 취급 될돈의 총합[액수]을 계산해야 만 한다고 해보자. 나의 채권자는 나에게 액수 무매개적으로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 권리는 그가 액수 전체를 받지 않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만일 그 돈이 나의 손 안에 그대로 있었다면, 일 년 동안에 그 돈이 생산하였을 이자를 공제해야 한다. 어떻게 공제액(cette défalcation), 즉 할인(ce rabat, 할인액)을 계산할 것인가? 나의 첫 운동[계산]은, 내가 지불해야하는 한 해의 총액에 대한 이자를 나누는 것이리라. 나는 1/v, 1-1/v 또는 v-1/v 등의 비율로 지불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계산을 나에게 맡긴다면, 나는 나의 채권자에게 잘못을 행하는 것이리라. 왜냐하면 나는 돈의 총액으로부터, 일 년에 걸린 빚진 액수와 같은 이자를 잘라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나는 그 총액이 현실적으로 빚딘 합산만을 계산해야 한다. 두 액수들의 차이는 한 해 동안에 이자의 상승 속에 있다. 따라서 내가 채권자의 계산에 이자의 상승분의 이자를, 즉 1/v x 1/v를 고려하면서 균형을 재확립해야 한다. 만일 거기서 내가 계산 작업을 멈추었다면, 나는 새로이 오류를 범했을 것이다. 일단 나의 결점에 속하는데, 왜냐하면 이자의 이자는 또한 일 년 안에 갚아야 할 총액에 관해 계산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나의 이윤(profit)에서, 일 년의 과정 동안에 돈의 이자에 귀속하는 부분을, 즉 (1/v)2 x 1/v을 할인해야만(rabatte) 한다. 게다가 이 둘째 할인에는 동일한 순서의 추론이 적용될 것이다. 둘째 할인은 채권자의 이윤에 둘째 초과징수환불(ristourne)을 발생할 것이고, 둘째 초과징수환불은 나의 덕분에 새로운 할인을 발생할 것이며, 이렇게 무한히 계속될 것이다. 내가 지불해야할 합산은 무한 계열에 의해 정확하게 표현될 것이다.
1 – 1/v + 1/v2 - 1/v3 + 1/v4 – 1/v5 etc.
아마도 이 계열의 합이 규정되면, 그 합은 또는 적확하게 된다. 그 합은 분수, 즉 v/v+1에 동등하다. 왜냐하면 v+1에 의한 계열의 곱셈계산이 하나의 항목만, 즉 v만을 존속하게 한다는 것을 보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무한의 분석(l’analyse de l’infini)에 의해 해결된다. (206)
그러나 이런 긴 증명작업의 끝에서, 우리는 단지 대수학이 우리에게 가장 단순하고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x의 값을 거의 무매개적으로 얻기 위하여 문제의 방정식을, 즉 x + x/v = 1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는가? 그 방정식은 vx + x = v와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 그런데 이것은 x = v/v+1를 제공한다. (206)
이 두 방법의 기술적 대조는 라이프니츠를 다음처럼 옮겨가게 한 판단의 이익[관심]을 강조 한다: “둘째 [방정식]이 첫째 보다 더 쉬운 경우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첫째가 큰 범위를 가졌다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첫째는 주목할 만한 분석의 예를 제공하기 때문이고 또 그 점에서 대수학과 다른 분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수학은 …알려지지 않은 양을 알려진 양처럼 생각하고, 그리고 이로부터 출발하여, 알려지지 않은 양[미지양]을 알려진 양들[기지양들]과 동등하도록 하고, 그리고 그것의 가치를 찾도록 한다. 반대로 분석은 알려진 양들의 도움으로 오로지 진행하면서, 직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을 얻는다. 라이프니츠는 덧붙이기를, 이것이 중요한 사용법이다. 대수학에 의해 알려지지 않는 것의 추론적 가치를 얻는 것이 불가능할 때,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방법 덕분에 , 무한한 계열을 개입하게 하면서, 거기[추론적 가치]에 도달할 수 있다.” (207)
