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이야기
박 완 규
며칠 전 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한 건강검진 결과를 통보 받았다. 2년 전 검사 때 보다 콜레스토롤 수치가 훨씬 높게 나왔다. 혈관이 노화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의사의 말로 음식관리와 체중관리와 운동을 권장했다. 그동안 음식을 가리지 않고 많이 먹었고, 국궁취미생활에 푹 빠져 체중관리를 위한 다른 운동을 소홀한 결과인 것 같다. 국궁은 아무래도 정적인 운동이라 운동량이 적었나 보다.
오늘은 활시위를 마치고 마음 다잡고 궁도장 인근에 위치한 황성공원에 걷기운동에 나섰다. 소나무숲속에 걷기코스를 잘 만들어놓아 몇 시간이라도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어 내게는 축복과도 같은 장소다. 공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청소도하고 자연보호활동도 하며 공원을 아낀다.
아침시간에는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 나와 걷기운동을 하는데 오늘은 금상첨화, 내 앞에 세 명의 젊은 여성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몸매가 날씬한 예쁜 처녀들이다. 나이 이순이 넘어도 예쁜 여자들을 보면 관심이 간다. 나는 미인들과 좀 더 가까이 가기위해 걸음속도를 냈다. 그들은 연신 재잘 되며 걸었다.
무슨 할 이야기가 저리 많을까? 마치 무릉도원과도 같은 황성공원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을 예찬하는 것일까? 아니면 황성공원 숲속의 텃새노릇 하는 후투티(추장새 라고도 함)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는 것일까? 어느새 여성들과 나의 거리가 좁혀졌다. 그녀들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한 미인의 말씀, “애, 난 요즘 하루 두 끼만 먹어.” 그 곁의 미인의 말씀, “어머, 어떻게 참어? 난 죽어도 세끼 다 먹어야해.” 또 다른 미인의 말씀, “두 끼만 먹으니 한 끼는 꼭 과식하게 되더라.” 먹는 이야기였다. 무슨 음식이 맛있다느니, 끊임없이 먹는 이야기로 화제가 이어지고 있었다. 미녀들의 먹는 이야기는 중간 쉼터에서 그녀들이 주저앉음으로써 내게서 멀어졌다.
넉 달 전 친손녀를 보았다. 손녀가 외가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에 자주 볼 수 없지만 며느리가 동영상을 찍어 보내주어 옆에서 늘 바라보는 것만 같다. 보내주는 동영상 대부분이 손녀의 먹는 모습들이다. “오늘은 지윤이(손녀)가 분유 먹고 잘 놀고 있어요.” “오늘은 첫 이유식 시작했어요.” “어제 지윤이 쌀미음 먹는 모습 이예요.” “오늘은 양배추 미음을 먹었어요.” “잠이 와서 졸면서 먹고 있어요.” 이 녀석이 종일 하는 일은 먹는 일이다. 먹고는 트림을 시키고 그러면 자고, 배고프면 또 보챈다. 며느리의 수고는 점점 더해진다.
나는 공직을 은퇴한 후 노인요양원 관리자 일을 하고 있다. 요양원의 입소어르신 대부분이 치매를 앓고 계시는 분 들이다. 식사시간이 되면 매일 부산하다. 먹는 것 때문에 요양보호사와 어르신 간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방금 식사를 하시고도 밥을 주지 않는다며 우기시는 어르신, 또 밥을 먹지 않겠다고 입을 닫고 버티시는 어르신, 음식물 과식으로 탈이나 병원까지 다녀 오신분도 있고, 음식을 드시지 않아 탈진하셔서 영양제로 삶을 영위하시는 분도 있다. 이러한 입소어르신과 음식 때문에 다투는 직원들의 고뇌가 눈물겹다.
영화, “님 아 저 강을 건너지 마 오”에서 병환중인 노인이 밥을 먹지 않으려하자 딸이 “먹어야 살지”하고 우는 장면이 있었다. 우리는 이런 광경을 흔히 보며 살고 있다.
불교에서는 1일 1식을 하는 수행이 있다. 안 먹을 수는 없는 것이고, 먹어야 살고 수행도 하고 전도도 할 수 있는 것인데, 먹는 일에 너무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 일일일식을 하는 것은 아닐까? 먹는 일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숙명이다. 먹지 못하게 되면 생명이 떠나기 때문이다.
먹을거리 풍성한 계절이 왔다. 온갖 과일이며 야채들, 열매들이 풍성한 10월이다. 우리 모두 잘 먹자. 먹을 수 있는 것은 축복이지만 많이 먹는 것은 만병의 근원이다 너무 많이 먹지도 말고 살 뺀다고 너무 작게 먹지도 말고 내 몸에 필요한 만큼의 양을 적당하게 먹으면 좋을 것이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
의사의 말대로 운동도 해야겠고, 음식조절도 해야겠다. 시키는 대로 하다보면 콜레스트롤 수치도 내려갈 것이고 공원에서 만난 미녀들처럼 날씬해지고 건강해지겠지! 모든 것을 긍정적 마인드로 살아가기를 다짐해본다.
첫댓글 먹는 것을 참는 것은 큰 고통이지요. 그러나 의지가 강한 분이니 꼭 성공하실 것입니다.
오랜만에 카페 들어왔습니다. 고맙습니다.