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을 든 여인]
Claude Monet, 1840.11.14~1926.12.5
이 그림은 가난과 역경을 오로지 행복과 빛과 꽃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며 19세기를 살았던 모네의 걸작입니다. 인상파의 아버지로 추앙 받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모네는 세파를 겪어야 했지요.이 그림에 그려진 주인공은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입니다. 1865년에 카미유와 결혼하여 2년 뒤에 아들 장을 낳게 되는데, 이 당시 모델의 사회적 지위는 하급으로 취급됐기 때문에 모네의 부모는 카미유가 모델이라는 이유로 경제적 지원을 끊었고 둘째 아들 미셸이 태어나서야 결혼을 인정 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갖게 될 트라우마는 저 그림자 속에 있겠지만 불타는 정열과 사랑은 모네의 화폭에서 살아 숨 쉬고 있지요. 모네는 오늘보다 더 젊고 아름다운 것은 없으리라 생각하여, 이 순간의 카미유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했을 것 같습니다. 전체 화면은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질 듯 붓 자국의 흐름은 막힘이 없으며 경쾌하면서 속도감이 있는 붓 자국은 바람이 스치고 있는 하얀 스커트를 더욱 팔랑거리게 합니다. 원색의 파란 하늘은 빛이 구름을 통과하여 눈부시게 빛나고 사진으로 표현하면 역광의 인물이 서 있는 것이고, 얼굴에도 감미로운 바람이 스치고 붓으로 길게 얼굴을 감싸고 하얀 물감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노랑꽃도 언덕 위에서 하늘거리고 구름은 조각조각 흩어지면서 양산아래 모여 순간의 아름다운 행복이 표현된 것 같습니다.
그림자 진 얼굴과 옷이 하얀 것은 정말 귀하고 아름답게 꾸미어 아내의 모습을 행복하게 하려는 그의 속마음을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카미유는 후에 모네의 둘째 부인이 될 알리스라는 에르네스 오슈데의 부인과도 함께 살면서 알리스의 자식과 시골별장을 빌려 살게 되었고 가난하기 때문에 외출 할 때도 옷을 언니 동생처럼 함께 입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카미유는 알리스의 간병을 받고 힘겹게 살기도 했고, 여섯 명의 오슈데 자식을 차별 없이 키우기도 했지만 그런 이상한 동거에 어느 날 카미유는 증류주를 먹고 의식불명에 빠지기도 했으며 끝내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36세의 모네가 아내인 카미유의 임종 당시 모습을 그린 ‘죽음을 맞이한 카미유’도 유명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후 모네는 알리스와 결혼하고 포플러 나무와 노적가리 연작이 호평 받으며 가세도 조금씩 나아졌고 일본식 정원에 갖은 꽃도 심으며 수련 ‘연작’을 남깁니다. 그리고 둘째 부인 알리스도 모델을 삼아 '양산을 든 여인'을 또 한번 그리게 되는데, 두 그림을 비교해 보면 보는 사람에 따라 모네가 더 사랑한 여인이 누구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인과 아들을 그리는 그 순간의 모네는 세상의 모든 사랑스러운 것들을 보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했었겠지요. 화가의 창작인생은 고난이었을지 모르나 세기에 남는 달콤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빛의 화가 모네가 남긴 달콤한 행복을 보면서, 모두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의 행복을 다시 한 번 잘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