이런 한 반성들은 라이프니츠 수학주의와 데카르트 수학주의의 차이를 뚜렷하게 돋보이게 하는 데 이미 충분했다. 데카르트에게서, 이유(la raison, 이법)는 명증성과 단순성의 토대 위에 근거한다. 그 철학자[라이프니츠]는 무엇이 절대적으로 그 자체로 명석한지를, 또 무엇이 단순성의 최대값을 드러내 보이는지를, 정의한다. 그는 알 수 있는 관계의 전형을, 즉 공간의 차원들과 유비적인 차원들의 척도, 또는 대수 방정식의 변환을 제시한다. 그는 알 수 있는 관계들의 조합에 의해 과학을 구성한다. 관계들의 틀들 속에 들어가지 않는 문제들은 인간적 이유[이법]의 파악들을 회피한다. 사람들이 이를 알고 있었듯이, 데카르트는 이것들[문제들]을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고 믿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한 개념작업은 고대의 독단주의를 상기하게 한다. 이리하여 퓌타고라스의 사색은, 비합리적인 것들의 발견물들로부터 생겨나는 역설들과 모순들에 부딪힐 위험에도 불구하고, 보편 이법(la raison)을 소위 말하는 산술학적 사유(la pensée)와 동일한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이처럼 프톨레마이오스(후85경-165경)의 고전적 체계와 더불어, 헬레니즘의 천문학은 모든 천체 운동은 필연적으로 원운동이라는 원리로부터, [항성들의] 작은 원들(les cycles)과 [5행성의] 주전원들(周轉圓, les épicycle)을 걸터앉아서 상실되는데 까지 진행하였다. (207)
여러 학문들로부터 낭패로 끌고 갔던 그리고 범위를 한정했던 당혹감들은 독단적 편견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우주에 대한 수학적 지성을 위한 최상의 방법은 기본적인 몇몇 경우에서 가장 쉬운 적용법을 소개하는 방법이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용이함 자체가 자연적으로 그 철학자를[철학자 입장을] 매료하기에, 실재성이 제기하기에는 모자랄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의 앞에서 그 과학자를[과학자 입장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단순한 것의 적용에서 복잡성을, “거대한 미묘함”을, 실재적인 것의 성격을, 이미 분간해 낼 줄 아는 것이 그 방법이다. 원리들은 거기서 규정되고 닫힌 형식들이, 즉 과학적 체계의 결정체화 작업(la critalisation)을 조작하도록 운명 지워진 형식들이, 더 이상 아니다. 그것들은 행동의 동기들이며, 실증적 지식의 무제한적 확장을 위한 무기들이다. 마치 그리스인들처럼, 데카르트는 유한의 영역 안에서 움직였다. 그런데 라이프니츠는 유한의 일반화 속에 무한을 개입시켰다. 무한의 과학은 유한의 양을 발견하는데 쓰인다. “Itaque Mathesis universalis pars superior nihil aliud est quam Scientia infiniti, quatenus ad inveniendas finitas quantitates prodest.” - [이리하여 보편수학의 상위 부분은 유한한 양을 발견하는 데 유용한 한에서, 무한 과학과 다른 것이 전혀 아니다.]
3절, 지적인 역동론 Le dynamisme intellectuel 208
§122. [라이프니츠의 새로운 미분소 계산, 페르마의 어림값 계산을 실재적이고 구체적 단위로 인정한 것이다. - 라이프니츠의 주지주의: 의식의 자발성으로 영역의 확장.]
따라서 보편적 설명은, 마치 우리가 생각해야 했던 증가하는 항들을 지닌 대안계열처럼, 수렴하는 무한 계열들을 구성하는 역동적 과정에 근거한다.
1- 1/v + 1/v2 – 1/v3 + … v > 1
또는 라이프니츠가 선호한 예이기도 한 가장 단순한 예를 다루기 위하여, 계열은
1/2 + 1/4 + 1/8 + 1/16 + … etc.
