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과 연인과 시인
상상이란 우리의 사고를 일상의 논리나 개념만으로 완성하지 않고 그러한 논리 체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경험하고 감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상의 세계는 일상의 세계와 함께 또 다른 세계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며 그것은 정상적인 사고를 벗어나는 어쩌면 광인과 연인과 유사한 세계인지도 모른다.
광인과 연인과 시인은
똑같이 상상으로 가득하나니,
광인은 넓은 지옥을 채우고도 넘칠
마귀들을 눈으로 보고
마찬가지로 사랑에 들뜬 연인은
집시의 낯짝에서 헬렌의 아리따움을 보며,
시인의 눈은 예민한 황홀속에 구르며
하늘에서 땅으로 땅세서 하늘로 시선을 옮긴다.
미지의 사물의 형상을 상상이 구현하면
시인의 붓은 그들에게 모습을 부여하여
존재하지도 않은 것에다 있을 집과 이름을 준다.
-세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에서
이처럼 세익스피어가 말한 시인의 상상력에 대한 노래는 결국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시인의 독특한 시력과 상상적 창조성을 지적한 것이지만 참으로 시가 산문과 달리 시다운 특징을 지니는 것은 바로 사물을 단순히 일상적인 감정이나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것을 일단 사물과 동일시하거나 또 다른 사물을 마음속에 그리는, 즉 이미지를 통하여 비상하게 사고하는 것이다.
상상적 언어의 기본적인 자세는 나와 사물간의 이질성의 추구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서로가 분리되고 이질적이라는 데 결핍과 불안과 소외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심리적 결핍을 벗어나고자 사물을 동일시하고 자기화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나와 세계에 대한 이질감에서 오는 고독을 극복하기 위하여 고대인들은 자연계를 인간과 같은 생명력이 있고 영혼이 있는 인격체로 생각하고는 그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고 호소도 하는 의인화의 수법을 사용하거나 아녜 신으로 추앙하여 섬기는 신화를 만들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인간들이 처음엔 자연을 인격화하고 다음에는 심령화(be see lung)하였고 마침내는 신격화하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에서
산을 의인화하고 다정한 친구처럼 감정을 이입하여 대화하고 그의 교훈을 경청하는 경지라면 세상은 결코 외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상상적 시어의 실천은 이처럼 의인화의 기법에서 시작되었다.
비유적인 언어
이처럼 의인화가 사람이 아닌 사물들을 인격화하여 나와 사물간의 동일시를 통한 친화를 시도하는 것이라면, 사랑, 슬픔, 기쁨 같은 정서적인 감정들을 불꽃이나 낙엽이나 장미 등으로 동일시하거나 죽음, 조국, 민주주의 등 철학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 사상적인 개념들을 까마귀, 무궁화, 깃발 등으로 동일시하거나 길을 넥타이, 종소리를 분수로 표현하는 등 사물을 또 다른 사물과 동일시하는 경우도 가능하며 이러한 상상적 어법을 일반적으로 비유법이라 한다. 비유적 어법에서는 사상, 감정, 사물 등 미묘하고 난해한 세계를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낯익은 사물들로 대신하여 사물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거나, 새롭게 하거나, 정서를 신선하게 하는데 이러한 언어가 바로 상상적 언어이다.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박두진 「꽃」
인용한 시는 꽃이라는 사물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꽃에 대한 객관적 진술을 하지 않았다. 만일 꽃에 대한 객관적 진술을 했다면 꽃의 이름, 종류, 색깔, 냄새, 상태 등에 관한 내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언어가 사전적이고 표준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이를 우리는 축어적(縮語的) 언어(literal language)라고 한다. 위에 인용한 시를 축어적으로 해석한다면 결코 꽃에 대한 표현이 될 수 없다. 꽃을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아픔 피 흘림’으로 보는 것은 객관적인 꽃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애써 꽃과의 동일성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꽃의 일상적인 의미를 속삭임, 울음, 피 흘림 등으로 전이하며 의미를 확대하는 것이다.
소재 | 의미 | 비유 |
꽃 | 신비성 개화 붉은빛 |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아픈 피 흘림 |
*홍문표 저 [시창작원리]에서
첫댓글
강의 요청이 오면 이런 내용을 정리하면서 또 스승을 떠올리게 된다.
1939년 生이시니 올해로 여든 다섯이시다. 그런데도 인터넷에서 필생의 업인양 강의에 열중이시다.
매년 초가을이면 고향 부여에서 세미나를 여신다. 공주 부여 등지는 물론 경향 각지에 흩어진 후학들이
이날만큼은 모여서 노스승의 강연을 듣는 게 보람이다. 이런 어른의 시 창작 이론을 가감 없이 모아서
강의에 사용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 자국을 여러분과 공유하는 것이니 여러분께서도 福 받으신 게
아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