차이는
1- (1/2 + 1/4 + 1/8 + 1/16 + …)
주어진 모든 양보다 보다 작은 양이다. 그럼에도 전현 없는 것이 아니다. 이 차이는 이렇게 제기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인데,
1= 1/2 + 1/4 + 1/8 + 1/16 + …
즉 데카르트학파들의 정태적 동등성 대신에 역동적 동등성을 대체하는 조건에서만 오로지 제기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역동적 동등성이란 페르마가 그것을 근사치동등성(l’adégalité)의 이름은 생각했단 것이다. “동등성은 마치 무한히 작은 비동등성처럼 고려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비동등성을 동등성에 접근하게 할 수 있다.” (208)
이렇게 우리는 지성의 운동에 의해 차이(une différence)를 생각하는 데로 인도되었다. 그런데 그 차이는 단어의 산술학의 의미에서 나누기[나눗셈]로부터 결과하지 않으며, 밀오(Milhaud, 1858-1918)의 행복한 표현에 따르면, 그 차이는 “모든 생성의 무한소 찰나에” 상응한다. 미분적인 것(la différentelle)에게 그[밀오]는 호적(un état civil, 신분증명)에 제공된 첫째 자료로 삼았다고 자화자찬하는데, 라이프니츠의 천재성은, 우리가 그것을 제시했듯이, 미분적인 것(la différentelle)으로부터 새로운 과학의 토대를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 새로운 과학에서 총합(la sommation, 합산)은 소위 말하는 더하기 없이 실행되며, 그것은 대수학과 더불어 추상작업과 일반화 [과정]에 경쟁한다. “무한소 계산, 또는 차이들과 합들의 계산은 자신과 더불어 자기 증명을 지닌다(운반한다).” 그 계산은 자기에게 특별한 원리를, 그리고 자기의 합법성을 정당화하도록 운명 지워진 원리를 요청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계산]이 가정하는 것은, 정확하게 지성이 마치 무제한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에 예외적으로 대립시키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사람들이 사라짐이라는 특별한 경우를 일반적 규칙으로 귀착하게하기 때문이다. “ut casus specialis rei evanescentis contineatur sub regula generali” [소멸하는 사물의 특수한 경우일지라도, 일반적인 수학적 규칙 안에 포함된다.] (209)
게다가 원리들의 형식 하에서 지적 역동론의 개념작업을 발언하는 것이 라이프니츠에 이르럴 것이다. 일반적인 질서의 원리(le principe de l‘ordre général)에게 - datis ordinatis etiam quaesita sunt ordinata [주어진 데이터들이 질서정연하면, 그로부터 구해지는 것(결과)들도 질서정연하다.] - 연속성의 원리(le principe de continuité)가 의존한다. “두 경우의 차이가 자료들에서(in datis) 주어진 크기 전체 아래에서, 즉 제기 된 것에서도, 축소될 수 있을 때, 그 차이는 결과들로서(in quaesitis, 탐구에서) 주어진 크기 전체 아래에서, 즉 이로부터 결과로 나온 모든 것에서도 또한 축소되어 발견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적 분석의 방법들 바깥으로부터 주장되어야 하는 지지기반의 일종을 이런 정식들 안에서 찾지 않는 것이 좋다. 그들의 관청(leur office, 분석 방법들의 등록처)은 사유의 법칙의 자격으로 자발적 팽창(l’expansion spontanée) 을 등록한다는 것이며, 그 팽창의 표명이 무한소 분석인 셈이다. 연속성 원리는 “무한으로부터 그것의 기원을 갖는다.” 라이프니츠에게서 궁극적 실재성은, 마치 정돈된 발전의 무제한 진보처럼 생각된 이법(la raison, 이유)이다. 그리고 이런 개념작업과 더불어, 주지주의는 주의주의 그 차체에 대해 의식하는 것으로 완성한다. (209)
§123.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차이: 제한의 무한(신의 무한), 무제한의 무한(자연의 무한).]
데카르트는, 지성의 통일성과 그것의 운동의 연속성이 완전한 과학의 조건들이라는 것을 원리로서 제시했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명석 판명한 관념들로 규정된 전형에게, 즉 신에 의해 자유롭게 창조된 본질들로 규정된 전형에게 이 원리를 적용했었다. 이 원리는 시작부터 외부 경계표를 지성의 진보에게 부과했다. 스피노자는 우주의 인식에서 차원들을 구별하면서, 그 차원들에는 인식할 대상에 대한 평행하는 변환이 상응하는데, 또한 이 차원들을 전체의 정신적 통일화 작업에로 인도하는 내부 진보에 의해 연결하면서, 스피노자는 지성을 상대성으로부터 해방시켰으며, 그런데 데카르트에게서 상대성은 지성을 강타했었다. 스피노자는 지성에게 무한한 팽창의 권능을 보장했다. 그러나 그는 제한된 지성 속에서 무한한 신의 내재성을 표출하기에 알맞은, 과학적이고 정확한, 형식 하에서 이런 권능을 실현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것에는 라이프니츠가 도달하는데, 무한소 분석의 발견 덕분이며, 더 정확하게는 주지주의화(l’intellectualisation) 덕분이다. (210)
그러면 근대의 주지주의가 역사적이고 진지하게 그의 형식 하에서 구성되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 사실은 무차별적(indifférent)이 아닐 것이고, 그 때는 우리가 주지주의와 실용주의 사이에 오늘날 열려진 토론의 객관적인 기호화작업을 규정하려고 시도하려할 때이다. 라이프니츠 경멸(le mépris)에 반대하여 강한 말투로 말한다. 그 경멸에서, 18세기 초는, 20세기 초와 닮았는데, 이법(la raison, 이유)을 유지하는 체 했다. “오늘날 대중들이 있다. 이들은 이법에 반대하여 주장하는 것이 또한 이법을 현학적인 거북함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름다운 정신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런 것을 환영하는 것 이외 아무것도 아닌 작은 책자들을, 담론들을 본다. 심지어, 나는 매우 거짓인 사유에도 사용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싯구들을 가끔 본다. 이런 이유에서 만일 이법을 조롱하는 자들이 진실로 말한다면, 그것은 과거 수세기동안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종으로 나온 괴물(une extravagance, 광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법(la raison, 이유)에 반대해서 말하는 것, 그것은 진리에 반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법은 진리들의 연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자체에 반대하여, 즉 자기의 선(善)에 반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법의 중요점은 이법을 인식하는 것에 있으며, 이법을 따라가는데 있다.” 이런 논평의 범위를 만들게 하는 것, - 그리고 르누비에의 결단(l’accident Renouvier, 1815-1903)이 다음 차례로 윌리엄 제임스의 결단(l’accident William James, 1842-1910)을 요구하며, 우리의 동시대인들로부터 너무 과도하여 관점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인데, - 이것이 라이프니츠의 원리이다. 이법은 무한과 알려진 것의 기원이라는 것이며, 체계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의 적용이다. 그 체계는 원리의 풍부성을 “실용적으로” 증거 한다. 또한 이것은 사유의 도약인데, 그 도약은, 새로운 수학의 논리학에서 빌려온 주도적인 주제의 유일한 확장만으로, 너비를 향한 사변의 철학자를 신을 향한 사변으로 인도하다. “바탕[심층, 토대]은 도처에서 동일자(le même, 동일한 것), 즉 나에게서는 기초적인 최대치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철학 전체 속에서 지배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진 사물들의 방식으로부터만, 알려지지 않는 사물들 또는 혼동되어 알려진 사물들을 생각한다. 철학을 다분히 쉽게 하는 것, 이것을 그렇게 사용해야 한다고 나도 역시 믿는다. 그러나 만일 이런 철학이 그 바탕에서 가장 단순하다면, 또한 이 철학(la philosophie)은 방식들에서도 가장 풍부하다. 왜냐하면 자연(la nature)이 여러 방식들을 무한히 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자연 스스로 모습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만큼, 풍부하고 질서 있는 많은 장식들을 가지고, 또한 자연이 그것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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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전580-495, 85 an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모스섬 출생,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티온(Métaponte, Μεταπόντιον)에서 세상을 떴다. - 메템프쉬코시스(métempsychose, μετεμψύχωσις) 영혼의 이동, 이전, 윤회 사상을 가졌다.
428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전428-348) 고대 그리스 철학자.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전384-322), 그리스 철학자. 논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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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프톨레마이오스(Claude Ptolémée, Κλαύδιος Πτολεμαῖος, Klaudios Ptolemaeos, 후85경-165경), 알렉산드리아 천문학자. 알마게스트(Almageste) - 오관을 통한 상식을 믿음으로 환원하여 절대신앙에 빠지면, 여성철학 히파티아(Ὑπατία, 355-415)를 희생물로 만든다.
1564 갈릴레이(Galilée, it. Galileo Galilei, 1564-1642) 피사(Pisa)에서 태어나, 피렌쩨의 아르세트리(Arcetri)동네에서 세상을 떴다. 이탈리아 수학자, 기하학자, 천문학자.
1588 홉스(Hobbes, 1588–1679), 영국 철학자, 대법관. 라이프니츠가 홉스의 “추론은 기호 계산”이라는 견해를 수용했다. 라이프니츠가 홉스에게 1670년에 두차례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데 홉스의 답장이 없었다고 한다.
1596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598 카발리에리(Bonaventura Francesco Cavalieri, lat. Cavalerius, 1598-1647) 수학자, 기하학자, 천문학자, 피사와 볼로냐 대학 교수. 갈릴레이의 제자이자 서신교환으로 학문적 동료. 제수아트파(Les Jésuates, ou Pauvres Jésuates) 수도사였다.
1601?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0?-1665), 프랑스 사법관, 수학자. 별명 E.T. Bell « le prince des amateurs ». - Isagoge ad locos planos et solidos("Pour les lieux plans et solides"). (평면과 고체의 장소에 관한 입문)
1612 아르노(Antoine Arnauld, 1612-1694), 프랑스 철학자, 논리학자.
1623 빠스칼(Blaise Pascal, 1623-1662), 프랑스 박학다식(un polymathe),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철학자, 도덕론자, 신학자. [파스칼의 가명: Louis de Montalte, Amos Dettonville, Salomon de Tultie.]
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마흔다섯], 세파라드 유대인 공동체에서 온 포르투갈 출신 네델란드 철학자.
1632 레이븐훅(Antoni(e) van Leeuwenhoek, 1632-1723), 네델란드 상인, 과학자. 현미경을 개선하고 세포생물학과 미생물학의 선구자였다. 현미경 발견이 미분계산에 영향.
1638 말브랑쉬(Nicolas Malebranche, 1638-1715)(루이 14세와 같은 해 태어나고 뜨다), 프랑스 신학자, 오라트와르 신부, 철학자. Entretien d'un philosophe chrétien et d'un philosophe chinois sur l'existence et la nature de Dieu (1708)
1642 뉴턴(Isaac Newton, 1642–1727) 영국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구화학자, 천문학자, 신학자.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들(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 Principes mathématiques de la philosophie naturelle »), 보편 산술학(Arithmetica universalis, 1707)(여러 수학적 개념들의 표기법들),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647 벨(Pierre Bayle, 1647–1706), 프랑스 철학자, 작가, 사전편찬자.
1650 파르델라(Michelangelo Fardella, 1650–1718), 시실리아 과학자, 합리주의 사상가. 데카르트와 말브랑쉬에게 영감을 받았다.
1651 치른하우스(Ehrenfried Walther von Tschirnhaus (or Tschirnhauß, 1651–1708) 독일 수학자, 물리학자, 의사, 철학자. 여행 중 스피노자를 만났다(1672-3?), 라이프니츠와 편지교환.
1661 로피탈(Guillaume François Antoine de L'Hôpital, 1661-1704), 프랑스 수학자, 귀족, 라이프니츠가 1684년에 발명한 미분계산을 그는 1696년에 발표.
1667 베르누이(Jean Bernoulli, Johann Bernoulli, 1667-1748), 스위스 수학자, 물리학자.
1668 보세스(Barthélemy Des Bosses, Bartholomäus des Bosses 1668–1738)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벨기에 제수이트. 라이프니츠 말년에 편지교환
1678 브르게(Louis Bourguet, 1678-1742) 스위스 뇌샤틀, 지리학자, 박물학자, 수학자, 철학자, 고고학자. [라이프니츠의 말년에 편지교환]
1711 흄(David Hume, 1711-1776),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가.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계몽기(Aufklärung) 철학자.
1772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1837), 브장송 출신, 프랑스 철학자. 협회학파(École sociétaire) 창립자. Traité de l'association domestique-agricole, 1822(2권): 1822년에 산업연합이론(théorie d’Association industrielle)을 제시. 푸리에의 산업에서 연합이 관념의 연합과 같은 의미로 썼다고 한다. - [프루동(Proudhon, 1809-1865)는 푸리에의 노동자 연합을, 공산 공동체로, 즉 노동자국제연합(Association internationale des travailleurs)을 만들려했다. 맑스와 바쿠닌은 제1인터네셔날을 성립시킨다.]
1809 그라스만(Hermann Günther Grassmann, 1809-1877) 프러시아 수학자, 인도학 전문가. 수학자들 작품 편집자(Niels Abel, Évariste Galois, Georg Cantor).
1815 불(George Boole, 1815–1864) 영국 독학으로 수학자, 철학자, 논리학자.
1815 르누비에(Charles Renouvier, 1815-1903)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 작품이 있다.
1826 푸세 드 까레이(Louis-Alexandre Foucher de Careil, 1826-1891), 프랑스 작가, 외교관, 정치가. Réfutation inédite de Spinoza par Leibniz, Paris, 1854. Nouvelles lettres et opuscules inédits de Leibniz, précédés d'une introduction, Paris, 1857.
1827 보데만(Eduard Bodemann, 1827-1906), 독일 교육자, 사서, 역사가, 편집자.
1842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미국 심리학자, 철학자.
1845 부트루(Émile Boutroux, 1845-1921)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가. Les Nouveaux Essais, de Leibnitz, 1886
1856 안깽(Arthur Hannequin, 1856-1905) 프랑스 철학자. 1882년 교수자격1등. 시작은 심리학을 했는데, 과학사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Introduction à l'étude de la psychologie, Paris, G. Masson, 1890, 138 p. Essai critique sur l'hypothèse des atomes dans la science contemporaine, 1908.
1858 페아노(Giuseppe Peano, 1858-1932), 이탈리아 수학자, 언어학자. Formulaire de mathématiques, 1895(참여자: Giovanni Vailati (en), Mario Pieri, Alessandro Padoa, Giovanni Vacca, Gino Fano, Cesare Burali-Forti, etc)
1858 밀오(Samuel Milhaud, Gaston Milhaud, 1858-1918), 프랑스 철학자, 과학사가. 수학자. Leçons sur les origines de la science grecque, 1893. Les philosophes géomètres de la Grèce. Platon et ses prédécesseurs, 1900[Vrin, 1934.]
1861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 영국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avec Russell, Principia Mathematica, 1910.
1868 꾸뛰라(Louis Couturat, 1868-1914) 프랑스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La Logique de Leibniz : d'après des documents inédits, Paris, Félix Alcan, 1901
1872 러셀(Russell, 1872-1970), 영국 논리학자, 수학자. avec Whitehead(1861-1947)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 1910-1913, 3권) .
1874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 스웨덴 출신 유태계 독일 철학자, 나토릅, 코헨과 같은 마르부르크학파. Das Erkenntnisproblem in der Philosophie und Wissenschaft der neueren Zeit, 2권, 1906, 1907.
1884 쟝 레(Jean Joseph Ray, 1884-1943), ENS 철학으로 교수자격, 프랑스 법률가, 철학자, 사회학자, 외교관. 뒤르껭 학파. 도교제국대학에서 법학교수, 일본정부 자문위원. 일본에서 프랑마송협회 창설. 일본황세자 히로히토 프랑스어 가정교사. 라이프니츠 연구경력이 보이지 않는다. 영국의 밀에 대한 단행본이 있다. / 르네 레(Renée-J. Ray, ?-?) 여성연구자? [레의 부인? - 그녀의 번역에 쟝 레가 참여했을까?]
(옮 3:19, 59OKH) (18:36, 59OLE) (18:41, 59OLF) (16:12, 59PK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